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4시쯤 미국 CNN과 영국 BBC 보도를 참조해 수정합니다.
22년 전 페루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 가운데 하나를 오르다 눈사태에 파묻힌 미국 등반가 윌리엄 스탬플의 시신을 찾아냈다고 AP 통신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의 가족은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은 물론, 시신을 회수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후아스카란 봉(해발 고도 6768m)의 눈과 얼음이 두껍게 쌓인 곳이라 그랬다.
그런데 지난달 스탬플의 딸이 낯선 이의 전화를 받았다. 그 낯선 사람은 후안스카란 봉우리를 오르다 우연히 아빠의 얼어붙어 거의 산 사람처럼 보이는 시신과 맞닥뜨렸다고 얘기했다. 딸 제니퍼 스탬플(53)은 “충격적이었다. 그가 발견됐다는 얘기를 전화로 듣는다면 누구라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이다. 하지만 첫 느낌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페루 경찰은 2002년 6월 24일 눈사태에 파묻혔던 스탬플의 시신을 지난 5일 회수했다고 9일 밝혔다. 스탬플은 당시 58세로 많은 친구들과 등반하다 두 친구 스티브 어스킨, 매튜 리처슨과 함께 변을 당했다. 어스킨의 시신만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경찰관들과 산악 가이드들이 들것에 스탬플의 시신을 담아 눈밭을 천천히 내려왔다. 그 시신은 해발 고도 5200m에서 찾아냈다. 가파른 후아스카란 정상을 오르기 위해 들르는 캠프 중 한 곳이다.
AP 통신이 페루국립경찰로부터 제공받은 사진 중에는 여기 실을 만하지 않은 사진들도 있었다. 스탬플의 시신은 양쪽 무릎을 다 세우고 상체를 왼쪽으로 돌려 눈밭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얼어붙어 있었다. 말라 비틀어져 가느다라진 그의 손에 끼고 있던 반지도 그대로 있었다. 등산복과 등산화, 크램폰(아이젠), 로프, 하네스 등이 모두 온전한 상태로 발굴됐다. 시신 옆에 있던 가방에서 운전면허증, 여권, 지갑, 안경 등이 나와 신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CNN은 지난달 27일 스탬플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이는 미국 형제 산악인 라이언 쿠퍼와 웨슬리 워런이었다고 10일 전했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출신인 쿠퍼는 아내에게 전화해 스탬플의 가족을 찾아보라고 부탁했다. 자신은 높은 산에 있어 휴대전화가 잘 터지지 않아 여의치 않아서였다. 상당한 열의를 갖고 온라인을 검색한 그의 아내가 이틀 만에 제니퍼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시신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쿠퍼는 시신과 소지품 사진들을 제니퍼와 미망인 재닛에게 보내줬다.
스탬플의 시신은 융가이란 도시로 옮겨져 부검된 뒤 후아레스란 도시로 옮겨졌다. 이어 수도 리마의 장례업소로 옮겨져 화장된 뒤 유해를 미국 가족에게 전해질 계획이다.
한편 후아스카란 봉우리는 안데스 산맥 중에서도 코르디에라 블랑카 산군에 속한다. 이곳에서는 지난해에도 1981년 실종된 여성 산악인의 유해가 발견됐다. 해발 고도 5000m에 위치한 얼음 위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는데 시신에 얼음이 그대로 붙어 있어 수색대원이 얼음을 떼내야 했다.
이 일대로 범위를 넓히면 올해 들어 세 번째로 돌아온 주검이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다른 봉우리를 오르다 실족한 이탈리아 산악인이 지난달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스라엘 남성은 실종된 지 거의 한달 만인 지난 5월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198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아스카란 봉우리는 빙하호수를 여럿 거느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60년 동안 페루의 빙하가 절반 이상 소실됐으며, 지난 2016년부터 4년 동안 기후변화로 175개의 빙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