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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관련해 200건이 넘는 추적보도...기사인용 서울의소리 발행인까지 고소해 감옥보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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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인용 서울의소리 발행인까지 고소 감옥 보내 朴 정부 4년간 의혹제기로 감옥 간 사람만 10여명
대통령직 파면 이끌어낸 끈질긴 보도, 고독한 전쟁이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선데이저널>의 폭로로 시작된 최순실 게이트의 끝은 결국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이란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국회에서 청구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인용했다. 박근혜 정권 4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대통령 스스로가 ‘시녀’라고 여겼던 최순실이란 40년 지기가 국정 전반을 농단했다.
최순실에게 대통령은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말로는 ‘시녀’라고 하면서 실제 대화에서는 그를 ‘선생님’으로 깍듯하게 모시며 국정 전반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각종 비리와 무능력이 도마에 올랐음에도 후안무치한 행동으로 일관했다. 본인에게 쏟아지는 각종 의혹들을 ‘완전히 엮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검찰 및 특검의 수사까지 거부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 원칙을 대통령이란 작자부터가 완전히 무시했다.
본지는 자연인 박근혜가 어떠한 사람인지 이미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경고했고, 2012년 대선 전에는 ‘대통령이 되지도 않겠지만, 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감히 단언했다. 대통령 당선 후에도 정윤회 – 최순실 부부를 둘러싼 각종 국정 농단 의혹들을 추적 보도했고, 결국 오늘의 사태에 이르게 됐다.
또한 지난 8월 최순실 사건을 처음 보도했을 때 본지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최씨 비위행위는 박 대통령 공모나 묵인, 방조, 직무유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 형사적 책임을 떠나 진상규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한 이유다.>
결국 본지의 주장대로 대통령에 대한 수사까지 오게 됐다. 이에 선데이저널은 본지가 지난 10년 간 보도했던 대한민국 헌정사 최악의 스캔들 주인공인 박근혜 – 최순실 – 정윤회를 둘러싼 보도들을 되짚어보고, 본지의 보도가 과연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지 독자들에게 밝히고자 한다. 본지는 그동안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해 200건이 넘는 추적보도 기사를 내보냈고, 이 기사들은 온라인을 타고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큰 화제를 몰고 왔다. 그 양과 질은 본국의 어떤 언론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집요하고 과감했다고 자신한다.
본국 미디어전문 매체인 ‘미디어오늘’은 이런 본지의 근성 취재에 경의를 표하며, 본지 발행인과 수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종말론적 예언서와 같았던 선데이저널 지난 10년의 기록을 살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1. 최태민 X 파일 (2007년 8월)
모든 것은 1970년대 중반 최태민 목사와 영애 박근혜와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수십 년 나이 차이가 났던 두 사람은 친구인지 애인인지 모를 관계로 발전하며 오늘날 사태의 불씨를 만들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두 사람이 방에 들어가면 무슨 일을 하는지 밤새도록 나오지 않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최태민은 육영수 여사 사망 후인 1975년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주변에 빌붙어 그를 조종해왔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도 최태민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하지만, 사실 그는 호색한이자 권력에 빌붙어 이권을 챙기려는 협잡꾼에 불과했다. 그리고 최태민에 대를 이어 최순실까지 박 전 대통령 주변에 머물며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했다.
최태민에 대한 정부 기관의 조사가 처음 이뤄진 것은 1979년이었고, ‘최태민 X파일’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 X파일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처음 보도한 것이 본지였다. 중앙정보부가 작성했던 이 파일에는 최태민 목사에 대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추악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본지는 이 파일들을 보도하며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벌어질 ‘파국’에 대해 예고했고, 결국 10년 만에 이 보도는 사실이 되었다. 다음은 2007년 보도했던 기사 내용 중 일부다. 파일 내용 중의 일부다.
○ 崔太敏은 영혼합일법(일종의 최면술) 등 似而非宗敎行脚으로 전전하던 75. 2말경 朴槿惠에게 3차에 걸쳐 꿈에 “陸女士가 나타나 근혜를 도와주라”는 현몽이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하여
2. 박근혜 5촌 조카 살인 사건 5년의 추적 (2012년 4월/2017년 1월)
2012년 대선을 6개월 앞둔 시점 본지는 1년 간의 취재 끝에 충격적인 보도를 세상에 내놓았다. 바로 박근혜의 5촌 조카 살인 사건에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씨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였다. 박 대통령의 5촌 조카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살해하고 본인은 자살한 이 사건은 2011년 9월에 일어났는데, 경찰이 가해자가 자살한 것으로 마무리하면서 사건도 금세 덮여졌다. 하지만 본지는 이 사건이 자살이 아닌 이유를 취재하면서 배후에 박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가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 이후 박지만 회장은 본지 기자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는 등 본격적 재갈물리기에 나섰다. 다음은 당시 보도의 일부다.
<박용철 씨가 박지만 회장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은 여전히 적지 않다. 육영재단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박 씨가 박지만 회장의 비서실장인 정용희 씨와 손잡은 흔적이 적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몰라도 박 씨는 공판출석을 앞두고 살해됐고, 결국 신 씨의 주장을 입증해줄만한 인물은 사라졌다. 신 씨는 명예훼손으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았고, 오는 대선 전까지는 출소가 불가능해졌다. 결국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입장에서는 목구멍의 가시가 사라진 셈이다. 이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박지만 회장인 것이다. >
본지의 사건 취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근 본지는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제보자의 증언을 통해 이 사건에 최순실 씨 또한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11월 29일 새벽. 본지 기자에게는 충격적인 제보가 들어왔다. 본지가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최순실이 강남의 조폭들이 배후에 있다는 특종보도를 했고, 과거에서부터 꾸준하게 박근혜 대통령 주변을 취재한 사실을 알았던 제보자는 지난 2011년 발생됐던 박근혜 대통령의 오촌형제들 간 살인사건과 관련한 전화였다. 제보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제보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된다.
박근혜 오촌 살인 사건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다.
3. 정윤회 – 최순실 비선 실세 의혹은 과거완료 아닌 현재진행형 (2012년 8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도 않겠지만,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2007년 대선에서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경선에 출마했던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다. 그는 이 때문에 5년을 와신상담했다. 그러는 사이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인의 장막은 더욱 견고해졌다. 박 전 대통령 주변에는 당시만해도 부부 사이였던 정윤회 – 최순실이 꿰차고 앉아 , 사실상 박 전 대통령과 관련한 모든 의사결정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보좌진도 그들이 데려다 앉혔고, 사생활도 직접 챙겼다. 이번 특검에서 드러났듯이 박 전 대통령의 자택도 최 씨가 사줬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가방과 옷까지 챙겼다. 박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최 씨의 ‘바비 인형’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의 전횡을 이미 본지가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본국 언론들은 두 사람을 그저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 정도로만 치부했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지난 대선 전 본지는 비선 실세라 불리는 두 사람과 관련한 의혹들을 세 차례에 걸쳐 보도하며 의혹들을 보다 구체화했다. 특히 본지는 두 사람 관련 의혹이 과거완료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라고 꼬집어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본지는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도 않겠지만,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며 연속 시리즈를 보도하자 본지 연훈 발행일 비롯해 리차드 윤 취재부기자와 조현철 기자를 검찰에 고소했다. 다음은 지난 대선이 있기 4개월 전이었던 2012년 8월 보도의 일부다.
<정윤회 씨가 박근혜 후보와 관련해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가 최태민 씨의 사위이면서도 박 후보의 정치입문 초반 그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즉 정 씨가 박 후보의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좌한다는 것은 여전히 최 목사의 그림자가 박 후보에게 드리운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것이 확인되면 최태민 의혹은 박 후보에게 과거진행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란 말도 가능하다. 박 후보 측은 현재 정 씨와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됐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박 후보가 정 씨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그는 박 후보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인 1990년대 중·후반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제과점을, 강남구 청담동에서 ‘풍운’이라는 일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박근혜 후보가 정치를 시작하자 그의 보좌관으로 합류하며 최측근 역할을 했다. 그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특히 2002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 총재로 취임했을 때는 총재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는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정 씨가 여전히 박 후보의 뒤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중략)
정 씨의 부인인 최순실은 최태민 목사의 다섯 번 째 딸이다. 현재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최순실은 박근혜와 20대 때 말동무로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최 씨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거액의 재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최 씨의 재산이 박 후보의 차명재산이란 말도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선 최순실이 신사동 땅을 사들인 나이가 30대 초반이었음을 거론하며 “아버지 최태민으로부터 상당 규모의 자산을 물려받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 씨는 육영재단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름이 등장한다. 최 씨가 “회관 운영에 개입해 전횡을 한다”는 요지였다. 이와 관련해 박 후보의 동생인 박근령 씨와 박지만 EG회장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A4용지 5장 분량의 탄원서(8~9면 참조)에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4. 정윤회의 인도네시아 동행 (2013년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정윤회의 국정개입이다. 정윤회는 어떻게 보면 최순실보다 더 깊숙하게 국정에 개입해왔을 수 있다. 하지만 검찰도 특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고 봤지만, 사실 정윤회를 조사하면 현재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은 국정농단 사건이 드러날 수 있다. 정씨가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처음 보도한 것이 바로 본지의 ‘정윤회의 박근혜 인도네시아 순방 동행 의혹’이었다.
당시 본지는 “정윤회 씨가 지난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 기간 중 인도네시아에 방문해 청와대 내 몇몇 인사들을 접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본국 정치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본지에 연락해와 “그와 같은 사실이 없다”며 부인해왔으나, “출입국 기록을 보여주면 정정해주겠다”는 답변 이후 별다른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수 년 동안 물밑에 있던 정 씨가 본국의 언론사를 포함해 처음 연락을 취해왔던 것은 본지가 처음이었다.
<정치권 관계자 및 본국의 몇몇 기자들에 따르면 정 씨는 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방문하기 몇 일 전에 인도네시아로 출국해 순방 기간 내내 머물렀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내에서 그가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청와대 내 자신의 측근들을 만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청와대에서 일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보좌진은 대부분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당시부터 일했던 인물들이다. (중략) 정 씨가 이들로부터 별도의 보고를 받으며 계속 박 대통령의 행보에 개입한다는 의혹도 제기돼왔다. 하지만 대부분 의혹에 불과했을 뿐 정 씨가 한 번도 그 모습을 드러낸 바가 없었다. 따라서 이번 인도네시아 순방 기간에 정 씨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정 씨가 정호성 비서관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을 만났다는 전언은 그의 막후 영향력이 여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간 관계는 정윤회 문서 유출 사건을 통해 일부 드러났으나,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국기문란으로 규정짓고 덮어버렸다.
5. 정윤회 국정농단 ‘정권 후반 최순실이 반드시 정국의 핵 될 것 (2014년 12월)
정윤회 문서 유출 사건에 모두의 시선이 모여있던 2014년 12월 본지는 최순실에 주목했다. 정윤회보다 최순실의 영향력이 더 막강하며, 박근혜 정부 후반 최 씨가 반드시 정국의 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최 씨와 아주 가까운 지인인 K 여인의 입을 빌려 최 씨 각종 국정 농단의 전조를 보도했다. 그리도 박근혜 정권 후반 본지 전망대로 사상 최악의 권력형 게이트가 터졌고, 이로 인해 박 전 대통령은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됐다.
<정윤회 문서 유출 사건 역시 가만히 따져보면 최씨에서부터 시작됐다. 오래전부터 언니-동생하며 친분관계가 두터웠던 K여인은 최순실 씨 소유의 신사동 건물 세입자로 이 건물에서 의류사업을 하고 있다. 우연히 최씨에게 정윤회-최순실 씨의 사생활을 전해들은 K씨는 이 사실을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에게 전하면서 시작된 것.
검찰 조사에서 K씨는 “건물주인 최 씨와 가깝게 지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박 전 청장은 검찰 조사에서 “최 씨를 언니라고 부르는 김 씨로부터 정윤회 씨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LA출신으로 미국 시민권자인 K씨는 즉각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불려가 모든 사실을 이실직고한 것이다. 검찰은 K씨를 상대로 추궁 아닌 추궁을 하면서 사건을 교묘한 방향으로 선회시켰다. K씨가 박동렬 대전지방국세청장에게 한 말은 최순실에게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어낸 말이라고 만들어 냈다.
두 차례나 검찰에 불려가 곤혹을 치룬 K여인은 검찰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최 씨는 자신이 김 씨에게만 말한 내용이 외부로 흘러나간 사실을 알고 김 씨에게 화를 내면서 나가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 씨는 12월 점포를 비웠다. 그리고 잠적해 지금까지 외부와 일체 연락이 두절됐다. 항간에는 미 시민권자인 K씨가 사건 직후 검찰의 종용에 미국으로 출국 했다는 소문도 들린다.그러나 K여인의 입이 아니더라도 이미 청담동 주변에서는 정윤회가 박근혜 대통령의 ‘밤 그림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이 자자하다.
6. 하나씩 드러나는 최순실의 행각들 (2015년 1월)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 되면서 최순실 씨의 현 정권 내 행각들도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본국 언론들 간 속보 경쟁이 붙으면서 그야말로 바닥까지 훑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본지가 앞서 보도했던 내용들이 하나 둘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최순실의 청와대 출입설이나, 사우나 모임, 대포폰 사용 등이 그것이다. 이미 본지가 1년 전에 보도한 내용들이었다. 본국 언론들은 본지 보도가 뜬구름 잡는 소문이라고 판단했겠지만 대부분 최 씨의 측근들에게서 나온 정보들이었다.
2015년 1월 본지는 이미 최 씨가 정윤회 사건의 몸통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최순실을 부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최 씨가 왜 몸통이었는지 이 날 자세하게 보도했다. 이 보도에는 최 씨의 청와대 출입설, 대포폰 사용설, 독일 거주, 독일의 부동산 구입설 등 현재 본국 언론이 보도한 내용들이 모두 담겨 있다.
<최순실을 부르는 것은 곧 박대통령을 부르는 것이라 판단한 것이지 몰라도 끝까지 검찰은 그녀를 소환하지 않아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순실, 그녀는 누구며 박근혜 대통령과 도대체 무슨 사연이 얽혀있기에 검찰조차 ‘손을 쓰지 못한 것일까’ 하는 것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이번 사건의 단초가 된 최순실은 권력서위 1위임을 실감하듯 검찰은 최씨를 소환하거나 부르지 않았다. 단연 최씨를 불러서 조사를 해야 하지만 어찌된 영문이지 그녀를 수사하지 않고 수사를 마무리하고 있어 정권말기에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과 어릴 적부터 말벗동무로 잘 알려져 있을 만큼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 최씨는 박 대통령과 수시로 밀대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씨는 박 대통령이 매일 아침마다 즐겨먹는 미국산 시리얼까지 직접 공수해 바칠 정도로 극진하게 모셨다. 박대통령이 즐겨 입는 한복과 옷의 디자인색감까지 직접 고른다.
최씨는 밤이면 스타들이 타는 스타트렉을 이용 청와대 비밀 문을 이용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는 정보가 이번 수사에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유명스타들의 트레이너로 소문난 윤전추 행정관 발탁도 최씨의 입김이 작용했다. 이처럼 최씨는 수시로 박대통령과 독대하면서 자신과의 이해관계에 있는 인사들을 박대통령에게 천거했다.
수백억원대의 재산가로 소문이 난 최순실은 휴대폰만 4대를 소지하며 추적을 피하기 위해 번갈아 사용하다가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제3자의 휴대폰을 사용할 정도로 철저하게 비밀유지를 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검찰에 불려가 곤혹을 치렀던 LA출신 미 시민권자 K모씨의 경우도 최씨 건물에 입주하기 전부터 최씨와 허물없이 지낸 사이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내 ‘미성’이라는 여자 사우나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가깝게 지냈으나 지난 해 9월 느닷없이 퇴거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받고 문을 닫았다고 검찰 진술서에 기술되었다.
7. 최경환 – 김기춘의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 (2015년 4월)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박근혜 정부 최고 실세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공직사회 곳곳에 자기 사람을 심어놓고 전횡을 휘둘렀다. 그나마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에 연루되어 구속됐지만, 최 의원은 여전히 박 전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다.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 최악의 참사인 세월호 참사 당시 이를 서둘러 덮으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이런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특히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 해운 사주 유병언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흔적이 본지 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최 전 부총리와 대구고 출신들이 주목을 받은 것은 비단 롯데 사태 때문만은 아니다. 특히 세월호 사태 당시 본지가 보도했던 우리은행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회사에 500억원이란 돈을 대환대출해줬다는 의혹제기에 대해서 지금까지 검찰이나 금융당국에서 단 한 번도 조사된 바 없다. 2013년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계열사 70곳은 42개 금융사로부터 3747억원을 빌렸다.
1997년 3000억원에 이르는 부도를 내고 회생절차를 통해 20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 받은 세모그룹이 또다시 금융권으로부터 4000억원에 달하는 대출을 받은 것이다.문제는 이들 금융사들이 유 씨 일가 계열사에 수천억원대 대출을 해주면서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회사의 자산건전성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특혜를 제공했었다.
특히 신협 측이 세모 측에 대출해 준 돈 500억원을 우리은행이 대환대출해준 것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당시 행장이었던 이순우 행장과 최 전 경제부총리 그리고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대구고 동문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의혹은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검찰이나 금융당국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지난해 12월 소리 소문 없이 일부 은행에 대해서 가벼운 징계만을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의혹들은 유병언 전 회장이 사체로 발견되면서 사실상 묻혀버렸다.>
8. 미르ㆍK스포츠 재단 관련 최초의 최순실 연루의혹 제기 (2016년 8월)
본국에서 미르 및 K스포츠 재단 모금과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의 개입 의혹을 처음 보도한 것은 종편 TV조선이다. TV조선은 배후에 안종범 수석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차은택 씨와의 연관설도 보도했다. 하지만 진짜 배후는 따로 있었다. 바로 최순실 씨였다.
<선데이저널>은 최순실이 스타트랙 벤을 타고 수시로 청와대를 드나들고 있으며 이런 사실을 청와대 경비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최순실의 실명을 처음 보도하면서 최순실이 박 대통령이 즐겨먹는 시리얼까지 직접 챙길 정도라고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이런 내용은 청와대 내부에서 최 씨에 대한 전횡이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정도라는 내부 관계자들의 제보를 토대로 증언을 입수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8월 최 씨의 이름을 실명 공개했다. 지난 2007년부터 정윤회 – 최순실 부부를 꾸준히 취재해왔기 때문에 이런 의혹들이 사실일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2014년 정윤회 씨가 국정 개입 의혹으로 인해 사실상 손발이 묶였을 때도 본지는 최 씨가 실세라고 지목했었다. 이런 오랜 취재를 바탕으로 본지는 최순실의 이름을 실명보도하기에 이르렀다. 그 파장은 엄청났다. 이후 한겨레 – TV 조선 등이 최순실의 이름을 공개하기 시작했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리고 본국 모든 언론들이 여기에 달라붙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최순실 게이트가 되어 버렸다. 이에 미디어오늘을 비롯한 본국의 미디어 관련 언론들이 본지 취재를 주목했다.
<최근 본국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모금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가 개입되어 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두 단체는 청와대 안종범 정책조정수석비서관 주도로 모금활동을 벌여 불과 몇 개월 만에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모여진 민간단체다. 설립이나 모금과정, 재정 사용내역과 임직원 구성 등 어느 하나 투명한 것이 없어 논란이 되고 있는 곳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재단은 대통령의 해외순방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여하는 등 정권 핵심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선데이저널> 취재 결과 미르 재단과 K스포츠의 모금과 활동이 최 씨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청와대 내부에서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실제로 안 수석이 모금에 개입했고, 본국 굴지의 재벌들이 수십억씩 재단에 쾌척한 것으로 볼 때 핵심실세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들이 재단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본국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그 배후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청와대 내부에서는 최 씨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
9. 최순실, 조카후견인 베트남대사 임명 의혹추적 (2016년 11월)
최순실 씨가 국내 뿐만 아니라 공직사회 전반, 특히 외교가 인사에도 손을 뻗친 사실이 최순실 게이트 중간에 불거졌다. 그 시발점이 된 기사가 바로 본지가 보도한 전대주 전 베트남 대사 임명건이다. 공직경험도 전혀 없는 회사원 출신인 그가 베트남이라는 국가의 대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공직사회에서도 말이 많았다. 그런데 그가 최순실 씨의 조카 장승호 씨의 후견인이었다는 사실이 본지 보도로 밝혀지면서 모든 의문이 풀렸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리틀지니어스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 장승호씨, 장씨는 최순실씨의 언니인 최순득씨와 남편 장석철씨 슬하의 장남이다. 즉 최순실씨의 조카이다. 서울 압구정동 구정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씨는 지난 2008년 사업공부를 한다며 베트남을 찾았고 밴쿠버출신 권*규씨를 따라다니다가 베트남국영투자회사 ‘페트롤비나’에 투자한다는 사기에 휘말려 거액을 날렸다고 정통한 소식통이 밝혔다.
당시 사기사건이 발생하면서 최순득 부부가 베트남으로 달려와서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마지막수습을 했고 가까스로 수습을 마친 뒤 아들 장씨의 후견인을 구했다는 것이다. 당시 최씨부부는 ‘우리 승호가 외아들로 곱게만 자라서 세상물정을 몰라 너무 걱정이 된다’며 한 인사에게 후견인 역할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후견인이 된 사람이 바로 전대주씨라고 이 소식통은 밝혔다.
공직경험이 전혀 없던 전대주씨는 박근혜정권 출범직후인 2013년 6월 갑작스레 제10대 베트남 대사에 임명돼 외교가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인물이다. 전씨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LG케미컬 베트남법인장으로 일하다 불미스런 일로 해고된 뒤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베트남 호치민에 정착, 베트남진출을 원하는 한국기업의 법인설립 등을 돕는 컨설팅업체를 운영했었다.
그러나 컨설팅업체는 성공적으로 운영되지 못했고 전씨는 호치민한인상공인연합회 부회장, 회장, 명예회장, 투자자문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과정에서 2009년께 장씨를 만나 후견인을 맡게 됐다는 것이다. 그 뒤 전씨가 장씨의 호치민의 부유층 거주지역 푸미홍에서 유치원 개설 등을 도우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이를 계기로 순득씨와 순실씨의 입김으로 박근혜정부 출범과 동시에 베트남대사로 내정돼 3개월 정도 교육을 받고 2013년 6월 대사에 공식 임명됐다고 전했다.
외교부 고위관리를 역임, 외교부 사정에 정통한 또 다른 인사도 당시 유능한 민간인을 외교무대에 활용하자는 명목으로 공직경험이 없는 민간인이 외교관으로 추천됐고 그중 한명이 전씨였으며 이 같은 분위기속에 세계일보 전사장 S씨도 바로 그때 이탈리아대사 물망에 올랐었다고 증언했다. 이 관리는 ‘그러나 당시 추천된 인사 대부분이 대사가 될 만한 자질에 턱없이 모자랐지만 전씨는 베트남 대사에 임명돼 외교부내에서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 같은 증언을 종합하면 최순실씨는 자신의 조카가 베트남에서 사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외교부 인사까지 마음대로 주무른 셈이다.>
10. 롯데호텔에서 의문의 7시간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해 국민들이 가장 많은 의혹을 갖고 있는 것은 세월호 참사 당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박 전 대통령 7시간의 행적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날의 행적과 관련해 끝끝내 자세한 행적을 밝히지 않았고, 특검도 오전의 행적은 밝히지 못 했다. 하지만 특검이나 검찰이 의혹의 7시간을 밝히지 못 했다기 보다는 밝히지 않았다고 하는 것 더 정확한 표현이다.
본지는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알고 있는 인사로부터 제보를 받아 이 날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바로 ‘롯데호텔 36층의 비밀’이 그것이다. 이 보도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SNS 상에서 큰 화제를 몰고 왔다. 특검이나 검찰은 본지가 제기한 의혹들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선데이저널>을 통해 최순실 관련 기사들을 접하고 제보하게 됐다는 내용의 제보자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내용을 털어놨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8시30분 경 롯데호텔 36층에서 김영재 씨가 직접 시술했다. 박 대통령은 처음 시술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는 전화를 받고 시술을 하지 않으려다가 다시 연락이 와 모두 사태가 무마됐다는 보고를 받은 뒤에 마음을 바꿔 시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술시간은 약 40분에서 1시간가량 걸렸고, 직후 1.4km 떨어진 청와대로 돌아가서 관저에서 쉬다가 시술에 불편함을 느껴 문제의 ‘가글’을 가져오라고 한 것이다. 여러 번 ‘가글’을 한 이후에도 시술 후유증 때문에 12시 점심식사도 차려만 놓고 못하다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급히 두 번에 걸쳐 머리손질을 한 후 중앙대책본부를 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롯데호텔은 이날 박 대통령이 방문한 CCTV를 확보하고 있고, 이를 무기로 롯데수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현장에는 정윤회가 최소한의 수행원만 대동한 채 극비리에 롯데호텔로 이동했다. 당일 현장에는 정윤회도 있었다”
본지는 제보 내용에 따라 즉시 특파원을 급파해 롯데호텔 측을 취재해봤는데, 실제로 소공동 롯데호텔 36층에 몇몇 스위트룸이 존재했다. 이 스위트룸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VVIP인사들이 이용했던 곳이고, 일반인들은 접근이 불가했다. 36층에 박 대통령이 머물렀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제보자가 제보한 시간들도 현재까지 드러나지 않은 시간과 일치했다.>
물론 두 번의 머리손질이나 비선의료 등은 특검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대통령이 있던 장소나 함께 있던 인물들에 대해서는 특검이 결과적으로 이를 뒤집을 만한 조사 결과를 내놓지 못 했다.
SundayJournalUSA 리차드 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