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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에서는 모든 사람이 두 번 태어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처음 날 때는 자연계에 태어나지만, 찰스 웨슬리가 노래한 것처럼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거듭남’요 3:3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태어나 새로운 영적 생명을 받는다.우리가 처음 세상에 태어남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은 그분이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님은 양쪽 출생 모두의 주인이시다.
주님은 매번 사람을 직접 새로 창조하시지 않고, 남녀가 성적으로 연합함으로써 세상에 새 생명을 낳도록 고유한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늘 갓난아기를 하나님이 복을 주신 징표로 보고 경이롭게 여긴다.
이 새 생명은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받아 특유의 재능과 소명을 안고 태어났으며, 그 일생을 역사의 주인께서 계획해 두셨기 때문이다. 아이를 보며 가장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크게 느껴야 할 사람은 바로 아이의 부모다.
새 생명을 낳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대단하고 경이로운 일이다. 특히 여성은 하나님의 창조 보조자로서 새 생명을 받아 양육하는 특권을 일임받았다. 여성이 부여받은 능력은 남성과의 성적 연합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발현되고, 그럼으로써 여태 존재하지 않던 새 생명이 꽃을 피운다.
성경에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위대하면서 동시에 훨씬 악하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타락한 존재)
유아 세례 때 부모는 구속력 있는 언약으로 선서한다. 우선 부모인 우리 자신이 은혜 안에서 자라 가기로 약속한다.이 책 3장 부분을 참조하라 그래야 자녀가 우리에게가 아니라 우리 구주와 주님께로 이끌릴 수 있다.또 우리는 자녀를 혼자 키우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양육하기로 약속한다. 이 공동체는 하나님께 또 서로에게 다짐한 여러 약속으로 연합되어 있다. 대개 세례식에 동참하는 성도들은 우리를 돕고 우리 자녀를 함께 돌보겠다고 말로 함께 약속한다. 이렇게 공동체가 함께하기에 우리는 더욱 힘을 얻어 부모의 본분과 사명을 다할 수 있다. 세례로 아이가 구원받지는 못한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이런 서약에 응답하여 하늘의 참은혜와 힘을 주시리라 믿는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을 존중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시 56:12-13
젊은이들은 날마다 SNS를 하면서 많은 시간을 들이는데, 거기서 각종 사연과 경험담과 영화와 동영상과 광고와 음악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오늘날의 세속 세계관을 퍼뜨린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자녀를 교회에 데려가거나 중고등부 예배에 보내는 것만으로 이 모두를 충분히 이겨 내고 자녀를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으로 길러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십중팔구는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즉 자녀가 겉으로는 여전히 성경에 기록한 내용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마음속 가장 뿌리 깊은 습성과 직관적 판단 기준은 성경과 무관해지는 것이다. 그러다 십 대 후반이나 대학 시절부터는 기독교에는 개연성이 없다는 의구심에 사로잡힌다.
자녀가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나 복음에 기초를 둔 도덕적 인성을 갖추려면, 그리스도인 부모가 자녀와 함께 그런 도덕 생태계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자녀를 가르치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가르칠 것이다. 우리가 도덕 생태계를 구축하여 그리스도를 닮은 자녀로 길러 내지 않는다면, 세상의 도덕 생태계가 우리 아이들을 함부로 빚어 버릴 것이다.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고 공동체 안에서 심성을 길러 주고 부모로서의 희생을 기도와 은혜로 감수하면, 당신의 자녀도 어느새 성령으로 ‘거듭나고’ 싶어질 수 있다.
2.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 거듬남, 좀 더 나은 사람이 아닌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재구성
모든 무한한 능력으로 세상을 새롭게 정화해 줄 하나님 나라는 역사의 종말에만 온전히 실현된다. 그러나 거듭나면 하나님의 그 장래의 능력이 지금 당신의 삶에 심겨진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치유하시고자 마지막 때에 드러내실 그 미래의 영광이 지금 당신의 삶에 조금이나마 실제로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당신은 속속들이 변화된다.
거듭남이란 우리가 미래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미래가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여행의 주체는 당신이 아니라 시간이다. 세상을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 당신의 삶에 들어와 느리지만 확실하게 당신을 그분 아들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나간다.롬 8:29
거듭남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거듭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결과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배울 수 있듯이 거듭남이란 새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거듭나면 당신 안에 하나님의 생명, 다른 아닌 성령이 심겨진다. 거듭날 때 새로운 감각을 받는다. 예수님은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셨다(3:3). 아기가 태어나면 빛과 소리와 촉감과 냄새와 맛 등 새로운 감각 경험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와 비슷하게 거듭남에도 새로운 영적 감각이 딸려 온다. 여태 이해할 수 없었던 하나님과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진리를 지적으로 능히 깨달을 뿐 아니라 그런 진리가 마음에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곧 영적 실재를 자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거듭나고 나면 여태 놓쳤거나 머리로만 동의했던 성경 진리가 서로 척척 맞아들면서 감동과 위로와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거듭남이란 단지 더 나은 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바울의 말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17 이는 거듭날 때 우리가 실제로 전부 바뀐다는 뜻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무엇이 들어와 여태 우리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이를테면 자리바꿈을 통해 재구성된다는 뜻이다.
당신이 가난하여 평생 쓸모없다는 말을 들었다면, 복음 안에서 우리의 존귀한 가치를 끊임없이 묵상해야 영혼이 치유된다. 반대로 당신이 성공하여 평생 상과 칭찬을 받아 왔다면, 복음 안에서 자신이 낮은 존재임을 자주 곱씹어야 한다.
새로운 정체성은 정말 “새로운 피조물”이라서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다른 인종과 사회적 계층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피부색이나 사회적 지위가 더는 내 정체성을 지배하지 않기에 우리는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는다. 새로 ‘낮아진’ 지위 덕분에 이전 같았으면 무시했을 사람들의 말도 듣고 배우지만, 동시에 새로 ‘높아진’ 신분 덕분에 도전을 감내하거나 불의에 맞서 분명히 목소리를 내거나 기독교 신앙을 증언한다. 모두 이전 같았으면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하거나 아예 바라지도 않았을 일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요 1:12-13 우리 마음과 실질적인 정체성이 재구성되려면 성령의 새로운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과 영광과 실체를 실감해야 한다. 성경 읽기와 설교 듣기, 개인 기도와 합심 기도, 서로를 세워 주는 신앙 공동체, 세례와 성찬식 등 기독교의 통상적 실천에 동참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마음으로 실감하게 해 주신다.
거듭나면 최고선으로 바라보는 대상만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달라진다. 이제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사랑 안에 안식할 뿐 그 사랑을 얻어 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이 정체감은 기초가 전혀 다르다.
겉보기에 ‘최고’의 사람이든 ‘최악’의 사람이든 누구나 똑같은 처지이며 똑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3. 태어남 이후- 은혜 안에서 시기에 걸맞게 성장하고 있는가?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근본적인 변화
우리는 거듭 나서 영적 아기로 시작한다. 유아가 몇 주나 몇 달만에 어엿한 성인이 되는 일은 없다. 다년간의 양육과 노력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모든 것에서 배워야 한다. 아기의 성장을 앞당길 수는 없다. 아기가 자라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도토리로 거대한 콘크리트 판을 깨부수려 한다면 오히려 도토리가 산산조각 난다. 그러나 그 콘크리트 판이 보도블록이라 하고 그 밑의 땅에 도토리를 심어 보라. 발아되기만 하면 어떻게든 싹이 뚫고 올라와 여러 해에 걸쳐 서서히 콘크리트 판을 옆으로 밀어내거나 아예 반으로 쪼개 버릴 수도 있다. 느리지만 확실한 성장에는 바로 이런 위력이 있다. ... 아이의 성장처럼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도 개인마다 다름을 명심해야 한다. 자녀가 여럿인 부모는 알겠지만 옹알이든 걸음마든 다른 무엇이든 자녀마다 똑같은 나이나 시기에 똑같은 속도로 배우는 게 아니다. 쌍둥이조차도 서로 다르다. 영적 성장도 마찬가지다.
[은혜 안에서 자라 갈 때 나타나는 열매들]
이타심이 자란다.
하나님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경건의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려는 갈망도 깊어진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을 향한 사랑도 자란다.
삶의 우여곡절과 제반 상황 속에서 갈수록 더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게 된다.
비슷한 부류의 그리스도인만 아니라 나와 다른 그리스도인까지도 더 사랑하게 된다.
자신과 사회적 지위가 같은 비신자보다 사회적 지위가 다른 신자에게 더 친밀한 유대감을 느낀다.
한 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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