늘 감질났었다
아니, 목말랐다고 해야하나?
이런저런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몇점 걸린
박수근화백 작품들을 만나면 귀한분 실물영접하는 기분으로
성스럽게 올려다 보듯 감상했었다
그런데 한결같이 작은 그림만 걸려 있어
감질만 더 났었다
이번에 제대로 만났다
솔직히
그리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너무 횡재한 기분이다
박수근 화백이 처음부터 이런 화풍으로 그린 건 아니다
모든 화가들의 발전 스토리가 존재하듯
박수근화백도 지금같은 독특한 기법을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서양 화가들의 화풍을 연구했는지
꼼꼼한 스크랩북들이 함께 전시되어 흥미로웠다
액션페인팅을 주로 했던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를 연구하고
그의 작품제작 모습까지 스크랩했다
루오, 앙리 마티스, 모딜리아니 등의 작품들을
꼼꼼하게 스크랩한 걸 보면
지리적 한계를 극복해 보려는
화가의 열정이 보인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모작하며
실력을 길렀던 화가들에 비하면
얼마나 어려운 공부법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박완서님의 소설 '나목' 속의 화가 모델이
박수근화백이라고 했는데
소설 속
미8군 PX에서 미군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유지했던
가난한 화가가 그였다니.
새삼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 속 인물들이
유기체처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번 도서관 가는 날엔
꼭 박완서님의 소설 나목을 빌려와 다시 읽어보리다
요 굴비는
갓 구워놓은 듯 노릇노릇하니
얼른 젓가락으로 떼어
따뜻한 쌀밥위에 얹어 먹어보고 싶다
짭쪼롬한 맛이 느껴질 듯
너무나 사실적이다
화법을 정립하기 전의 그림인듯 한데
내가 들고 다녔던 여고시절의 책가방이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듯 해
눈이 번쩍 띄게 반갑다
얼른 들어다 가방 속의 도시락도 꺼내 부엌 설거지 통에 내 놓고
내일 시간표를 보며 책을 바꾸어 정리해줘야 할 듯 하다
이런 작은 작품들만 보다가
갑자기
신세계에 들어선듯 동공이 확장되며 놀라게 되는 나
누구의 기획력인지 너무 참신했다
한 전시실의 조명을 모두 없애고
오직
그림만이 조명 받을 수 있게 했다
그것도
대작 위주로 걸려있다
박수근의 작품이 제대로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람자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작품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내가
박수근화백님의 그림에서 가장 궁금한 건
이 표면의 질감이다
시멘트를 바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캔버스가 아닌 도틀거리는 오브제에 붓을 그어 그린 것 같기도 하다
내내 궁금하고
화백의 표현기법을 설명해 놓은 게 없을까
늘 두리번 거렸었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내내
내 몸은 자꾸만 자꾸만
그림 앞으로 몸을 숙이고
킁킁대며 냄새를 찾는 강아지처럼
눈을 킁킁대며 질감을 살핀다
이번에 전문가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의문점이 좀 풀렸다
캔버스에
수없이 반복 된 채색으로
도틀거리는 질감을 만든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회색빛 카키빛 느낌 속에서
숨은 색 찾듯이 노랑도, 핑크도, 녹색도 찾을 수 있다
화가가 가장 구하기 쉬운 모델은 바로 가족이겠지
책 읽는 모습을 그린 딸
나중에 이 딸이 커서 미술교사로 재직할 때
교과서에 들어있는 이 그림을 가리키며
"얘들아, 이 소녀가 바로 선생님이야"
했을 때 학생들이 와아~~ 하며 함성을 지르며 신기해 했다는
딸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고단하지만
정갈함을 잃지 않은
우리네 엄마, 할머니가 보이는 듯 한 이 그림도
분명 화가의 아내일 듯 하다
전시 제목인 '나목' 과 어울리는 듯한 이 그림이
자꾸 눈에 들어와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가
카메라에 담아왔다
이 전시는
사전예약제를 시행중이니 예약이 필수다
관람료 2천원
덕수궁 입장료 1천원
이건희 컬렉션도 많이 있고
외국에 거주중인 외국인 개인소장품들도 많이 있으니
박수근 작품에 목말랐던 분들은 얼른 달려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