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 누구도 의심할 여지 없이 그리스도께 관한 것이다. 신구약 전체를 놓고 볼 때 그 중심 사상은 그리스도의 언행을 기록한 네 가지 복음서이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는 동시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훈하시고 가르치신 바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특히 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서란 사람들의 공상에서 나온 것이며 거짓말이라고 한 때도 있었다.
사실 세상에서 성서만큼 혹심한 비평을 받은 책도 없겠지만 성서만큼 광범위하게 읽히우고 장구한 세월 동안 신임과 존경을 받은 책도 없을 것이고 또한 위대한 교화를 준 책도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상반된 면을 생각해 본다면 믿을밖에 없는 진리의 경전이라는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그 맹렬하고 장구한 시일 동안에 매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성서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을수록 거기에대한 연구도 없지 않았다.
종합한다면 ①거짓을 기록할 이유가 없다. ②예수의 제자였던 마테오ㆍ마르꼬ㆍ누까ㆍ요한이 동시대에 쓴 것이기 때문에 거짓을 썼다 해도 동시대 사람들은 거짓인지 참말인지 알았을 것이고③시대성에 치중하지 않고 지역적인 지리에 관심이 없었다. 이유는 모두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④책을 써서 돈을 벌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고 문학적인 형식에 치중하지도 않았다.
이상의 것을 본다 하더라도 거짓이 되지 못한다. 인쇄술도 발달되지 않았던 그 당시에 순수 신앙이 아니었던들 어떻게 일일이 손으로 베껴 전해 왔겠는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서에서 여러 가지 과학적 오류를 찾아내고 비과학적이란 점에서 믿지 못하겠다 한다. 예를 들면 구약에『홍해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민족이 바다로 건너간 것』과 신약에『날 때부터 소경이 어떻게 볼 수 있는가』등 현대 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할 일을 어떻게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가 한다.
성서에는 여러 곳에 하느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 기적을 행한 사실을 기록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구태여 기적이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기적은 하느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프로테스탄에서는 성서 내용을 각자가 마음대로 해석한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의 본질적 생리에서 생기는 일 같다. 가톨릭에서는 교회권 이외에 마음대로 해석하지 못하게 한다. 이유는 어떤 법전이나 중요한 경전은 그 제작자나 입법자 외는 참 뜻을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적 해석이라는 것이다.
/ 김영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