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1. 주일 큐티
다니엘 2:13 ~ 18
은밀한 일을 알려주시기를 친구들과 함께 구하는 다니엘
관찰 :
1) 죽음의 문턱
- 13절. “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은 준엄했습니다. 왕의 명령은 장난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인데, 그 명령은 살인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이 바뀔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왕이 그 명령을 거두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상은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이었고, 그 안에는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죽음의 문턱에 서있게 된 것입니다.
- 14절 ~ 15절. “그 때에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에게 물어 이르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냐 하니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알리매” =>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은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다니엘과 모종의 친분 관계가 있었던 듯싶습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군급하게 잡으러 다니는 중에 다니엘의 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년 다니엘의 말은 지혜로웠습니다. 다니엘이 판단하기에 아리옥이 왕의 명령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지 그가 왕의 뜻에 전적으로 순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의 명령이 어찌 그렇게 급한가에 대하여 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리옥은 그 일의 전후를 다니엘에게 알려주게 된 것입니다.
2) 다니엘의 조치
- 16절.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 죽음을 피하기에 급급한 마당에 도리어 다니엘은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왕의 면전에 나아간다는 것은 미쳤거나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찾아가 담판을 내리게 됩니다. 다니엘의 요구는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지혜자들이라는 부류의 사람들은 육체에 머물지 않는 참 신이 그 해석을 하실 것이라 말하고, 자신들은 살 길을 찾고자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도리어 왕에게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3) 다니엘이 취하는 해법
- 17절.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 다니엘은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었지만 자신의 긴밀한 사정에 대해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와 나누고자 했습니다. 자신 혼자서 할 기도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18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 다니엘은 자신과 세 친구만 살려달라고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되도록 간구했으며, 그것을 자신의 긴밀한 친구들에게 나누고 함께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은 도리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바벨론에 선포하시는 것이 되었습니다.
가르침 :
1) 느부갓네살로 말미암아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던 다니엘과 세 친구는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자신을 죽이고자 찾는 왕에게 단독으로 나아가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켰습니다.
2) 다니엘과 세 친구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들의 생명만 부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의 지혜자들의 생명도 구했습니다. 다니엘은 이 일을 계기로 다른 이들을 없애버리고, 자신들만 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바벨론으로 끌려온 유대의 포로들이 오히려 본토의 지혜자들을 살리게 된 것입니다.
3) 다니엘은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왕에게 나아가 시간의 말미를 얻은 것도 다른 꼼수를 부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더불어 목숨을 건 기도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도박이 아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고하게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의 이러한 시도는 의미있는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열리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적용 :
1)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다니엘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지혜자들을 발본색원하여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된 근위대장 아리옥을 진정시키고, 게다가 느부갓네살을 배알하여 그로 하여금 시간의 말미까지 얻어냈습니다. 이 일이 다니엘이 나이 먹고 한 행위가 아니라 바벨론에 끌려온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의 나이 때에 행한 행위입니다. 침착하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가장 지혜로운 일처리를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으며, 당황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흥분하는 것은 언제든지 득이 될 것이 없습니다. 흥분하게 되면 두려움도 배가되고, 잘못된 정보를 판단하지 못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도록 내버려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수록 주님을 바라봄으로 침착하게 현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바를 더욱 감당하는 오늘이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2) 다니엘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이 꾼 꿈속에 들어가 그 꿈을 해몽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SF영화에서도 그것은 개연성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과 지혜자의 표상인 다니엘이 그런 일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한 것입니다. 어찌 놀랍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기대로 말미암게 된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나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또한 “나는 하나님이 얼마나 신뢰하게 만드는 사람인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는 신뢰가 견고하게 세워져있는가?”
3) 이상의 질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자의 전제가 되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신뢰하기에 문제는 내가 주님을 신뢰하는 것에 달려있음을 오늘도 깨닫게 됩니다.
3) 답답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 목전에 있음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뜻을 세우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주님과 동행하여 그 뜻을 성취해 나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