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1. 해날.
[진도에 가면]
2022년 진도 겨울 자연속학교 첫 날~ 왁자지껄 떠들석한 어린이들 소리가 조용한 시골 마을을 깨운다. 10년째 만나는 진도에는 우리 어린이들을 반겨주고 품어주는 따듯한 어르신들이 있다. 코로나로 마을회관에 음식도 갖다드릴 수 없고, 하옥심할머니도 안 계시지만 겨울에는 진도가 고향 같다. 일주일을 함께 살아야 하는 곳, 진도 푸르미체험관은 우리 어린이들이 참 좋아하는 곳이다. 자연속학교 잠집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다. 자 진도 자연과 아이들 품에 푹 빠져 살자.
2022. 12. 12. 달날.
[라삐엔뜨 비요꼬 뿌요뿌요]
진도 겨울 자연속학교 이틀째 오전, 첨찰산에 올라 명상하고 시를 썼다. 운림산방과 쌍계사 쪽에서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 길을 따라 2.8킬로미터다. 넓적바위에서 꼭대기까지 700미터는 늘 힘들다. 많이 쉬었지만 2시간 30분 걸렸다. 땀 많이 흘렸다. 앞장서 걷다가 우리 1학년들에게 힘을 줄 주문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온 주문 “라삐엔뜨 비요꼬 뿌요뿌요”는 첨찰산 산신령 손자손녀 도령들의 주문인데 오르다 힘들 때마다 주문을 외웠다. 점심이 꿀맛이었다.
낮 공부 시간에 모둠마다 진도에 대해 공부해온 걸 발표하며 함께 배웠다. 날마다 발표하고 현장에 가서 공부하는 즐거움이 줄곧 된다.
밤탐험 하는 날인데 비가 잠깐 온다고 해서 내일로 미루었다. 갑자기 진도에 가면 늘 만나는 전복양식장 사장님에게 다녀왔다. 장형근님 전화로 간 것인데 내일부터 바람이 많이 불어 물고기 그물을 걷으러 갈 수가 없어 오늘 나갔는데 제법 들어왔다는 소식이다. 덕분에 진도 참전복과 자연산 회 맛을 실컷 맛봤다. 전복과 회가 너무 많아 숙성시켰다. 9년째 아이들 입을 호강시키는 장형근님 덕분이다. 교사들과 부모자원교사들이 칼을 잡고 한참을 손질다. 날마다 전복을 먹고 자연산 회를 먹는 자연속학교다.
[하진이가 씩 웃었다]
나: 축구공이 없어
하진: 저기 있는데
나: 어디?
하진: 저기 말이야.
손을 가르키는 걸 보니 동그란 달이 있었다.
나: 어 축구공이 왜 저기에 있지?
하진이가 씩 웃었다
2022. 12. 13. 불날.[조가비와 대파그리기, 맛있는 밤탐험]
진도 겨울 자연속학교 사흘째 아침 공부는 진도 해양생태박물관과 신비의 바닷길 바다에서 조가비 줍기다. 날마다 발표하고 현장에서 공부하는 셈이다. 바닷가에서 저마다 주운 조가비는 도감으로 만들 채비를 했다. 박물관 공부와 현장에서 진행하는 공부는 선생들이 열정을 담아 신이 나서 이끌어야 분위기를 잡아낼 수 있다. 박물관에 가면 문제를 내고 발표하도록, 바닷가에 다면 생태도감을 만들도록 끊임없이 격려하고 이끌어야 단순한 방문 추억이 아니라 체험과 교육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낮 공부로 진도 대파를 그렸다. 어린이 화가들의 집중력이 대단하다. 자연속학교에 오면 그 지방 특산물을 그리지만, 바다살림이나 산살림이면 바다나 산에서 난 것들을 그리기도 한다.
드디어 어린이들이 기다리던 바다낚시를 갔다. 첫 시작은 1학년과 갔다. 그런데 바림이 세차다. 바람이 불어 금세 밑 걸리니 오래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잔챙이 한 마리 낚으니 어린이 낚시꾼들이 신이 났다. 바늘 두 번 갈았지만 끝내 밑 걸림으로 철수다.
쉬는 때 보니 어린이들은 틈 날 때마다 가져간 양말목 직조로 손을 놀리고 있다. 작품에 대한 스스로 만족도가 높다.
저녁에는 밤탐험 채비로 바쁘다. 내가 밤 탐험과 낚시 담당이라 미리 챙길게 많다. 잠깐 비는 멈췄는데 세찬 바람으로 본디 예정한 로켓화덕 라면 끓이기는 미루고 숨바꼭질을 했다. 밤을 느끼기에 최고의 놀이다. 겨울철 별자리는 목성만 보이니 다음 밤 탐험 때 하면 되겠다. 역시 밤참은 푸짐하게 먹는다. 생협라면과 전복찜, 자연산 숙성회다. 진짜 잘 먹는다. 놀이와 먹을거리는 부모님 대신 사랑이다. 전복찜은 지난해 전복집사장님에게 배운 요리 비법으로 조리했다. 잘 먹으니 좋구나. 음식 하는 맛이다.
[우리 학교 앞날은]
나ㅡ역시 이끔이들 대단하다. 이끔이들을 위해 선물이라도 줘야겠군.
누군가ㅡ그럼 와플 한 상자 주세요.
선율ㅡ너무 한 거 아냐. 우리가 그것 때문에 한게 아니잖아.
정우 ㅡ뭔가 뿌듯한게 있어요. 그런 거 때문에 한거죠 사실.
나ㅡ역시 우리학교 앞날은 이끄미들에게 달려있겠어.
하윤ㅡ사실 학교 앞날까지는 쫌.
나ㅡ그럼 자연속학교 앞날이 달려있겠네.
하윤ㅡ한 이틀은 달려있죠
2022. 12. 14. 물날. 날씨: 새벽에 우박이 내렸다. 눈이 제법 오다 그쳤다. 찻길이 미끄럽다.
[자연속학교 출장과 깔깔콘서트]
새벽 일찍 일어나 대전을 다녀왔다. 우박이 쏟아지더니 눈이 줄곧 내려 도로가 미끄럽다. 자연속학교 기간에 진도에서 대전까지 출장을 가는 셈인데, 일정 조정이 되지 않아 자연속학교 떠나기 전에 미리 계획을 하고 다녀왔다. 오늘 자연속학교 활동은 잠집과 마을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대전에 가는 까닭은 교육부 주최 대안교육기관 교원 연수 자리에서 <마을교육과 교육공동체>를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됐기 때문이다. 학교를 널리 알리고 대안교육의 철학과 교육과정을 확산하는 기회라 발표 요청을 승낙했고, 몇 가지 요청을 했다. 12월 학사일정 상 아주 바쁜 때니 일정을 조정해줄 것, 대전같은 먼 곳이 아니라 줌으로 참여가 가능하게 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기획 단계에서 확정된 거라 바꿀 수가 없다는 답변이 왔다.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만든 자리는 웬만하면 참여해서 대안교육과 맑은샘 교육을 알리려 애를 쓰고 있다. 공교육에 미치는 영향도 있고, 그런 자리에 자꾸 나가 이야기를 해야지 우리 교육 현장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준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 교육을 펼치는 교육기관의 처지다. 대안교육 현장은 이제 대안교육기관법 제정으로 인해 대안교육기관 학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교육청에 둥록하지 않은 학교는 비등록대안교육기관으로 불리게 되었다. 전국에서 오신 분들이니 제한된 시간이지만 정성을 다했다. 현장마다 처지와 상황은 다르지만 상상과 영감은 순간 오는 것이기에. 아쉬운 건 바쁜 때 전국 곳곳에서 먼 길 달러오셨는데 하룻밤은 재워주는 연수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오후 늦게 진도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붕어빵을 사가지고 들어갔다. 하루 자리를 비운 미안함 탓도 있고, 진도에서 붕어빵은 세 번은 먹어야 한다고 어린이들이 말하기 때문이다. 잠집 현관 앞에 오늘 쌓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어놓았다. 눈이 오니 신났겠다.
저녁을 먹고 이석이에게 깔깔콘서트 기획 상황을 물어보았다. 아직 알리지 못했단다. 밥 먹고 알림글 붙이고 알리라고 말해주니 기다렸다는 듯 채비를 해서 참가신청을 받았다. 덕분에 깔깔깔콘서트로 깔깔 웃었다. 이석이랑 자연속학교를 같이 갈 때면 꼭 짝궁이 되어 깔깔콘서트를 채비하곤 했다. 나는 1학년 어린이들과 그동안 가르쳐 준 마법 주문 세 개를 춤을 추며 불렀다. 깔깔콘서트는 언제 해도 재미나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설거지 시간에 설거지 공장을 돌리며 모두를 위해 설거지를 스스로 나서서 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모둠마다 돌아가며 밥모둠을 맡아 하루 세 끼를 지어먹는다. 밥 짓기, 설거지, 청소, 빨래, 가방정리 같은 자기앞가림이 일상인 생활교육에서 주인되는 삶이 버릇처럼 길러진다. 이렇게 집을 떠나 시골에서 자기앞가림과 함께 사는 삶을 학교의 일상처럼 가꾸기에 우리는 여행이라 부르지 않고 자연속학교라 한다. 여서 밤을 함께 자고 먹고 놀고 배우며 한 식구처럼 자란다.
2022. 12. 15. 나무날.
[음식만들기와 팽목항]
진도 겨울 자연속학교 닷새째 아침 공부는 음식 만들기다. 어린이 요리사들 손놀림이 야무지다. 해마다 음식을 만들어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같이 먹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져가지 못하고 있다. 어묵탕, 떡볶이, 스크램블, 정말 맛있다
낮에는 팽목항에 다녀왔다. 2014년부터 겨울 진도 자연속학교 때 어린이들과 유가족들에게 음식을 전하러 간 인연으로 해마다 겨울이면 팽목항을 간다. 함께 추모하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실천할 안전규칙을 살폈다. 이태원 참사가 또 일어난 세상이니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 팽목항에 올 때마다 눈이 시리다.
팽목항에 다녀와서 얼른 낚시 채비를 해서 바다로 갔다. 두 번째 낚시 출조다. 5학년이랑 갔다. 잔챙이들이만 낚는 재미가 있다. 어린이 낚시꾼들이 신이 났다. 노을 보는 재미는 늘 좋다.
저녁에는 졸업생들이 왔다. 올해 졸업한 인채, 인준, 나윤, 병찬, 이준이가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 동생들을 위해서 설거지를 해주는 전통을 따라 애를 쓴 멋진 형님들이다.
2022. 12. 16. 쇠날.
[진도 새참은 특별하다]
진도 겨울 자연속학교 엿새째, 아침나절 울돌목에서 이순신장군과 판옥선을 만나고, 낮에는 자연속학교를 되돌아보는 글쓰기를 했다. 내일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두가 온 몸을 씻고 짐을 쌌다. 집에 돌아간다는 설렘으로 어린이들이 신이 났다.
마지막 날 새참의 추억은 특별하다.
진도 붕어빵ㅡ 진도의 특산품 격이 되어버린 진도 붕어빵은 축구 한 판과 함께 오는 선물이다. 10년째 만나는 붕어빵 가게 사장님은 늘 넉넉하게 담아주신다. 물가가 올라 올해는 1천원에 3개 하던 붕어빵은 2개에 천 원이 되었다. 이번에도 붕어빵을 세 번이나 먹었다. 한 번은 축구 한 판 없이 교장이 쐈다.
자연산 회ㅡ 진도에 오면 자연산 회를 실컷 먹는다. 낚시로는 잔챙이라 부족하다. 해마다 진도전복양식장 사장님이 쳐둔 그물에 잡힌 물고기다. 진도에 올 때마다 전복과 함께 물고기를 가득 받는다. 우리 장사장님이 해마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선물이다. 손질하고 회 뜨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먹으니 수고로움도 즐겁다. 새로 온 교사와 자원교사로 온 부모들에게 칼을 잡고 회 뜨는 방법을 알려준 지도 꽤 되어간다. 물고기 들어온 날 먹고, 숙성시켜 또 먹는다. 회 뜨며 보니 정말 찰지다. 두툼한 회 맛이 일품이다. 물론 매운탕도 있다. 회가 많아 남은 회는 튀김옷을 입는다. 다음에는 물고기를 알맞게 받아 회를 떠야 한다는 말이 나올만큼 양이 많았다.
낙지ㅡ진도에 오면 먹을 게 풍성하니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진도 5일장 조금시장에 가서 늘 사오는 낙지였다. 이번에는 코로나로 시장에 가지 않기로 한 터라 혼자 가서 사왔다. 꿈틀거리는 산낙지와 낙지탕탕이 맛을 아는 어린이들이라 낙지를 찾는다. 우리 1학년은 진짜 꿈틀거리는지 기대가 컸다고 해서 일부러 다녀왔다. 다들 맛있게 먹으니 손질한 보람이 있다.
2022. 12. 17. 흙날.
[고마운 진도 자연속학교를 마치며]
2022년 진도 겨울 자연속학교 이레째 진도를 떠나 집에 가는 날, 아이들은 전날 목욕을 하고 짐을 싸는데 떠나는 날에는 더 일찍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한다. 얼른 집에 가서 사랑하는 부모님을 만나는 설렘 때문이다. 짐 내놓고 모둠마다 나눠 청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다 함께 아침열기와 자연속학교 마침회를 한 시간쯤 하고 버스를 탔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마운 분들이 많다. 반찬을 만들어 보내주신 학부모님들, 진도에 올 때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전복과 회를 안겨주는 원서현서아버지 장형근님,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푸르미체험관 이장님과 길은리 어르신들, 먼 길 오가는 차를 안전하게 운전해준 무지개관광 기사님, 진도 곳곳에서 우리 어린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분들, 먼 진도까지 내려와 도움을 주신 부모자원교사들, 하루 24시간을 어린이들과 함께 산 선생들이 있어 진도 자연속학교가 완성되었다. 진도 자연속학교를 잘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