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영화가 2019. 7. 24. 첫 개봉되었다.
초기에는 관람수가 무척이나 많았으나 8월부터는 숫자가 아주 적다.
이유는 무엇일까?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이 창조하고, 3년 뒤에 1446년에 반포했다고 지금껏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쳤고, 배웠다.
그런데 신미대사(1403 ~ 1480년)이 훈민정음을 1435년에 창제해서, 이 글자로써 <원각선종석보> 5권을 목판인쇄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996년 이후부터이다.
<원각선종석보>는 1999년에 죽은 일타스님이 중국 여행 중에 제1권을 사 왔으며, 이를 여중동 씨한테 보여주었고, 여중동씨 는 2006. 3. 10. 강상원 씨한테 복사본을 넘겨주었다.
※ 함께 있었던 사람 : 민병기, 임희경
- 위 사실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했기에, 나는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못한다. 진위여부는 각자가 판단할 사항.
이후 강상원씨는 2000년을 전후로 하여 '훈민정음은 세종이 창제한 것이 아니라 신미대사가 창제했다'고 숱하게 강연함.
※ 인터넷에서 '강상원 훈민정음, 강상원 신미대사, 원각선종석보, 신미대사 훈민정음 창제설'... 등의 일련의 단어를 입력하여 검색하면 자료가 많이 뜬다.
※ 노태조 대전보건대 교수도 복사본을 가졌다고 함.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년도(1443년)보다 8년 전인 1435년에 이미 신미대사가 <원각선종석보>를 발간했다는 설에의문이 생긴다.
신미대사가 8년 전에 이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하면
1) 세종대왕이 남의 것을 가로 챘냐? 신미대사가 창제했다는 훈민정음인데도 세종이 자기가 창제한 것인 양 이를 반포했냐?
- 세종대왕은 남의 것을 가로채서 1446년에 반포했다?
- 남의 공적을 가로챈 사기꾼, 거짓말쟁이, 강탈자 등이냐?라는 의문이 생긴다.
2) <원각선종석보>의 진본은 있는가?
복천암의 주지인 일타스님(1929 ~ 1999년)이 중국 여행 중에 구입했다는 <원각선종석보>책은 과연 지금 누가 소장했는가?
※ 인터넷에서는 해인사 보관 중이라고 하나 이런 낭설은 신뢰성은 거의 없다.
- 과학적인 방법으로 원본의 종이 변이상태(언제 만든 종이?), 인쇄한 잉크의 흔적(언제적 잉크, 580여 년 전의 잉크가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화학 작용을 분석)
3) <원각선종석보>가 위작(위조, 거짓, 가짜)라고 본다(국어학회 등).
그런데 왜 이 사실을 무시하고 영화 <나랏말싸미>를 만든 제작자의 저의는 무엇일까?
4) 지난해 2018. 11. 충북도청, 보은군은 '신미대사 테마 공원'을 조성했다.
- 마치 훈민정음은 세종이 아닌 신미대사가 창제한 것인 양 크게 홍보했다.
※ 신미대사를 기리는 빗돌(?) 무엇이라고 글자를 새겼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확인 예정.
- 만약에 여기에 '훈민정음 창제' 운운하면 충청북도, 보은군청 등 행정기관은 욕 먹을 수 있다.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행정력을 투입했기에. 관공서가 앞장 서서 가짜를 선전한다?
5) 속리산 법주사 인근에는 <복천암>이 있다. 신미대사가 주지로 있었다고 하며, 그를 기리는 석탑이 있단다.
<신미 부도탑> : 이 탑을 언제 제작했는가?
- 인터넷 사진으로는 부도탑은 그렇게 오래 전에 만든 것 같지는 않다.
- 빗돌(석재)의 지질과 화학작용으로 조사해야 할 터.
부도탑에 신미대사에 관해서 어떤 내용들이 글자로 새겨졌는지, 부도탑 해체할 때에 발견한 물품들이 무엇이며, 그 물품들을 과학적 방법으로써 조사했는지가 의문스럽다.
6) 신미대사는 영산 김씨 출신.
영산김씨 대동보에 신미대사에 관한 기록이 있을 게다.
언제 족보를 발간했는가? 1976년판, 1999년판? 1976년판은 선계가 위조되었다는 뜻으로 인터넷에 떴다. 즉 족보 가운데 일부는 가짜라는 뜻이다. 1999년판에는 무어라고 기술했나?
족보 발간년도를 기준으로 보면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7) '신미대사의 한글창제, 신미대사의 한글창제 주역'등의 문구는 무엇을 뜻하는가?
신미대사의 한글창제설을 믿게끔 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충분한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자료, 증거가 부족하면 어떤 논리라도 일목요연하게 정립되어야 한다.
즉 6하원칙이 있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외에도 누구와 함께? 그 결과에 대한 조치는? 등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한다.
일방적인 정황, 추측이 아니고, 그게 맞다는 또다른 증거, 자료를 거듭 제시해야만 점차로 어떤 확신으로 귀결될 게다.
6하원칙이 없는 막연한 개인적인 주장은 그냥 허구, 가짜, 속임수, 짜맞히기 수준에 불과하다.
'훈민정음을 신미대사가 만들었다(창제했다)'는 설은 지극히 최근에 대두되었다.
몇몇 사람의 이름이 주동자처럼 인터넷에 뜬다.
1) 충북 보은군 복천암 주지 월성스님(1985년부터? 30년간 신미대사 연구?)
2) 신미대사가 14365년 발간했다는 <원각선종석보>를 꾸준히 홍보한 강상원(1994년 이후부터 불교 소설 자료 수집 시작)
3) 신미대사의 가계인 영산김씨 대동보(1999년판)
4) 신미대사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뜻으로 소설을 쓴 소설가들(조사하면 많이 나올 터)
※ 어떤 근거에 의해서 신미가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인지 그 발단이 무엇인지.
5) 나랏말싸미에 관한, 연극공연, 영화제작...은 지극히 최근이다.
'최근'이라는 단어의 뜻은? 불과 20년 이쪽저쪽의 최근에 신미대사가 크게 부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1443년)한 것이 아니고, 신미대사가 1435년에 창제했다'고 학생들한테 가르칠 것인가?
세종대왕은, 신미대사가 창제한 한글을 가로챈 파렴치한 사기꾼, 날강도, 거짓말쟁이로 몰고 갈 것인가?
<나랏말싸미> 영화 관람자 숫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8. 14. : 567명(순위 23위)
8. 15. : 1,239명(순위 23위) : 경북 창원시 불교연합회 단체 관람 700여
8. 16. : 430명(순위 29위)
8. 17. : 91명(순위 61위)
8. 18. : 67명(순위 66위)
8.19. : 801명(순위 17위) : 불교계 단체관람
8. 20 : 1,067명(순위 17)
8. 21. : 336명(순위 35위) : 내 마음이 아프다. 손해는 나지 않아야 할 터인데..
누계 952,505명
※ 8월 15일자, 8월 19일자의 관람수가 갑짜기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연합회에서 단체로 관람하였기에 숫자가 늘어났다.
반대로 해석하자. 영화 관람숫자가 현저히 줄어든 이유는 불자들이 영화를 단체로 보지 않은 탓일까?
관람객수의 통계를 보면...
※ 법보신문 : 오늘 오후에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세종대왕과 신미스님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이란 제목이 떴다(문학산, 영화평론가, 부산대 교수).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링크'라는 글자만 뜰 뿐 전혀 검색되지 않는다. 다른 것은 다 뜨는데...
어떤 기사를 썼기에?
검색되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했다? 왜?
불교계에 대한 신뢰성은 이제는 아니다. 뻔한 것들이다.
신미대사에 집착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이게 더 궁금하게 생겼다.
<훈민정음 신미대사 창제설의 기본적 약점>
원각선종석보 458 ~459쪽 비교하면...
이런 짝퉁을 믿고는 각종 강연을 했던 어떤 학자, 소설가, 영화제작자들은 머리가 아주 뛰어난 사람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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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써 28일째 '나랏말싸미 영화왜곡'를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한심하다. 내가...
논리가 없는 자들의 말장난을 내가 검색하다니...
오류, 궤변 수준도 아니고, 그냥 철없는 아이들이 떼 쓰는 것 같다.
콧물 눈물 짜면서 징징거리는 꼬라지같다.
훈민정음을 세종이 아닌 신미대사가 1435년에 만들었다고?
세종이 1443년에 만들고 1446년에 반포했다고 지금껏 학교에서 가르친 것은 순전히 가짜, 사기였냐?
제발이다.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을 중이 8년 전에 이미 만들었다고 하는 황당한 잡설을 앞으로는 그만 두었으면 싶다.
첨가 :
일제시대 1941년 '한글말살'과 '창씨개명'을 강요했던 일본제국주의 정책을 보는 것 같다.
나는 해방 뒤인 1949년 1월에 태어났으니 일제시대에 창씨개명한 성씨를 쓰지 않았다.
구호적을 보면 내 아버지, 할아버지 등의 姓씨는 산본(山本) 이름으로 나왔다.
일본말로 '야마모또(やまもと, 山本).
그럼 내 이름은 '야마모토 윤환'? 끔찍하다. 또는 '야마모또상'라고 姓씨로 불리려나?
나는 1960년대에 대전에서 살았다.
일꾼 노동자들은 '긴상(金さん)', '이상(李さん') 일제시대에 썼던 말투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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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 훈민정음 창제설.
인터넷으로 검색하기를 28일째.
신미대사가 만든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은 마치 자기가 창제한 양 반포했냐?
그럼 날도둑, 강도?
훈민정음창제 8년 전에 이미 신미대사가 만들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첫댓글 최선생님 집념어린 자세한
글을 읽고 훈민정음 공부 잘 하고 갑니다.
놀라운 집중 연구세요.
그러나 지금은 여러 현상은
후세 불교계나 영화계의 문
제이지 신미대사 본인의 과
오나 불찰 위선은 아닐 것
같습니다.
최선생님 덕분에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났는데
식사는 하셨는지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 쓰면 미움이나 받겠지요.
불교 관련 카페에서는 아마도 나를 응시할 것 같은데요.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 못하는 홍길동 같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서자이기에).
훈민정음을 누가 창제했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사항이지요.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 그냥 논리상으로만 추적합니다. 신미가 훈민정음을 8년 전에 이미 만들었다는 설에는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세종이 사기친 것일까요?
남이 해 놓은 것을... 이름만 살짝 바꿔쳤나요?
원각선종석보는 1435년에 발간? 세종은 11년 뒤인 1446년에 반포?
누구의 설이 맞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