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약학계에서 가장 '인문학적인 싸이언티스트'이자 교육자로 꼽힌다. 1990년 5월, 3개월간 수습을 마치고 전문신문 기자 명함을 도구삼아 그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벤치에 앉아 대한약사회 기관지인 '약사공론'을 읽고 있었다.
그의 연구실 310호로 자리를 옮기자 약사회의 동향에 대해 이것 저것 물었다. 별로 아는 게 없어 횡설수설하며 "요즘 어떤 연구를 하시죠"라고 묻자 그는 하얗게 웃었다. "뭘 어디서부터"라며.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식약청장을 맡았던 서울약대 심창구 교수(65세)가 오는 8월 말로 정년퇴임을 한다. 그는 그야말로 수백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한 명망있는 약제학자이자, 또 150여명의 석박사 후학을 길러낸 교육자며, 그의 또다른 정체성이기도 한 약사 사회의 현안에 적극 나선 참여자였다.
심 교수가 일생을 매달린 약제학은 한마디로 뭘까. 심 교수는 "약학은 물질로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학문이며 약제학은 이상적인 약물송달(Ideal Drug delivery)을 목적으로 삼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미래 약제학의 과제로 맞춤약제학과 생물의약품 약제학"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맞춤약제학에 기반한 맞춤약학에 대한 대비가 없으면 미래약사직능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맞춤약제학, 맞춤약학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전문신문'을 읽었던 그는 참여하는 과학자였다. 한약분쟁이 한창일 때는 약사들을 대신해 토론회에 나섰고, 의약분업 당시엔 의약정 테이블도 마다하지 않았다. 통상 훈수는 9단이지만, 뜨거운 현장엔 발을 담그지 않는 약학대학 교수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후학들이 '선생님은 강의와 발표의 달인'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심 교수는 어려운 과학의 영역을 기꺼이 쉬운 말로 풀어이야기하고, 상징적인 언어로 복잡한 약학을 설명하는 재주가 남다르다. 예컨대 오늘 약제학의 발전은 양변기 때문이다라는 말의 인용은 유명하다. 양변기 특성상 되돌아 봤을 때 알약이 그대로인 사례는 약제학의 발전을 촉구했다는 식이다.
실제 그는 80명의 졸업동기회지인 함춘67을 101호까지 주도적으로 끌어왔으며, 최근까지 비 약대생 대상으로 약과 건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약학은 사회와 소통해야 하며, 그럴 때 미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달 26일 오후 2시 햇살이 스며드는 그의 연구실, 서울대약학관(21동) 310호에서 심 교수를 만났다. 냉장고를 열고 박카스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카스의 맛처럼 심교수의 언어는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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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 교수가 일생을 매달린 약제학은 한마디로 뭘까. 심 교수는 "물질로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학문이며 약제학은 이상적인 약물송달(Ideal Drug delivery)을 목적으로 삼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미래 약제학의 과제로 맞춤약제학과 생물의약품 약제학"이라고 내다봤다. |
▶강단서 내려오는 심경 어떠세요.
"감사하지요. 교수로 채용됐던 것, 아팠다가 살아난 것 그리고 작은 성취들…모두 말입니다."
▶범사에 대한 감사로 들립니다.
"수우미양가로 따지자면 전 우 정도 사람이에요. 머리가 좋거나 명석하지 않고요. 우 정도 되는 사람이 우 정도 성실했는데 인생이 잘풀린 것이죠."
▶지나친 겸손 아니신가요.
"절대 아닙니다. 몸도 약했고, 대학도 재수했는데 포스닥(박사이후 과정)도 안거치고 교수가 됐거든요. 요즘 같으면 어림없죠. 1994년 5월엔 암에도 걸렸어요. 기적처럼 살아나 특별히 감사해요. 그 때 정년퇴임 아무나 하는 것 아니라는 사실 뼈저리게 느꼈어요. 정년퇴임에 대한 간절함도 컸고요."
▶조사 좀 해봤더니 석사후학 118명, 박사후학 33명, 국외저널 논문 215편, 국내저널 논문 102편, 국내외특허 13건 출원, 국제학회 초청강연 43회, 집필 및 편저 등 10여권에 이르렀습니다. 작은 성취라는 말씀 인색한데요.
"이같은 업적들, 스스로 후하게 쳐서 우는 되는데요 수는 못됩니다. 저는 재능에 비해 최소한 50%는 더 타먹었던 것같아요. 복받았죠 뭐. 최근엔 문하생들에게 오는 12일 리츠칼튼호텔에서 퇴임연을 준비했다고 연락받았어요. 이것도 감사한 일이죠."
▶거꾸로 첫 강단의 기억은요? 혹은 다짐.
"대학 때 교수님 강의들으며 강의가 좋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난, 그런 평가받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엄청 두려웠어요."
▶첫 대학원생 언제 받으셨어요?
"1983년 조교수로 부임했어요. 만 7년이 돼서야 대학원생을 배정받았어요. 적잖은 시간이었죠."
▶약학입문, 우연인가요 필연인가요.
"고백컨대 뭔지 모르고 들어갔어요. 괜찮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절 이끌었어요, 세월이 지나며 학문적으로 흥미진진해 졌어요."
▶30년 6개월을 약학대학 강단에 서셨습니다. 약학이 뭔가요?
"물질과 생명을 넘나드는 학문입니다. 다시말씀 드리자면 물질로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학문으로 물질과 생명을 이해하는 학문이죠. 인류가 그렇게 멀다는 달나라엔 도달했지만, 특정한 물질을 50cm밖에 되지 않는 암세포에만 도달시켜 사멸시키는덴 성공하지 못했어요. 타깃 항암제가 있다지만 미완성이거든요. 약학계는 천재들이 활동하는데 최고의 무대입니다. 약학계는 천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말들은 고등학생 대상 강연 때 늘 강조하는 말이에요."
▶선생님은 약제학 전공이세요, 약학의 한 부류죠. 그러면 약제학은 또 뭔가요.
"평생 묻고 있는 말입니다. 전 '이상적인 약물송달(Ideal Drug delivery)을 목적으로 삼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약제학은 그동안 조제학(調劑學), 제제학(製劑學), 제제공학(製劑工學), 생물약제학 (生物藥劑學), 물리약학(物理藥學), 약물동태학(藥物動態學), 약물송달학(藥物送達學), 분자약제학 (分子藥劑學) 등으로 분화 또는 진화해 왔어요."
▶왜죠?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상적인 약물 송달을 지향했기 때문인거죠. 옛날에는 약물의 함량에 의해 약효가 결정된다고 믿었죠. 그러려면 정확한 양의 약을 조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다가 정제, 캡슐제 등 제제가 발전하면서 제제 중의 약의 함량을 정확히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돼 제제학이 발전했죠.
한가지 더 예를들게요. 제약산업 초창기인 1970년대 유유산업은 비타민 정제 광고 문구를 '함량이 약효를 보증합니다'라고 했어요. 함량만 속이지 않고, 일정량을 정확하게 함유토록 제제를 만들면 좋은 약인 줄 알았던 것이죠. 그러다가 함량이 일정해도 약효가 일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예컨대 정제를 찍을 때의 압축 압력, 현탁제를 만들 때의 교반 조건 등에 의해서도 약효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로부터 제제공학 (製劑工學)이라는 학문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필요성이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뒤따랐던 겁니다."
▶그렇다면 미래 약제학의 연구 과제는 뭔가요.
"맞춤약제학이라고 봅니다. 1998년 낡은 자료이기하지만, 미국 입원한 환자 중 약 10만명이 약물부작용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고 합니다. 왜 부작용이 많았을까요? 그 이유는 종래의 약물요법이 인종이나 개인차를 무시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약, 같은 양, 같은 투여방법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약제학이 '이상적인 약물 송달'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 미래의 약제학은 '맞춤약학'을 지향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맞춤약학의 근본이 되는 약물유전학 (pharmacogenetics)이 분자생물학의 뒤를 이어 약제학의 새로운 밑바탕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미래 약사직능과도 연관성이 있는 문제 같은데요.
"약사의 직능의 존속성과 관련이 있는 문제라고 봐요. 의사도 약물을 처방할 때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감안한 처방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약사도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해 처방검토와 조제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될 겁니다. 그렇다면 약대 6년제의 목표도 임상약학이라는 다소 애매한 목표를 뛰어 넘어 '맞춤약학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화해야 되지 않을까요?"
▶맞춤약제학이 맞춤약학의 첨병이라는 말씀?
"약제학이 맞춤약학 시대를 선도해야 할 겁니다. 임상약학이나 약물학이라는 학과목도 있으나 약제학이야말로 '이상적인 약물송달'을 실현하기 위한 학문이기 때문이죠. 약제학은 '맞춤약제학 (Individualized Pharmaceutics)'으로 다시 한번 큰 변신을 도모해야 합니다. 만약 약제학이 변신에 성공하면 약학을 대표하고 선도하는 주요 학문의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될 것이고, 실패하면 낡고 고리타분한 학문으로 도태될 것입니다. 물론 약학대학이 '맞춤약학'의 도입에 실패하면 약사의 직능, 나아가 약학의 존립 자체도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약학, 특히 약제학 분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맞춤약제학 외 또 무슨 과제가 있습니까.
"생물의약품 약제학이죠. 백신, 세포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등 생물의약품이 앞으로 주목을 받는 새로운 제제가 될 겁니다. 그러나 이들 의약품에 대한 약제학적 연구는 아주 미약한 것이 전 세계적인 현실이죠.
예컨대 기존의 정제, 캡슐제, 주사제 같은 제제는 '제제총칙'이라는 것이 있어, 일반적으로 어떤 특성을 갖고 있어야 우수한 제제라는 규정과 규격이 설정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가장 비근한 백신제만 해도 흡수, 분포, 대사 배설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백신 제제에 BIOAVAILABILITY 란 개념이 있을 수 있는지? 또 일부 백신제에 첨가되는 알루미늄 화합물 같은 '면역증강제'는 약제학적으로 무슨 작용을 하는지(흡수촉진 작용을 하는지, 반대로 흡수 지속화 작용을 하는지) 아직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생물의약품제제에 대한 약제학적 해명을 시도하지 않으면 생물의약품 제제 자체에 대한 발전이 지연될 뿐만 아니라 약제학이란 학문도 시대 발전에 뒤쳐져 낙오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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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교수는 비 약대생 대상으로 약과 건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약학은 사회와 소통해야 하며, 그럴 때 미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강단과 연구실은 떠나지만, 아쉬움을 남겨둔 연구과제는 없을까요.
"항암제 연구인데요, 지금까지 부작용 없는 항암제는 없어요. 정상세포를 공격하기 때문이죠. 약제학적 측면서 해결가능하지 않을까 연구해 봤어요. 암세는 영양물질을 빨아들이는데 항암제를 영양물질로 보이도록 위장시켜 암세포가 항암제를 못들어오도록 하는 기전을 와해시킨다는 가설인데 연구실 분자레벨에서 입증을 마친 상태입니다. 제제레벨의 연구가 필요한데 큰돈이 들지는 않고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보고 싶습니다."
▶식약청장으로 외도도 하셨죠? PPA 파동 겪으셨는데요.
"어느 날 전화를 받았죠. 생각 전혀 안했었거든요. 개인적 경험으로 좋았지만, 솔직히 아마추어가 행정하는 것 좋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베테랑들이 해야죠. 외부인이 새로운 생각을 이입하는 장점도 있기는 하지만요. 1년6개월 감 잡히려니 끝이 나더군요. 시민단체가 PPA 문제를 거론하는 순간 이게 바로 사회적 문제라는 점과 과학과 약사직능도 주변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었죠."
▶살펴보니 1993년 3월 KBS여의도 법정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하셨어요. 의약분업과 관련해서는 의약정 협상테이블에 약계 9인대표중 2인으로 나서기도 하셨습니다. 통상 약대 교수진은 약사문제에 대부분 관찰자인데 왜 그랬던 거죠?
"약간의 사명감과 맘이 약해서지 뭐 별거 있겠어요? 누군가 해야하는 상황에서 폭탄돌리듯 하는 모습에 화가 났던건 사실이에요. 교수가 고고한 직업은 아니잖아요. 발담그면 더러운 일인양 생각하는 분위기에 전 비판적이에요. 교수들은 통상 약사회가 언제 정중하게 요구한적 있느냐하고, 약사회는 언제 도와나 주려했는냐하고…. 전 심약하고 스트레스를 받지만 나설땐 나서야 한다고 믿어요."
▶앞으로 교수님 같은 분 또 있을까요?
"교수가 논문으로 평가받고, 교육하고 하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저의 시대나 가능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교육자로서 118명의 석사와 33명의 박사 문하생을 배출하셨으니 보람과 함께 뿌듯하시겠어요.
"좀 허망합니다."
▶왜죠?
"약제학은 제약산업과 밀접한데 그들이 모두 제약계에 근무했다면 제약계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하는데 현장에 그들은 거의 없어요. 전 연구자를 길렀는데 본사에 있거나, 약국에 있거나…. 그래서 마치 양자처럼 비약대 출신자로 받아봤는데 결과는 비슷하더군요. 결코 타과출신을 무시하려는건 아닙니다. 약대교수 공통의 문제일 겁니다. 현장을 지키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그래도 연구실이 활발히 돌아갔다는 반증인데요.
"나혼자 논문 많이 쓰면 뭐하죠? 제자들이 현장에서 혁신의 주체가 되고, 전수받은 제제설계 같은 지식이 현장에 적용돼야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인지, 제제기술을 주제로 한 약제학회 워크숍에 많은 관계자들이 몰려 첨가제가 뭐냐는 식의 기초적인 질문을 할때 가슴이 미어집니다. 학회 잘된다고 좋아라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후학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남위에 군림하려 말고, 좋은 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8월 정년 퇴임 후 무슨일 하시나요.
"손주가 4명인데 아내와 같이 학교데려다 주고 데려오는게 레귤러 잡이 될거 같아요. 삶의 동력인데요, 힘들고 재미있어요. 힘이 안들고 재미없는 것보다 훨씬 낫거든요.
가만히 저를 관찰해보니, 크게 쓰임새는 없을 같아요. 젊은 사람이면 연구를 하겠지만요. 아까 말씀드린대로 약제학적 관점의 항암제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과 연구결과를 놓고 듣고 배우며 토론하는 소그룹 연구단위의 연구위원을 하고 싶습니다. 젊은 연구자들을 북돋우고,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고 싶은 거죠."
http://www.dailypharm.com/News/172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