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시장
내 평일 동선은 말 그대로 개미 쳇바퀴다.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오가는 길을 왕복 걷기로 하지 않는다. 출근길과 퇴근길 걷는 코스가 다르다. 아침엔 폴리텍 대학을 지나 교육단지로 보도로 걷고 오후엔 충혼탑 사거리에서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을 거쳐 반송시장을 둘러 온다. 내 출퇴근길 차도엔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만 보도에 걸어가는 사람을 보기는 드물다. 아니 아예 없다.
퇴근길 종합운동장 만남의 광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반송시장이다. 어느 곳이나 재래시장 경기는 옛날과 같지 않다. 대형 할인매장이 고객들을 폭풍 흡입하기 때문이다. 동네 시장은 제 각각 고유 특성을 살려 살아남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나 그 성과는 미미하다. 나는 반송시장을 포함해 거리 노점상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거친 세파를 헤쳐 살아가는 본을 보여주지 않은가.
매일 반송시장 거쳐 지나지만 내가 무슨 상품을 산 경우는 아주 드물다. 두어 달 전 노점 과일가게에서 덤으로 팔던 열무 씨앗 한 봉지가 최근 일이다. 식당에 들리기기는 하나 그것도 아주 한정적이다. 비라도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시골밥상 할머니 식당을 찾아 계란말이로 막걸리를 한 잔 든다. 가끔 주말 산행 후 근처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족발가게에서 하산주를 한 잔 나눈다.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다. 반송시장을 지나치다 노점 할머니가 죽순을 삶아 팔려고 진열해 두었다. 나는 그 죽순을 사 줄 생각은 않고 주말 틈이 나면 교외로 죽순을 꺾으러 나가려고 마음먹었다. 산나물 채집 산행을 같이 다닌 친구와 죽순을 꺾으러 낙동강 강둑으로 나갔더니 비가 오질 않아 헛걸음만 하고 말았다. 워낙 가물어 죽순이 솟지 않아 고작 몇 개만 꺾어와 아쉬웠다.
그러던 차 친구가 주말에 틈을 내어 죽순을 꺾으러 가지고 제안이 왔다. 나는 시기상 죽순이 올라왔을 때지만 강수량이 부족해 죽순이 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친구는 주변 지인이 죽순을 꺾었던 사례를 들며 나가보자고 응했다. 죽순이 나면 반송시장 노점에선 껍질만 벗겨 삶지 않은 죽순을 팔려고 나온 사람이 있는데 올해는 아직 보질 못했다. 반신반의하며 길을 나섰다.
칠월 첫 일요일 새벽이었다. 둘은 시내버스가 운행하는 첫차를 타고 동정동에서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 굴현고개로 갔다. 고개에서 구룡산 산등선을 따라 걸었다. 나는 지난 봄 두릅 순을 꺾느라고 구룡산을 한 차례 들렸다. 친구는 무척 오랜만에 들린다고 했다. 우리가 구룡산으로 간 것은 산중 깊숙한 곳에 대나무밭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칠팔 년 전 그곳을 한 번 지난 적 있었다.
산등선을 따라 걸으니 온다는 비가 올 기미가 없고 이른 아침인데도 날씨만 무더웠다. 고목 산벚나무 아래 쉼터에서 앉아 땀을 식혔다. 친구가 배낭에 넣어온 곡차를 꺼내 천천히 음미하며 세상 사는 얘기들을 나누었다. 그즈음 나이 지긋한 중늙은이 대여섯이 정상으로 향해 지나쳤다. 우리는 곡차를 바닥을 보고 배낭을 챙겨 일어섰다. 조금 더 나아가니 용강 갈림길 이정표가 나왔다.
우리는 대한 한수마을로 향했다. 중간 어디쯤서 등산로를 벗어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 지개리 방향으로 내려섰다. 몇 군데 무덤을 지나 예전 우리가 살펴두었던 대나무밭을 찾아냈다. 깊은 산중에 대나무가 아주 울창했다. 그런데 진작 솟아올랐어야 할 죽순이 보이질 않았다. 고작 서너 개 꺾었다. 우리는 산중 대나무밭을 뒤로 하고 그보다 조금 아래쪽 대나무밭에 들려도 마찬가지였다.
산을 나와 개울을 따라 걸어 대한마을을 지났다. 지개리 입구 남해고속도로 인접지역 대나무밭에도 들렸다. 아까 산중에서보다는 많은 죽순을 꺾었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드물게 돋은 죽순이라 희소성이 있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려는 즈음부터 소낙비가 쏟아졌다. 시내로 드니 비는 더 많이 내렸다. 둘은 앞서 언급한 반송시장 족발가게 들려 국밥에 맑을 술을 두 병 비웠다. 17.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