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 가을바람
김 선 구
은해사 입구에 늘어 선 벚나무들이 곱게 단장 했다. 여태 단풍 중 으뜸인 것은 단풍나무 잎이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다. 나무들 마다 독특한 멋을 부리고 있지만 벚나무에서 보는 느낌이 더욱 돋보인다. 아직도 푸른 꿈을 간직한 연초록 잎에서 노란색, 자주색, 분홍색, 황색 등 온갖 색이 어우러져 더욱 곱다. 마치 천개의 손과 천개의 얼굴을 하고 곳곳에 화현(化現)하여 자비심은 베푸는 천수천안관자재보살의 화신처럼 보인다.
단풍들이 자태를 뽐내는 계절이다. 창연한 날씨가 가을 색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 좋은 날 교외로 나가 바람이나 좀 쏘이고 오자.”고 제안이 왔다. 말은 그렇지만 상록수필5호 발간에 대해 의논도 할 겸 서로 간에 위무를 위한 행보였다. 편집위원장을 위시하여 문우 넷이서 나들이 나섰다. 걸으며 얘기를 나누는 것이 부담 없고 더 자연스러운 법이다. 가까운 곳 영천 은해사로 가보기로 했다.
멀리 팔공산을 올려다보니 울긋불긋 산색이 아름다웠다. 요새 팔공산 단풍이 한창인 모양이다. 팔공산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10월 말에서 11월 초라 하니 지금이 단풍 절정기인 셈이다. 이 시기에 맞추어 매년 팔공산 단풍축제가 동화지구에서 열린다고 한다. 동화지구란 동화사 일대를 이르는 모양이다. 팔공산 단풍이 어찌 이 지역에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은해사지구 단풍도 아름답기로는 뒤지지 않을 터인데.
은해사는 주변 산세와 풍광이 마치 은빛바다가 춤을 추는 듯 아름답고, 안개와 구름이 피어오를 때 광경도 은빛물결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은해사 법당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부처가 모셔져 있었다. 좌측에는 자비의 화신 관음보살, 우측에는 지혜의 화신 대세지보살이 협시불로 좌정하고 있었다. 아미타불이 관장하는 정토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주변 경관을 단풍으로 수놓고 자비와 지혜가 흐르는 곳 바로 여기가 아닐까.
일찍이 누가 여기에 절터를 잡았을까? 은해사는 신라 41대 헌덕왕 원년 혜철국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헌덕왕은 조카인 애장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른 왕이다. 왕위에 오른 후 왕위쟁탈 과정에서 죽은 원혼들과 선왕에 대한 죄책감이 컷을 것이다. 후에 원혼들을 달래고 나아가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빌기 위하여 절을 지었다 한다. 사람은 양심을 속이고는 못사는 법이다. 자신이 지은 죄업을 속죄하기 위하여 창건한 절이 천년 사찰이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나마 억울하게 죽어 간 원혼들의 안식처가 되었으니 다행스런 일이다.
원래 은해사는 말사인 운부암 쪽 해안평에 창건하여 해안사라 했었으나 조선조 명종 때 지금 자리로 옮기면서 은해사로 개명했다고 한다. 명종은 선왕인 인종의 태실을 더욱 웅장하게 장식하고 봉안 하면서 은해사에 각별한 관심을 두었던 모양이다. 왕실에서 태(胎)는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으로 여겨서 소중히 다루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왕족의 태실은 국운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 태를 전국의 명당에 안치 시켰다 하니 인종의 태실은 물론 이곳 은해사 또한 명당자리임이 틀림없는 듯하다. 명당을 둘러보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다.
내가 은해사를 찾은 것이 참으로 오래만의 일이다. 동화사나 갓 바위는 자주 갔지만 왠지 은해사에 올 기회가 적었다. 몇 년 만에 찾아와보니 주변 환경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옛날에는 절 입구가 논밭이 산재한 들판이었고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일주문까지 한창 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논밭이었던 곳이 광장으로 변하여 주차장과 상가를 이루고 있었다. 절 입구로 이어지는 길도 잘 조성되어 있어서 좀 더 친밀감을 주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니 노송들이 우거져 호젓함을 안겨주었다. 조선 숙종 때 은해사를 왕가의 종친부에 귀속시키고 절 주변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소나무를 심고 숲을 크게 조성하였다. 왕실의 자애로움을 알리기 위해서인지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실천하기 위함인지 이 숲에서는 일체의 살생을 금하여 “금포정(禁捕町)”이라 불렀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높이 10m, 수령 300년 이상 된 나무들이 사천왕문에서 법당에 이르는 길을 덮고 있었다.
금포정 숲길에 부는 가을바람이 향긋했다. 자연이 주는 신선함인가? 아니면 오래 역사의 질곡 속에 묻어있는 향기 때문인가? 한참 걷다보니 “사랑나무”란 안내문이 걸려있었다. 100년생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연리지(連理枝)를 형성했다. 참나무가 다정하게 어깨동무라도 하듯이 느티나무 위에 가지를 걸친 모습이었다.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나무들에게까지 전해진 모양이다. 수종이 다른 나무끼리 연리지 향성은 드믄 일이라 한다. ‘부부의 애정을 상징하는 나무’라 하면 족할 것을 ‘왼쪽으로 돌면 아들을, 오른쪽으로 돌면 딸을 낳는다’는 해설이 진부한 감을 준다. 어쨌거나 절로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절로 이어지는 길은 사람만이 다닐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차도와 분리되어서 주변을 즐기며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삶의 즐거움을 느껴 볼 수 있고, 역사의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때로는 사색의 심연으로 빠져 볼 수도 있다. 숲속을 걷는 마음이 곧 수필을 향한 발걸음이 아닐까!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라 했다. 정화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글이 수필이 아닐까 반문해 보았다.
그동안 우리는 수필집을 4호까지 발간했다. 설렘과 우려 속에 펴낸 작품들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궁금했다. “우리들 수필집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저명한 문인들 몇 분이 읽어보고 평해 준 얘기입니다.” 일행 중 한사람이 말을 꺼내었다. 맑은 공기 전신을 감싸 안았다. 이번에 발간 할 상록수필 5호가 더 맑은 향을 담기를 기원하며 발길을 옮겼다. 은해사 가을바람이 더 싱그럽게 느껴졌다.
첫댓글 벚나무 단풍이 더 곱다. 비록 요란스럽지는 않지만 잎새 하나하나가 제각기 다른 색깔로 품위를 지나고 있음을 늘 경이롭게 바라보던 나의 경험이 새롭습니다. 수필집 제5호 발간을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여러분께 감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잘 읽었습니다.
상록수필의 무한한 영광을 위해 애쓰시는 교수님을 비롯해 회장님과 편집위원장님 위원 선생님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단풍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피력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은해사에 관한 몰랐던 이야기를 글을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고향에 있는사찰이라 그냥 가면 편안하고 항상 그자리에 있는 사찰이었는데 색다른 차원에서 새롭게 조명한 글을 읽으니 은해사가 한층 격조있어 보입니다. 은해사의 법력도 받아서 상록수필 제5호가 멋지게 태어나도록 힘을 모아야 되겠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천연사찰인 역사 깊은 은해사에 가셔서 온갖 단풍의 향기를 맡고 오신 회장님을 비롯한 문우님, 그 곳에서 우리상록 수필 5호가 더욱 빛나게 태어나기위한 구상을 하셨다니 앞서서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고개숙여 집니다. 덕분의 우리상록수필은 날로번성하여 더 많은 작가들의 산실이 되리라 믿습니다. 가을 끝자락 향기를 글속에서 함께 받았습니다.
벚나무 단풍잎도 참 곱지요. 우주의 모든 색깔을 다 품은 듯 삼원색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화려함의 다양함은 벚꽃을 따를 나무가 없을 듯 싶습니다. 오직 노랑 하나만을 고집하며 가을밤을 환하게 하는 은행잎도, 가을의 우수를 담은 듯한 느티나무의 단풍도 모두 일품입니다. 그런 온갖 단풍의 아름다움이 유혹하는계절에 선생님께 간택받은 건 은해사 벚꽃이었군요, 상록수필 5호 발간을 위해 애써 주시는 편집위원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풍광 좋은 은해사의 단풍 구경도 하면서 상록수필 5호 발간을 위하여 좋은 말씀도 하셨다하니 수고가 많았습니다.
. 은해사는 근무하던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자주 갔던 친근한 사찰인데 입구 금포정 숲길은 언제가도 좋습니다 형형색색 벚나무 단풍은 멀리서 보면 더욱 다양한 색갈이 어우러저 더 오묘한 느낌을 주는 것같습니다. 상록 수필 5호 발간을 위해 편집위원님들 너무 수고가 많으십니다. 만추의 사찰에서 좋은 정기 가득받으시길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천년고찰 팔공산 은해사를 다녀오신 이야기가 단풍빛처럼 곱고 은빛 바다 물결처럼 일렁입니다. 가을에 가면 특히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길에서 떠 올린 생각들이 알차게 결실을 맺기를 함께 소망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조선 왕실의 태와 관련된 이야기와 명당인 은해사의 가을바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그곳에 가있는 듯 행복합니다. 상록수필이 벌써 5집이라고 생각하니 세월의 바퀴가 점점 더 빨리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