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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종말론 : 제 2 장 : 종말(終末)과 재림(再臨) - 1. 용어의 정립
제 2 장 : 종말(終末)과 재림(再臨)
기독교 교리의 정점은 종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적인 종말론으로 무장하여 마지막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용사로 거듭나야 한다.
1. 용어의 정립
종말론을 다루는데 필수적인 용어가 있다. 계시와 재림, 종말론이다.
1] 계시(Revelation)
계시라는 단어는 아포칼륍쉬스(헬 ἀποκἀλυψις 폭로하다, 덮개를 벗기다, 밝히다, 드러내다, 나타내 보이다)로 ‘--로부터’(from)라는 아포(ἀπο)와 ‘덮다’(to cover)를 의미하는 칼륍토(καλύπτω)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였다.
원어적 의미에서 나타나듯이 감추어있던 하나님의 비밀을 밝히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 암 3: 7 -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계 10: 7 -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아모스선지자나 요한사도의 증거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사 34: 16 -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 계 1: 1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啓示)이다.
* 계 22: 16 -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계시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이 받은 복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 갈 1: 12 -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사도 요한이 받아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종말 예언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옛날부터 자신의 모든 뜻을 계시하셨다.
* 히 1: 1-2 –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의 진리들은 하나님 자신께서만 계시하실 수 있다. 창조에 대한 진리도, 구원에 대한 진리도, 종말에 대한 진리도 그렇다. 종말 예언인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말씀, 즉 신적 권위의 말씀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별되신다.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신비가 여기에 있다. 성경은 삼위(三位)[세 인격]의 구별을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 혹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 등으로 표현한다.
예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그는 신성(神性)[신적 본질]과 인성(人性)[인적 본질]을 가진 한 인격이시다. 신성(神性)에 있어서 그는 아버지와 구별되시나 한 하나님이시다. 물론, 인성(人性)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과 구별되신다.
이처럼 세 인격의 구별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고 그들의 관계성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까닭은 성경이 그의 신성에 대해 부정할 수 없게, 분명하게, 충분하게 증거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요 1: 1), ‘참 하나님’(요일 5: 20), ‘크신 하나님’(딛 2 :13)으로 불리셨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예컨대, 포도주 기적, 떡 기적, 나병, 중풍병 치료, 죽은 자들 살리심 등), 또한 하나님과 나란히 영광과 찬송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신다(계 5: 13).
1-1) 계시록의 성격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기록은 요한이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봉함한 책을 받아서 계 6 장에서 인봉을 떼고, 개봉하므로 계시가 나타난 것이다.
(1)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입증하는 책이다.
* 요 5: 39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 눅 24: 27, 44 -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2)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 히 10: 7 -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셧느니라.
* 갈 1: 4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1-2) 말씀의 원천 :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1)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셨다.
'그에게'는 앞서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를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계시의 근원임을 시사한다(Mounce, Morris, Lenski, Johnson).
* 요 12: 49-50 -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행하는 자에게 주셨다.
성부 하나님은 모든 섭리의 계획자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일의 성취자이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속설(從屬說)을 뜻하지 않는다(Alford, Morris).
* 요 3: 34-35 -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 요 7: 16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3) 성도들과 그리스도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주셨다.
이 말씀은 주의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어졌다.
* 엡 1: 1-2 -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3) 말씀의 내용 : 반드시 속히 일어날(될) 일들을
그리스도의 계시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이다.
'반드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이'(*)는 예언적 필연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대로 일이 확실히 성취될 것을 나타낸다(Lohmeyer).
본문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반드시 속히 될 일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반드시 있을 일들, 즉 종말 사건들에 관한 것이다.
그것들 속에는 대환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마지막 심판, 죽은 자들의 부활, 새 하늘과 새 땅 등이 포함된다. ‘반드시’라는 말은 계시된 내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종말 예언의 내용들은 진실하고 확실하다. 또한 ‘속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낸다.
* 계 22: 7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 계 22:12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 계 22: 20 -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본서의 계시 내용들은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이다. 이 말씀을 주신 지 2천 년이 지났다. 교회는 이 말씀대로 때가 가까움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항상 종말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깨어 있는 태도이다.
사람 편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일이 더딘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작정하신 모든 일을 다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벧후 3: 8).
선지자의 예언 중에는 된 일과 될 일이 있다.
(1) 된 일 - 예수께서 성경대로 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이 강림하신 것이다.
* 고전 15: 3-4 -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① 탄생 : 예언과 성취
② 죽으심 : 예언과 성취
③ 부활 : 예언과 성취
④ 승천 : 예언과 성취
⑤ 성령의 강림 : 예언과 성취
(2) 될 일 - 재림과 심판과 천년왕국과 영원 세계이다.
① 장차 될 일.
* 계 1: 19 -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 사 44: 7 -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②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
* 계 4: 1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③ 결코 속히 될 일.
여기서 '속히'(*,엔 타케이)는 본서에 7회나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다. '엔 타케이'는 예기치 못한 때에 갑자기 성취되는 것을 나타낸다.
'엔 타케이'는 인간의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측면에서의 시간적 개념이다. 하나님의 갑작스런 개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계시의 성취와 그 확실성을 나타낸다.
'속히 될 일'은 하나님의 계시가 미래에 성취될 사건임을 암시한다(Johnson).
* 계 2: 16 -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 계 3: 11 -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벧후 3: 8-9 –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단 2: 28-29 – 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29 왕이여. 왕이 침상에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된 일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는 은혜 시대 교회로 그 말씀을 중심으로 전하는 종을 은혜 시대 종이라 한다.
될 일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는 환난 시대 교회이며, 될 일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는 종을 환난 시대 종이라 한다.
우리는 된 일과 될 일의 말씀을 바로 알고, 이 시대에 바른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되자!
(3) 요한계시록 - 사람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거짓되지 않고 정녕 성취된다.
* 합 2: 2-3 -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1-4) 말씀의 목적 :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계시의 목적은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즉 보이시기 위함이다. ‘그 종들’은 주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 롬 1: 1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롬 6: 22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요한계시록은 바로 하나님의 종 된 우리 모두의 책이다.
본서의 계시는 천사를 통해 그리고 요한을 통해 주어졌다(계 22: 8). 또 그 방법은 상징으로 나타내시는 것이었다.
‘지시하신’이라는 원어(세마이노)는 본래 ‘상징으로 나타내다’(signify)(KJV)는 뜻이다. 요한계시록은 종말 사건들에 대한 상징적 예언의 책이다.
본문은 종이 아니고 종들이라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종말에 대한 비밀은 어느 한 사람에게만 보이시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요, 많은 종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그 차이는 먼저 깨닫고 나중 깨닫는 것일 뿐이므로 먼저 깨달았다고 우쭐하지 말고 나중 깨달았다고 낙망하지 말자. 깨닫게 된 것을 감사하자.
* 계 7: 2-4 -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 계 22: 6 -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 마 24: 31 -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1) 홍수의 비밀은 노아에게 보여주셨다.
* 창 6: 13 -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2) 소돔성의 비밀은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다.
* 창 18: 17 - 여호와께서 이르시대,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3) 율법의 비밀은 모세에게 보여주셨다.
* 출 24: 12-18 -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13 모세가 그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14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4) 이스라엘에 대한 비밀은 사무엘에게 보여주셨다.
* 삼상 3: 10-14 –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5) 천국의 비밀은 사도들에게 보여주셨다.
* 마 13: 11 - 대답하여 이르시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6) 그리스도의 비밀은 사도 바울에게 보여주셨다.
* 엡 3: 2-4 -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7) 마지막 때 비밀은 그 종들에게 보여주신다.
'종'이란 '묶인 자, 예속된 자, 매임을 당한 자, 붙잡힌 자'를 말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붙잡힌 하나님의 종들이다. 여기서 세 번이나 언급되는 '그'(*, 아우투)는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본문의 주동사인 '에세마넨'(*, '지시하신 것이라')의 주어이기 때문이다.
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벗(친구)이 된 자들이 그의 종이다.
친구(親舊)에게는 자기의 비밀에 대하여 숨김이 없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의 비밀을 그 친구와 같은 종들에게 계시(啓示)하셨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벗이 되고 그의 종들이 되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여 주신다.
* 사 41: 8 –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친구) 아브라함의 자손아!
* 대하 20: 7 -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친구)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 약 2: 23 -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친구)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 암 3: 7 -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아브라함만 하나님의 벗이 되어 하나님의 비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벗이 되고 그 종들이 되어야 하나님의 비밀을 들을 수 있다.
벗이요 친구(親舊)라는 것은 말이 하나가 되고 마음이 서로 통하고 인격이 서로 같은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 되어 하나님의 비밀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되면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
* 요 15: 15 -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되면 우리도 신(神)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 요 10: 35 -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 요 1: 12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②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이셨다.
* 사 42: 1 -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공의)를 베풀리라.
* 행 3: 13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빌 2: 6-7 -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本體)시나 하나님과 동등(同等)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예수)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③ 이마에 인(印) 침을 받은 자들이 그의 종들이다.
하나님의 인(印)이란 약속의 성령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도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印)을 맞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종이라 하셨다.
사도 선지자들(144,000)이 하나님의 종들이요 사도 선지자들의 영으로 인(印)침을 받는 자들이 또한 그의 종들이다.
12(사도)×12(지파)×1,000(하나님의 수) = 144,000으로 신구약(新舊約)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종들이다. 여기서는 종말의 종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인(印)은 약속의 성령이다. 약속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靈)을 말한다. 약속의 성령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마에 인(印)침을 받아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야 한다.
* 요 3: 32-34 -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 요 6: 27 -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印)치신 자니라.
* 롬 4: 11 -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無)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印)친 것이니 이는 무(無)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고후 1: 21-22 -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印)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 엡 1: 13 -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印)치심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나님의 종으로 인침을 받은 자들에게는 세상의 일반인과는 다른 특별한 권능을 부여하신다.
1-5) 전달하는 과정 :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천사 ⇨ 요한 ·······주의 종들
요한은 천사를 통하여 계시하여 준 말씀과 증언를 다 증거 했다.
바울은 계시의 비밀을 간단히 기록했다고 했으며, 베드로는 더 확실한 예언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다고 했다.
* 엡 3: 3-4 –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 벧후 1: 19 -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계시의 전달자이며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를 통해 자신의 종인 요한에게 전하셨다.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전하였다. 따라서 본문은 모든 계시의 근원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받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종들, 천사, 그리고 종 요한에게 전달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그 종 요한에게'의 헬라어 '토 둘로 아우투 요안네'(*)는 수단이나 기구를 나타내는 여격이 사용되어 요한이 계시 전달의 인간적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결국 본서의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기원하여 참된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천사와 인간적 도구로 말미암아 수신자들에게 전달된다(Sweet, Moffatt, Ironside).
1-6) 명령 : 지시하신 것이라.
* 벧후 1: 14 -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 계 22: 16 -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초림의 주가 오셨을 때는 세례 요한이 등불이 되었듯이 재림의 주가 오실 때도 사도 요한을 통해 기록한 예언의 말씀이 등불이다.
* 요 4: 34-35 -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우리는 여기서 계시에 관한 것은 대강 기록했다든지 더 확실한 예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울과 베드로의 거짓 없는 인격을 본받아야 하겠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바로 알았다. 다 증언한 사도 요한 같이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선지서와 계시록의 비밀을 다 깨닫고 다 전하는 사명자가 되자.
2] 재림(Parousia)
* 살전 4: 15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강림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나타내는 파루시아(Παρουσία)로 ‘왔다(to have come)'를 의미하는 파레이미(πάρειμι)에서 유래된 것으로 ‘현존, 임재(a presence)’, ‘오심, 도래(a coming)’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주님의 재림을 지칭하는 용어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은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서 강조된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리스도 자신과 사도들의 일관된 재림신앙은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의 가장 중요한 신앙 내용이었다.
(1)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이 초대교회의 핵심적인 신앙이 되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친히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고, 제자들도 그렇게 믿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 막 13: 26 -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 벧후 1: 16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 벧후 3: 11-13 –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나 그 재림의 시기가 그들이 죽기 전에 곧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복음서에는 임박한 재림에 대한 말씀과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사상이 엇갈리고 있다. 예를 들어서 마가복음 9: 1이나 13: 30같은 곳에서는 예수께서 곧 오시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 막 9: 1 -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 막 13: 30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주께서 가까이 오신다]는 신앙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손꼽아 기다렸다.
* 행 1: 6 -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러한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신앙이 초대교회 신앙을 강하게 하였으며 순교적인 신앙으로 교회를 지킬 수가 있었다. 재림신앙은 지금까지도 중요한 신앙 내용이다.
(2) 그리스도 재림의 지연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에는 혼란이 생겼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들이 기대했던 시간보다 늦어지고, 그들은 늙어가고 기다림으로 지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거짓이 아니냐? 라고 속단하는 사람도 있었고, 회의에 빠진 사람들, 신앙을 버리고 낙심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베드로후서 3: 9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된다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재림신앙을 이해시키는 베드로의 노력을 발견하게 된다.
* 벧후 3: 9 -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된다는 것을 빙자해서 신앙의 긴장을 풀고 해이해진 신자들을 경계하는 교훈이 많다.
* 마 25: 1-13 –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마 24: 44 -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살전 5: 2-3 –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3) 그리스도 재림의 지연에 대해 어떻게 조치하였는가?
임박한 그리스도 재림신앙에 대해서 문제가 되었던 막 9: 1, 막 13: 30, 마 10: 23등의 말씀의 내용에 대해 이해부족이 있었던 것으로 성서학자들은 지적한다. , ,
* 막 9: 1 -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 막 13: 30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 마 10: 23 -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이상의 내용이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산의 사건이나 예루살렘 멸망사건,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사건이나 예루살렘 멸망사건, 보혜사 성령강림 사건 등을 지칭하신 것이라는 해석과 또 다른 해석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사용하신 시간 개념과 구속사에 관한 시간 개념이 [카이로스]라는 하나님의 시간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벧후 3: 8)는 시간 해석으로 재림 지연을 설명하기도 한다.
특별히 누가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것이 아니라 잘 모른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 누가는 임박한 재림론자들을 따르지 않고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 눅 21: 8 –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그러므로 자신은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는 등의 말을 쓰는 대신 [아직은 끝이 아니다]라고 가르쳤다.
* 눅 21: 9 -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재림을 조급하게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재림지연의 의미와 목적을 바로 가르쳐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철저히 시켰다.
(4) 건전한 재림신앙은 어떤 것인가?
① 그리스도의 재림은 반드시 있다고 확실히 믿는 것이다.
* 행 1: 11 –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살전 4: 16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②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언제 어디서든지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 행 1: 7 –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③ 재림 지연의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한다.
회개할 기간을 주시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의 기간이다.
* 벧후 3: 9-15 –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④ 재림 지연 기간에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를 알아야 한다.
⑤ 날마다 회개하여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한다.
* 벧후 3: 1 -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⑥ 땅끝까지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한다.
* 행 1: 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⑦ 현재의 일에 충실해야 한다.
* 마 25: 19 -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⑧ 그리스도 재림 전에 먼저 죽을지도 모르니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⑨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
* 벧후 3: 13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계 21: 1-7 –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3] 종말론(Eschatology)
* 벧전 1: 20 -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기독교 교리학의 마지막에 적용된 이 용어는 ‘말세론, 내세론’이라고도 한다.
종말론이란 ‘마지막’을 나타내는 에스카토스(ἔσχατος)와 ‘말하는 것’을 나타내는 레게인(헬)의 합성어로 ‘개인과 이 세상에 대하여 장차 일어날 일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되었으며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져가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가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저자는 성취되어져 가는 종말의 현상들을 성경으로 입증하려고 한다. 미약한 부분들은 계속적으로 보완하여 갈 것이다. 독자들의 신앙생활에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2. 종말에 대한 구속사적인 접근과 현재적 선취로서의 종말에 대하여 : 장 경철(서울여대 기독교학과)
1) 서론 : 종말론에 대한 관심
종말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되고 있다. 종말에 대한 논의처럼 사람들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갈라놓는 주제도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주장하며 세상이 곧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세기말의 시점을 맞이하면서 종말에 대한 불안과 호기심이 일부 사람들의 가슴속에 맴돌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등장했던 국내에서의 시한부 종말론과 같은 현상은 종말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간절하며 그 기대와 간절함이 어떻게 억압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다수의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지금껏 살아왔듯이 계속 진행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그들의 생각 속에 들어 있다. 물론 우리 주변의 환경 문제, 핵 문제 등은 더 이상 낙관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에게 종말에 대한 논의는 하나의 공상에 불과하다고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치열한 삶이지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공상적 논의가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종말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종말에 대한 견해를 정립함에 있어서 우리가 취하고자 하는 입장은 세계의 종말을 하나님의 구속사, 곧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역사의 시작이나 과정에 대한 논의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마지막에 대한 논의도 역시 하나님의 구원의 시각에서 살펴질 때 그 전체적 윤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가운데 완성되는 인간과 세계의 종말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종말론의 중요성과 방향에 대해서 살펴본 뒤에, 구속사(救贖史)적인 시각에서의 시간 이해와 역사 이해를 고찰할 것이다. 그 후에 구속사적 시각에서 역사의 목표로서 인식되는 하나님 나라의 이중적인 성취 개념을 고찰한 뒤에, 구속사적 시각에서의 하나님 나라 이해가 어떠한 현실 이해를 잉태하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건강한 종말 이해는 언제나 건강한 과정 이해와 상응하며, 건강한 미래 이해는 건강한 현재 이해와 상응한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2) 종말론의 중요성과 방향
(1) 종말론의 중요성
종말론적 관심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기대하는 신앙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의 종말이 올 것임을 믿으며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을 기대한다. 신앙인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마지막 날을 바라본다. 이러한 점에서 기독교 신앙과 신학은 핵심에 있어서 종말론적이다.
몰트만(J. Moltmann)에 따르면, 종말론은 기독교 신학의 한 부록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전 부분을 관통하는 열쇠와 같다. 부록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독교는 종말론이며 희망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앞을 향해 보고, 앞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기에 또한 현재를 혁명화하고 변혁하는 것이다. ... 따라서 종말론은 기독교 교리의 오직 한 부분만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종말론적인 전망은 모든 기독교 선포와, 모든 기독교 실존, 그리고 모든 교회의 특징이다. 만일 우리의 신앙적 관심이 오직 현재에만 집중되고 종말론의 차원을 잃어버린다면 우리의 신앙은 절름발이 신앙이 될 것이다. 사실상 종말론은 역사의 마지막에 대한 관심만은 아니다. 물론 종말론은 역사의 마지막에 대한 관심이지만, 역사의 마지막에 대한 관심은 곧 마지막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의 목표로서 이미 역사의 과정 속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현재의 역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종말론적 관심은 피안적인 도피이기보다는 현재 역사의 핵심에서 움직이는 역동적인 힘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종말론에 대한 건강한 관심은 언제나 현재에 대한 영향력 있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역사의 흐름 속에 함몰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므로 기독교 신앙은 언제나 세계와 역사의 종말을 바라보는 가운데 시대와 역사를 새롭게 해 왔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살아 있던 시기는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본 시기였다. 교회가 세상적 적응을 위하여 종말의 소망을 잃어버렸을 때 교회는 세상의 인정도 잃어버렸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도 잃어버렸다. 교회가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회복했을 때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도 받았으며, 세상의 존경도 회복했다.
(2) 건강한 종말론의 방향 : 구속사적인 접근
하지만 종말론에 대한 모든 관심이 건강한 방향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종말론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언제나 두 가지 방향에서 종말론의 역사를 왜곡시켜 왔다. 우리는 서론에서 종말론에 대한 상반되는 입장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건강한 종말론을 정립하려는 기독교적 시도들은 언제나 이러한 두 가지의 극단적 입장에 의하여 어려움을 겪어 왔다.
첫째 입장은 역사의 묵시론적 차원만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는 역사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키며 세계가 곧 멸망할 것임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책임을 외면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성경의 종말론적 선포를 종말 날짜 산정을 위한 자료로서 간주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종말론이란 세계의 멸망이 오는 날짜를 예측하는 논의이다.
둘째 입장은 인간의 역사가 계속 진보하리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낙관적 역사 이해를 강조하는 입장은 많이 퇴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사회는 성경의 종말론적 희망을 하나의 공상으로 간주하는 가운데 역사의 종말론적 차원을 부인한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도 이러한 근대 세계의 영향 아래, 종말론을 "기독교 교의학의 결론에 추가된 짧고, 전적으로 무해한 한 장(章)"으로 만들고 말았다.
위의 두 가지 입장에서 우리는 성서적으로 건강한 종말론 이해를 발견할 수 없다. 첫째 입장은 역사의 종말론적 차원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 대가로 비관적 운명론을 선택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사라지고 오직 미래에 대한 음침한 전망만이 남아 있다. 둘째 입장은 역사에 대한 현실적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에 역사의 종말론적 차원을 외면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분명한 목적이 없이 계속 전개되는 역사 속에서 인간은 그 목표를 상실하고 있다. 종말에 대한 이와 같은 양극단적 이해는 언제나 인간의 역사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일반적 시각의 종말 이해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히 구속사적인 종말 이해를 펼치고 있다. 예수께서는 종말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0) 예수의 말씀 속에 암시된 종말에 대한 논의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구원의 틀에서 전개된다. 하나님은 역사의 마지막에 그 나라를 완성하지만 이미 그 나라의 성취 과정에도 동행하신다. 역사의 종말에 대한 관심은 역사의 과정에 대한 관심의 연속선상에서 펼쳐진다.
물론 현재 역사의 과정과 미래 역사 완성 사이에 연속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와 미래 사이에는 불연속성이 있다. 아직 하나님의 주님 되심이 완전히 계시되고 증명되지 못한 현재 역사의 모호함과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계시될 미래의 종말 사이에 불연속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역사의 과정과 역사의 종말 사이에는 불연속성뿐만 아니라 연속성도 있다. 이는 지금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종말에 영광을 받으실 바로 그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속의 하나님이 곧 역사 마지막에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 되실(고전 15:28) 영광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종말에 대한 논의는 역사의 과정에 대한 논의와 분리할 수 없다. 종말에 대한 고려 가운데 구속사, 곧 구속사(救贖史)적 접근 방법은 건강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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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기독교 교리의 정점은 종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한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기독교 교리의 정점은 종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한다.
특별한 설교 감사합니다.
기독교 교리의 정점은 종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