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때부터 공부를 참 못했어요. 사랍국민학교 시험을 봐서 떨어지고 공립국민학교를 다니다가 2힉년때 사립국민학교로 전학을 했는데 아침에 등교하면 책상에 산수문제가 놓여있어요. 수업시간전에 풀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정답을 맞추지요. 그리고 수업 끝나면 매일 시험을 봅니다. 월~금요일까지 시험을 보고 토요일날 성적표를 받아서 부모에게 도장을 받아와야 했어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평균 100점이 보통이고 99.8점이 나오면 우는 친구도 있었어요. 저는 90점 넘기기가 힘들었지요. 그리고 중학교는 추점제로 갔는데 70명중에 50등 정도 하다가 2학년 되서 3040등 하다가 3학년 되서도 여전히 학교성적은 3040등 이었는데 모의고사는 이상하게 20여등이 나오더라구요. 제일 잘받은 성적이 반에서 18등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배치고사를 보고 전기고교 배치를 하는데 이대부고 또 무슨부고랑 중대부고중에 선택하라고 해서 이대부고는 잘나온 성적을 보고 배치하는거고 또 무슨부고는 보통때 나온 성적으로 배치하는거고 중대부고는 제일 안좋은 성적으로 배치하는거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중대부고를 봤는데 떨어졌어요. 후기를 가야하는데 본교를 진학하고 싶었는데 중대부고 떨어질 정도면 본교도 위험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재수할 생각으로 시험을 봤는데 다행이 붙었어요. 턱거리 한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고교성적은 맨 꼬다리에서 놀았어요. 중학교 공부보다 엄청 양이 많아서 도저히 따라가질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는데 그게 보기싫은지 시비거는 친구들이 있었고 결국 싸움이 붙어서 우당탕 하는데 그 패거리들이 (저새끼 죽여라) 하면서 달려드는데 도저히 안되겠어서 교무실로 튀어들어 갔어요. 그리고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왜그러냐고 묻기에 상황설명을 하니 중학교부터 가르치시던 선생님이라 저를 잘아시는 분이라 그런지 무조건 내편이 되어주시더라구요. 그래서 홍역을 치루고나면 한해는 무사히 넘어가는 신세였습니다. 학년 바뀔때마다 한바탕 푸닥거리해서 이겨내지 못하면 견디기 힘든 상황이 계속 이어졌지요. 그러니 공부도 안되고 스트레스는 받지 이래저래 병이 나서 한해를 쉬고 복학을 해서 다시 다녔는데 역시 성적은 노상 개떡이었습니다. 그리고 고3 예비고사를 봤는데 서울이 안되고 지방이 되서 전기대학 시험을 보러 진주까지 가서 경상대 축산과 시험을 봐서 떨어지고 후기에 보니 축산과가 없어서 재수를 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부모님이 보시기에 재수해보니 그 머리에 뭐가 제대로 되겠나 싶으셨는지 홍익공전을 가라고 하셔서 시험을 봤는데 붙었어요. 그리고 2년을 다니는데 여름방학을 하면 집이 스라브집이라 완전 찜통이었지요. 그래서 홍전도서관에 나가서 공부하다가 하도 더워서 홍대앞에 유정다방이라고 있었는데 음악 틀어주고 에어콘 빵빵하고 좋아서 거기서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점심은 시장골목에 들어가면 칼국수집도 있고 먹을게 많아서 사먹고 공부하다가 집으로 갔지요. 그러다 생일날이 되었어요. 그날도 가방 싸들고 홍대앞 유정다방으로 가서 공부하고 집으로 왔는데 아버지랑 어머니가 싸늘한 시선으로 쳐다보시더라구요. 왜 그런가 했더니 생일날도 공부한다고 가방 싸들고 나가는게 기특해서 점심 사줄려고 학교 도서관에 오셨다고 하시면서 너 안보이던데 어디서 뭐하고 돌아다닌거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유정다방에서 에어콘 빵빵하게 틀어주고 방학이라 학생들도 없고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기 좋아서 거기있다 온다고 말씀드리니 아무 말씀 안하시더라구요. 그 시절 커피값이 150원 담배는 안피던 때라 모르겠고 시장 칼국수가 150원 하루 1000원이면 떡을 치던 시절이었지요. 하루 1000원 가지고 나가서 쓰고 모아서 좋아하는 노래 들어있는 레코드판도 사서 들을 수 있었어요. 근데 재밌는건 공전에 오는 친구들이 보면 대부분 기사 자격증 따서 대학교 편입을 목표로 하거나 아니면 공고나온 친구들이 기능사 자격으론 한계를 느끼니 기사2급 자격증을 취득할 목표로 오는 친구들이 많아서 전공에서는 공고 나온 친구들을 따라잡기 힘들더라구요. 하여튼 졸업하고 포철시험을 봤는데 필기시험을 합격해서 2차면접을 보러갔는데 지금 기억나는건 점심식사를 주는데 그렇게 큰 식당을 처음 봤을 정도로 운동장처럼 넓었어요. 나물비빕밥 맛나게 먹은게 기억납니다. 붙었을까요? 당연히 떨어졌지요. 그래서 한동안 방황하다가 다시 공부해서 건대축산과를 가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내가 받은 점수대를 배치하더라구요. 또 떨어지면 안되겠기에 지방대학 농대 축산과를 나오고 촌에 가서 소 키우면서 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심초사 했지만 땅 살 돈도 목장 차릴 돈도 없어서 그냥 부모님 말대로 마누라 말대로 살다보니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냥 이대로 살다 가는게 순리려니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어찌 좀 잘 풀리기만을 고대하고 있는데 딸아이는 시집을 갔고 아들만 보내면 되는데 요즘 애들은 30살이 넘어도 장가살 생각을 안하데요. 저는 우리 나이로 29살에 결혼했는데 빠른 친구들은 27살에도 갔었지요. 아직도 저의 꿈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칩을 짓고 사는건데~~~글쎄요. 이루어질 수 없는 꿈 같아요.
첫댓글다니던 국민학교는 폐교되었지만 동창들 소식은 가끔 접합니다. 공부 잘하던 친구들은 경기고 서울대 나오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된 친구도 있고 정부 FTA 협상단장인가를 하는 친구도 있더군요. 그림 잘 그리던 여자 동창은 미술계통에서 날리는 친구도 있더라구요. 중학교 동창중에서도 경기고 간 친구들은 대학교수가 되어서 티비에 나오기도 하더군요. 공부 잘하고 반듯하고 지도력이 있었던 친구들이 그래도 잘 풀리더라구요. 정상적인 나라가 되어간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비정상적이고 과도기적인 시절은 이제 끝난거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더 벅찬 삶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그래요. 전 보통 이하거든요.
고등학교 다닐때 기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보면 입술이 다 터져있었어요. 맞아서 터진게 아니고 피곤해서 터진 입술이었지요.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나온 분이셨는데 고등학교 기술과목 별로 비중도 높지 않은 과목을 가르치고 계셨어요. 입술이 터져서 피가 맺힐 정도로 피곤하신데도 참으로 열심히 강의를 하셨어요. 그리고 어느날 학교를 떠나신다고 아침조회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을 졸업하고 홍전 전기과를 들어가서 보니 그 기술 선생님이 교수로 들어오셔서 강의를 하시더군요. 입술이 터진 이유를 그때서야 알았어요. 야간대학원에서 공부를 하시고 석사학위를 받아서...
공전 교수가 되신거였어요. 참 존경스럽더라구요. 그 시절에는 어른들이 그렇게 열심히 밤낮 가리지 않고 배우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거나 돈을 벌어서 식구들 먹여살리기 바쁜 시절이었던것 같습니다. 아버지도 얼굴 보기 힘들 정도로 새벽에 나가셔서 통행금지 안걸리게만 귀가하셨어요. 박정희 시대는 그렇게 어른들이 죽어라 뛰어다니면서 입술이 터지고 머리가 벗겨지고 열심히 사신덕에 오늘날 우리가 G8에 든거 같아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중2때 같은 반에서 공부한 친구가 있는데 왠지 모르게 허약해 보이는 친구였어요. 근데 그 친구랑 자주 이야기를 하게되었어요. 친하진 않았지만 애가 착해서 대화가 잘되었어요. 한마디로 천사표 친구였지요. 그 친구랑 이야기하면 즐거웠어요. 그리고 중3이 되고 고교입시 준비를 하느라 서로 뜸하다가 여름방학때 체력장 연습하러 학교에 갔는데 그 친구랑 체육선생님이랑 운동을 하고 있더군요. 나는 나대로 운동하고 친구도 운동이 끝나서 오랜만에 모래밭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경기고를 갈려고 하는데 체력장 점수가 안나워서 걱정이락고 하더군요. 경기고 전년도 커트라인이 200점 만점에 197점이라고 하면서 필기는 만점...
자신있는데 체력장이 2급이 나오면 어렵다고 한숨을 쉬더라구요. 그래서 체육선생님께 체육과외를 한다는 겁니다.듣고보니 마음이 안좋더라구요. 그리고 헤어졌어요. 전교 1등하는 친구라 필기는 만점 받을거라 믿었는데 체력이 약해서 어찌됐는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9월에 체력장을 보고 저는 특급을 받았어요. 부모님도 동생들도 친구들도 내가 체력장 특급 받은게 믿기지가 않아 하더군요. 3학년 초에 예비 체력장에서 4급이 나왔는데 6개월여만에 특급을 받았으니 놀랄만 했지요. 공부하다가 답답하면 학교로 달려가서 철봉에 매달리고 뛰고 구르고 혼자 별짓을 다해서 얻은 결실이었어요. 근데 그 친구는 어찌됐는지 만날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경기고를 들어갔고 졸업하고 연대의대를 나와서 개인병원을 하고 있더라구요. 왜 서울대의대를 못갔을까 생각해보니 역시 체력이 약해서 그랬던거 같아요. 인터넷으로 그 친구 이름을 쳐보니 중학교때 모습이 남아있고 어딘지 모르게 허한 표정이 여전하더라구요. 보고싶은 친구 그리운 친구 그래서 찾아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서로 다른길은 걸어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냥 덮어버렸습니다.
근데 중3때 죽어라 노력해서 체력장 특급을 받고나니 공전 갈때도 특급 대학교 갈때도 특급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자신하고 살았어요. 근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나를 조금 이상하게 보더라구요. 이유를 몰랐지요. 아내도 내가 이상하다는걸 말하지 않았고 장인어른이 날 처음 보시고 하신 말씀이 (어디가 불편한가?) 하시기에 아니라고 건강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결혼하고 딸 낳고 남동생이 장가를 가는데 비디오를 찍더군요. 그리고 부모님 집에 모여서 남동생 결혼식 비디오를 보는데...(아이구~~내가 왜 저래? 나 완전히 바보로 보이네)하니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들도 아내도 아무말이 없더라구요.
그때서야 왜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대했는지 다 이해가 되더군요. 다 내탓이더라구요. 내가 봐도 바보로 보여요. 그것도 아주 상바보더군요. 흔들흔들~~웃는 모습도 바보같고 건배하는 모습도 바보같고.....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그리고 나를 바보 취급하고 힘들게 했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야만 했어요. 원인이 내게 있는데 바보를 보고 바보로 대하는게 어째서 죄가 되겠어요. 바보인 내가 문제지요. 안그런가요? ㅎㅎㅎ
그리고 서기 2000년부터 시작된 하느님 시험이라는거 20년을 지속하더군요. 요셉센부님이 어느날 강론중에 나를 쳐다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다 끝났는데 처음부터 다시해야 한다고 하시데요. 그래서 한동안 성당 안나갔어요. 그러다 요셉신부님 다른데로 가시고 나가니 아닌척 하면서 여전히 시험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직도 안끝났구나 하고 알게되었지요. 근데 이제 제 나이가 64세에요. 죽을때까지 시험하실건가요? 하기사 오상의 비오신부님은 그렇게 확실한 표징을 지니고 사셨는데도 교회에서 계속 시험하였고 그 과정을 묵묵히 이겨내셨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저는 이제 그만 하셨으면 합니다만 새로오시는 신부님들이 어찌 하실지....
모르겠어요. 또 계속하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제는 제가 늙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묵주기도 하루에 100단씩 바치면서 견디질 못할것 같아요. 요즘은 하루 10단 정도밖에 못합니다. 성무일도는 가능하면 다 바치는데 묵주기도 안되서 그 고된 시험을 견디어낼 자신이 없어요. 나이가 드니 묵주기도가 왜 그리도 힘든지 모르겠어요. 묵주기도만 예전처럼 수월하게 잘되면 무슨 시험이든 자신있게 견디어 낼 수 있겠는데....하여튼 알아서 하시겠지요. 하느님만 믿습니다. ㅎㅎㅎ
첫댓글 다니던 국민학교는 폐교되었지만 동창들 소식은 가끔 접합니다. 공부 잘하던 친구들은 경기고 서울대 나오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된 친구도 있고 정부 FTA 협상단장인가를 하는 친구도 있더군요. 그림 잘 그리던 여자 동창은 미술계통에서 날리는 친구도 있더라구요. 중학교 동창중에서도 경기고 간 친구들은 대학교수가 되어서 티비에 나오기도 하더군요. 공부 잘하고 반듯하고 지도력이 있었던 친구들이 그래도 잘 풀리더라구요. 정상적인 나라가 되어간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비정상적이고 과도기적인 시절은 이제 끝난거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더 벅찬 삶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그래요. 전 보통 이하거든요.
고등학교 다닐때 기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보면 입술이 다 터져있었어요. 맞아서 터진게 아니고 피곤해서 터진 입술이었지요.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나온 분이셨는데 고등학교 기술과목 별로 비중도 높지 않은 과목을 가르치고 계셨어요. 입술이 터져서 피가 맺힐 정도로 피곤하신데도 참으로 열심히 강의를 하셨어요. 그리고 어느날 학교를 떠나신다고 아침조회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등을 졸업하고 홍전 전기과를 들어가서 보니 그 기술 선생님이 교수로 들어오셔서 강의를 하시더군요. 입술이 터진 이유를 그때서야 알았어요. 야간대학원에서 공부를 하시고 석사학위를 받아서...
공전 교수가 되신거였어요. 참 존경스럽더라구요. 그 시절에는 어른들이 그렇게 열심히 밤낮 가리지 않고 배우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거나 돈을 벌어서 식구들 먹여살리기 바쁜 시절이었던것 같습니다. 아버지도 얼굴 보기 힘들 정도로 새벽에 나가셔서 통행금지 안걸리게만 귀가하셨어요. 박정희 시대는 그렇게 어른들이 죽어라 뛰어다니면서 입술이 터지고 머리가 벗겨지고 열심히 사신덕에 오늘날 우리가 G8에 든거 같아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중2때 같은 반에서 공부한 친구가 있는데 왠지 모르게 허약해 보이는 친구였어요. 근데 그 친구랑 자주 이야기를 하게되었어요. 친하진 않았지만 애가 착해서 대화가 잘되었어요. 한마디로 천사표 친구였지요. 그 친구랑 이야기하면 즐거웠어요. 그리고 중3이 되고 고교입시 준비를 하느라 서로 뜸하다가 여름방학때 체력장 연습하러 학교에 갔는데 그 친구랑 체육선생님이랑 운동을 하고 있더군요. 나는 나대로 운동하고 친구도 운동이 끝나서 오랜만에 모래밭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경기고를 갈려고 하는데 체력장 점수가 안나워서 걱정이락고 하더군요. 경기고 전년도 커트라인이 200점 만점에 197점이라고 하면서 필기는 만점...
자신있는데 체력장이 2급이 나오면 어렵다고 한숨을 쉬더라구요. 그래서 체육선생님께 체육과외를 한다는 겁니다.듣고보니 마음이 안좋더라구요. 그리고 헤어졌어요. 전교 1등하는 친구라 필기는 만점 받을거라 믿었는데 체력이 약해서 어찌됐는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9월에 체력장을 보고 저는 특급을 받았어요. 부모님도 동생들도 친구들도 내가 체력장 특급 받은게 믿기지가 않아 하더군요. 3학년 초에 예비 체력장에서 4급이 나왔는데 6개월여만에 특급을 받았으니 놀랄만 했지요. 공부하다가 답답하면 학교로 달려가서 철봉에 매달리고 뛰고 구르고 혼자 별짓을 다해서 얻은 결실이었어요. 근데 그 친구는 어찌됐는지 만날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경기고를 들어갔고 졸업하고 연대의대를 나와서 개인병원을 하고 있더라구요. 왜 서울대의대를 못갔을까 생각해보니 역시 체력이 약해서 그랬던거 같아요. 인터넷으로 그 친구 이름을 쳐보니 중학교때 모습이 남아있고 어딘지 모르게 허한 표정이 여전하더라구요. 보고싶은 친구 그리운 친구 그래서 찾아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서로 다른길은 걸어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냥 덮어버렸습니다.
근데 중3때 죽어라 노력해서 체력장 특급을 받고나니 공전 갈때도 특급 대학교 갈때도 특급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이제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자신하고 살았어요. 근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나를 조금 이상하게 보더라구요. 이유를 몰랐지요. 아내도 내가 이상하다는걸 말하지 않았고 장인어른이 날 처음 보시고 하신 말씀이 (어디가 불편한가?) 하시기에 아니라고 건강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결혼하고 딸 낳고 남동생이 장가를 가는데 비디오를 찍더군요. 그리고 부모님 집에 모여서 남동생 결혼식 비디오를 보는데...(아이구~~내가 왜 저래? 나 완전히 바보로 보이네)하니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들도 아내도 아무말이 없더라구요.
그때서야 왜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대했는지 다 이해가 되더군요. 다 내탓이더라구요. 내가 봐도 바보로 보여요. 그것도 아주 상바보더군요. 흔들흔들~~웃는 모습도 바보같고 건배하는 모습도 바보같고.....눈물이 핑 돌더라구요. 그리고 나를 바보 취급하고 힘들게 했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야만 했어요. 원인이 내게 있는데 바보를 보고 바보로 대하는게 어째서 죄가 되겠어요. 바보인 내가 문제지요. 안그런가요? ㅎㅎㅎ
그리고 서기 2000년부터 시작된 하느님 시험이라는거 20년을 지속하더군요. 요셉센부님이 어느날 강론중에 나를 쳐다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다 끝났는데 처음부터 다시해야 한다고 하시데요. 그래서 한동안 성당 안나갔어요. 그러다 요셉신부님 다른데로 가시고 나가니 아닌척 하면서 여전히 시험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직도 안끝났구나 하고 알게되었지요. 근데 이제 제 나이가 64세에요. 죽을때까지 시험하실건가요? 하기사 오상의 비오신부님은 그렇게 확실한 표징을 지니고 사셨는데도 교회에서 계속 시험하였고 그 과정을 묵묵히 이겨내셨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저는 이제 그만 하셨으면 합니다만 새로오시는 신부님들이 어찌 하실지....
모르겠어요. 또 계속하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제는 제가 늙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묵주기도 하루에 100단씩 바치면서 견디질 못할것 같아요. 요즘은 하루 10단 정도밖에 못합니다. 성무일도는 가능하면 다 바치는데 묵주기도 안되서 그 고된 시험을 견디어낼 자신이 없어요. 나이가 드니 묵주기도가 왜 그리도 힘든지 모르겠어요. 묵주기도만 예전처럼 수월하게 잘되면 무슨 시험이든 자신있게 견디어 낼 수 있겠는데....하여튼 알아서 하시겠지요. 하느님만 믿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