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김 난 석
정이삭 감독의 외국어 영화 미나리가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중이다.
지난 7일엔 미국에서 열린 제26회 크리스틱 초이스 어워즈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과 아역배우상을 수상했다.
8일 발표된 제32회 미국제작자 조합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도 올라
아카데미 작품상에도 기대를 거는 모양이다.
미국 이민 제1세대 제이콥 가족의 정착과정을 그렸는데
영화의 진미 중 하나인 드라마틱한 스토리라기보다
보통의 생활상과 우리네 가족의 보편적 정서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민 1세대인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
2세대인 딸 앤과 아들 데이빗
그리고 뒤에 합류한 외할머니 순자.
이렇게 다섯 식구가 이민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족 간의 우애도 다져나가는 모습이 눈물겹기만 한데
아마도 이미 이민해 잘 정착한 가족이라 하더라도
모두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싶다.
미국은 천혜의 대자연에 자원의 보고다.
원주민이야 있지만 앵글로색슨 족의 청교도들이 진입해
뉴 프론티어의 기치 아래 자연을 정복한 게 오늘날의 미국이다.
그런 과정에서 윈주민, 흑인을 비롯한 이주민을 억압하거나 착취하고
자연을 훼손해가면서 오늘날의 주인이 되었는데
그 주인세력이 위력을 발휘하게 된 건 기독교정신 아래 뭉친 때문이었다.
제이콥은 농장을 일궈나가자 한다.
그러나 자원이 없고 인력도 없다.
자식들을 건사할 방법도 없는지라 할머니를 모셔오지만
되레 짐이 되고 만다.
모니카는 도시에 나가 살자 한다.
그건 부부가 노동력만 발휘하면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계산이다.
농장을 일궈나가는 중에 할머니의 실수로 불이 나
농장의 터전이 불타버리고 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미나리 깡에 초점을 맞춘다.
할머니가 씨를 가져와 뿌려서 이루어진 미나리 깡.
그건 가꾸지 않아도 자연수에 의해 자라나는 다년생 초라
뜯어먹어도 뜯어먹어도 다시 자란다.
그게 잡초처럼 일어서자는 것인지
자연에 의지해 살아가자는 것인지
거대한 미국 땅에 기생하여 대대손손 뿌리내리자는 것인지
관람객의 생각이야 다 다를 수 있지만
아메리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한 미세한 구성인자로
힘겹게 살아가는 눈물겨운 모습을 즐기는 것이라면
나는 수상 소식에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는데
몇 해 전 미국 이민자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철 지난 징글벨 소리에
산타할아버지 얼굴 붉히며
골목으로 숨는 여기는 어딘가
저 십이월 마지막 저녁
싸락눈 내리는 이국땅 밤길
가로등 낯선 네거리에 서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빈 가슴만
이민이라 쓴 내 명찰
손을 펴면 잡을 것 같은
조국의 바람 속에는
아득하게 흰 눈이 한 아름 안겨오고
날 부르는 소리
어느 허공을 맴도는지
아프게 목 저어 찾아보지만
내 언어로 씨 뿌린 적 없는 땅
한 몸 이름 붙여 앉아 볼
아랫목은 없다
손 짚어 헤아려 보아도
남은 것 하나 없는
이국의 한 해
고향은 멀어서 허전하고
국적 없는 시인의 회한은
이 저녁 마지막까지 채우지 못하는
밑 깊은 항아리. / 장석렬의 시 ‘뉴욕죄수’ 전문
얼마 전 어느 미국 시인(장석렬)으로부터 시집을 받아보고
이제야 겨우 일독을 했다.
1949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서부전선에서 군의관 생활도 했다던 시인은
1979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 현재는 한국펜클럽
미 동부지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시인의 이민의 사유야 알 수 없지만
1974년 대학시절 교지 편집을 맡아 일하던 중
기관원들에 의해 원고를 모두 압수당한 기억이
이민을 떠난 이유 중 하나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때는 자유가 많이 제한되던 때였으니
시인의 심성을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는 그런 시대를 거쳐 이 땅에 남아 오늘을 살고 있다.
이 시집을 통해 나는 떠난 자와 남은 자를 생각해보게 된다.
조국이 그렇게 척박했던가...
척박한 조국은 버려야만 했던가...
그렇다고 삶의 터전이 꼭 내 조국이어야만 하는가...
희망이 없어도 한없이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가...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므로 다양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니
질문이 어리석으면 그 답도 어리석을 수밖에 없을 터,
그래서 나는 시인의 이민사유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우주만물은 전체로서만 완전하다.
그러기에 우주를 코스모스(조화)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부분은 불완전하기에 완전을 지향하게 된다.
그러기에 부분은 늘 파열과 역동적 관계에 놓이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나와 타자가 한 몸이 되어
완전하게 되고자 함이 에로스(삶의 충동)요
그 한 몸마저 파괴해 완전하게 되고자 함이 타나토스(파괴본능)다.
따라서 타나토스는 에로스의 다른 쪽이기도 하다.
조국은 완전할 수 없다.
그러기에 때론 밖으로 탈출하려는 충동도 느끼게 되며
안에 있어도 그 이치는 마찬가지다.
완전성을 향해 몸부림쳐보지만
밖으로 탈출해도 완전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 일부가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이탈하거나 떨어져있으면서
빈 가슴으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밤하늘의 별은 우리에게 무한한 꿈을 주지만
그 자체는 불임의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가 내뿜는 수증기로 인해 반짝일 뿐이다.
인간이 별에 꿈을 싣고 그리워하듯
별도 아마 인간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그래서 밤마다 별빛으로 깜박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자가 원자핵을 감싸고돌기에 물질의 미세 원자가 존재하듯
떨어져있되 그리워하며 맴도는 것,
그것이 에로스요 우주만물의 존재원리가 아니던가.
떠난 자와 남은 자도 그런 관계일 테니
떠난 자 남은 자를 원망하고 남은 자 떠난 자를 원망한다면
파괴로 치닫는 타나토스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국을 그리워하는 시인에게
나의 그리움 한편 실어 보낸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모두 아쉬움을 그리워하는
유랑의 무리가 아니던가.
마침 봄이 알맞게 무르익어가고 있다.
동백 산수유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머잖아 과수원의 하얀 배꽃들도 달빛 타고 흐르리라.
이렇게 서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라도 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고 진다.
봄이 되면 온통 꽃 세상이지만
꽃만 꽃이 아니라
아름다운 건 다 꽃이다
아름다운 것만 꽃이 아니라
바라보는 건 다 꽃이다
꽃은 열매 맺기 위한 몸짓일 뿐
그게 생명의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꽃만을 바라보고 영탄하는 건
마치 밤을 보지 않고 낮이 황홀하다거나
낮을 보지 않고 밤이 그윽하다 함과 같다
꽃은 꽃이 꽃이듯
잎은 잎이 꽃이고
가지는 가지가 꽃이요
뿌리는 뿌리가 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건 다 꽃이요
바라보는 건 다 꽃이라 하는 것이다
코로나 현상이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그래도 안전하다는 조국을 향해 들어오는 동포들이 늘어난단다.
들어앉아있든 나가있든, 또 나갔다가 들어오든
모두 내 조국이기 때문이요 내 동포이기 때문이리라.
꽃을 꽃이라 부르듯
모두 내 동포라 불러야 하리라.(2021. 3. 9.)
* 청솔님이 영화에 관한 긴 이야기를 올렸다.
글로 보아 그는 영화광에 틀림 없는 것 같다.
소개한 영화들이 나의 체험과 더러 일치하기도 한다.
하여 그중 일치하는 영화 중에서 <미나리> 감상 후기로 화답해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영화광까지는 아니지만
영화보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저도 미나리 잘 보았습니다
영화파일도 갖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상 여우 조연상도 수상했지요
윤여정이 일약 세계적인 배우가 됐습니다
봉준호감독만큼은 아니지만
재치있는 인터뷰로 주목을 받았지요
조국을 떠난 시인의 절절한 마음을 이해합니다
그 곳에서 몇 년 살아본 경험으로
이제 나이들어 느끼는 허전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 허전함을 느끼는건
출타한 사람이나 붙박이나 다 마찬가지일겁니다.
@난석 그래도 그 쪽이 아무래도 더하겠지요
미국이 참 쌀쌀맞은 사회입니다
정 붙이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청솔 우리는 정이 많지만
그대신 정 주고 본전 생각하는 심보가 있어요.
윤여정씨의
영어로 수상소감 너무나 멋졌지요 미나리 영화보다 더 유명해졌다 합니다
그게 할머니를 얕보다가 제대로 멘트하니까 놀랐던건 아닐까요?
여하튼 재치가 있었지요.
아이들이 초등학교때
학부모 친구가 이민 신청
절 보고 함께 가자했는데
전 가기 싫더라고요
친구는 미용을 배웠지요
이민 간다고 저 보고는
손 재주가 좋다고 가면
할 일이 많다 했지만
전 우리나라가 좋더라고요
그 친구는 잘 살고 있겠지만
궁금합니다.
처음엔 소식 있다
그 후론 소식 끈 켰어요.
미나리 멋진 영화였습니다.
수상 소감의 인터뷰 멋지고
감동 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난석님~
전 아직 미나리 영화를 못 봤네요
오늘 넷플릭스에 있나 보고
있으면 봐야 겠습니다
미나리 감상 후기문 잘보고 마음에
담습니다 선배님 늘 강건하시고 즐거운
나날 되십시요 ᆢ
기생충을
잼나게 봤습니다
요즘 티비 드라마도 지루하지 않아요
전개가 빠르고요
다양한 인적 구성으로
볼만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