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을 떠다 마시는 약수터가 있는데, 물이 제법 좋다는 소문이다. 실제로, 상온에 몇달을 두어도 물이끼가 끼지 않고 열심히 마셔 위장병도 고쳤다는 소문도 있다.
하여간, 내가 마시는 물을 자랑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약수터를 핑게로 다른 소리를 하고 싶은 때문이다.
아! 그리고, 약수터의 지정학정 위치를 조금 설명하면 더욱 흥미진진하지 않겠는가. 백두대간 백봉령에서 동해로 뻗은 산줄기가 초록봉으로 동해시를 병풍처럼 감싸 앉다가 사문재를 지나 잠시 동문산으로 솓아 올랐다가 동해바다로 급경사로 마감을 한다. 그 급경사 산중턱에 과거 오징어가 한창 잡힐 시절 전국에서 모여들어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살다가
지금은, 그 집들 사이로 논골담길이라는 유명한 골목길이 생겼고 산 위에는 묵호등대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나는 매일 아침 동문산 아래 작은 숲길로 산책을 마치고 사문재 중간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마신다.
요즘, 약수터는 하루종일 살마들오 북적인다. 물을 뜨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네들이다. 여름 철이 아닐 때는 두 노인네 마시는 양이 뻔하기에 통 하나면 충분한데 요즘은 통을 몇개씩 들고 오기에 시간이 너무 걸린다.
휴가철을 맞아 자식 손주가 마실 물까지 떠가려는 노인네들의 욕심 때문인 것이다. 새벽 한 시에 가도 잠이 없는 노인네들이 진을 치고 있다. 내 나이는 그들 보다 조금 어리지만, 이곳 동해로 오는 바람에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노인네다. 어판장도 그렇고 아침 산책도 그렇고 약수터도 그렇고, 그래서 내 주변은 온통 노인네 뿐이다.
몇 년 후면 나도 그들과 별반 다름 없는 신세기에 별로 이질감도 느끼지 않는 편이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속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특히 자식들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알 수 밖에 없다.
자식들은 모처럼 부모를 뵈로 오는 것이 그들로서는 최대한의 효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식들이 달고 오는 손자들에 대해서도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다. 과거 처럼 손자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았기에 손자나 노인데들이나 서먹하기는 마찬가지다. 노인들은 자식들이 와 있는 몇일 간이 고욕인 것이다. 차라리 그들에게 용돈이나 몇 푼 보내는 것이 진정한 효도가 될 수도 있다.
과거의 대가족 시대가 완전히 종식이 되고 노인들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나마 이곳 소도시는 노인들이 중심이 되는 생활 환경이기에 나름 경제 공동체라도 겨우 지켜질 수 있지만 대도시에서의 노인들은 마치 유기견 처럼 천덕구러기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곳 어판장에서 돈을 벌고 이곳 경제 시스템에 동참이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인 것이다.
내가 만약 봉급쟁이 였다면, 이 나이에는 벌써 쫒겨났을 것이고, 상삿꾼이었다면 이곳처럼 게으름을 피우며 유유자적 장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노인들에게는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하나는 노령연금이 십만원 올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배값이 두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달에 십만원이 올랐다는 사실은 노인들에게는 희소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담배값은 노인들에게는 커다란 재앙이 되고 말았다. 비록 나는 십여년 전에 담배를 끊었지만, 담배는 오래 피운 사람일수록 더욱 끊기가 힘든 지독한 마약인 것이다.
그래서 내 주변의 대 다수 노인들은 금연에 실패했다. 그래서 십만원 올라간 노령연금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오히려 재앙이 되고 만 것이다.
우스개 소리지만, 한가지 재앙은 또 있다.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남자 노인들이 그들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노인정에서 성거래가 음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 요금이 만원에서 무려 세배가 오른 삼만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담배 피우고 여자 밝히는 노인들은 올라간 노령 연금이 영 마땅치 않는 것이다.
쫒겨난 전 여당 원내 대표가 취임 인사에서 증세없는 복지 없다고 한 마디 했었는데, 그 소리가 대통령에게는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실제로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어거지로 세금을 올리고 있었는데, 몰래 도둑질 하다가 잡힌 인간처럼 가슴이 철렁 했을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좀더 신중하게 대통령에게 대들었어야 하는데 여자의 자존심을 너무 건드린 것이다.
현대 국가의 복지제도는 세금을 근간으로 이루어진다. 유 원내대표의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는데, 무식한 대통령은 오로지 자존심만으로 엉터리 짓거리를 했던 것이다.
서양사에서 근대라는 말은 자본주의 형성 과정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가 국가와 공모를 하여 얼마나 커다란 세력이 되었는지 또 얼마나 커다란 전쟁들을 일으켰는지 얼마나 많은 나라들을 침략하고 식민지화 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잇는 것이다.
그런 엉터리 과정에서 현대국가가 성립이 되고 대의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탄생되고 우리는 그것을 자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하고 민주주의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약자들을 위한 제도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복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복지라는 제도가 국가와 시장이 공모하여 망가뜨린 약자들의 경제시스템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한 마디로 허울 좋은 악어의 눈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오히려 서민들의 공동체 속에서의 그 시스템을 그대로 지켜주었다면, 지금의 현대국가가 억지로 세금을 걷어서 복지를 하려는 궁여지책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이곳 노인들은 약수터에서 지금도 자식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을 서로들 나누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들과 같이 가고 있다. 오히려 국가의 복지 보다도 노인들이 모여있는 약수터가 더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