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마지막 총독 일본 패 망후 자살시도 실패
日本 총리 일본은 패했지만 한국은 승리한 것 아니다.
장담하건대 韓國人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榮光)을 되찾으려면 백 년(百年)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日本은 韓國民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植民敎育)을
심어 놓았다.
결국(結局)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奴隸的)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燦爛) 했으며 찬영(燦英) 했지만
현재 한국은 결국 식민 교육의 노예(奴隸)로 전락할 것이다.
을사오적(乙巳五賊), 을사늑약(乙巳勒約) 후손 일진회(一進會)
뿌리 (현재 뉴라이트) 교과서 왜곡(敎科書歪曲)!
근현대사(近現代史) 대안 교과서 뉴라이트 이영훈 (이완용 후손)
현재 교과서(現在敎科書)는 좌파(左派) 빨갱이들의 교과서(敎科書)
는 인정(認定) 할 수 없다.
소화 시대(昭和 時代 しょう わ じだい) 1826녀부터
1989년까지 日本 히로히토(裕仁, ひろひと [덴노])
아베 노부유키(阿部 信行, あべ のぶゆき)
1875年 11月 24日 ~ 1953年 9月 7日)
日本 총리이자 마지막 조선총독부 총독 일본의 패전과
조선(朝鮮)의 해 방까지 보게 된 총독(總督)이기도 하다.
총리(總理)를 지내다가 조선 총독에 임명된 역승전
(어쩌면 좌천) 한 케이스, [1] 하지만
그럴 만큼 뒤 갈망(?)은 했다 싶은 인물
일본 정치인(日本政治人)이자 군인 이시카와 현 태생,
1930년대 말 총리(總理)를 지냈다가 물러난
육군대장 출신(陸軍大將出身)으로 1944년 일본 내각
수상(首相)이 되어 사임(辭任) 한
고이소 쿠니야키의 후임(後任)으로
크로스 9대이자 마지막 조선 총독(朝鮮總督)이 되었다.
1945年 8月 15日 일본이 패전(日本-敗戰) 하고
조선(朝鮮)이 광복(光復) 하면서
그 해 9월 미군(美軍)의 서울 진주(進駐) 때
육군 중장(陸軍中將) 존 하지 장군(將軍)에게
항복(降伏)을 공식 인정(公式認定) 하며
미군 청정(美軍廳政) 앞으로 조선의 행정권을 위임하고
총독직(總督職)에서 물러났다.
이후 귀국해서 1953년에 죽었다.
일본 육군대학(日本陸軍大學)을 졸업(卒業) 하였고
1923年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 때 계엄(戒嚴)
사령부 참모장(司令部參謀長)으로 부임(赴任) 했으며
이후 육군 차관(陸軍次官) 과 대장 직무대행을 거쳐
사단장(師團長)으로 부임(赴任) 하였고
1933年 히라누마 전 총리(前總理)의 후임(後任)으로
내각 수상(內閣首相)이 되었다.
의회주의(議會主義)를 표방하던 민정당/정우회 양당의
협력(協力)을 구하여 전쟁(戰爭)으로 치닫는 정세에
대응(對應) 하고자 했으나
군국주의적 분위기(軍國主義的雰圍氣)로 치닫던 의회가
도리어 총리에게 불신임을 던져버려서 물러나야 했다.
1944年 중국 전권대사를 지내다가 전임 조선 총독인
고이소 쿠니아키가 내각 수상(內閣首相)으로 임명되면서
그의 후임으로 9대이자 마지막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1945年 8月 소련의 침공으로
한반도 북부(韓半島北部) 일부 (함경도 청진 등,)를 사실상
상실(喪失) 하였고
이후 여운형 등과 협의(協議) 하여 건국 준비(建國準備)
위원회(委員會)를 사실상 설립(事實上設立) 하도록 하였지만
군권(軍權)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1945年 8月 15日 덴노(天皇)의 항복 선언(降伏宣言)과
조선의 해방으로 한반도(韓半島)의 북반부(北半部)는
소련군(蘇聯軍)에 의해서 항복(降伏)이 진행되고 9月 미군이
서울에 진주(進駐) 하게 되지 최후의 수단으로 할복(割腹)을
시도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9月 9日 결국(結局) 존 리드하지 장군(將軍)이 주도하였던
항복 조인식장(降伏調印式長)에 나와서 항복문서(降伏文書)
에 조인(調印) 하게 되었다.
일본 극우 언론인(日本極右言論人) 구루다 가쓰히로는
90년대에 한국(韓國)에 '좋은 일본인(日本人)
나쁜 일본인'에서
아베 총독(이 한국에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느니)
유감(有感)이라는 사과방송(謝過放送)을 하려다가
여러 사정으로 못 하고 나갔다느니 같은
엉터리 헛소리를 쓰기도 했다.
한때 아베 신조(安倍 晉三)가, 아베 노부유키(阿部 信行)의
손자(孫子)라는 설이 인터넷에 나돌았지만.
아베 노부유키(阿部 信行)와 아베 신조(安倍 晉三)는 완전히
남남이다.
독음은 똑같이 아베 간 한자가 매우 다르다.
아베 노부유키는 阿部 고 아베 신조는 安倍 다.
그리고 아베 신조(安倍 晉三)의 친 할아버지는
야마쿠치 현 소속 중의원(衆議院)을 지낸
아베 간(安倍 寬 1895 ~ 1946)이다)
한국에서는 후손(後孫)들보다 주목을 덜 받아서
이런 설이 추정된다, 아베 신조(安倍 晉三)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 信介 ぎし のぶすけ)
정치가 1896~1987) "만주의 요괴 귀태 주인공"
일본의 56, 57대 총리(總理)를 역임했다, '55년 체제'로
불리는 자민당의 장기집권(長期執權) 구도를 만들어냈다.
이전 버전에는 키시카 A급 전범(戰犯)이라 칭함은
무죄 추정(無罪推定)의 원칙(原則)에 어긋난다.
이베 신조(安倍 晉三)의 작은 외할아버지 사토 에이사쿠
61, 62, 63대 총리(總理)를 역임(歷任) 했으며
1974년 노벨평화상(Nobel 平和賞)을 수상(受賞) 했다.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 晉太郎)는 외무성(外務省)을
역임했다.
[1] 당시 조선 총독은 일본 내각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총독 위로는 천황만이 있을 뿐이었다.
[2] 1945年 8月 15日에 바로 총독부가 해산된 게 아니다.
미 군정은 조선 치안의 현상 유지를 위해 미군이 도착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조선총독부 및 산하 행정기관을
그대로 두었다
[3] 친일파 청산 문제, 독립유공자 보상 문제
악랄한 군대 문화 및 그로 인해 사회 전반의
비인간적인 의식 동북아 역사 왜곡
지역감정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왜색과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불필요한 일본 혐오 문제 등등
[4] 그리고 아베 신타로(安倍 晉太郞, 간의
아들(장남), 신조이 아버지)
아베 무네토(安倍 宗任, 간 - 신타로 - 신조의 헤이안 선조)로
족속으로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옛 朝鮮의 榮光 찬란하고 위대했던 燦英 운운하는
말은 日本 總督이 할 말인가라고 믿을 수 있을까?
항복문서 조인하는 노부유키
[출처]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일본36대 총리 조선마지막 총독 일본은 한국인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植民敎育)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것이다 과연 옛 조선의 찬란 영광 |작성자 pentaton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