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하신 기업(창세시 48장 1절~16절).
말씀 : 박봉웅 목사
우리 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 공수래 공수거 즉,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작가는 좋은 작품을 남기고 갔다고 하고 어떤 경영인은 천문학적인 유산을 물려주면서 탈세를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마지막 가는 길에 다른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기는 것입니다.
신앙의 유산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을 다 얻어도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그것은 실패의 인생입니다.
세상의 것을 다 갖는다고 해도 신앙의 실패자는 인생 전부를 실패한 것입니다. 물질은 들어왔다 가도 어느 날 하루만에 모두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명예도 하루만에 아래로 추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기업이 생명보다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야곱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하고 임종이 가까웠을 때 자녀와 손자들에게 예언적인 유언을 남기고 그들을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창세기 48장과49장은 마치 마라톤 풀 코스를 달려온 순간이지만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두 손을 높이 쳐들고 환호하는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야곱은 비록 인생의 여정이 복잡하고 고난과 고통의 순간이 많았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지만 마지막 순간이 너무나 아름답고 좋았습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야곱의 그의 나이 147세를 살면서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민생활 17년 동안 족장으로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려고 했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무에 바쁜 총리 요셉이지만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대동하고 아버지 야곱을 뵈러 왔습니다.
병상에서 임종을 기다리는 야곱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들 요셉과 손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자 어디서 생겨난 힘인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러면서 평소에 가슴에 묻어 두었던 신앙을 고백합니다.
즉“이전에 가나안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창48:3-4절)고 했습니다.
야곱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가문의 주인이시며 모든 축복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으니 이런 하나님의 축복이, 자손 만대에 이를 것을 소원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영적 장자인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족장의 반열에 들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눈이 멀고 정신이 혼미해서 잘못하는 줄 알고 아버지의 축복하는 손을 바꾸려고 했으나,
야곱은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알고 에브라임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그 자손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신앙의 유산을 물려준 사람만이 인생을 성공하고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 우리는 이 본문을 살피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웅장하고 위대한 몇 가지 진리를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신앙의 유산을 확실히 남겨야 하겠습니다.
이미 앞서 말씀 드렸습니다만, 야곱은 비록 인생이 험악하고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인생의 말년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가슴에 묻어 두었던 아들 요셉이 어느 날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 얼마나 컸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기근으로 가문이 멸망할 뻔했던 순간에 애굽으로 온 가족이 이민 와서 좋은 목초 지에서 목축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생의 수명이 다해서 임종 유언을 하는 순간에 야곱은 오히려 확실하고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
평생토록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야곱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자녀들에게 간증하고 있었습니다.
즉 야곱의 살아온 걸음걸이가 비록 허물 투 성이요. 간사하고 성실치 못한 죄악 투 성이었지만 순간, 순간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강하신 팔, 편 팔로 붙들어 주시고 일으켜 주셨던 전능하시고 살아 계시며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자녀에게 돈을 물려주고 집을 물려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진 나라는 우리 나라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바로 그러한 욕심 때문에 부정과 부패가 생기고 경제불황이 온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자녀에게 재산 안 남기기 운동본부가 있습니다만, 참으로 좋은 현상입니다.
자녀에게 돈을 물려주거나 집을 물려주거나 땅을 물려주거나 증권을 물려주기보다는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야 합니다.
그리되면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도 달라지고 자녀들의 신앙도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려고 애쓴다면 자녀의 학교 성적 올리는 것 못지 않게 신앙의 성적도 어떤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자녀들은 대개가 부모 마음을 잘 모릅니다.
자녀들은 철저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소원 성취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평하고 반항하는 것이 자식들입니다.
지금 자녀들은 자기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 허무주의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또 부모들도 아이들이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기가 못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이루어 보려고 별 짓을 다합니다.
그러나 매일 고기를 잡아주는 부모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어서 자기가 날마다 자기가 고기를 잡도록 지도해야 현명한 부모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도 어떤 신앙의 유산을 자녀에게 남길 것인가를 날마다 고민하며 기도하며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부모가 주일성수 하면 자녀도 주일성수 합니다. 부모가 성경을 읽으면 자녀도 성경을 읽습니다. 부모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도 기도하게 됩니다.
부모가 십일조의 생활을 하면 자녀도 십일조의 생활을 합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토지를 물려주려고 애쓰기보다는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일에 인생의 성패를 걸어야 합니다.
둘째는, 야곱의 신앙고백에서 본 신앙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려면 우리 자신이 신앙의 자산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물려주려고 해도 자신이 가진 신앙의 자산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에게 분명한 신앙의 내용이 있어야 하고, 또 그런 신앙에 대해서 구체적인 삶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우선 야곱이 깨달았던 것은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즉 “그가 요셉을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창48:15절)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운동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도 영광과 존귀를 받으셔야만 하고 우리는 그만을 섬기고 예배해야 할 것을 말했습니다. 즉 야곱이 가진 신앙의 유산이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성격도 문제이고 실수도 실패도 많고 인간적인 약점도 많았지만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음을 잘 알았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장점이라면 장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길에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입니까?
불신앙으로 살다가 불신앙으로 인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오욕의 생애를 남길 것입니까? 한평생 세상 것에 취해서 비몽사몽간에 살다가 헛되이 인생을 마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부족해도 연약해도 나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살다가 하나님께 간다는 승리의 확신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 야곱은 그의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라는 메시지입니다.
야곱은 말하기를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48:15절),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을 그의 목자로 고백한 내용입니다.
야곱은 구약 초기 족장 시대에 이미 하나님을 목자로 이해한 놀라운 신앙 인이요 신학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개인의 목자로 깨달은 사람은 모두가 승리의 신앙을 가져졌던 사람입니다.
시편 23편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다윗 같은 아름다운 불멸의 시편은 못썼지만 ”나를 기르시는 하나님“ 이란 그 한마디 속에 다윗이 고백한 그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0장 11,14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요, 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양떼로서 순종과 겸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내용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의 인도를 받는 것처럼 구체적인 걸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유산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란 신앙고백입니다. 야곱은 고백하기를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창48:16절)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신앙은 메시아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속 자이시며 구원자입니다.
야곱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삶에서 구원해주신 창조주이며 구속 자이며 섭리하신 하나님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시편 89편 11절에 있는 대로“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정말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으로 폭 녹아진 성도는 그리 많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그냥 교양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내가 필요할 때 가끔 불러도 되는 그런 하나님 그런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며 구속주의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며 그 하나님을 날마다 섬기며 경배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야곱은 육신이 노쇠하고 눈이 어두워져 거동이 어려웠지만 그의 영안은 열려있고 영적으로 맑은 정신으로 자녀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야곱이나 요셉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을 귀히 여겼기 때문에 그 자손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수용자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요셉은 총리이지만 늙고 병든 아비를 위로하고 마지막 축복을 받고자 하는 그 마음은 아버지 야곱의 신앙과 맞물려 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이며 무엇을 물려받아야 하겠습니까?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고,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복된 삶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