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외경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읽어야만 분별할 수 있다면 신천지를 모두 겪어야 신천지를 분별해야 한다는 논리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과 외경 그리고 위경에 대해서 생각하고 분별해보았습니다.
성경 66권과 외경 그리고 위경의 경계선을 나누는 것도 곧 사람의 판단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의 판단은 그것이 매우 불완전하여 위험한 것이 됩니다.
주인이 말하기를 '아니라, 독보리를 한데 모으다가 곡식까지 함께 뽑으면 아니되느니라.
But he said, Nay; lest while ye gather up the tares, ye root up also the wheat with them.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두었다가, 추수 때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여, 먼저 독보리를 모아서 불사르기 위하여 단으로 묶고, 곡식은 내 곡식 창고로 모아들이게 하리라.' 고 하니라." 하시더라.
Let both grow together until the harvest: and in the time of harvest I will say to the reapers, Gather ye together first the tares, and bind them in bundles to burn them: but gather the wheat into my barn.
마태복음 13절 29절 30절
사람의 판단은 독보리와 곡식을 구별하지 못하여 곡식을 망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 판단하시어 알려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심판의 구현되는 길입니다.
사람이 악인을 미워할 수는 있지만 악인을 심판하는 주권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사람의 판단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악인이 아닌자를 악인으로, 그리고 악인을 선한자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외경과 위경의 구분하는 것이 사람의 합리와 상식에 합당하다고 해도 존중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과 외경과 위경의 구분은 우리 스스로 보호하기 위하여 구분해야할 필요성은 있습니다.
주의 공의의 심판의 시각으로 보면 구분이 됩니다.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회심하지 아니하고, 또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장 3절
여기서 어린아이와 같음은 믿음의 단순성을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함과 불순종함에는 두가지 선택만이 있을 뿐 그 어떤 핑계나 사연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음은 믿음에 있어서 자기안의 복잡성을 버리고 단순함으로 하나님앞에 나와야 한다는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구원이 말씀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면 이해력이 떨어지는 어린아이들과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구원에서 탈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구원은 지적능력 테스트가 되고맙니다.
이런 오류는 말씀보존학회등에서 나타난 열매입니다. 변개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텍스트 그 이상이며,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북한에서 한쪽자리 포장지의 말씀으로 순교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물은 한잔의 컵도 물이고, 한강의 물도 모두 물인 것입니다.
O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
포장지 한장으로 믿는 사람은 위의 말씀대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하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파송되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와 같으니 "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고 하였느니라.
로마서 10장 13절 14절 15절
위와 같은 말씀으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심판의 조건인 우리의 믿음은 복음 전파의 결과물이 되는 것이며, 성경은 그 믿음을 자라게 도와주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성경을 읽는 가에 의하여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외경으로 믿음이 자랐다면 그것은 기쁜 일이고 당사자에게 손해가 아니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왕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런 후에야 끝이 오리라.
And this gospel of the kingdom shall be preached in all the world for a witness unto all nations; and then shall the end come.
마태복음 24장 14절
그러나 외경을 보는 분들도 생각하셔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마지막 심판을 위하여 왕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는 지금 외경과 위경으로 보이는 것들이 파송되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사탄과 악한 자들의 행위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불완전하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심판의 공의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구원이 이르는 믿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입니다. 외경의 특별한 정보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길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의 심판의 공의를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과 외경과 위경의 판단은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는 나와 이웃에게 모두에게 전해지는 성경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심판의 공의입니다.
사람들앞에서 나의 의가 더 높게 느껴지는 교만한 마음이 든다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죄를 짓는 것이 낫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외경으로 이웃과 구별된 마음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은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외경과 위경을 읽는 것은 자유이나 그 책임과 결과는 각자에게 있습니다.
믿음의 신념은 마치 등을 밝히는 기름과 같아서 장사꾼에게 사거나, 빌릴 수도 없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현명한 처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등불이 꺼졌으니, 너희 기름을 좀 달라.' 고 하더라.
그러나 현명한 처녀들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와 너희에게 충분하지 못하니, 차라리 장사꾼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하더라.
마태복음 25장 8절 9절
그래서 신념이 없는 의료적 정보나 다른 사람의 설득에 의한 백신 거부는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념이 있는 믿음과 신념이 없는 믿음에 대한 구분되는 모습입니다. 백신에 대한 정보와 진실을 들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 신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라면 인내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등은 가지고 있으나 그 안에 기름이 없는 상태와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등불이 믿음이라면, 기름은 믿음의 신념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념은 사거나 빌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신념도 분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잘못된 신념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천지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신념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비틀어진 인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별의 방법은 그 신념의 열매로 확인해봐야 합니다. 신천지의 열매가 좋지 않은 것과 외경의 열매가 좋지 않은 것은 신천지나 외경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외경이 도움이 될수 있지만 외경을 읽지 않는 것이 구원에 부족함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말씀보존학회와 같은 텍스트 권위주의집단이 되며, 사람이 성경을 심판하는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