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헛제사밥
첫째는 ‘해를 차고 다니는 사람’처럼 살았으면 해서 ‘해찬'이라 지었다. 둘째는 ’슬기롭고 아름답게‘ 살라고 ’슬아‘라 지었다. 그런데 이 첫째가 아무래도 나를 탁한 듯싶다. 하는 짓들이 그렇다. ’탁했다는 것‘ 혹은 ’나를 탁해온다는 것‘ 참 두려운 말이다. 아들이 하는 짓들을 보며 어느 날의 나의 모습이 자꾸 연상될 때마다 내가 이루어놓은 보잘것 없는 한계에 아이을 가두어두는 것 같아 심히 언짢아질 때가 많다
나를 닮은 해찬이의 버릇 중의 하나가 낯선 곳에 가면 요기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녀석이 ‘영역표시’를 해놓은 곳이 꽤나 된다. 제주 만장굴을 중간쯤 갔을까, 그 요기는 어김없이 발동하여 부득불 구석진 곳에 영역표시를 했다. 경주도 몇 군데, 부여, 공주....집사람과 나는 나중에 다시 찾아와 너의 흔적을 찾아보라고 웃곤 한다.
문화는 어쩌면 이렇게 체질화된 그 무엇이다. 일제시대에 일제는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중국말 잘하는 사람들을 뽑아 중국에 간자로 파견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룻만에 모조리 잡히고 말았다. 외양과 말은 비슷하였지만 체질화된 문화적인 버릇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엉덩이를 하늘로 향하고 고개를 처박고 두 손으로 물을 가득 떠서 얼굴에 던지듯 세수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입으로 물을 푸푸 불고 귓밑머리까지 적셔가며 목까지 뽀득뽀득 문질러대는 이 습성이 하루 아침에 바뀌었을 리 없었으니 또한 중국인들은 그렇게 세수를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나는 조선 사람이요, 라고 광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리라
우리 아들의 요기가 ‘문화’는 아니지만 그렇게 체질화되어 있는 것이 문화여서 인간은 이 보이지 않은 울타리 속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어서, 문화를 바라보면 그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문화 중의 으뜸은 역시 의식주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가면 반드시 그 지방 고유의 음식을 먹어보려 애쓴다. 오늘날 딱히 고유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전국이 단일 문화권으로 묶여버렸지만 아직도 신기하고 낯선 문화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안동에 가니 우선 눈에 띄는 것들이 간고등어, 헛제사밥, 소주 등의 간판이다. 우리는 이미 출발 전에 헛제사밥을 먹어보기로 결정을 했다. 월영교 앞, 헛제사밥을 상품화한 최초의 두 집 중의 한 집으로 갔다. 고춧가루나 마늘, 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나물과 간고등어 한 토막, 전, 적, 안동식혜 등이 나왔다. 먼저 조금씩 맛을 보았다. 심심하다. 경주에 가서 경주으이 양반들이 먹었다는 밥집을 굳이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 심심함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라도의 짜고 맵고 최대한 양념으로 버무려낸 맛과는 전혀 다른, 날 것 그대로의 맛이랄까, 무엇이 좋고 옳고를 떠나 그 이질적인 맛을 잠시 감상했다. 우리 두 아이들은 너무 맛있다고 감탄을 하며 먹었다. 그동안 두 아이의 음식에 조미료를 하지 않고 탄산 음료 먹이지 않고 고자를 먹이지 않은 보람이고 집사람은 웃었고 나는 이놈들이 양반체질이라고 웃었다. 그러나 집사람과는 맹숭맹숭하여 결국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었다.
헛제사밥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인 듯 싶다. 내가 듣기로도 양반들이 아랫사람들 눈치를 보아서 가짜 제사를 지내고 맛난 음식을 해먹었다는 것과 흉년이 크게 들었는데 광에는 제사에 쓸 음식밖에 없어서 그걸 구휼하며 생겼다는 것과 서원에서 발생했다는 것들이 있다.이 중에서 널리 알려지기로는 첫째 설인데 그래서 양반들의 그 명분 앞에 치를 떠는 글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 반민중적 기원에 대하여 은근히 분기마저 품고 있는 것이 잰 체하는 식자풍의 그럴듯한 현학인 것도 같아 고소를 금치 못했다
나는 오늘 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그 기원과 역사를 들먹이며 가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벚꽃을 보러가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둥, 벚꽃의 피고 짐이 일본인들의 속성을 닮았다는 둥, 끝끝내 벚꽃의 아름다움에는 한 치의 눈길도 주지 않고 사회, 역사적인 의미를 들먹여대는 그 먹물적 근성을 싫어한다. 어떤 음식의 기원이 반민중적이어서 싫다는 둥(헛제사밥), 슬픈 역사 속에서 나와서(부대찌개) 먹을 때마다 안타깝다는 둥, 꼭 한 소리씩 해대는 그 같잖지도 않은 해박함을 싫어한다.
전주에 전주식 비빔밥이 있고 진주에 진주식 비빔밥이 있듯이 안동에 안동식 비빔밥인 헛제사밥을 만들어낸 안동 사람들에게 나는 찬사를 보낸다. 그것이 설령 관광지의 상품화 때문에 대중화 때문에 안동 고유의 어떤 특성들을 많이 잃어다 하더라도 나같이 타지 사람에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문화임에는 틀림없으므로, 열에 열이 아닌 두엇뿐인 안동식이라 해도 그 두엇의 안동적 특징을 한 끼 밥에 담아준 것에 감사하고 찬사를 보낸다.
관광지에서 6천원 내고 한 끼를 맛나게 넘길 수 있는 것, 거기에 약간의 옛 이야기와 안동의 맛을 보았다는 덤까지 더한다면 이보다 훌륭한 음식이 어디 있으랴. 제주의 어느 포구에 가서 먹었던 물회에 감동한 적이 있다. 어찌 그 이질적인 맛을 타향인인 내가 즉석에서 감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랴. 가장은 아니다 하더라도 제주적인 것들로 6,7천원에 한 끼의 밥으로 만들어낸 그것, 바로 그것이다. 내가 안동의 헛제사밥을 먹으며 느꼈던 것은.
내가 살고 있는 광주의 첨담에서 제법 가까운 곳에 위치한 영산포에 가면 홍어의 거리가 있다. 이 홍어회를 홍어애국을 처음 먹어본 사람이 어찌 감동적으로 먹을 수 있겠는가, 순전히 전라도에서 나서 자란 나도, 집사람도 즐겨하지 않은 이 홍어에 대하여, 전라도 사람이라면, 전라도를 이해하려면...등등의 수식을 붙여 홍어를 먹고 못 먹고를 전라도인의 구분 표식으로 삼고 전라도에 대한 이해의 척도로 삼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식의 소치이거나 문화를 빙자한 야만이 아니겠는가
하여 붉은 색이 감도는 안동 식혜를 우리 식구들이 마저 다 마시지 못한 것 또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맛도 있구나, 우리는 여행하듯이 돌려가면서 조금씩 맛을 보았고 오만상을 찌푸리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헛제사밥에는 고추장을 넣지 않고 간장을 넣어 비벼먹어야 제대로라는데 집사람과 나는 고추장을 비벼 맛나게 먹었다. 혹자는 그것은 제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고 뒤퉁박을 놓을지 모르겠지만, 절대적인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이면 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금밭을 만들 수 없는 동해안에서는 생선에 곡식가루를 넣어 발효시킨 식해가, 소금이 귀한 내륙에서는 장에 담근 게장이, 서남해안에서는 젓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고 남해안 벽촌에서 나고 자란 나는 젓갈이 입에 맞을 수밖에 없다. 젓갈이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는 맛나게 먹을 수 있고 밥에 비벼 먹을 수 있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오늘날 나라는 인간을 규정짓고 있다. 다만 나는 나만의, 전라도식만의 그것을 절대시 여기지 않을 뿐이다. 사실은 그런 자세가 중요한 것이라 본다. 젓갈이 전라도의 지리적, 기후적, 사회적 풍토 속에서 발달한 것이듯 어떤 환경 속에서는 어떤 것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오늘날 우리는 그것들을 향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오늘날의 혹은 나만의 혹은 어떤 사상적 정치적인 입장에서 그런 것들을 가름하고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혹은 높이 하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지양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 부대찌개를 반민족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는가, 부대찌개에서 반미를 운운한다면 그자야말로 참으로 편협된 교조적 사고의 소유자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치열한 척 그렇게 민족적인 것처럼 과장된 언사는 차라리 그 옛날의 양반들의 그것과 닮았다면 나의 억측일까....
사실 그런 것이 헛제사밥이 양반들의 명분에서 나왔다는 약간은 부정적인 연유보다 몇 배는 더 부정적이고 악의없이 악의적인 것이다. 정말로 민중적이라면 민족적이라면 헛제사밥의 쌀 한 톨을 바라보며 농민들이여, 감사합니다. 간고등어 한 토막을 바라보며 어민들이여, 감사합니다. 염불이나 외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굳이 헛제사밥을 찾아 먼 길을 가서 먹을 만큼 나에게는 훌륭한 것이 아니었지만,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미 헛제삽밥은 하나의 문화로 훌륭히 자리를 잡았고 나는 그렇게 우리에게 자리잡아준 헛제삽밥이 고마울 뿐이다.
그 유래에 대해선 그냥 반찬 정도로 여기면 될 것이고....유래를 끄집어들여 밥을 떠나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 운운하는 것은 어쩌면 양반들이 내세운 허울뿐인 명분보다 우리를 더 피곤하게 할 뿐이다. 그런 것에 기대어 박식한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낫다.
안동을 여행할 일이 생기면 한 끼밥으로 훌륭한 헛제사밥을 권한다. 그런 것을 만들어낸 안동 사람들에게 안동의 문화에 박수를 보내며...나의 이 글이 잰 체함에 대한 또다른 잰 체함이길 경계하며...
첫댓글 그렇지요 이음식은 꼭 이양념이 필요하고 저음식은 저렇게 꼭만들라는 법이 있겠습까 다 그 지방 사람들의 식성에 맞게 만들다보면 어느듯 타지방사람들에게도 새로운 맛을 느끼게하고 그래서 그들의 음식문화를 내입맛의 별미로 받아들이는 그래서 우리는 각기 다른 지방에서 생활하고 살았어도 모두다 우리것으로 좋게 맛있게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맛과 멋을 지닌 한 형제들이니까요, 김재준님의 맛있는 글 맛있게 읽고갑니다
우리 김치를 일본이 기무치로 만들어 먹는 것에 대하여 저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들의 라멘을 우리가 라면으로 만들어 먹듯이...우리것이 그들에게 가면 그들화 되는 것이고 그들것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화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절대로 고유하다고 주장하며 벽을 쌓고 터울을 만드는 행위야말로 반문화적인 것인지요...그래서 고추장이 들어가는 헛제사밥 저는 찬성입니다. 물론 간장을 넣은 헛제사밥을 없앨 것까지는 없지만...마아가린을 넣은 헛제사밥도 나와서 외국 친구들도 맛나게 먹었으면...50여가지 정도의 헛제사밥으로 발전했으면...합니다. 감사합니다. ^^
김재준 시인님께서 저희 까페에 글 올려주시고 넘 좋습니다. 그렇지안허도 봄 되면서 다들 잘 안들어오셔서 적적혔는디 감사드립니다. 이시인회의를 사랑하는 일원으로서 ㅎㅎㅎ
'해찬'이와 '슬아' 손주 이름 짓는데 참고해야겠습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저도 헛제삿밥 고추장에 비벼먹었지요.^^ 요즘과는 달리 돈자랑도 염치 봐가면 하던 시절이었지요. 양반들의 본거지답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하나가 헛제삿밥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요. 가진자의 나름대로의 예의, 제삿밥을 이웃에 나누어먹던 시절이였잖아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안동 하회마을, 저도 몇해전에 다녀오긴 했는데 전체적으로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보단 왠지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좀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행을 알차게 하셨네요 잘읽었습니다. 본문에서 광주의 첨단지구를 얘기하시는거 맞나요? (첨담 =오타?)
이곳 식구들이 3년 전에 안동으로 문학기행을 갔었지요. 도산서원 병산서원에도 들르고 월영교도 건너고요. 저도 그때 헛제삿밥 맛나게 묵고 왔어요. 안동식혜... 저는 맛있던디.^^ 경기북부가 고향인 저는 지금은 젓갈 같은 거 비린거 다 잘 먹는디, 그래도 김장김치는 새우젓만 조금 넣고 무채에 시원하게 버무린 울 어무이 김치가 제일 맛있다요. 새그무르하게 익은, 담백하고 깊은 맛........ 배추 반포기를 한끼에 다 먹을 정도. 긍께, 배고플 때 많이 먹던 음식에 자기 입맛엔 제일 맛나다는.........
그러셨군요. 고추장에 비벼먹어도 좋은~ 안동에가면 꼭 헛제사밥에 안동의 문화를 양반들의 명분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아야겠어요.재미나게 안동을 함께 다녀 온 느낌입니다.^^
제 고향 안동을 이리도 고두밥처럼 넓게 널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