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 流民
유용주
그의 직업은 소방수다
사춘기 때 철공소 시다로 들어가 택시운전사를 거쳐
읍사무소 소방서에 운전직으로 취직을 했다
박봉으로 사남매 모두 대학에 보냈다
부인은 평범한 가정주부다
반면교사이자 닮고 싶은 사나이
그는 자수성가했다
무궁화 두 개로 은퇴한 다음, 돈 얘기를 꺼내 길래 주택연금을 추천했다
늙어, 벌초와 제사 문제로 고민하자 파묘를 권했다
(그는 장남이다)
하나도 내 뜻대로 된 적이 없다
두 가지 다 자기 생각이 있고 내 마음을 떠본 거다
인터넷으로 모든 신문을 보는 사람,
대천에서 구급대장을 할 적에는
시장 2층 슬라브가 무너져 정강이뼈가 박살났다
육 개월 넘게 병원신세를 졌다
수술을 세 번 받았다 정형외과 여의사가 무릎 구멍을 뚫으면서
농담을 했다 그는 너무 아파 헛소리를 질렀다
프로같이 색소폰을 싣고 다닌다
음악에도 소질이 있어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
독공부로 기타, 아코디언, 피아노, 못하는 연주가 없을 정도다
젊었을 적에는 연주자가 꿈이었는데, 잡기는 풍각쟁이나 하는 짓이라며
부친이 기타를 여러 대 부신 적도 있다
술은 못하고 담배가 낙이다
실버 그룹 황산벌에도 수준 낮다고 안 나가고
(공설운동장에 연습실이 있다)
혼자 연주가 한창이다 한 30년 지나
사위도 자식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 장인은 암 투병중이다
세월은 무정하게 흘러 덩어리는 깊어져도
현역 때, 열두 번 검토하고 도장 찍어준
그 고집 그대로다
똥
소주가 달면 인생이 쓰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영혼이 새 나간다고?
의사가 시인이었구나
항문 수술하는 병원장이 설명을 하는데
영원히 방구가 새어나갈 수도 있다는 걸 잘못 들었다
하긴, 의사이면서 시를 쓰는 분이 여럿 있다
병원과 시의 공통점은
고통을 참아야 거듭 태어난다는 것
수술 후엔 뜨거운 물로 좌욕도 열심히 하란다
뜨거운 물에 정신 차려봐야 차가운 것에 고마움을 안다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봐야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다
힘을 줄 때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피를 많이 흘렸다
쓴맛을 봐야 좋은 똥이 나온다
소주가 쓰면 인생이 달다
― 유용주 시집, 『내가 가장 젊었을 때』 (시와반시/2021)
유용주
1959년 출생. 1979년 정동 제일교회 배움의 집에서 공부했다. 1991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시를, 2000년 <실천문학> 가을호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했다. 시집으로 <가장 가벼운 짐> <크나 큰 침묵> <은근살짝>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 겨> <어머이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 산문집으로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쏘주 한잔 합시다> <아름다운 얼굴들>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장편소설로 <마린을 찾아서>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보고> 등이 있으며 1997년 제15회 신동엽창작기금, 2018년 거창평화인권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