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미사를 뒤로하고 북한산을 찾아 나선다.
지축역 마을버스 정류장엔 길고 긴 등산객의 행렬, 두 대의 버스를 보내고야 내 차례,
그래도 아침부터 서둘러 10시 30분부터는 산엘 오르고 있다.
어제 줄기차게 내린 비로 계곡은 풍성한 수량이 됐고, 그 힘찬 계곡의 물소리가 수 많은
소리들을 해면처럼 빨아 들인다.
주일이면 몰려오는 등산인파로 산이 갖는 고요와 침묵의 무게를 잃을 것이란 염려는 우려였을 뿐,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는 말을 온전히 몸으로 실감하며 산길을 걷는다.
어쩌면 내 귀에 이상이 와서 일수도 있고, 내 눈의 이상이 와서 일수도,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해 본다. 주위에 누가 있다는 것도 잊은채, 산길과 나는 하나가 된다. 지난주 토요일
떨어지는 비로, 오르던 산길에서 되돌아 갔던 것이 아쉬워 찾아 나선 길, 싱싱하던 지난주의
붉은 단풍이 조금은 시간을 노친 것 같다. 그래도 비치는 햇살 속에 산이
온통 불타듯 붉게 물들어 있다. 어제 내린 비와 바람으로 발목까지 푹푹 쌓인 낙엽 속에서 단풍
숲길을 걷는다.
“나는 이런 느낌의 오솔길이 너무 좋아. 이렇게 아름다운 색감을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겠어?” 지나가던 어느 젊은 등산객의 감탄과 함께 쏟아져 나온 말,
내가 나에게 행복에 겨워주고 싶던 말, 그 친구가 대신 읊고 지나간다.
아마 저 앞을 걸어가던 사람이 아닌가 싶네요. 가을 산에 도취됐던 젊은이가.
산길을 걷는 누구라도 형언할 수 없는 그 빛 속에 하나가 되는 순간들,
그 길에 내가 서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떨림이다.
내가 사는 날까지 과연 몇 번이나 더 이런 충만한 감동의 순간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시간이
그래서 더 소중하고 귀하다.
저 뒤 짊어진 배낭 안에서 흘러나온 연주, 어느 연주회장에서도 그리 공명이 먹진 연주를 들은 적이 없답니다.
저 황홀한 단풍길, 함께하지 못해 못내 섭섭해, 사진으로 초대합니다.
제 쉼텁니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숲을 바라보고, 노닥이는 곳.
갑자기 온 산에 첼로음이 울린다.
부드러운 저음의 첼로음은 온 산을 가득 채우고, 낙엽과 타오르는 가을 빛에 조화되어
그대로 가을 산 속에 녹아 내린다
누굴까? 누가 이런 음악을 이 산에 내려 놓고 있을까.
빨간 모자를 쓴 여인, 그 여인의 배낭 속에서 음악은 계속 흘러 나오고, 쉬지 않고 걸어 가는
그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기 위해 나도 발걸음을 재촉하며 따라가 본다. 하지만 워낙 걸음이
빠른 그 여인은 산 모롱이를 돌아 순간 모습을 감춘다. 바흐의 무반주 철로 모음곡, 점점
멀어지는 첼로음을 쫒아 나도 걷는다. 긴 여운만을 낙엽위에 깔아 놓고, 그 여인은 가 버렸다.
첼로의 중후한 음율이 내 영혼을 흔들어 놓고 가 버렸다.
유난히 빛이 예뻐 지나칠 수가 없었답니다.
하산길은 언제나 난 버벅댄다. 그럴땐 두발이 아니라 네발이 되는 것이 난 편하다.
바위 앞에 서서 네발을 준비하는데, 한 젊은이가 오르려다 도와 준단다.
“그냥 가세요. 제가 갈께요.” 이럴땐 모른채 가 주는게 예의 일 것도 같은데. 아무래도 불안한가보다.
할수 없이 “감사합니다.” 가볍게 도움을 받고 내려서며 다시한번 인사를 한다.
작은 도움이 진한 감사로 전해온다. 수량이 늘어난 계곡에서의 도움과 양보,
산길에서의 따듯한 나눔이다.
함께, 그리고 혼자 걷던 길.
내 발아 고마워. 넌 오늘 최고로 착한 내 친구였단다.
신자들의 성가에 앞서, 더 간절하게, 더 소리높여 주님께 찬송을 올리던 유치원생의 순수를 얼굴에
덕지 덕지 무친 하산길 어느 성당에서의 신부님의 감동스런 미사예절까지,
오늘따라 내 컨디션은 최고로 양호, 미사를 드리려 찾았던 낯선 성당에서 만났던 순수한 성직자의 모습,
온 하루가 펑펑 쏟아져 내리던 은총으로 충만했던 날,
주여, 오늘 하루는 진정 행복했습니다.
만났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자연도, 선하고 따듯했던 마음들도. 감사합니다.
첫댓글 역시 착한 학생! 노인의 시력에 맞게 글을 깔아주었으므로. "긴 여운만을 낙엽위에 깔아 놓고, 가버린 첼리스트"!--역시 문장가!
소야소님, 요즘 멋진 책 한권을 읽고 있습니다. 아주 많이 소야소님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그 책을
꼭 소개해 주고 싶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석학 '지셴린'의 수필집 '다 지나간다' 소야소님의 필독에
올려 놓으셔요. 읽으며 내내 소야소님 생각을 했습니다. 이 양반도 이 분 못지 않은데,라고.
Thanks for the tip!
단풍이란 말을 알고 지낸 지난 십수년, 같은 단풍이 같은 때에 오건만~~~~
보이는 단풍 보여지는 단풍이 어찌 그리, 그리도 해마다 달라지는지요!!!
사진도 잘 담어 오시었고, 글? 제가 뮈쉰 말을, 잘 읽었습니다.
단풍에 실려오는 첼로연주에!!! 시 한 수가 절로 나옵니다.
아!! 가 을 인 가. 고맙습니다. 건강행복하세요.
1/10의 찬사만 들어봐도 더 이상 바랄 바가 없겠구만! 나는 나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샘표 간장'!
학여울님이라면 시 한 수 읇고도 남았을 것을. 해마다 만나는 모든 것이 해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아마 그러며 세월을 갈 것이고,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가고 말겠지요.
오늘 아침 방송에서 들은 말, 우리 인생에 소중한 것은 짝과 (부인, 또는 남편) 건강과 돈과 친구와 일 (또는 취미), 다섯가지라고. 과연 그중 나는 몇가지를 갖고 있을까요.
다양한 색을지닌 낙엽을 밟으며 산을 오르는 미자씨를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엄청난 상상의 날개를 펴는 미자씨의 마음도 들여다 보게 됨니다.
1/10의 찬사만 들어봐도 더 이상 바랄 바가 없겠구만! 나는 나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샘표 간장'!
힘드시지요? 회장 하기도, 카페지기 하기도. 이렇게 올려 주시는 댓글 만으로도 그 두가지의 역할을 다 하고 계시고도 남습니다. 항상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진과 글이 아름다운 단풍 경치에 고스란히 녹아있네요...
금년엔 유난히도 단풍이 고운데... 이렇게 다가가 실제로 보고 느끼니,, 그대는 참으로 행복한 여인이라오...
미사 땐 유난히도 감사기도가 가슴 뭉클 우러나왔겠는걸...
고운 글과 고운 사진들,,,, 고맙구랴~~~
1/10의 찬사만 들어봐도 더 이상 바랄 바가 없겠구만! 나는 나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샘표 간장'!
juli, 고맙습니다. 변변찮은 글에도 이렇게 정성스레 댓글을 달아 주시니, 그 미사는 정말 감동이었답니다.
죄송스럽게도 요즘 본당 신부님들, 너무 지쳐 있는 모습 보기 힘든데, 그 젊은 신부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마주한 예쁜 아이의 모습을 봤답니다. 감동이었어요. 너무 감사했답니다.
소야소님, '샘표잔장'이 뭐예요? 신세대 언언가? 소야소님, 제게 보내는 것은 칭찬이 아니고, 더 잘해 보라고 해주는 격려예요. 누구도 소야소님 글에는 제게 보내는 그런 댓글은 쓸 수가 없답니다. 저 부터요.
고매한 철학자의 깊은 사유의 글에 어찌 감히 격려 내지는 위로의 댓글을 달겠습니까.
소냐소님은 그저 높이 앉아 바라만 보시면 됩니다.
황홀!
가을 산도 아름답지만 아담한 신발이 더 아름다워보입니다
고맙습니다. 요즘 트레킹 신발들이 참 예쁘게 그리고 편하게 나오네요.
세월 참 좋아졌지요. 68년 지리산을 가려면 등산화가 있어야 한다고, 김열규 선생님과 남대문 시장을
뒤지던게 엊그제 같습니다. 미군 군화였던 것 같은데, 어떻게 제 발에 맞는 걸 찾을 수 있었던지 기억이 가물대요. (물론 양말을 몇개 겹쳐 신기는 했었지만)
난 소야소와 mjk가 우열을 가릴수없는 우리들의 석학이라 생각 하는데 두분은 서로 겸손을 떠시네.똑같은 낙엽과 단풍을 보고 걷는데 왜 난 그런 감동을 못 느끼는 걸까?
맙시사, 석학이라니요. 황송하게도. 어렸을 때, 학원 잡지에 글을 기고 했었습니다. 되돌아 왔지요.
그 수준에서 단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저, 아마 그때 학원에 제 글이 게재됐었더라면 저는 까불며
작가가 되겠다고 떠들었겠지요. 지금까지 아픔이랍니다. 재도전은 해 보지도 못하고. 댓글이 감사해 평생
다물던 입, 여기서 터지고 마네요.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하시는 작가님! 곧 가을을 보내고 진달래피는 봄의 북한산을 기대하세요.
맞아요. 진달래 필 때까지 또 다른 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만추의 가을이 남았어요.
오늘 교회 가는길에 차 안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깥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 "어마, 어마
너무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탄성 연발..남편은 묵묵히 운전만 하고, 나는 옆에 앉아
말을 잇지 못 했었엇는데... 아름다운 정경을 cafe를 통해 다시 보게 되니 더욱 감사 할 뿐입니다.
창조주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립니다.
나란히 앉아 교회를 가고 있는 두 분의 모습이 참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항상 오늘처럼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