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을 공부하다)
노후에 할 일을 조선시대 회화사를 공부하는 것으로 정했다. 문헌도 조사하고, 현대 저서도 섭렵하면서 느낀 것은 중국 회화를 모르면 조선시대 회화를 알 수 없다, 중국 여행을 간 길에 중국회화사 책을 한 권 샀다. 간자체로 쓴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 그 책은 그림의 떡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산동성의 제남시에 있는 명천출판사에서 2001년에 발간한 12권짜리 중국 미술사 책을 구했다. 백화문이어서 간자체보다는 쉬웠으나. 근본적으로 한문 실력이 모자라는 나로서는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남대학교의 한문학과에서 정년퇴임하신 이장우 교수를 찾았다. 만나자고 약속한 장소를 찾아갔더니 서당 모양으로 꾸며둔 대학원 강의실이었다. 몇 사람의 대학원생들이 둘러앉아서 조선종이를 펼쳐두고 먹을 갈고 있었다. 나는 멈칫거리면서 서예 연습을 하느냐고 했더니 수업 방식이 한자를 붓으로 종이에 쓰면서 공부한다고 했다. 조선시대의 교육방법이었다. 얼마 전에 인터넷 방식으로 대학원 학기시험을 치루었던 나로서는 시간의 끝과 끝을 왕복하는 기분이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이장우 교수님의 한문 강의를 들었다. 한문 실력이 일천한 나로서는 글자를 한자, 한자씩 외웠고, 단어장도 만들었다.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연필로 쓰기를 여러 번 했다. 그러나 하룻밤만 지나면 머릿속은 하얀 백지가 되었다. 교수님은 시의 평측법을 위시하여 여러 가지를 가르쳤지만 미술사 책의 읽기에 필요한 공부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면서 볼펜 글씨가 덧붙여져 있는 한문 책 페이지는 많이 넘겨져 있지만, 미술사 책 읽기는 그대로 였다. 늘었다면 뜻으로 읽는 것이 아니고 눈치코치로 파악하는 능력이었다. 공부도 때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한 해, 한 해가 지나면서 사마천의 사기에서 시작한 한문 공부는 퇴계 선생이 아들에게 쓴 편지를 거쳐서 당시 300수 공부까지 이르렀다. 그 사이에 이장우 교수님은 서울로 이사를 가셨고, 경북대의 신재환 교수가 강의를 맡았다. 신재환 교수는 젊은 교수이다. 일일이 판서를 하면서 강의를 하던 이 교수님과는 달리 빔 프리젠테이션으로 교재를 비춰주면서 강의했다. 컴퓨터에 입력해 둔 참고 자료를 수시로 빔 프리젠테이션으로 비춰주었다. 한 시의 뜻풀이를 강의하는 것은 같았지만, 신 교수는 시의 성조(聲調)를 짚어가면서 강의했다. ‘평평측측측평평’하는 성조의 양식을 누누이 강조했다. 붓을 쥐고 공부하던 한문 강의를 빔 프리젠테이션으로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글의 진수가 전해질까?
나는 성조 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문을 배우러 온 목적이 내가 구입한 ‘중국 미술사’를 읽으려는 것이었으므로 그냥 흘려들었다. 낯선 한자가 나오면 뜻을 찾아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빔 프리젠테이션으로 비춰주는 시의 주해는 산문이었으므로 나는 산문으로 된 주해 읽기에 더 관심을 가졌다. 산문 읽기는 미술사 책을 읽는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300수를 두 번이나 들었고, 송시(宋詩)도 공부했다. 중국 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바늘에 실처럼 따라오는 것이 중국 역사이고, 중국의 인물이다. 한문 공부를 하러 가서 중국 역사를 들어서 배웠고, 중국의 역사적 인물의 삶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으로 스며들어 와서 인생지침서가 되어 주었다. 송시를 배우면서 송나라의 나약한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한문 실력은 제 자리 걸음이다. 내가 무엇 하러 공부하러 다니는지 회의가 들 때도 많았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나는 10년 동안 한자 냄새를 맡으려 다녔는데 풍월은커녕 풍의 흉내도 못낸다. 무엇하는 짓이고? 자문 한다. 대답은 뻔하다. 공부도 하러 다니지 않으면 집에서 무엇을 할텐데. 방안에서 하는 일 없이 죽치고 앉아 텔레비전만 보고 있겠지.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무엇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유가 될 듯도 하고, 아닐 듯도 하다.
공부하는데 회의를 하는 나더러 지인이 좋은 말을 해주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주루룩 흘러버리는 것 같지만 콩나물은 소리도 없이 자라나 있어.’ 10년 동안 물이 되어서 흘러버린 한문공부의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도 못한다. 나는 백화문으로 된 중국 미술사 책을 한 번씩 꺼내어 펼친다. 띄엄띄엄이기는 하지만 책을 처음 구입했을 때보다는 읽어지는 내용이 있기도 하다. 너무 더디기는 해도 콩나물이 조금씩 자란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영감탱이가 젊은이마냥 하고자 하는 일이 속성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노인은 퇴행이 정상이라는데 거북이 걸음이라도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첫댓글 이동민 선생님의 식지 않는 창작의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같은 주제를 죽 시리즈로 써서 한 권의 책으로 묶으시면 퍽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