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업무와 워크숍차 서부경남을 다녀왔다. 먼저 간 곳은 진주 혁신도시에 있는 LH토지공사였다. 시설물 견학과 교육기관 이전에 따른 벤치마킹차 들렸다.
LH공사는 고운 학이 웅비하는 자태를 건물에 담았다. 그 안에 시민에게 개방하는 박물관과 도서관이 있었다. 건물은 10층이었으나 층고가 높아 거의 이십미터 되는 아파트조차도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듯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홍보담당의 설명은 진솔하면서도 담백했다. 우리의 주목적이 벤치마킹이라고 하자 건물 형태의 불합리와 부실하게 시공된 LH의 민낯을 고스란히 노출시켰을 때 '아, 직원은 국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직원이구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장시간 회의와 토론, 견학한 후에 LH공사를 빠져나왔다. 사위는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직원들은 '저희들을 너무 혹사시키는 아니예요?' 하고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이면에는 여행이라는 기대반과 설레임이 스며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삼천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깃들었다. 노블리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노산공원으로 향했다. 갯바위에 홀로 앉아있는 삼천포아가씨 동상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별빛같은 사연을 모아 멀거니 바다를 보고 있었다.
어시장 횟집으로 갔다. 10 년 째 단골인 환성횟집이었다. 건물은 허름해도 삼천포에서 가장 싸고 가장 매운탕이 맛있는 횟집이다. 주인은 구성진 사투리를 입가에 바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회를 시켜 먹고 오도리를 먹을 수 있냐고 했다. 오도리는 삼천포에서만 잡히는데 등짝에 호피무늬가 그려진 자연산 대하다. 주인은 한마리에 5천원씩이나해서 안 갔다 놨다고 했다. 비싸도 좋으니까 세 마리만 사다줄 수 있냐고 하자 '사러 가도 내는 비싸면 안 사올끼다' 하는 말에서는 시골 특유의 정겨움이 묻어났다. 결국 오도리는 먹지 못했다.
아침은 엄지 손가락 크기의 졸복을 먹었다. 국물맛이 일품이었다. 어시장에서 만원 주고 산 학꽁치회도 먹었다. 학꽁치는 예전에 신들린 듯이 먹었던 단물맛을 아직도 고스란히 움켜쥐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먼저 들린 곳은 풍차공원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오르자 오른편으로는 삼천포대교가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바다 수면에는 고기 비늘같은 햇빛 조각이 퍼덕거렸다. 어려서 바다에서 자란 나는 아직도 바다 앞에서는 무장해제되고마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바다와 관련된 시를 떠올려 보았다. 바라보는 시인의 바다는 달랐다. 김춘수의 바다는 죽음이었고 서정주는 희망, 유치환은 생명, 이생진은 그리움의 바다였다. 시인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바다는 시작의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배경이 되었기에 똑같은 바다를 보고서도 견해를 달리했을 것이다.
돌연 내게 바다는 어떻게 그려질까를 떠올려 보았다. 내게 있어서 바다는 상처이면서 치유의 대상이었고 그리움이면서 희망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휑한 부둣가 난간에서 바다 나간 아버지 소식을 기다리다 입 벌어진 비닐처럼 바람에 날렸다 / 그 밤 하염없이 내리던 폭우는 파도의 흰 뼈를 밤새도록 들쑤셨고 비 들이치는 창가에 제대로 된 꿈 하나 걸리지 않은 채 희망은 끝끝내 빗소리에 섞이고 있었다 / 가끔씩 스치는 질문들 / 진실은 서걱거리는 밤의 관절에서도 집을 짓는가 /방파제 난장에는 삐걱거리는 어둠의 그림자만이 하염없이 지워지고 / 그러한 바다 위 별빛 뿌리들만은 더욱 세차게 뻗어나는 실핏줄로 궁평리 꿈의 언저리 물 어린 그리움을 바다에 가득 쏟아놓고 있었다 <궁평리에서의 일부분>
남일대해수욕장을 들렸다. 즐비한 해안가 가게에서 커피를 한잔 탔다. 간이 의자에 걸터앉아 멀거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백사장은 한장의 하얀 손바닥이었고 바다는 젖어있는 푸른 손수건이었다. 그 손수건에 그려진 갈매기 소리가 먼저 날라와 커피를 마셨다.
두번째는 찾아간 곳은 와룡산 자락의 백천사였다. 백천사는 용정수와 우보살로 유명하다. 용정수는 진심을 담아 소원을 빌어 문지르면 물꽃이 핀다는 대야같은 동이고, 우보살은 소가 혀를 이용하여 목탁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점심은 선진리성 신한일식당에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먹었다. 사천식 김치찌개는 이색적이다. 김치찌개 위에 삼겹살 고기가 꽃처럼 동그랗게 원형으로 올라온다. 한점씩 상추에 싸서 된장과 땡초에 먹으면 그 맛은 정말 일품이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항공우주박물관이었다. 안타깝게도 김일성이 몰았던 승용차는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관리자한테 사유를 물었더니 정부의 강압에 의해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김일성의 승용차는 6.25때 인천상륙 작전 성공으로 압록강까지 국군이 진격하자 김일성은 퇴각하면서 압록강변에 승용차를 버리고 도하했다. 이승만은 이 승용차를 6.25에서 전사한 미국 장군의 미망인에게 선물해 주었는데 후에 재향군인회였나 -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 하는 어느 단체에서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고 고물상에서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여정은 즐거웠다. 이제 한동안 바다를 보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난 또 머지않아 갈매기가 몇소절로 날아오르는 그렁그렁한 바다를 못내 그리워하고 말 것이다.
첫댓글 가만히 앉아서 삼천포 여행을 했네요.
맛난 식당 주인도 정겨운 인심도 그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