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사실 구상은 굉장히 오래되었는데 딴짓이랄까 뭔가 진득하니 생각할 시간이 여의치 않아 작성이 많이 밀렸었네요.(뭐 몇 분이나 정독해주실까 싶지만서도)
예전에 메탈리카 내한 공연을 본적 있습니다. 아, 엄청났어요. 그중 백미는 마스터 오브 퍼펫이라는 곡의 후반부 기타 리프 부분인데 그걸 떼창으로 따라하는 사람들이 퍽 인상적이었지요. 이후로도 많은 스타들이 내한 공연을 했고 '떼창'은 한국에서의 공연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저도 좋아합니다. 한 번은 락 페스티벌 때, 펜스 앞 쪽에서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가수가 마이크를 내밀어 주더군요. 굉장히 좋아하셨고 자기 공연 티셔츠를 벗어 주셨습니다. 살찌기 전까지 열심히 입고 다녔지요.
떼창이란걸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고 또 가수의 스타일이나 공연 형식에 따라서는 예의가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내한 공연 온 가수들은 굉장히 좋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럴수밖에, 떼창은 노래의 본질에 가장 적합한 화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좋은 노래란, 사람을 결코 가만히 멈춰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감정이건 몸이건 무언가를 움직이게 만들지요. 떼창은 좋은 노래로 인해 가만히 있지 못하게 된 사람들의 굉장히 적극적인 반응입니다. 자신들의 노래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니, 부른 가수로서도 보람있고 즐겁겠지요. 괜히 에미넴이 전설의 하트 시그널(일각에선 머리를 쪼개주겠어라는 의미였다고도 하지만)을 취한게 아닙니다.
좀 더 명료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노래는 어떤 형태의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감정의 고양이 되었건, 슬픈 동조가 되었건 간에 말이죠.
여기 한 무명가수가 있습니다. 말하고 '싸움 따윈 시시하니 노래나 들어라'라고 하는 모양새가 어쩐지 베트남 전쟁 무렵, 우드록 페스티벌에서의 지미 핸드릭스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쪽이랑 네임벨류는 상대가 안되지요. 오늘도 밴드 멤버들과 함께 공연을 하지만 공연을 즐기는 사람은 눈대중으로 셀 수 있을 정도. 그 중에 몇몇은 공연 자체에 딱히 큰 관심을 보이지도 않아 합니다. 그 가수는 전투 현장에도 발키리를 몰고 나타납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노래를 불러댑니다. 명명백백한 전투방해 행위. 군 관계자들은 짜증이 납니다. 쟨 뭘까요? 보던 시청자들도 짜증이 납니다. 더러운 남캐 면상 치우고 예쁜 밀레느나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민메이가 그립습니다. 아니 마크로스 후속작이라서 기대했더니 이 짜증나는 광경은 대체 뭘까요. 심지어 이건 49화나 된답니다. 도저히 끝까지 못볼 지경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노래는 정말 좋습니다. 그냥 노래 잘하는 성우 불러다가 더빙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제대로 된 가수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에라 음악도 들을 겸 좀더 볼까. 볼까. 볼까. 우오오오오 내 노래를 들어!!!!
이 작품을 본 다수의 사람들은 작중 인물인 감린과 시점을 공유하게 됩니다. 짜증이 나는 도입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바사라의 행동들. 그러면서도 그의 한결 같음에 어느샌가 매력을 느끼게 되지요. 그러다가 바사라가 끝까지 노래하는 것을 바라게 됩니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르면 바사라는 인물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그즈음 느껴지게 되지요. 아, 이런걸 말하고 싶었구나.
마크로스 세계관 내 독보적 위치를 자랑하는 가수이자,(대사로는 민메이와 함께 최고의 가수로 언급되는데 정작 후속작들 보면 민메이 노래보단 바사라 노래들이 더 많이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조종 실력은 맥스, 이사무를 소환해야 하는 수준. 심지어 그걸 기타콘으로 조종하며 노래도 부르는 실력. 상대했던 적은 마크로스 시리즈 사상 최강의 적 집단. 사건 배경은 우주 멸망급. 마크로스 전체에서 이만한 푸쉬를 받은 캐릭터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메리수일까요. 슈퍼로봇대전 쪽으로 오면 이야기는 한층 더 심각해집니다. 우주가 탄생을 기다리다 못해 시간을 빠르게 돌린 사나이, 공인 치트키, 아포칼립스의 카운터, 그리고 엔딩까지 오면 실질적으로 은하를 구한 남자 등등. 그외에도 샤론 애플과 그레이스 오코너에게 안식을 주는 등등. 심지어 바사라는 BGM 재생 우선순위 최상위에 있어서 샤론 애플이나 란카리의 노래만 줄창 나와서 플레이어들의 머리가 아찔해질 때 바사라의 노래는 거의 구원급입니다. 아무래도 슈로대 스텝들도 굉장히 좋아하는 캐릭터 같습니다.
린 민메이가 '문화'를 상징하는 캐릭터라면, 바사라는 뭐랄까 마크로스 7 전체가 바사라에게 초점이 맞춰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도 한결 같으며, 굴하지 않고,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관철해가는 모습 등. 보다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죠. 심지어 편견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리스너들이라고 정해져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마크로스 극장판이 엄청난 히트를 했고 민메이라는 캐릭터가 세기의 아이돌 캐릭터가 된 것까진 좋은데, 작중 묘사상의 한계랄까요, 민메이 어택을 보면 이게 일종의 음파 공격처럼 보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재밌는건, 마크로스7에 와서는 정말로 바사라의 노래를 '이용'하려는 주변부 인물들이 있습니다. 치료제로 쓰이고, 음파병기화 해서 프로토 데빌룬과 싸우게 되고 등등. 밀레느는 작중에서 현실성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노래를 치료제로 쓰고 음파병기로 씁니다. 관객은 적과 아군이 분명하며 바사라에 비하면 굉장히 상식적인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바사라는 이런것들에 거부감이 있지요. 바사라가 원하는 것은 이런게 아니라 세상 모두와 싱어와 리스너로 만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 '나의 노래를 들어!'라는 대사는 '노래'라는 것의 첫번째 본질에 맞닿아 있는 대사입니다. 네, 노래는 듣는겁니다. 노래를 병기로 쓰고, 치료제로 쓰고, 혹은 돈벌이로 쓸 수 있지만 노래는 결국 듣는 겁니다. 어쩌면 이 대사는 민메이 어택 이후 어느샌가 마크로스 세계관 내에서 병기화 되어버린 노래라는 것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우는 대사일 수도 있습니다.
무명가수로 시작한 바사라는 결국 은하를 진동시킵니다. 어린 시절 꿈인 산에, 은하에 바사라의 노래가 울리고 프로토 데빌룬은 자신들이 스피리치아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프로토 데빌룬의 주요 인물들 중 4명은 노래의 두 번째 본질을 발견한 것입니다. 노래는, 예, 부르는 것입니다. 노래의 본질은 결국 이거에요. 듣고, 부르는 것. 즉, 프로토데빌룬은 마크로스 세계관 내 사람들이 어느샌가 잊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노래의 본질에 닿았고 앞서 제가 말한, 가수의 노래를 통해 어떤 형태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을 강렬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라이벌이 노래하게 하고, 사람들이 노래하게 하고, 적들이 노래하게 하고. 모두가 노래하게 합니다. 민메이가 문화라는 것을 상징한다면 바사라는 '노래'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봐야겠지요.
OVA에서 Angel Voice를 부르는 장면과 바사라와 민메이가 듀엣으로 부르는 Angel Voice
이 부분 부터는 뭐랄까 일종의 첨언 같은 부분이지만, 바사라라는 캐릭터에 대해 몇 마디 더 적어보고자 합니다. TV판 내내 한결 같은 고집쟁이 였던 바사라는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룹니다. 하지만 OVA에 와서 돌연 팀을 떠나버립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해보자면 바사라의 꿈은 이뤄진게 아니라 진행형이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바사라도 주변 소리를 끄고 산게 아니고 주변 평가에 계속 신경 쓰고 고민도 하고, 자기가 가는 길이 정말 맞나 하는 고민이 끊임없이 있었다는 것이 OVA 말미 저 엔젤 보이스라는 노래 가사 -'믿고 있던 것이 있어, 바보라고 불렸지만 변치 않았던 그날의 꿈'-에 담겨있습니다. 아, 물론 가수가 꼭 자기 자전적 이야기를 노래로 만드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곡에는 어느정도 그런게 담겨있는 것 같더군요.
결국 이 노래로 은하 고래에 지성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아니 뭐 그런건 바사라는 관심도 없겠지요. 은하 고래가 노래하게 만듭니다. OVA에서 이 장면 보면서 소름이 쫙 돋았던 기억이 나네요.
노래라는 것은 변함이 없어요. 그 노래를 대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지언정, 노래 그 자체는 노래로서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노래라는 것이 완성되기까지 인고와 고뇌가 따르지만 완성된 노래는 그 자체로 노래지요. 바사라가 노래 그 자체를 상징한다는 것은 바사라가 TV판에서 OVA까지 보여준 행적을 보면 어느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오늘도, 노래가 이렇게 말합니다. "들어줘"
여전히 바사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노래를 들어"
첫댓글 정독 잘 읽었습니다. 노래가 좋아서 완주했던 마크로스7 이었네요. 적들이 노래로 변한다는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자기 갈 길을 꾸준히 간다는것은 사실은 외롭고 무서운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바사라는 대단한 저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되짚어 봅니다. 제게도 들려줄 노래가 있고 연주할 노래가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기쁨과 영향력으로 남기를 셀프 격려하게 되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슈로대 소식 다음주면 나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