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로 폄하해 보려는 세력들이 있다. 무슨 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박대통령을 친일파로 묘사하는 만화를 만들어 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까지 하였다. 이들이 무슨 근거로 박대통령을 친일파로 보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박대통령의 생애를 조금만 깊이 천착해보아도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박대통령은 1917년 생으로 광복당시 그의 나이는 28세, 오늘의 기준으로 보자면 아직 인격적으로 성숙했다고 볼 수도 없는 연령이었다. 그가 만주군 장교를 했다는 것을 견강부회하여 일본 관동군 장교였고 독립군을 학살하였다고 하는데 정말 터무니없는 말이다. 박대통령은 1944년 3월 일본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여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고 광복하던 해인 45년 7월에 중위로 진급한다. 모두 합해 1년 5개월간 일본군이 아닌 만주군 장교로 있었고 근무지는 중국 열하(요즈음의 이름은 承德)지방의 만주군 보병 제 8단(단장은 중국인 唐際榮)소속이다.
당시 이 부대의 임무는 지역의 안보, 독립군이 활동하였던 한만 국경에서는 지금도 기차로 2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다. 또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한 42년 이후 많은 지식인들이 친일로 전향한 뒤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은 거의 없었다는 것도 역사적인 사실인데 없는 독립군과 기차로 24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주둔한 부대에 근무한 박정희 대통령이 전투를 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맡았던 임무는 단장의 부관 겸 군기 담당이었다.
1937년 대구사범을 졸업하여 39년 11월까지 문경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박대통령은 일본인 교장 아리마와 다투고 교사를 사직하고 만주로 건너간다. 거기서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다가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군인이 되기로 하고 40년 신경(新京)군관학교에 입학한다. 이 학교는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의 장교를 기르는 학교 이고 이때 그의 나이는 24세, 만학이었던 셈이다. 2년의 교육을 끝내고 42년 신경군관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자 우수한 학생은 일본 육사로 보내는 이 학교의 관례대로 일본 육군사관학교 57기로 입학하여 44년 3월에 졸업, 만주국 육군소위로 임관한 것이다.
이와 같은 교사와 괴뢰 만주국의 장교 모두가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별로 자랑스러운 경력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일제 식민 통치아래서 할 일이라곤 거의 없었던 젊은이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 정신적 방황의 한 과정으로 보아야지 그것을 완성된 한 인격체로서 자의에 의한 협조로 보는 것은 참으로 편협한 일이다.
창씨개명을 한 것을 친일의 증거로 드는 경우가 많다. 박대통령의 창씨개명한 이름은 高木正雄이다. 高는 박대통령의 본관인 고령에서 따온 것이고 木은 박씨에서 따온 것으로 이때 문중에서 결정한 것일 것이다. 당시 창씨를 하지 않으면 학교를 들어 갈 수가 없었고 비국민으로 몰려 여러 가지 행정 혜택에서 제외되는 여건 속에서 창씨개명을 했다는 것만으로 친일파로 몬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일방적인 일이다.
박대통령을 친일파로 모는 사람들의 저의는 박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이른바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대통령은 아무도 국민의 추앙을 받지 못하는 데 여론조사를 해보면 유독 박대통령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못마땅한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 대통령들이 일을 잘하여 박대통령을 능가할 만한 업적을 남겼으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을 업적은 못 남기고 인기가 없으니까 친일파로라도 몰아보려는 것이다.
일제의 36년에 가까운 통치 시대를 산 사람들은 업보처럼 친일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1945년 이전 출생자에 해당되는 것이다. 사람의 나이가 18세는 되어야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고 본다면 1927년 이전의 출생자에게나 책임을 물을 수가 있을 것이다. 나이로 계산한다면 광복하던 해의 출생자는 내년이면 환갑이고 18세를 기준으로 보면 금년의 나이가 78세가 넘는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일제 치하에 태어나 아버지가 이미 창씨개명을 하였고 학교에서 황국신민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일본에 동정적이거나 일제에 협력하였다고 해서 친일파로 단정할 수가 있는가. 그들이 식민지의 압박 받는 서민으로 살아야 했고 다른 대안이 없는 데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특히 45년 이후 출생자들이 오늘의 잣대로 자기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형태로 비난을 가하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일이며 비겁하다고 할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친일을 정리하여 민족의 정기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말로는 그럴 듯하지만 무엇인가 노리는 일이 있는 정치적인 투쟁의 하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이 공산혁명을 이룩하기 위한 사회개조의 수단으로 친일파를 대거 숙청한 것을 두고 민족사의 원칙을 세운 것으로 보는 것은 개인의 자유일 수가 있으나 그렇다면 그래서 그들이 미관말직이나마 국가경영의 경험자가 없어 3백만 여명의 인구를 굶겨 죽인 일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자유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태어났을 때 이미 일제 치하라는 것은 태어난 사람의 책임은 아니다. 당시의 풍습대로 살았다면 이것을 비난 할 사람은 없어야 한다. 다만 그런 여건 하에서도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고 높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독립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달아 독립운동을 하고 일제에 항거한 것은 결코 범인은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을 영웅으로 높이 추앙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산 사람이나 그 후손들이나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기리는 일보다 헐뜯는 일에 치중하고 특정한 사람들을 겨냥한 것은 북한이 공산주의로 사회를 개조할 필요성에서 친일파 숙청을 이용한 것과 같다고 본다. 더구나 이제 78세 넘은 생존자나 죽은 사람을 재평가하려는 일은 조선왕조 정치의 기본적인 모습이었던 당쟁과 다를 게 하나 없다.
6.25때 대통령이 서울 사수를 방송한 뒤 많은 공직자들과 서울 시민을 남겨 놓고 피난을 갔다가 서울을 탈환하니까 남아있던 사람들을 부역 용의자로 몬 도강파와 잔류파의 대결이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 끌려갔던 자신의 가족들이 속량 되어 오자 여자는 실절하였다 하여 자살을 강요한 것과 꼭 같은 처사인 것이다.
첫댓글 5번째 이글 봅니다!!!
고박정희 대통령은 이순신장군을 존경하고 우리역사를 사랑하셨던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국보급 문화유산의 대부분이 박정희 정권때 지정되었구요 현판에는 그분의 친필과 그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노무현은 아무것도 한게 없고요...
박전대통령님께서 잘못이 계신지는 저는 나이가 어리기때문에 잘모르겠으나 나나 어느누구든지
간에 어른이건 젊은이들간에 이세상을 살아가며 잘못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읍니다.
그건 어느누구나 같은 생각일거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걸로 아는 "여기모인 사람들 중에
누구에게나 공과는 있기 마련입니다... 이 글 참 와닿네요.
죄가 없다고 셍각하는 사람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신 말씀이 계셨던걸로 알고 있읍니다.
그런 궁중들은 다들 돌을 던지지 못하고 집으로 가버렸다는 얘기가 성경책에 나온다고 본것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대통령님도 시민이며 가난한 사람도 시민입니다. 전부 상부상조 하여 우리나라를 이룩하는것이
우리나라와 국민들을 위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언제나 생각해도 박정희대통령은 영원한 대통령입니다
참 논리가 있으시게 적으셧군요. 이런분이이 앞으로 나셔서야 할껀데요.참 안타까운 현실이내요. 도대체가 그인간들에 머리속에는 뭐가박혀있는지 까서보고싶군요.에이ce8넘에 쉐이들.................. 박정희대통령같은분이 또 이나라에 나올수가있어려나.....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께서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셨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