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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편이 완결이니, 참고하고 읽어주세요.
Ms. Black Bean [ 01 ]
“··· 넌 어떤 사람이 좋냐? 예쁜 사람? 아님··· 착한 사람?”
“내 눈 앞에 없으면, 불안해지는 사람.”
“그게 어떤 사람인데?”
“···글쎄. 그냥 그런 사람이 있겠지.”
※
내 이름은 안 하예다. 부모님께서는 ‘하늘이 주신 예쁜 아이’ 라는 뜻으로 내
이름,
‘하예’를 지어내셨지만, 아버지의 성씨가 안 씨였던 관계로 난 안 하예가 되어버렸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대로 대접받으며 자라나, 살아간다고 했던가····.
나는 Black Bean. 그래, 까만 콩으로 자라났다.
키도 작고, 뚱뚱한 데다 피부도 까맣고 잡티도 많다. 쌍꺼풀 없는 두 눈은 한없이 작고
코도 낮고, 입은 바보처럼 웅얼거리기 쉽게··· 작다. 그래서 난 유치원에 처음 갔던
6살부터 지금까지 쭉, ‘까만 콩’으로 살아왔다. 지금 난··· 무의미한 21살이다.
“···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이 리포트 마감일인 거, 알고
있겠죠?
이번 주 금요일까지 시놉시스 포함한 소설 제출하시고, 기간 내에 제출하지 않을 시
추가로 받지 않습니다. 더불어 기본 점수 부여하지 않을 겁니다. 자, 그럼 이상.”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한숨들을 뒤로 한 채, 교수님은 강의실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그리고 학생들은 하나하나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대로 문 밖으로 나가주면 고맙겠지만,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날 위해서가 아닌, 내 옆에 앉아있는 로운이를 위해서.
“로운아, 점심 먹으러 가야지? 저번에 로운이 네가 자료 수집하는 거
도와줬는데····
오늘 오빠가 점심 사줄게, 가자.”
“야, 무슨. 로운아, 오빠가 오늘 점심 사줄게. 오빠 오늘 알바비 탔거든. 가자.”
“시끄러, 임마. 로운아, 가자. 교내식당 말고 나가서 먹을까?”
로운이? 그래, 얘도 이름처럼 대접받으며 잘 살고 있는 인간 중의 하나다. 성은
이,
이름은 로운. 합쳐서 이 로운이다. 이름대로, 모든 이로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얼굴 예뻐. 몸매 착해. 성격 좋고 머리 좋고. 스타일도 좋아서 뭘 입어도 예쁘다.
가만히 있어도 호감이 생겨나서, 이리저리 예쁨 받으며 불려 다니고 이 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그만큼의 인지도를 가지고 잘 살아가는 아이.
“··· 아 죄송한데, 하예랑 점심 먹으러 가기로 해서요. 죄송해요,
선배님.”
그 짧은 순간, 그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쏠린다. ‘잔말 말고 로운이를 넘겨, 콩.’
하는
선배들의 입모양도 간간히 보인다. 그래, 언제나 내게로 향하는 시선은 이렇다.
언제나 난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된다. 무필요한 존재, 그리고 쓸모 없는 존재. 거기다
귀찮기까지 한 존재.
····· 이유? 단지 못 생겨서. 자기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 그 이하로 못생겨서.
“··· 난 됐어. 선배들이랑 밥 먹어. 그럼 먼저 간다.”
“하, 하예야! ··· 미안해, 내일은 꼭 점심 같이 먹자. 알았지? 미아안!”
로운이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그저 강의실을 빠져나올 뿐이었다. 미안? 아니, 난
고마워.
어차피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갔다 쳐도, 그 곳에서의 시선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점심이 아니라 그냥 캠퍼스 안을 같이 거닐어도, 길거리를 같이 걸어다녀도··· 마찬가지다.
‘쟤는 왜 저렇게 못생겼어?’ 하는 나에 대한 시선과 ‘쟤 진짜 착하다. 저런 못생긴
애
놀아준다니 말이야. 예쁜 애가 착하기까지 하지.’ 하는 로운이에 대한 시선.
그 두 시선은 언제나 내 옆을 달라붙어 날 괴롭혔다. 로운이가 없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선은 날 따라다니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었던 난, 결국 자습실로 향했다. 자습실은 언제나 사람이 별로 없고
꽤나 조용한 편이었다. 꽃 휘날리는 이팔청춘들이 이 좁고 습한 자습실에 들릴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예외의 경우도 있다. 소위 ‘잘나가는’ 인간들께서 친히
자습실에 행차하셨을 때가 그 예이다. 그 때는, 자습실 반 이상이 순식간에 차곤 한다.
“06학번 국문학과 안 하예요.”
“···· 예, 예? 뭐, 뭐가 안 하얗죠?”
“제 이름이요. 안 하예에요. 안 하예. 여이.”
“예? ··· 죄송한데, 학생증이나 주민등록증 좀····.”
자습실 관리자가 바뀔 때마다 흔히 있는 일이다. 이름이 열 자 이상으로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내 이름이 외국어도 아니건만. 매번 이렇게 학생증이나 주민등록증을 요구한다.
그래서 언제나 내 주머니 속에는 학생증이 들어있다.
학생증을 꺼내 보여주고 나서야, ‘아아-’ 하는 묘한 말과 함께 출입이 허용된다.
가장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 위로 엎드려 버렸다. 아··· 나른해. 졸려.
···· 그러고 보니 벌써 일주일 째 잠을 못 잤잖아.
“··· 어디 보자.”
하지만 다시 등을 꼿꼿하게 세워야 한다. 금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소설은, 이미 쓴
분량을
제외하고 나서도 앞으로 A4 40매에 이르는 소설을 더 요구하고 있다. 비록 내 자신이 또 다른
주인공이고, 이 고통스러운 생활이 고스란히 담기는 글이라지만 겨우 5일밖에 주어지지
않은 지금. 일분 그리고 일초가 아까워진다. 여기서 ‘하지만’이라는 단어가 붙는다면 참
우습기도 하겠지만, 정말 하지만. 어저께와 오늘은 단 한 글자도 잡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한 문장을 잡아야 한다. 아니, 문장까지도 안 바래. 제발 한
단어라도
걸려서 제발 한 글자라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안 하예, 넌 정말. 이쪽으로도 소질이 없는 거니, 응? ····
제발.”
흘끗. 바라본 시계는 벌써 1시간이나 흐른 후였다. 1시간동안 낙서장에 낙서만 늘었을
뿐.
정작 중요한 소설에는 토시 하나도 추가되지 못했다. 나만 빼고 모두를 움직여버린,
야속한 시간을 원망하며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늘어두었던 공책과 책들을 모두 거두어들인
난 답답한 자습실을 빠져나왔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아직 교수님이 들어오시기 전인 듯 했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시선은 모두 로운이에게 향하고 있다. 로운이는 의자까지 빼 주며 자신의 옆에 앉으라고
했지만 난 그 말과 그 애의 모습을 보지 못한 척. 가장 뒤쪽, 그리고 문 쪽에 앉았다.
순식간이었다. 빈 로운이의 자리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거기서 승자가 나왔던 건···.
새삼, 내 결정이 아주 바랐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단체로 웃기고들 있군.”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아니, 이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 중 반 이상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처음 듣는다고 평가를 내렸겠지만··· 더더욱 그 목소리는 그랬다.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무표정한 얼굴의 한 남자가 보인다. 아니, 무표정보다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남자는 어깨에 걸쳐져 있던 이어폰을 길게 빼내 귀에 꽂았다. 용케 출석을 부르고 나서,
그는 책상 위에 엎드려 버렸다. 수업을 듣느라 그 쪽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한 번도 눈에
거슬리지 않은 걸 보니, 그 사람. 아무래도 조용하고 착실하게 잠을 잔 모양이다.
“····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리포트 홈페이지에 양식과 함께 첨부해
두었으니,
이번 주 금요일까지 제출하도록 하십시오. 비교적 간단한 리포트이니, 금요일까지 충분히
제출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교수님이 학생 쪽을 향해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강의실을 빠져나가심과
동시에-
책상에 누워있던 그 남자가 벌떡 일어서서 강의실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대단한··· 사람이네.
아니, 그나저나···· 리포트? 금요일? ·····금요일은 역시 ‘광란의 DAY’임이 틀림없었다.
주섬주섬. 널어놓은 책들을 다시 가방으로 쓸어 담고 있는데, 옆으로 로션 냄새가
진동을
한다. 꽤나 익숙한 로션 냄새. 로운이의 로션 냄새였다. ··· 화가 났으려나?
“···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주변에 선배들이 앉을지 모르고, 그 쪽에 앉은 건데···.
선배들이
앞쪽에 앉으셨지 뭐야. 선배들 앞에 계셔서 뒤쪽으로 갔을 텐데····. 불편했지? 미안.
나도 그냥 뒤쪽에 앉을 걸 그랬나봐. 다음부터는 뒤쪽에 같이 앉자, 하예야.”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 설마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걸 모를
리가.
니가 앞에 앉으니까 남자 선배들이 앞쪽으로 몰리는 거지. 니가 뒤 쪽으로 왔으면 분명,
뒤쪽 자리 매진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겠지. 아니, 그랬다면 앞에서 편하게 수업 받을 수
있어서 편했겠지만. ···· 뒤늦게 이런 소리 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니.
“···나, 다음 수업 있어서. 그만 올라 가 볼게.”
“그래? ··· 그럼 나 먼저 갈게. 내일 보자, 하예야! 리포트 열심히 하구.”
“···· 응. 잘가.”
지극히 형식적인 인사로 로운이와 헤어지고 나서, 난 다음 강의실로 넘어
왔다.
여긴 로운이가 없어 조금 한산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번에 이 강의실에서는 여자 선배들이
난리다. 하지만 로운이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익숙한 상황이긴 하다. 매번 수업이
있을 때마다 그래왔으니까. ···· 난 지극히도 외모 하나로 돌아가는 이곳이 싫다.
추양 받는 누군가는 기쁘겠지만, 그렇지 못한 채 소외되어가는 누군가는··· 죽고 싶으니까.
조용히 수업 준비나 하고 있는데, 비어있던 옆자리로 누군가가 걸어 들어와
앉는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옷차림을 보아하니··· 전 수업에, 내 옆에 앉아 자던 그 남자다.
정말 뻔뻔하게도 잘 자는 사람인 것 같아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고개가 휙 돌아온다.
“···· 왜 빤히 보는데요.”
“···· 예?”
“왜 짜증나게 빤히 바라보느냐구.”
말투 한 번 참 까칠하다. 사과는 하고 싶은데, 이런 말투라면 사과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모두 사라져버리잖아. 하지만 어째. 잘난 분이 짜증까지 나셨다는데, 사과 정도 해드려야지.
“····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주무세요, 그럼.”
무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보던 그 남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누웠다. 진짜 웃긴 남자네,
정말.
이럴 거면 비싼 학비 내고 수업은 왜 들어오는 건지. 여기가 고등학교인지 아나····.
····몰라. 내가 신경 쓸 게 뭐야. 그냥 나만 잘하면 되잖아. 나만.
─────────────────── '프롬:F'의 'Ms. Black Bean' [ 01 ]
Ms. Black Bean [ 02 ]
저번 주, 펑크 나서 수업 뺄 수 있다고 좋아했던 건 1시간이었지만 그 수업이
하필이면
오늘 2시간 연달아 들어오게 되면서 난 2시간이 슬펐다. 그래, 내 인생이 이따위지 뭐.
아무튼, 그 수업 덕분에 난 정확히 오후 6시가 되어서야 학교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가방 똑바로 매고 걸어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나마도 상황이 좋지 않다.
책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방 지퍼가 고장나버렸다. 한 손으로 그 가방을 끌어안고,
그 위에 책을 얹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책에 펜으로 밑줄을 치고 있다.
대학이 다 이렇다. 대학 들어오면 살 빠지고, 피부치료 받고, 수술해서 예뻐질
거라
생각했던 꿈은···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었다. 대학 비 내기 빠듯하고 알바 비 벌어봐야
책 값 내고 생활비 내고 나면, 학비로 보탤 돈도 없다. 예뻐지는 거? ··· 무슨.
거기다 날 또 한 번 슬프게 하는 건··· 날 받아주는 알바 조차 없다는 것이다. 빌어먹···
“········ 억.”
‘촤륵’ 하고 기분 나쁘게 흐르고 있는 건·····. 뜨겁고 이 짜증나는
냄새는·······.
블랙커피다.
“괘, 괜찮으세요? 아··· 머리랑 옷, 책··· 다 젖으셨네. 어, 어떡하지?
괜찮으세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딴 짓을 하느라 앞을 못 봐서··· 괜찮으세요?”
“········예.”
기분 나쁘다. 블랙커피가 내 머리를 타고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책에까지
튀어버린
커피, 그 망할 놈의 블랙커피!!!
나는 그대로 몸을 틀어 학교 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뛰고 있지만
나와 부딪힌 그 남자는··· 아주 여유롭게 슬슬 뛰고 있음에도 내 옆에 서 있다.
쪽팔려, 진짜 쪽팔려!!
“··········”
온 몸에서 커피는 뚝뚝 흘러내리지, 커피 냄새는 날 짜증나게 만들지. 이 남자
때문에
한 번 불쾌하고, 사람들 시선 때문에 한 번 더 불쾌했다. 그럼에도 열심히 화장실을
향해 뛰었던 나에게··········· 신은 잔인했다.
학내 화장실 전면 단수
- 수질 검사로 인해 05시 55분부터 08시
00분까지.
단수? 수질 검사? ···왜 하필 오늘이냐구, 왜!!!
“···· 아, 오늘 수질 검사 한다고 하더니····. 저어, 어떡하죠? 커피····. 아,
일단
이거라도 쓰세요. 손수건 가지고 닦일지 모르겠네····. 정말 죄송합니다.”
아까부터 꾸벅꾸벅, 허리까지 숙여가며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 사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고, 사과하는 사람에게 성질 못 낸다고 했다. 화풀이 할 상대까지
모조리 잃어버린 난, 이 세상을 사는 게 전혀. 전혀 행복하지 못하다.
“···· 손수건 필요 없어요. 내가 알아서 닦고 씻고 할 테니까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세요.”
난 그 사람을 향해 손수건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더 모여들기
전에
빨리 집에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옆으로
달려온다. 로운이의 구두 소리는 아니다. 운동화 소리··· 같은데.
“Hey, 콩씨! 너 왜 이래? 커피라도 뒤집어 쓴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어쩌다 이랬어?”
남현 선배와 상진 선배가 번갈아 한 마디씩 한다. 하지만 거기에 일일이 대꾸해줄
만한
힘이 있지 못하다. 더군다나···· 상진 선배도 이런 모습을 본 거잖아. 쪽팔려.
“콩, 말해봐. 누가 이랬는데. 응? 말해봐, 형이 혼내줄게.”
“남현이 넌, 애한테 형이 뭐야, 형이! 코, 아니- 하예야. 어쩌다 이랬어, 응?”
“······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갈게요.”
아닌 척 하지만, 요즘 상진 선배의 입에서도 ‘콩’이 자주 튀어나오고 있다.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항상 등장하는 ‘콩’. 그거 참 기분 나쁘다. 놀림거리가 되는 기분이니까.
나는 상진 선배와 남현 선배를 뒤로 하고, 잠시 주춤했던 발을 재촉해 집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커피 냄새가 몸에서 사라질 때까지
비누칠을 하고 또 했다.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샤워를 끝내고, 화장실을 빠져나오다 무심코 쳐다 본 거울. 그 거울 속의
난····.
난 참 바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 수백 번의 욕을 듣고 사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 바보, 정말.
“으아, 책도 다 젖었다.”
잠깐 잊고 있던 책. 나와 함께 커피를 뒤집어 쓴 책들은 누렇게
변해있을뿐더러,
쭈글쭈글해져버렸다. 무엇보다 커피향이 진하게 나고 있다. ··· 공부하기 싫어질 것 같아.
방 안에 가득 널려있는 옷들 옆에 책들을 널어두었다. 하도 커피향이 진동을 해서,
우선 집을 빠져나왔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고민하던 난, 이럴 때마다 한 번씩.
그리고 요즘 따라 자주 찾아가게 되는 그 곳으로 향했다.
“······ 아, 좋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있다. 낮과는 다르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가린
사람들의 웃음소리만 간간히 들려올 뿐. 어둠이 깔린 이곳은 그저 조용하고 고요하다.
···· 그래서, 여기는 어디냐고? 공원. 공원이다.
공원 가장 바깥쪽으로는 길고 커다란 강물이 흐른다. 하지만, 강물을 다리를 타고
넘어서면 공원이 하나 더 있다. 어쩌면 공원의 중심부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그저 공원의 바깥쪽일 뿐이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바깥쪽.
물이 고요히 흐른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지자 작은 파동이 일어나는 가
싶더니
다시금 잔잔해진다. 다시 돌을 집어던져보지만,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금세, 거기에 흥미를 잃어버린 난 바지를 털고 일어섰다. 그만 돌아서려는데,
누군가 내 옆에 서 있다. 놀라긴 했지만, 애써 무덤덤하게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내 옆에서 우물쭈물 거리던 그 남자는 모자를 더 깊게 눌러쓰고 날 스쳐지나갔다.
···· 길 좀 비켜달라고 말을 하면 될 것이지, 거기서 고민을 하고 있던건가? ··· 어휴.
그 남자가 옆에 들고 있던 피켓 때문에 더 놀랐네. 그게 흉기로 보이는 이유는 뭔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난, 리포트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잠이 들었다. 하지만
새벽에
이르러서 리포트 생각에 다시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리포트의 힘은 대단했다.
더 대단한 건, 사실 내 얼굴이었다. 하루만에 더 흉해져버린 얼굴.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이며 이 쪽으로 걸어오던 남현선배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 이야, 콩! 하룻밤 사이에 업그레이드 됐다?”
“······· 예?”
“가뜩이나 까만 놈이 왜 눈에 콩 하나씩을 더 가지구 나타났어? 다크서클도 생기고.
이거 이거, 콩 병든 거 아냐?”
“···· 잠을 못 자서 그래요. 가볼게요.”
내 머리를 꾹꾹 누르는 남현 선배의 손을 치워 내고 대충 앞쪽 자리를
잡았다.
뒤쪽에 앉아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로운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책과 노트를 들고는
내 옆자리로 걸어온다. 활짝. 정말 활짝 미소짓고 있다.
“우리 오늘은 같이 공부할 수 있겠다. 그치, 하예야?”
공부? 공부는 무슨 놈의 공부. 선배들 지금 한 칸씩 앞쪽으로 당겨오고 있고,
이제
수업시간 내내 쪽지 왔다갔다 거릴 거고. 그중 한 명은 나보고 자리 바꿔달라고
할 거고. 로운이 넌 나쁘지 않은데, 너랑 있으면 내가 나빠져.
“······· 저기.”
거봐. 이렇게 말 걸어 오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서 책상 위에 책을 널어
놓은
이 바보같은 안 하예. 얼른 다 치우고 뒤로나 가자·····.
“····· 어제 부딪혔던 사람인데. 괜찮으세요? 어제 너무 죄송했는데 그냥 가버리셔서····.
드라이 비라도 드리고 싶은데····.”
·····아? ·····아, 그 블랙커피. ····· 과도한 친절은 뒤에 무언가가 숨어있다는
증거다. 그냥 자리나
바꿔달라고 하던지. 왜 쓰잘 데 없는 말만 지껄이는 거야, 귀찮게. 다··· 똑같으면서.
“······ 뭘 바라시는데요?”
“예?”
“드라이 비 필요 없어요. 바라시는 거 있으세요?”
“··· 아뇨.”
“···· 그럼 됐어요.”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 남자는 내 옆에 한참동안 멈춰서 있었다. 커피에 젖은
책만
팔락거리고 있는데, 로운이가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대화에는 내가 끼어있다. 로운이가 또 다시 착한 대변인 역을 맡고 있다.
“아, 해늘아 있지. 하예가 리포트 때문에 잠을 못 자서 기분이 좀 안 좋은
가봐.”
“하-예?”
“응. 이름 예쁘지? 얘 이름이 하예야. 안 하예. 그런데···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둘이?”
“아···. 그냥 좀 그런 일이 있었어.”
그래. 말하기 조금 쪽팔린 일이 있었지. 상당히 거슬리고, 짜증나는
일말이지.
그 남자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내 옆에 찰싹 달라붙은 로운이는 내게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아니, 캐묻는다기 보다 자기 할 말을 늘어놓았다.
“하예야, 해늘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응? 둘이 어떤 사이야? 학교 안에서
둘이
마주친 적도 없었던 것 같구, 서로 아무 말 안 하길래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둘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응? ··· 뭐야, 나한테만 비밀로하구. 무슨 일인데, 응?”
······ 주변에 관심도 참 많다. 귀찮아.
그냥 예쁜 네 얼굴이나 보면서 잘 사세요. 제발.
─────────────────── '프롬:F'의 'Ms. Black Bean' [ 02 ]
Ms. Black Bean [ 03 ]
옆에서 쫑알거리는 로운이와 로운이를 향한 선배들의 애정공세 때문에 수업에는
절대
집중할 수 없었다. 쪽지가 날아다니고 소곤거리고 킥킥거리는 그 무리에서 공부에 집중을
한다면, 그야말로 성인의 경지에 오른 도 닦은 사람이겠지.
수업이 끝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로운이는 선배들에게 둘러싸였고 난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아직 고치지 못한 지퍼 때문에, 또 다시 가방을 끌어안고 자습실로 향하는 길.
날 힐끔거리며 바라보던 남자들 몇몇 중, 한 사람이 달려온다. 그리고 이렇게 묻겠지.
“··· 저기, 너 로운이랑 친하다며? ···· 로운이 뭐 좋아하는지 알려줄 수
있어?”
그래, 그렇게. 그리고 한 명이 저 멀리서 이렇게 묻겠지.
“야! 로운이 지금 어디있나도 좀 물어봐!”
그래, 그렇게. 언제나 똑같은 패턴이지. 그럴 때마다 난, 머릿속에 입력해둔
로운이의
정보를 술술 풀어준다. 이건 좋아하는데 저건 싫어하고, 이럴 땐 이런 걸 좋아하고····.
마지막으로 ‘지금 강의실에 있을 거 에요. 가보세요.’ 하고 말하면 내 임무는 끝이다.
하루마다 있는 일이라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고 선다. 아까 저 사람들한테 말할 때는 뭐 듣고 또 물어보러 온 거야, 귀찮게!
그래, 뭐! 뭐가 궁금한데, 또!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무표정으로 날 관찰하고 있다. 바라보는 수준을
뛰어 넘어, 대놓고 날 관찰하는 수준이다. 나도 그냥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한참동안
날 관찰하던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 어제는 잠을 못자서 좀 예민했고 그래서, 내가 심하게 말한 것 같은데,
미안요.”
“···· 저한테 뭐라고 하셨는데요?”
“음···. 왜 짜증나게 빤히 바라보냐는 뭐····. 그래, 그런 말.”
“····· 괜찮아요.”
웃긴 사람이네.
“진짜··· 괜찮은 거지?”
“진짜 괜찮아요. 왜 그런 걸 신경 쓰는 지, 모르겠을 만큼. 그럼 갈게요.”
어제 무표정으로 잠자던 사람이네. 무표정으로 깐깐하게 말하길래, 그런
사람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찾아와서 사과까지 하고····.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사과할 거면, 사과할 짓이나 하지 말던가. 아니,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는 왜 하는 거야, 왜.
“····· 06학번 국문과 안 하예요. ··· 학생증 드려요?”
“아, 아뇨. 안 하예 학생, 들어가세요.”
나가라고 해도 무시하고 들어갈거니까, 걱정 마세요.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거든요. 이 자습실이 습해서 사람들이 안 오는 게 고마울 만큼
여기가 좋기도 하구요. ·········· 리포트나 하자.
교수님께서 내주신 ‘비교적 쉬운 리포트’는 꽤나 괜찮은 리포트였다. 다만, 리포트가
너무
쉬워 토시 하나에도 점수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게 문제지만 당장 리포트가 겹치고 겹쳐
바쁜 나에게는 나름대로 무너진 하늘의 솟아날 구멍이다.
교수님의 이메일로 리포트를 보내고 나서, 난 다시 펜을 집어 들었다. 어제 리포트
하면서
간간히 중요포인트들을 짜 두어서, 오늘은 쓰기가 한결 쉽다. 아니. 점점 쓰기 수월해진다.
“···· 저기, 지우개 좀····. 어! 하-예. 맞아, 하예 맞지?”
내 어깨를 콕콕 찔렀던 그 사람은 상당히 반갑게 날 불렀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확인했을 때. 나에게 있어 그 남자는 전혀 반갑지 않았다. 커피잖아, 커피.
내 몸에 블랙커피를 부었던 그 인간. ···· 왜 생글생글 웃는 거야. 내 앞에서.
“··· 외, 외면하지 말구. 나 지우개 좀 빌려줘. 시놉을 좀 수정해야 하거든.
지우개를
아까 잃어버려서···. 나 지우개 좀 빌려줄래?”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사람 책상으로 지우개를 던져 주었다. 기분도 안 나쁜
지,
헤실헤실 웃던 그 남자는 ‘고마워.’ 하고 말하기까지 했다. ···· 너도 이 로운 과야.
헤실헤실거리면서 좋은 것만 보고, 칭찬하고, 웃고 , 떠드는 그런 잘난 인간 말이야.
····· 당최. 잘난 인간들 눈엔···· 모든 게 즐거운 건지. 그 기분? 궁금해.
“····음. 난 네 이름 아는데, 넌 내 이름 모르지? 내 이름은 유 해늘이야, 유
해늘.
우리 대학교 들어올 때부터 같은 과였던 것 같은데···. MT랑 OT에 네가 안 나와서
친해질 기회두 없구····. 뭐, 지금부터라도 친하게 지내면···!”
“··· 그럴 마음 전혀 없으니까, 귀찮게 굴지 마요.”
“에이. 존대는 좀 어색하다. 그래도 동갑인데 말 정도는 놓아도····.”
“······· 알았으니까 입 좀 다물어 줄래? 짜증나거든.”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유 해늘인가 뭐신가 하는 그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옆이 한결 조용해졌다. 그래서 다행이긴 했지만, 내가 너무 말을 심하게 한 건 아닌가-
혼자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슬슬 그 생각이 커질 때 쯤·····.
“···· 지금 나한테 한 말 심했는지 고민하구 있니?”
“절대 아니니까 너, 착각하지 마.”
정말 웃겨. 그걸 고민하고 있었던 나나, 또 그걸 알아 맞춘 너나. 다 웃긴데, 난
정말
이런 쪽으로는 관심조차 없어.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 언젠가 무시당하고 상처받을 거면
그냥 없는 듯 살고 싶어. 그게 내 인생관이야, 그래.
머리를 가득 채운 다른 생각 때문에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어차피 짜둔
줄거리도
금방 고갈 났고, 옆에 있는 이 남자애도 거슬리고. 아무튼 난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대충 손에 집히는 것들을 가방에 구겨 넣은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땅히 갈 곳은 없었다. 어차피 다음 강의가 있을 강의실은, 오후까지 쭉 비어있을 테니
그 곳에 가 있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거기서 시간을 때워볼까 했다.
시간을 때운다는 일은····. 굉장히 지겹고 힘든 일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간단한 일이었다.
“······· 어?”
옆 강의실에서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빈 강의실 문을
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그 곳에는 상진 선배가 홀로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조심스레
문을 열었던 나지만, 상진 선배는 인기척을 느끼고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상진 선배가 웃는다. 나를 향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주 작고 미세하게.
상진 선배를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 언제나 들어왔던··· 그 느낌.
“··· 하예, 여기는 웬일이야?”
“아····. 그냥 다음 강의까지····· 음···· 아, 리포트 좀 조용히 쓰고 싶어서요.”
“그래? 그럼 내가 비켜줘야 하나? 하하.”
“아, 아니에요···. 괘, 괜찮아요.”
“실은 나도 조용히 공부하고 싶어서 여기왔어. 자습실은 좀 답답하고···. 뭐. 동지네.”
···· 상진 선배는 또 한 번 웃었다. 가슴이 쿵쾅, 하고 지속적으로 뛰어 왔다. 상진
선배의
옆에 앉아 공부를 하는 내내, 가슴은 뛰고 또 뛰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그러고보면··· 이렇게 꿈만 같아서 멈추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때는··· 아주 여러 번이다.
························그리고 상진 선배와의 일들이 떠오른다.
‘어? 하예 여기 뭐 묻었다. 잠시만···. 됐어, 이제. 이런 거 묻히고 다니면 안
되지.’
‘어? 하예 머리 잘랐네? 저번 머리보다 지금 머리가 더 예쁘다. 거짓말 아냐, 진심!’
‘··· 아, 그러니까 이 문제는···. 어, 벌써 풀은 거야? 이야, 대단한데? 하예, 참 똑똑하다. 최고야.’
‘난··· 하예 참 귀여운 것 같아. 하는 짓도 그렇고,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고.’
‘얼굴? 안 보지, 내가 가릴 처진가? 마음 착하고, 나만 좋아해주면 돼.’
‘그냥 내 눈에 예뻐 보이는 게 예쁜 거 아냐? 남들 신경 쓸 필요, 뭐가 있겠어.’
‘하예? 하예정도면 좋지. 왜?’
··························· 고백··· 해버려?
“··· 저기, 선배.”
“응?”
“저, 저요···. 사, 사실은요- 저, 사실은 선배한테 하고 싶은 말·····.”
“···· 응. 나한테?”
··························· 하지만 굳어가고 있는 상진 선배의 얼굴이
보인다. 상진 선배는 그런
모습을 애써 감추고 있는 듯 했지만 정말 그랬다. 굳어가고···있다.
“······ 이, 이 문제····. 모, 모르겠어요. 가, 가, 가르쳐주세요.
이거.”
“뭐어? 난 또 뭐라구. 어떤 거? 이 문제?”
···· 역시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또 뭐라구.’ 하는 그 대목이
자꾸만
머리를 맴돌았다. 열심히 문제를 설명해주는 상진 선배. 웃음은 잃지 않고 있지만···· 그
이전과는 다른 웃음이다. 내가 정신이 들어올 무렵, 그리고 상진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 난 하예 너처럼 귀여운 동생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위로 누나가
있는데,
누나 성격이 너무 똑부러져서 장난도 못 치거든. 그래서 난, 하예만 보면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하예가 날 친오빠정도로만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아.”
미소를 동반한 그 말. 난 고개를 끄덕였고, 때마침 열린 강의실 문은 상진
선배를
불러냈다. 슬아 선배의 목소리였다. 예쁘고 똑똑한. 그리고 상진 선배를 좋아해주는··· 슬아 선배.
“··· 상진이 너, 여기서 뭐해! 오늘 데이트하러 가기로 했으면서! ···· 응? 콩도
여기
있었네? 이야··· 공부하나 보구나? 그럼 공부 열심히 해! 상진아, 가자!”
상진 선배가 빠져나간 텅 빈 강의실. 그리고 작게 들려오는 상진 선배와 슬아
선배의
목소리. 그리고 그 대화의 주인공은 또 다시 나····.
“···· 상진이 너 쟤한테 너무 살갑게 대해주지 마. 쟤, 분명 니가 자기 좋아해주는
거라고
착각해. 여자가 그래. 그리고 더군다나, 쟤 같은 애는 더 그래.”
“에이, 하예 쟤가 왜 그래. 우리 사귀는 거 알고 있으면서. 안 그래.”
“어어? 그렇다니까? 아무튼 잘 해주지마. 너 쟤 불쌍해서 잘해준다며.”
“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워낙 동생같은데다 애들이 자꾸 짖궂게 놀리니까····.”
····· 안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안다. 99번째. 오늘까지 딱 99번째. 내가
좋아했던
남자에게 그런 소릴 들은 게···· 벌써 99번째. 마음을 찢어야 했던게··· 99번째.
············ 그래. 상진 선배 옆에는 슬아 선배라는 큰 벽이있는데. 그 벽을 뛰어 넘을 수 없잖아.
가끔, 아주 가끔이나마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안 하예····. 니 주제에 무슨 사랑이야, 사랑은.”
우습지, 참 우스워. 너 같은 애가 사랑을 한다는 건 사치야. 너한테는
사치라고.
─────────────────── '프롬:F'의 'Ms. Black Bean' [ 03 ]
Ms. Black Bean [ 04 ]
또 다시 찾아온 밤. 그리고 내가 또 다시 찾아와버린 그 강. 고요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그 속에 비친 날 바라보며, 난 또 다시 울고 있다. 내 바보 같음을 원망하며, 또 한 번 다시.
····· 당장 내일부터 상진 선배랑 어색해질 거야. 선배가 어색해 할 거야. 나 같은 애가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짜증나고 소름이 돋을 거야. 날 멀리할 거고···· 난····. 난·····.
“··· 안 하예 이 바보!! 멍청이!!! 이 바보 멍청이!!! 넌 왜 사는 거야,
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웃건 말건. 날 비웃으며, 이상한 눈초리로 날 훑고 가든 말든.
난
강물에 대고 소리쳤다. 눈물들이 강물로 떨어지지만,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그저 조용하다.
몇 번씩 그렇게 울고 또 울던 난, 쪼그려 앉았다. 무릎 위에 두 눈을 묻고 또 다시 울었다.
“···바보같애. 니가 그럴 자격이 어디있다고, 감히 상진 선배한테 고백을 한 거야!
왜!
비웃을텐데. 분명히 다 비웃을텐데! 알면서 왜 고백을 한 거냐구!! 짜증나게, 바보같이 왜!!”
그렇게··· 한참을 울었을까. 이제는 울 힘조차 없는 내게 핸드폰이 울려온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그 예쁜 주인공들은 자기가 받고 싶지 않은 전화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하니까.
예쁘지도 못하고 함부로 전화 끊을 수 있는 입장도 안 되니까. 참고, 또 참으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누군지 확인도 하지 못한 전화. 그 전화는····.
“····· 여보세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장난전화인 것 같아서 끊으려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저, 저기. 아, 아, 안녕하세요! 시간 있으시면··· 저, 노래
좀····.
“···· 안 사요!”
- 예? 아니, 저···. 구입하시라는 게 아니라, 음···. 그냥 제 노래가 어떤가···.
“···· 안 산다구!!”
- 아···. 실은 제가 어떤 여자한테 노래를 들려주려고 하는데, 괜찮은가 싶어서···.
“안 산다구요, 안 사요!! 왜 나한테 그래요! 왜 짜증나게 그러냐구!! 내가 그렇게 만만해요?
무시하고, 내 말은 무시할만큼 내가 만만하냐구! 사람은 공평하다고 말한 건 사람들인데,
왜 차별하고 난리냐구!! 못생긴게 죄야? 그게 죄야? 그렇게 태어난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난 그렇게 태어났는데, 그게 잘못이야? 왜, 왜 나한테 그래, 왜!!”
그 전화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미친 여자다 싶었을 거다. 대뜸 화내고
성질내는
미친 여자다 싶어서였을 거다. 똥 밟았다, 잘못 걸렸다 싶었을 거다.
····· 그래.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고, 어느 날 비웃고는 잊어줘. 누구에게도 그딴 식으로
기억되는 건 싫어. 나도··· 나 역시도 사람인데 말이야.
- ···· 흠흠············. 들어보실래요?
···· 미친 자식. 사람 기분은 안중에도 없는 미친 자식.
- 흠흠, 제 행운의 전화를 받으신 분께 처음으로 들려드리는 거 에요.
······ 커다란 울타리엔 커다란 소나무 하나
그리고 그 곁으로 날아온 꽃씨 하나
소나무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아름다운 그녀를 위한 노래-
···· 여기까지. 하하하. 심심하거나 궁금하면 전화 주세요. 010- xxxx- xxxx 에요.
전화기록 지우지 말고 계시다가, 노래가 듣고 싶으면 전화주세요. 문자도 괜찮아요.
공짜에요. 유료나 광고 아니니까 걱정 말고 전화주세요. 노래를 평가 받고 싶어요.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그 사람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010-xxxx······xxxx? 그래. 010-xxxx-xxxx. 참 이상한 인간의·· 전화번호.
·····기억할 일도 없고, 기억해낼 거란 보장도 없고, 전화할 일은 더더욱 없으니까.
그만 돌아서려는데, 이번엔 핸드폰으로 문자 한통이 들어왔다. 이 시간에
나한테
문자를 보내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광고 문자일 것 같아서 그냥 두려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자함으로 들어가 본다.
힘들면꼭전화하세요
나외면하면안되요알
죠모른다고하고다시
외면하지말구요꼭이
에요힘들면전화해요
그 번호였다. 웃기는 사람이야··· 정말. 좋아하는 여자도 있다면서 여기저기에
이렇게
잔정을 뿌리고 다니면 쓰나. 누군가는··· 자길 좋아해서라고 생각할 텐데.
아니지. 얼굴도 모르는데 뭐 어때. ···· 얼굴 모르는 장난감은 더 재미있으려나?
·········· 그래, 심리가 다 그렇잖아. 궁금하겠지. 궁금해서 한 번 장난 좀 쳐보는 걸거야.
너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할 거면···· 아예 생각이란 걸 하지 마, 안 하예.
그런 일은····· 없어.
“····· 모르겠다.”
·········· 다 잊고 그냥 집에나 가서 하던 대로 어울리게 발이나 닦고 잠이나 자야지.
아니, 그 전에
리포트부터 해결하고 자야지. 그 놈의 리포트 때문에 내가 미치지, 미쳐.
내 꿈이었던 예쁜 여대생으로 살아갈 길을 막아버린 이 녀석. 이 녀석만 없어도··· 살 맛··· 아니.
그래도 여전할 거야. 달라지는 게 뭐가 있겠어, 다 핑계지.
남현 선배 말대로 내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가뜩이나 까맣고
까칠거리는
얼굴은 더욱 더 심하게 변했다. 가뜩이나 작은 눈은 뜬건지 아닌지 구분할 수조차 없게
부어버렸고, 답답한 입 주변이 하얗게 일어났다. 참···· 너 참 못났다. 어쩜 이렇게 생겼니.
그래도 학교를 안 갈 수는 없어서, 모자 하나 눌러 쓰고 집을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모자를 써도 가려지지 않는 내 얼굴. 사람들 시선을 온 몸으로 받고 있다.
“···· 저 여자 봐봐. 모자 썼는데, 얼굴이 다 보여.”
“진짜? 야, 최고다.”
“··· 나 저런 얼굴 처음 봐. 신기해. 왜 안 꾸미고 다니지, 저 여자는?”
“꾸며도 안 이쁘니까 포기한 거 아냐?”
깔깔거리며 내 옆을 지나가는 두 여자.
··· 그래. 예쁘고 잘난 인간들만 가득한 이 세상에 태어나 미안하고 죄송하고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예뻐서 좋겠네. 꾸며서 예쁠 수 있어서, 참 좋겠다구. 그래, 부럽다구.
그래도 일찌감치 주제 파악하고 찌그러져 있으니까··· 날 너무 원망하진 말아달라구. 그것 뿐이야.
학교는 유난히 시끌벅적했다. 강의가 끝나고나면 언제나 펼쳐지는 광경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더욱 강의실 앞이 학생들로 붐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하예야~~”
저 멀리서 들려오는 로운이의 목소리가···· 두렵다, 이젠. 또 무얼 요구할까.
어딘가로
날 데리고 갈까? ······ 또 선배들은 나타나서 눈치 줄 거고, 로운이는 생떼를 쓸 거고.
그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다시 로운이를 보내면 또 다시 소문이 돌겠지.
‘안 하예가, 그 까만 콩이 로운이가 부탁한 거 다 거절했대!’ 하는 그런 소문들···.
“하예야, 오늘 과 회식 한다는데, 갈 거지?”
“··· 회식? 웬?”
“그냥 친목도 다질 겸 해서. 노래방두 가구, 영화두 보구. 그럴 거라는데, 가자.”
“······됐어. 그런데 취미 없어.”
“취미 있어야만 가나? 하예야, 가자- 이럴 때 친목 다지는 거지. 응?”
로운이는 옆에서 징징거리기 시작하고, 내 앞으로 어색한 미소의 상진 선배가
보인다.
지수 선배도, 슬아 선배도, 그리고 남현 선배도. 다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다.
····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로운이는 입이 삐쭉, 튀어나와 있다. 내 팔을 잡고 늘어지며
가자고 징징거리는 로운이. 로운이만 오길 바랬을 텐데, 로운이가 날 잡고 물어지니···
짜증이 나는 지, 하나하나 내 쪽으로 시선이 몰리기 시작한다. 이런 시선··· 정말 싫어.
············ 그래서 말했던 거잖아. 그런데 취미 없다고. 가고싶지 않다고.
“··· 그냥 놀다 와. 말했잖아, 그런 쪽에 취미 없다구.”
“그래두. 매번 나 혼자만 가잖아. 친목 다질 수 있는 기회 별루 없구, 하예는 그동안
이것저것 많이 빠졌으니까. 이런거라도 가면 좋잖아. ··· 진짜 하예두 같이 가면 좋은데.”
“···· 지가 뭘 잘났다고 챙기는 척은.”
“··· 예?”
우리 대화 사이로 그 목소리가 들어왔다. 저 말투···· 왠지. 왠지 들어본
말투.
“되먹지도 않은 챙기는 척 하지 말라고. 착한 척 해서 이미지 관리하려는 수작
아냐?”
“···· 그렇게 보였다면 죄송하지만, 전 아니에요.”
“그렇게 보인 것 자체가 그래. 위하는 척 해봐야, 얘한테 하나 도움 안 돼, 넌.
니가 얼마나 잘났다고 다른 사람 친목까지 챙겨? 니가 얘 먹이라도 물어다 주고 있다고
생각해? ··· 아니, 전혀. 넌 니 먹이를 따로 챙기고 있어. 이미지 관리, 니 목표잖아.”
“이보세요-”
“니가 뭘 잘났다고 그딴 말을 해? ···고양이 쥐 생각은.”
“···· 잠시만요. 제 얘기-”
“맞잖아. 진정으로 얘를 위하면, 넌 그렇게 행동 안 할 거야. 사람 많은 쪽으로 애 끌고
다니면서 니 이미지 관리 하는 거잖아. 그 시선··· 은근히 즐기는 거 아냐?”
이 사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또. 이 로운 추종자들한테 무슨 소리를
들으려구.
“···· 그만··· 하세요. 로운아 그냥 가서 놀아. 이 사람 말이랑 난 신경 쓰지
말고.”
“···· 하예야, 그렇지만-”
“그냥 가서 놀다 오라구. 난 리포트도 써야하고, 할 게 많아. 가서 놀다 와.”
로운이의 등을 떠밀어 선배들이 있는 쪽으로 보냈다. 로운이가 못 이기는 척
걸어가고
선배들도 이 남자한테는 별 신경 쓰지 않은 채 로운이를 위로하기 급급하며 내 눈 앞에서
사라져 갔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 남자도 날 바라보았다.
“···· 이렇게 건방진 말 툭툭 내뱉어 놓고, 이따가 로운이한테 사과하러 갈
거죠?”
“····· 글쎄. 난 그냥 널 도와주고 싶었던 건데.”
“멋있는 척 하지 말아요. 당신이야 말로 하나도 도움이 안 됐거든요.”
“그래? ···그래도 내가 귀찮은 저 여자 떼어내 줬잖아. 이만하면 도움 된 거 아닌가?”
“···· 당신도 귀찮아요. 그리고, 절대 아니네요.”
나는 그냥 가던 길을 가기로 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 대학이 이렇다는 걸, 2년 만에 다시금 깨닫고 있다.
“······· 콩.”
“···· 콩이라고 하지 마요. 모르는 사람한테 그 말 들을 이유 없고,
말했 듯, 당신이 더 심해. 당신이 더 귀찮다구요. 더가 아니죠, 아주. 세상에서 제일.”
“거기 이름을 몰라서.”
사람 말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그런데 왜 반말까지 해요? 내 이름도 모르면서.”
“···· 모르니까. 이름이 뭐야?”
“·······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아요. 더 마주칠 일도 없을 것 같고.”
“모르는 일이지. 난 한 다온이야. 한, 다, 온. 기억해두면 좋지 않을까?”
“···· 그다지요.”
“아. 우리 동갑인 것 같애. 언뜻 들은 기억도 있거든.”
“그러시겠죠.”
참 그러기도 하시겠죠. 참견쟁이 한 다온 씨.
─────────────────── '프롬:F'의 'Ms. Black Bean' [ 04 ]
Ms. Black Bean [ 05 ]
더 이상 수업도 없고 자습실에만 있기도 뭐해, 그냥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한참
시끌벅적하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캠퍼스를 가로질러 나오는 길····.
둘·둘씩 짝지어 놀고 있는 사람들 틈 속을 혼자 걷고 있으니, 참 모양새도 우습다.
우스운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조용히 걸어가던 참이었다. 운동화 끈이
풀어져서, 그 자리 쪼그려 앉아 끈을 묶고 있는데 캠퍼스 끝 쪽 마련되어있는 벤치에
앉아있는 두 여자의 대화가 들려왔다. 들으려던 건 아니지만.
“···· 야, 너 걔 알지? 그····. 이름까지는 모르겠구, 걔 이 로운이랑 다니는 여자애
있잖아.
뭐지? 뭐라더라? ··· 콩? 뭐 그렇게 불리는 애 있던 것 같은데.”
“막 키 작아가지고 뚱뚱한 애?”
“그래, 걔. 걔네 과 선배들이 걔 불쌍하다구 막 친한 척 좀 해주고 그랬다나봐. 그런데
진짜 웃긴 건, 어떤 남자애가 걔 편들면서 이 로운한테 막 뭐라구 그랬대. 막 니가 잘났냐,
어쨌냐. 그래가지구 막 이 로운 울려구 그러구···. 장난 아니었데.”
로운이··· 울려고 했구나. 아니, 그 전에······. 내가 불쌍해보이는구나.
역시···.
“누가 걔 편을 들어? 걔 놀아주는 애 이 로운밖에 없잖아.”
“몰라. 뭐 그 과 남자애라는 것 같은데, 걔도 친구 없데. 맨날 혼자 다닌다는데?”
“그래서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는 건 가봐. 걔네··· 진짜 웃긴다.”
‘‘아니, 그래도 그 남자애는 좀 생겼다나봐. 키도 왠만큼 되고, 얼굴도 괜찮다는데?’’
“그럼 뭐야, 대체? 그런 애가 왜 안 하예 편을 들어줬데? 웃긴다.”
···· 그래. 비웃어라, 비웃어. 그래, 내가 죄인이다. 내가 죄인이니까,
비웃든지.
내일부터는··· 학교도 각오하고 나와야겠네. 로운이가 울먹거렸으면 로운이
추종자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고. 벌써 다른 과까지 소문 퍼졌으면, 학교도 편하진 않겠다.
그 남자는 왜 쓸 데 없는 소리를 해가지고 남의 인생을 망치려고 들어. 아우, 갖가지로···
저엉말 갖가지로 열 받는다. 이러다··· 볶음 콩 되겠네.
“···· 저기, 하예야!”
그냥 고개 숙이고 일어나려는 날 가로막은 이 남자. 이제 목소리까지 귀에
익어간다.
더불어, 쪽팔린다. 방금까지 내 흉 받던 두 여자로부터 100m 겨우 떨어진 곳인데····.
넌 또 왜 와서 친한 척이냐구! 매번 여자들한테 둘러싸이는 거, 너잖아, 너!
····· 어후. 정말 갖가지로 사람 곤란하게 만든다. 돌아가면서, 아주!!
“···· 자습실에 노트 놓고 갔더라구. 아까 보니까 열심히 줄거리 짜고
있던데····.
금요일 제출이라 많이 바쁘지? 이야, 여기서 만나서 다행이다. 여기서 못 만났음
하루 종일, 이 공책 찾았을 텐데 말이야. 여기.”
싱글싱글. 뭐가 그리도 좋은 지 웃고 또 웃는 이 남자. 그리고 날 째려보는 저 두
여자.
내일 쯤, 또 소문나려나? ‘걔 콩 있지? 남자한테 집적대더라? 재수없어.’ 하고 말이다.
내일부터는 정말. 정말, 여러모로 각오하고 와야겠다. 안 하예 인생, 왜 이러는 거야, 대체.
“···· 노트, 안 받아? 중요한 거잖아. 자.”
“···· 고마워. 간다.”
“무성의하긴. 조심해서 가! 나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하하하.”
커피를 온 몸에 확 부어버릴까. 이 뭣 같은 자식. 사람 인생 망치려고 작정을
했구나.
··············· 내 꿈은 조용히 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어디론가 나가는 거야.
아니, 그 전에 나갈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 이 답답하고 질겨서 날 안에 가두고 있는
세상을 뚫을 수 없다면····· 죽어야지. 죽을 수만 있다면··· 행복할 거야.
“다음에는 빠지지 말고 같이 가서 놀자! 로운이도 아쉬워하는 모양이더라! 잘
가!”
······그래. 뒤통수 조심하면서 잘 갈게. 내가 살아서 가길 기도해줘라. 그래,
그래.
그 남자애로부터 벗어나, 겨우 집으로 가나 싶었는데. 계단을 타고 내려가던 도중에,
내가 고개를 들자마자 또 다른 상황이 날 맞이했다.
····· 로운이가 있었다. 그 남자와 함께 서 있는. 또 사과하는 모양이네.
“나는 괜찮은데. 그만… 가 봐도 괜찮아….”
“···· 그래도··· 미안. 말이 막나가는 버릇이 있어서. 정말····· 아냐. 다만-”
“정말··· 괜찮아. 바쁘다면서, 그만 가도 돼. 난 정말 괜찮아.”
“····· 그리고 부탁인데, 그 비밀 좀 지켜줘.”
“하- 음, 그래. 꼭 그럴게.”
거봐. 사과 안 할 듯하더니 또 사과하고 있잖아. 그럴 거면 막말을 하지 말던가.
아니면
차라리 사과를 하지 말고 안면몰수를 하시던가. 대체 뭐하는 인간이야, 저거. 궁금하다.
혼자서 중얼중얼··· 바보마냥 서 있던 게············ 역시 문제였다.
“··· 어? 하예야!”
“··· 하예? 아하.”
둘이 동시에 날 발견해 버렸다. 벙찐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있는 나를. 나를
발견했다.
“··· 벌써 가? 아, 이제 수업 없는 거야? 좋겠다!”
“···응. 얘기 방해한 것 같은데··· 그냥, 얘기들 계속 해.”
“아냐, 다온이랑 얘기 다 했어···.”
벌써 이름까지 부르는 사이가 됐구나. 로운이 넌, 참 좋겠다. 사람들이랑
거리낌없이
친해질 수 있으니까. 사람들도 널 좋아하고, 너도 사람들을 좋아하고···. 참 좋겠다.
“···콩. 아니아니, 하예.”
“···갈게요. 여기 있어봐야 좋을 일 없을 것 같네요.”
“말을 해도, 꼭···.”
“···나중에 사과나 하러 오지 마세요. 상처 안 받거든요.”
“하예야, 잘가! 내일 보자!”
“잘가, 콩···. 사과하러 정말 안 간다? 상처··· 받지마. 가.”
아무튼 우리 학교는 정상적이지 못한 듯싶다. 고3때 너무 열렬히 공부한
사람들만
모여서이거나, 아니라면 타 대학에서 떨어지고 그 충격으로 붙은 인간들만 보였거나.
당최 정상인은 하나 없다. 버젓이 1학년도 있는데 3,4학년은 2학년만 챙기고 있고
이로운 추종자, 그리고 유해늘? 걔 추종자들이 아주 활발할 활동을 벌이고 있고.
누군 욕먹고 있고, 또 누군 욕하고 있고. 이상하게 얽히고 섥혀서는···· 복잡하다.
“····· 몰라. 안 하예 넌···· 하루 이틀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중얼거려.”
그런데… 다시 떠오른다. 학교의 풍경이··· 그리고 나를 욕하고 있는 학교의
풍경이.
왠지 몰라. 그런데··· 시시때때로 떠올라. 날 울게할 그 모습들이 말이야.
·········· 왜 자꾸 혼자만 되면 이런 일들을 떠올려. 왜 자꾸 울려고 해. 이러지 않아도 되잖아.
‘···· 야, 너 걔 알지? 그····. 이름까지는 모르겠구, 걔 이 로운이랑 다니는 여자애
있잖아.
뭐지? 뭐라더라? ··· 콩? 뭐 그렇게 불리는 애 있던 것 같은데.’
‘막 키 작아가지고 뚱뚱한 애?’
‘그래, 걔. 걔네 과 선배들이 걔 불쌍하다구 막 친한 척 좀 해주고 그랬다나봐. 그런데
진짜 웃긴 건, 어떤 남자애가 걔 편들면서 이 로운한테 막 뭐라구 그랬대. 막 니가 잘났냐,
어쨌냐. 그래가지구 막 이 로운 울려구 그러구···. 장난 아니었데.’
··· 난 또 다시 쓸모 없는 녀석. 난 또 다시 귀찮은 녀석. 난 또 다시 방해되는
녀석.
뚱뚱하고, 불쌍하고, 착한 사람이나 울리는 못된 녀석. 콩이라고 불리는··· 못생긴 녀석.
애써 다른 생각을 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을 보며 마음을 달래보려
했지만····
눈물은 고이고 또 고였다. 정말 하루 이틀이 아닌데. 21년 내내, 그렇게 산 기억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왜 자꾸 눈물이 흐르고 또 흘러서 날 아프게 하는 건지.
왜 자꾸 마음은 찢기고, 가슴이 시리고, 왜 또 다시 울어야 하는 건지·······.
죽고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 안 하예, 매일 여기 발도장찍구 가는 구나. 여기밖에··· 올 데도 없니,
넌.”
내 신세를 한탄해봐야 달라지는 건 하나 없었다. 매일 이곳에 선 난···· 고요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죽고 싶다, 살고 싶지 않다····. 수백 번 외치고 돌아선다. 하지만 결국
이 깊고 넓은 강물에 뛰어드는 건 내가 아니다. 그런···· 마음뿐이다.
겁쟁이가 돼서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그 좁은 방에서 혼자 운다. ··· 아마, 오늘마저도.
“····· 언제. 대체 어제 언제 죽을 수 있는 거야? ···· 태어나자마자 죽는 사람도
있고,
아파서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사고로 죽는 사람도 있구····. 그렇게 많은데 난·····?
난 언제 죽을 수 있는 거야, 대체? ··········· 이딴 취급 받으면서 살아야 해? 꼭?”
강물은 대답이 없고, 그저 사방에서 사람들 웃음소리만 들려온다. 오늘따라···· 더
이곳에
빠져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오른쪽 발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잠깐.
아주 잠깐 중심이 잡히지 않아 기우뚱거린다. 다시 내가 중심을 잡고 설 때 쯤, 핸드폰이
또 다시 울려왔다. 조금은 다급하다 싶게.
- 저, 저····. 안녕하세요! 음····. 아, 제 목소리 기억
하시나요?
······ 소나무와 장미.
- 힘들면 전화달라구 했는데···. 아, 아니····. 뭐, 그렇게 되면 전화가 영영 안 올
것
같아서요! ·····꼭 노래 들려주고 싶어요. 하루라도 빨리 그녀한테 노래를 다 들려주고
싶어서요. 멋있게는 못해줘도 내가 만든 노래 꼭 들려주고 싶거든요.
“····· 다른 사람 알아봐요. 난 음악이란 안 친한 사람이니까.”
- 그래도··· 이 행운의 전화 받은 행운의 주인공인데. 노래 좀 들어줄래요?
“······ 그럴 기분 아니에요.”
- 무슨 일···· 있어요?
“알 바 아니잖아요. 말해주고 싶지도 않아요. 앞으로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그래. 귀찮게 하지 마, 제발. 너무 귀찮아서 짜증이 나려고 하니까.
- 흠흠. 그럼 일단···· 노래 불러줄게요. 마음에 들면, 꼭 얘기해
주기에요.
이상한 사람이야··· 정말.
- 커다란 울타리엔 커다란 소나무 하나
그리고 그 곁으로 날아온 꽃씨
하나
소나무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아름다운 그녀를 위한 노래
언제나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던 소나무
그 곁으로 바람 타고 꽃씨 하나가 도착했죠
조그맣고
볼품없는 그 꽃씨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죠
조그만게 자꾸만 눈에 보여 거슬린다 생각했었지만
아무런 내색하지 않았던 나를 안 건지 꽃씨가
사라졌어요
그렇게 또 다시 시작된 노래. 다리에 힘이 풀렸고, 그 자리 그대로 주저앉은
난
그 사람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꽃씨, 그리고 소나무····. 행복한 사람들이네.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행복한 사람.
-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얘기해 봐요. 무슨 일 있어요?
·········· 괜찮을 만 하면, 오늘은 여기까지래.
무슨 일····· 있느냐고? 그래···.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 죽고 싶어서요.”
- ········ 에? 왜요? 왜··· 죽고 싶다고 생각해요?
“····· 난 못생겼으니까.”
- 에이! 그건 아니라고 봐요.
······· 뭐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짓밟혀왔는데, 죽는 건····
아니라고?
- 당신은··· 분명히 예뻐요. 충분히 예쁘다구요. 목소리도 참 예쁘고.
“······ 거짓말 하지 마요. 난 못생겼어요. 키도 작고 뚱뚱해요. 눈도 작고, 코도 낮고,
입도 작고, 피부도 더럽고 까매서····· 난 내 주제를 파악하면서 살아야 해요.
이런 내가 예쁠 리가 없잖아. 할 줄 아는 거 아무 것도 없는데····. 위로, 전혀 안 돼요.”
- 너무 큰 자기 비하다. 그건 자기 생각이지. 세상에 안 예쁜 사람이 어디있다구 그래요.
“··· 여기 있어요, 안 예쁜 사람. 소나무 씨, 당신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모르겠고, 그 쪽에
관심도 없고. 아무튼 난 죽고 싶을 정도로 못 생겼어요.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 그대로.
···· 내가 아닌 사람은, 날 몰라요. 나밖에 몰라요.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래도 내 머릿속에는 소나무라는 그 사람이 불러준 그
노래가
맴돌고 또 맴돌았다. 두 번째 듣는 노래, 그래서인가····?
커다란 울타리엔 커다란 소나무 하나
그리고 그 곁으로 날아온 꽃씨 하나
소나무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아름다운 그녀를 위한 노래·········.
─────────────────── '프롬:F'의 'Ms. Black Bean' [ 05 ]
Ms. Black Bean [ 06 ]
또다시 지구가 빙글 돌아 아침은 찾아오고, 난 다시 학교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로운이는 내 앞에서 활짝 웃었고 선배들도 로운이를 감싸고 쟁탈전을 벌였다. 똑같다.
오늘도 똑같다. 오늘도 이 곳 어딘가에서 날 비웃는 사람이 있고, 욕하는 사람이 있고.
난 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마음속으로 밀어두었던 눈물을 강물에 떨어뜨리고·······.
오늘은 제발 날 욕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걸어가는 중. 누군가가 말을 걸어
온다.
“····· 저, 안녕? 또 자습실 가? 나도 자습실 가는 길인데. 가는 길이면 같이
가자.”
“···· 그다지.”
“가방 지퍼··· 아직도 안 고쳤어? 저번부터 계속 찢어져 있던데.”
“어쩌다보니까.”
“와아, 책 정말 많다. 좀 들어줄게, 줘.”
“됐어.”
“괜찮아, 줘!”
“내가 됐다고. 내놔.”
“괜찮아. 이런 건 남자가 딱, 멋있게 들어주는 거야. 어차피 난 짐도 없고.”
“됐다고.”
나는 그 남자애가 들고 있는 내 책들을 다시 뺏어왔다. 그리고 나름대로 걸음을
재촉해서
걸어가고 있는데, 그 남자애는 별다르지 않은 속도와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히죽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다. ····· 난 너랑 엮이고 싶지 않단 말이야. 절대, 절대로 말이야.
“···· 나한테 뭘 바래?”
“응? 왜?”
“뭘 바라냐구. 뭘 바라 길래 자꾸만 집적대냐고.”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내 이름 저번에 말해 줬는데, 까먹었지?”
“관심 없어.”
“유 해늘. 어려운 이름 아닌데···. 우리 좀 친해지자! 친해지고 싶어.”
‘니가 왜?’ 하고 물으려다 말았다. 상대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체크를 하려는데 내 뒤를 따라 바로 들어온 그 남자애가
나보다 먼저 입을 열어 버린다.
“06학번 국문학과 안 하예랑 유 해늘이요. ··· 학생증, 드릴까요?”
“··· 아뇨. 두 학생 다 들어가셔 돼요.”
자습실 관리자가 웃으며 말했고, 돌아서는 내 시선에 날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
애가
보였다. 왜 자꾸 싱글거리는 거야, 두렵게.
“나도 이름이 독특해서 그런가, 이런 데 오면 학생증도 보여줘야 하고 그래.
해늘,
내 이름이 그렇게 어려운가? 난 내 이름이 그냥 예쁘고 좋은 이름인 줄만 알았는데.”
“··· 쫑알대지 말아줄래? 귀찮거든.”
“응, 쉿.”
····· 쉿. 그래. 쉿. 잘하면 쉣이겠지만.
····················하지만······ 곧 쉣으로 변해버리려고 해.
“저기 있잖아, 아직도 과제 때문에 소설 쓰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 좀 볼 수
있을····”
“··· 저기 있잖아, 몇 번씩 말했지만 난 니가 귀찮거든? 너랑 친해질 생각도 없고,
너랑 엮일 생각도 전혀 없어. 난 너랑 어울리고 싶은 맘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해.
넌 그냥 너랑 어울리는 사람들이랑 놀아.”
“나랑 어울리는 사람들이··· 누군데?”
“정상적인 인간들. 어느 선 위로 우뚝 서 있는 그 인간들.”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가장 쉬운 예로 이 로운. 로운이뿐이냐구? 아니. 남현 선배, 상진 선배, 지수 선배,
슬아 선배, 예영이, 승영이, 그리고 너랑 붙어다니는 니 친구들. 그래, 그런 사람들,
아니, 날 제외한 모든 사람들. 그 잘난 사람들.”
“····· 걔네가 왜?”
“그 잘난 인간들이랑이나 어울리라구! 왜 나한테 와서 자꾸 집적거리는 거냐구, 왜!”
“····· 친해지고 싶다니까?”
말할 가치가 없다. 이런 인간들을 백번을 상종하나 천 번을 상종하나··· 모두 같은
결과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짜증날 만큼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자꾸만 다가오는 이런 인간들.
········· 날 더욱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뜨리면서 날 울게 만드는 이런 인간들··· 정말 싫어.
싫은데, 마음 한 켠은 이 사람들을······ 부러워해. 너무 잘나서. 너무 착하고, 잘나서.
“···· 너,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좀 잘해주고 싶어? 친해지고 싶어?
동정으루?
동정하지 마. 너 따위가 해주는 동정, 필요 없거든? 정말 너같은 애 도움, 동정···· 하아.
다 필요 없어. 나 혼자 살아가는데, 니가 뭔데 동정을 하는데!”
“동정··· 아냐. 그냥 너랑, 친해지고 싶다구.”
“···· 그만해, 그만하라구!! 농담은 더럽고, 동정은 더 더러워, 수치스러워! 내가 너한테
동정 받아야 할 이유는 뭔데!! ··· 아, 못생겨서? 피부도 까맣고, 얼굴에 잡티도 많고,
키 작고, 뚱뚱한데다가 쌍꺼풀도 없고, 눈도 작고, 코도 낮고, 입도 작고!!!
할 줄 아는 거 하나 없어서? 그래서? 내가 너한테 동정 받아야 해?!! 가, 저리 가!
난 니가 싫어! 니 옆에 있는 나까지 싫어지려고 해! 제발!!”
······ 습관처럼 되어 버린 또 한 번의 자기비하. 날 스스로 어둠 속으로 밀어넣고,
마음에도 없던
소리까지, 진심으로 가장 해 입 밖으로 힘 주어 내보내 버린다.
자습실이라는 꽉 막혀있는 장소라는 것도 잊고.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잊고.
소리쳤다. 왜···· 얘한테 화를 내게 된 거야. 정말···· 정말 잘못 없는 애일 수도 있는데.
세상에 단 하나 있을··· 진심으로 다가올 사람일 수도 있는데. ········· 후회되려고 해. 바보같이.
아니, 후회하지 않아. ········· 그런 인간은 없어. 로운이도, 너도 아냐. 그런 인간은 없어.
············ 그저 자기를 위해 살 뿐이야. 누가 그랬었잖아, 자기를 위해 이용한다고. 난··· 이용당하는거라고.
“···· 그거, 정말 아니라고 봐.”
“···· 뭐?”
“넌 왜 그렇게 생각해? 왜 내가 널 동정하고 있다고 생각해? 왜 니가 못생겼다고만
생각하는 거야? 넌 예뻐. 넌 모르는 네 아름다움은 많아. 그런데 왜 못생겼다고 생각해?”
저 말투······.
“···넌 분명히 예뻐. 충분히 예뻐. 세상에 안 예쁜 사람은 없어. 그저 사람은 평등할
뿐이야.”
··· 정말, 정말 저 말투········.
-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얘기해 봐요. 무슨 일 있어요?
“······ 나 죽고 싶어서요.”
- ········ 왜요? 왜··· 죽고 싶다고 생각해요?
“····· 난 못생겼으니까.”
- 에이! 그건 아니라고 봐요.
······· 뭐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짓밟혀왔는데, 죽는 건····
아니라고?
- 당신은··· 분명히 예쁠 거에요. 목소리도 참 예쁘고.
“······ 거짓말 하지 마요. 난 못생겼어요. 키도 작고 뚱뚱해요. 눈도 작고, 코도 낮고,
입도 작고, 피부도 더럽고 까매서····· 난 내 주제를 파악하면서 살아야 해요.
이런 내가 예쁠 리가 없잖아. 할 줄 아는 거 아무 것도 없는데····. 위로, 전혀 안 돼요.”
- 그건 자기 생각이지. 세상에 안 예쁜 사람이 어디있다구 그래요.
“··· 여기 있어요, 안 예쁜 사람. 소나무 씨, 당신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모르겠고, 그 쪽에
관심도 없고. 아무튼 난 죽고 싶을 정도로 못 생겼어요.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 그대로.
···· 내가 아닌 사람은, 날 몰라요. 나밖에 몰라요. 내가 얼마나 힘든지.”
······· 그래. 그 소나무.
“········ 너였구나?”
“뭐, 뭐가?”
“소나무 말이야. 대뜸 전화해서 노래 부르고 난리쳤던 그 소나무. 목소리가··· 익숙해.”
“········· 아, 아냐. 나, 나, 아냐.”
아니, 너야. 너야, 그 소나무는···. 그 말투, 그 억양, 그 목소리. 너야, 소나무는
너야.
············ 그리고 난, 지금 쪽팔려 죽겠어. 이유? 니가 소나무라서.
“······ 노, 노래 좋더라. 어떤 노래인지, 아직 다 듣진 못했지만 니가 좋아한다는
여자가
들으면 좋아할 것 같아. 꼭 불러줘. 그 여자 감동할 테니까. 좋아할 거야, 분명.
······ 있지. 하나만···· 부탁해도 돼? 정말 딱 하나만.”
“가, 갑자기 왜 그래- ·········뭔데.”
“········ 비밀로 해줘. 얼굴 때문에 쪽팔려서 죽으려고 했다는 거. 그거 비밀로 해줘.”
쪽팔려. 그거 정말 쪽팔려. 기사 한 면에, ‘외모 비관 자살’ 하고 나오는 거, 그거
쪽팔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렸음 좋겠어. 그냥, 그냥 자살을 해도····. ‘여대생 1명 자살’하고
나왔으면 좋겠어. 죽는 게 겁나는 건 그거야. 내가 죽고 나서도, 얼굴 때문에- 내 행동이
욕먹고 질타 받을까봐. 죽어서도 욕 먹을까봐. 그게 두려워.
········· 모든 게 두려워. 모든 게 쪽팔려. 너도, 그리고 나도, 이 세상도 두렵고 쪽팔려.
“··· 진심이야. 너 충분히 예뻐. 넌 너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정말이야. 넌
예뻐.”
“그런 말, 정말 안 해줘도 되니까. 아니, 그렇게 실컷 놀려도 뇌까··· 비밀만 지켜줘. 니가
전화로 들었던 거··· 비밀로···· 비밀로 지켜줘, 부탁이야. 제발.”
“하, 하예야····.”
“죽고 싶어. 날마다 죽고 싶어. 그런데····. 얼굴 때문에 쪽팔려서 죽고 싶다는 거.
그거 알려지는 건 죽는 것보다 싫어. 부탁이야, 제발 부탁이야.”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내게 손수건 하나를
건네줬다.
고마웠다. ····· 너무나도, 고마웠다.
“···············고마워.”
···· 하지만, 난 비밀 감추기에 급급하여 가장 중요한 하나를 잊고 있었다.
그 중요한 하나란·····. 절대, 인간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프롬:F'의 'Ms. Black Bean' [ 06 ]
Ms. Black Bean [ 07 ]
학교에 들어섰을 때, 날 향한 수근거림이 심상치 않다 싶었다. 날 향한 시선이 왜
그렇게
묘한 느낌이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갈 듯했다. 그리고 결국, 학교 한 복판에서 난
그 수근거림과 시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 쟤가 유 해늘한테 얼굴 때문에 죽고 싶다고 그랬나봐. 그래서 유 해늘이 막,
넌
예쁘다는 둥 어쩐다는 둥하면서 달랬다나봐. 마음에 없는 소리 하느라, 걔만 힘들었지, 뭐.
어쩐지 유 해늘이 요즘 쟤랑 붙어있는 게 심상치않다 싶었어. ··· 어우, 정말. 별꼴이야.
어쩜 못생긴 애가 저렇게 주제 파악도 못 한데? 웃겨 정말.”
미치겠어, 정말 미치겠어. 못생겼다는 죄로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미치겠어.
순진무구한 얼굴로,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그 얼굴로···· 아주 즐겁게, 자기가 가지고 논
장난감에 대해 웃고 떠들었을 그 가증스러운 얼굴 찾아서, 따질 거야.
학교 안을 뒤지고 또 뒤졌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그리고 그 못난
얼굴로
찾은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누군 울고 있는데, 누군 웃고 있다. 웃고 있는 사람 땜에
울고 있는 사람. 이건 정말···· 배리다.
나는 유 해늘한테 다가섰고, 그 애는 여전히 순진무구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 야, 콩!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손이 멋대로 올라가고, 멋대로 그 손은 유 해늘의 뺨을 향해 내리쳐졌다. 내 손을
거칠게
치워낸 유 해늘의 친구가 날 향해 소리쳤다. ···· 참 의리 좋은 친구이시네.
“떠벌리고 다니니까, 좋아? 남의 비밀, 그딴 식으로 떠벌리고 다니니까
좋냐구!!!!
···· 비밀로 해주겠다며. 그렇게 말한 건 넌데, 내 부탁에 응한 건 넌데, 왜!!!
동정? 동정 아니라며. 그래, 동정 아니구 그냥 한낱 장난이었니? 농담이었지? 나같은 애,
그저 심심풀이 땅콩이었지? 니 심심함에 놀아나는 거였지, 나?!!!!! 너 뭐야, 대체 너!!”
“야, 콩! 너 말이 심하다? 야, 너 뭔데! 넌 뭔데 애를 때려, 야!”
“···· 좋아? 재미있어? 니가 떠벌린 소문이 학교 타고 다니니까 좋아? 이참에 유명세 타겠네.
더 유명해지겠네!! 좋아? 그렇게 좋아? 사람가지고 놀면, 그렇게 재미있어? 착한 척,
고상한 척, 넌 아닌 척!!! 이럴 거면 그딴 척은 왜 했는데? 이렇게 드러나버릴거, 왜 그동안
힘들게 숨겼는데!! 잠시나마, 아주 잠시나마!!! 널 믿었던 내가 잘못이었어. 내가, 내가!!!!!”
“아니, 보자보자하니까 이 기집애가!”
“··· 은혁아 하지마. 하예야, 난 니가 무슨 소리 하는 지····”
“착한 척. 또 그렇게 착한 척!!! 난 너 같은 애들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니가 제일 싫어!!!”
하도 악을 썼더니, 목 한 쪽이 아파온다. 하지만 분은···· 풀리지
않는다.
“···· 하예야, 미안한데 내가 무슨 일인 지 모르겠어서 그래.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너한테······ 질리려고 해, 진심으로.”
그대로 그 곳을 벗어났다. 세상이 날 더럽다 취급했지만, 이젠 내가 세상을 더럽다고
생각해.
정말이야. 더러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만큼.
※
···· 하예가 때린 뺨. 얼얼하다. 그리고 지금 기분 또한 얼얼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예가··· 이유 없이 저러진 않았을 텐데. 이상하다, 무슨 일이지?
“야, 요즘에 불쌍해서 쟤 좀 데리고 놀아주고 그랬다며? 야, 너 앞으로는 그러지
마.
고마운 줄도 모르고 쟤 하는 것 봐라. 야, 넌 너무 착해서 탈이다. 응?”
“···· 누가 그래? 내가 하예 불쌍하게 생각한다고. 그래서 데리고 놀아줬다고.”
“아, 아냐? 애들이 다 그러던데? 소문도 났고.”
“···· 내가 데리고 놀아준 거 아냐. 같은 위치에서 어울린 거야. 하예랑 친구 되고 싶어서. ”
“···뭐? 너랑 쟤랑? 야, 너 쇼크 먹었다지만 농담은.”
“···· 그런 말 하지 마. 하예가 그런 취급받을 이유 없잖아.”
나는 자리를 벅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하예를 찾으러 나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전····.
대체 학교 안에 어떤 소문이 퍼지고 있는 건지. 듣고 싶어졌다.
“···· 야, 너 어디가!”
“하예 찾으러. 아, 잠깐만. ···· 은혁아, 그 소문. 대체 어떤 소문이야? 니가 들은 소문.”
“··· 소문? 뭐····. 쟤 불쌍해서 니가 좀 놀아준다. 뭐 그런 소문이었던 것 같은데?”
“이거 말고는··· 뭐 들은 거 없어?”
“글쎄? ····· 아. 오늘 아침에 들어다보니까, 뭐 쟤가 너한테 죽고 싶다고 했다며?”
“야, 그거 진짜야? 야, 해늘아 준인이 말 진짜냐?”
“······ 누가 그래? 누가 그 소문 퍼뜨렸대?”
“모르지, 나야. 넌 아냐?”
“아니, 몰라.”
“········ 고맙다. 나, 하예 찾으러 갈게! 나중에 전화할게.”
미치겠다. 제발 내 귀가 잘못된 거였다면 좋겠다. 정말 그런 소문이 돈
거라면·······.
“··· 너도 들었지? 걔가 얌전한 척 다 하더니 유 해늘한테 죽고 싶다고하면서
꼬리쳤대.
그래서 유 해늘이 안 하예 챙겨주고 그랬다잖아. 정말 웃기지 않냐? 아까는 막 울면서
학교 뛰쳐나갔다는데?”
“야, 진짜? 야, 웃기지도 않는다. 뭐 애가 그러냐?”
··········· 제길. 왜, 왜··· 이런 순간에··· 입이 벌어지지 않는 거야,
왜···.
난··· 내 몸은 돌아서고 있었다. 이럴 거면 멋있는 척 뛰어나오지나 말···············.
“이봐, 거기. 그딴 소문 퍼뜨릴 만큼 얼굴에 자신있고, 과거에 자신
있나보지?”
“··· 뭐, 뭐야 저 남자는?”
“···걔, 걔 같은데? 그 때, 안 하예 편 들어줬던 애! 걔!”
“당당하면 목소리가 작지 않을텐데···. 왜, 돌아보니까 너도 너한테 자신 없냐?”
정말 당당한 그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애였다. 항상 교실 뒷편을 조용히
차지하고
언제나 조용한 그 애. 캠퍼스 안을 있는 듯 없는 듯 자리잡고 있던 그 애. ··· 그리고 하예를 위해
로운이에게 어렵지 않게 충고를 했던··· 그 아이.
“··· 안 하예가 죽고 싶다고 그랬다고? 그래, 죽고 싶을 거야 나라도. 사방팔방, 자기
욕하는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누가 살고 싶겠냐고. 더군다나··· 자기랑 얼굴 차이 별로 나지도 않는
것들한테 욕을 먹으니 얼마나 열이 받겠어. 안 그래? ··· 그렇게 얼굴에 자신 있음, 대 놓고 까.
개미랑 대화하지 말고. 당당할 거 아냐. 얼굴에, 과거에. 그러니까 뒷담화를 까고있지. 안 그래?
······ 말해봐, 어디 한 번. 얼마나 잘났는 지 들어나 보자. 안 하예가 죽고
싶댔다고?
그래, 그러다 죽으면··· 정말 그렇게 죽어버리면. 너넨 어떡할 거냐? 보이지 않는 살인자가 될텐데.”
····· 멋있었다. 같은 남자가 봐도 참 멋있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난,
비참했다.
하예를 위해 그런 말을 서스럼없이 하지 못했던··· 난 비참해져갔다.
“···이런 걸 인신모독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그 비스무리한 거, 해서 미안한데··· 당신도
그 콩한테 미안한 거 알고 살아. 걔, 죽지는 않았지만 이미 죽은 애야. 당신이 죽인 애야.
그렇게 알아. ··· 평생 미안하게 생각하고 살아. 당신이 던진 돌에, 콩은 박살이 나니까.”
멋진 녀석이었다. 조용한 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은 녀석이었다.
····· 어쩌면, 어쩌면 하예를 도울 수 있는 건 그 애일 거라고 생각했다.
난 다짜고짜, 그 애를 끌고 나왔다. 아직도 잔뜩 화가난 표정의 그 애였다. 하지만 곧-
붉으락푸르락했던 얼굴이 돌아온다.
“····· 용건이 뭐야. 다짜고짜.”
“부탁··· 있어.”
“·····니가, 나한테?”
“··· 부탁이야. 하예, 설득 좀 해줘.”
“안-하예?”
“··· 그래, 하예.”
보아하니, 그리 탐탁치 않은 표정이다.
“·····내가 왜?”
“난 너무 나약해. 너에게···· 내가 해야할 일을 떠밀어서 미안해. 그런데, 나 때문에 하예가
상처를 받아서····. 내, 내가 설득하고 싶어. 내가 달래주고 싶은데···· 난 그럴만한 녀석이 아니니까.
····· 부탁하자, 한 다온. 가서 좀 달래줘. 널, 믿을게.”
믿을게, 한 다온. 제발 부탁이야.
※
죽어버릴 거야, 오늘 정말 죽어버릴 거야. 이딴 세상 살고 싶지 않아, 나··· 죽을
거야.
“······· 죽지 마.”
소나무. 아니, 유 해늘.
“더러운 손 내 몸에서 떼.”
“········· 죽지 마, 제발!”
“더러운 손 내 몸에서 떼라구!!”
하지만 허리에 둘러진 그 손에는 힘이 더 들어갔다. 바둥바둥거리다 정말 떨어질 뻔
하고
나서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린 난. 또 울었다. 죽지 못한 내 원망을 담아, 또 울었다.
벌써 수십 번째였다. 죽지 못하고 그 겉에서 죽는다 시늉만 낸 게, 벌써 수십 번이었다.
······ 화가 났다. 짜증이 났다. 죽지도 못하는 나에게 원망의 마음이 가득찼다.
그런 내 옆에서 한숨을 내쉬던 유 해늘. 유 해늘이 내 곁으로 다가와서··· 무릎을
꿇는다.
두 눈을 꾹 감아 버렸다. 하지만 열려 있는 두 귀는- 유 해늘의 목소리를 들어냈다.
“·····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하지만 내가 말한 건 아냐, 이건 진심이야. 부모님을
걸게.
아니, 하늘을. 아니, 우주를 모두 걸게. 정말 아냐. 하지만 나 때문이라면 정말 미안해.”
아니, 이제 사람 안 믿어. 아니, 세상을 안 믿어.
··················· 부탁이야, 죽게 해줘. 그만 죽고 싶어.
“····· 유 해늘. 하나만 더 부탁할게. 나, 나 그냥 죽게 해줘.”
“왜 자꾸 그런 소리만 해!”
“···· 죽게 해줘, 그냥. 동정이든 진심이든 고맙게 받을게, 죽게만 해줘. 여기가 싫어.”
“살면···· 안 돼?”
“사는 게 죽는 거야. 사는 게, 당장 나한테 죽는 거야. ···· 너 원망 안 해. 죽게 해줘.”
“···· 그럼 내가 못 살아.”
“···· 부탁이야.”
“너 좋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마, 유 해늘.”
“정말이야.”
“···· 장난치지마. 난 진지해. 난 정말 죽고 싶어, 유 해늘.”
“정말 난 널 좋아해, 안 하예.”
······· 거짓말.
“또 거짓말- 하구 생각하고 있지? ··· 아니, 아냐. 정말이야. 이거···· 들어봐.
꼭.
··· 절대 죽으면 안 돼. 부탁이야, 제발. ···자, 여기. 지금··· 꼭 들어줘.”
그 애는 CD 플레이어와 CD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몇 번씩이나 이 쪽을
돌아보며
사라져간 그 애. 그리고 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커다란 울타리엔 커다란 소나무 하나
그리고 그 곁으로 날아온 꽃씨 하나
소나무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아름다운 그녀를 위한 노래
언제나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던 소나무
그 곁으로 바람 타고 꽃씨 하나가 도착했죠
조그맣고
볼품없는 그 꽃씨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죠
조그만게 자꾸만 눈에 보여 거슬린다 생각했었지만
아무런 내색하지 않았던 나를 안 건지 꽃씨가
사라졌어요
내 앞에 사라졌던 그 꽃씨 날 애 태우고
어느 날의 오후 나타난 그 꽃씨 예쁜 꽃을
피워냈죠
이 세상에도 그리고 내 맘 속에도 이렇게 많은 그 꽃을
이걸 어쩌죠 장미는 날 모르는 듯한데 내 맘은 깊어져만 가는데
미안해요 그의 아름다움을 이제야 알았죠
이런 내가 바보같을 거라는 걸 알아요 내가 미울거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이거 하나 알아줄래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은 너무나 소중해 사랑해요
이걸 어쩌죠 장미는 날 모르는 듯한데 내 맘은 깊어져 가는데-
사랑해요 당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해요
당신의 마음 속 두근거리고 있는 그 리듬이
내 마음을
울리고 마네요 당신을 사랑해요 용기 없어 나
말하지는 못했지만 소나무가 장미를 사랑해요
커다란 울타리엔 커다란 소나무 하나
그리고 그 곁으로 날아온 꽃씨 하나
소나무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아름다운 그녀를 위한 노래
이 노래를 듣는 예쁜 장미여 내 품에 안겨줄래요
달려와 내 품에 안겨주세요 사랑하는 나의
장미여
··········· 거짓말.
사랑하는 나의 장미여. 당신은 언제나 내게 향기로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장미여, 고개를
둘러보지 말아요
사랑하는 나의 장미여, 나의 장미는 이 노래를 듣고 있는 당신입니다
·············· 하예야, 사랑해.
····················································
정말 거짓말.
············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 넌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맞아, 넌 죽은
사람이야.
강물에 ‘오늘의 안 하예’를 던져버린 용기 있는 죽은 사람이야.······ 하예야. 그 강물에
오늘의 안 하예만 던져. 그리고 눈을 뜨면···· 아름다운 너만 남아있다는 거 잊지마.
하루마다 더 아름다워져 있는, 니가 그 곳에 앉아있다는 거 잊지마. 내일의 안 하예가···· 있잖아.
내일의 안 하예까지 버리려고 하지마. 오늘의 안 하예를 버리고, 내일의 안 하예는
품어.
니 마음에 품어, 하예야. ·······난 너무나도 용기가 없는 인간이야. 그래서 내가 소나무야.
아무리 시리고 힘들어도 푸르러야 하는 내가 소나무야.
·············· 하예, 너? 넌 장미. 넌 장미야, 하예야. 활짝 핀 꽃으로 슬픔을 내뱉고, 기쁨을 내뱉고,
사랑을 내뱉는 넌 장미야. 꽃은 언젠가 시들고 말지만······ 꽃에겐 다음 봄이 있잖아.
추운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찾아오잖아. 그리고 너의 봄은 매일마다 널 기다리잖아, 하예야.
·············· 난 소나무고 넌 장미야. 난 소나무니까 언제나 그 자리 서서, 널
지켜볼게.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을 마련해줄게. 난 소나무니까.
하예야····· 널 좋아해. 넌 니가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만, 뚱뚱하고 매력없는 여자라 생각하지만
아냐. 나에게 있어 넌·············· 장미야. 아름다운 장미야. 세상을 피우고 내 마음을 피운, 넌 장미야.
“······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거짓말.
─────────────────── '프롬:F'의 'Ms. Black Bean' [ 07 ]
Ms. Black Bean [ 完 ]
······ 이제 겨우 1년. 365일. 겨우 그 시간이 지났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학교로 돌아와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로운이는 옆에서 징징거리고, 선배들은 내게 ‘로운이를 순순히 넘겨라, 콩.’ 하는 시선을
떼어내지 않고 있다. 내 별명은 여전히 까만 콩이고, 아직도 간혹… 비웃음을 당한다.
난 뚱뚱하다. 난 못생겼다. 난 피부가 까맣다. 난 눈이 작다. 난 쌍꺼풀도 없다. 난 코가
낮다.
난 입이 작다. 난 피부에 잡티도 많다. 난 성격이 나쁘다. 그럼에도 난… 살아가고 있다.
“… 하예야, 가자! 응? 맨날 자습실에만 틀어박혀있구… 안 심심해?”
“… 자습실? 괜찮은데. 이번에도 그냥 너 혼자 가서 놀다 와.”
“하예야, 제바알~ 가자, 가자, 응? 가자아!”
“…잠깐. 미안한데, 하예는 오늘 내가 빌려간다.”
“해늘아!”
“자아, 이 로운양께서는 그만, 콧대 높고 당당하셔서 이 로운양의 눈에 꽂히셨다는 그 잘난
한 다온 군에게 오늘도 작업을… 어머나, 비밀 유출이로군요.”
“해늘이 너어!”
“… 아무튼, 난 갑니다. 가자, 하예야.”
내 손을 잡아 끌며, 또 다시 싱긋. 웃고야 마는 유 해늘.
“… 뭐하는 짓이야?”
“대쉬.”
“… 너, 제발 부탁인데 귀찮게 굴지마. 짜증나니까.”
“너무한다, 정말.”
“내가 뭘?”
“··· 이거봐, 이거. 뻔뻔해지기까지!”
“원래 이랬거든? ······아, 귀찮게 하지 말고 가라니까? 짜증난다구, 진짜!”
“···· 난 안 귀찮아. 그러니까 괜찮지 뭐.”
능청떨면 뭐하나, 어색한데.
“···· 어깨에 손 치워라.”
“에이, 그러지 말구.”
“······치우랬다.”
“왜, 난 지금도 좋은데.”
“······ 너 정말 죽는다.”
“아잉.”
“······ 유 해늘.”
“그래! 인심썼다. 딱 오늘까지만 우리 친구하는 거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애인을 하는 거야.”
“··· 유 해늘. 그런 말, 아무한테나 하는 거 아니랬지? 너 좋아하는 여자한테나 하는 거야, 그런 말.”
“넌?”
“난 내가 널 싫어하니까···· 나한테는 하지마. 아무리 그래도 난 너 싫어.”
······ 정말 해늘이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싫은 거냐고? 아니다. 그건
아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로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과는···· 친구로 남아야 하기에.
“······ 우리, 친구 하자. 죽기 전까지 술 한 잔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야.”
“자다가 보고싶을 때, 눈만 뜨면 볼 수 있는 그런 친구는 어때?”
“··· 아무리 눈 반짝여봐야, 그건 안 돼. 난 자습실 갈테니까, 넌 친구들이랑 놀아.”
“그런게 어딨어! 안 하예, 너 정말 그럴 거야? 하, 하예야! 야아! 야, 정말 가? 하예야!”
유 해늘, 저 녀석이 저렇게 말하고 있긴 해도····· 스스로가 알 거다. 우린 이미····
친구의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이라는 것. 그리고 우린 사랑이라는 유리 조각보다 더 질긴 것으로 연결됬다는 것.
······죽음이라는 것을 놓고, 그 안과 밖을 넘나들··· 그런 친구로 이미 맺어져 결정됐다는
것.
※
해늘이의 노래. 그리고 들려오는 해늘이의 목소리. 말 하나, 점 하나까지 모두 외울
지경.
하지만 믿기지 않는 현실에, 정말 꿈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계속 그렇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였다. 울기도 힘들고, 눈 깜빡이기도 힘들 때- 내 앞에 커피가 한 잔 다가왔다.
커피. 유 해늘일 거라 생각했지만····· 한 다온. 그 애였다.
“···왜. 유 해늘 말고 나라서 실망한 거야?”
“여긴 웬일인가 싶어서. 어떻게··· 알고 왔어?”
“··· 유 해늘. 커피- 안 마셔?”
“싫어해, 커피. 세상에서 제일.”
“···그래? 그럼 초콜릿도 싫어하겠네?”
“잘 아네.”
“··· 똑같이 까맣잖아. ··· 아, 미안.”
그 힘든 와중에서도 웃음이 터져나오려 했다. 언제나처럼 또 다시 상처 주고, 사과하고.
그야말로 병주고 약주고. ··· 참 독특한 사람이네. 독특한 인간이야.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한 다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 너. 죽으려고 했다며? 여기도 죽으려고 와 있다가 유 해늘한테 잡힌 거고.
맞지?”
“··· 유 해늘이 또 다 불어버린 모양이구나? 아니··· 또는 아니지만.”
“유 해늘이 그러더라. 니가 죽으려고 그러는데, 자기는 겁쟁이라 막을 힘이 없대.
그래서 나보고 위로 좀 해주고 기운 좀 차리게 해주라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야지.”
“니 임무는··· 다 했다고 쳐줄테니까 그만 가봐. 지금, 죽을 힘도 없거든. 못 죽으니까, 가봐.”
“···뻥치지마.”
기분 나빠. 아무튼 저 말투, 억양, 목소리.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어.
“··· 난 말이야. 누굴 도와주고 싶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은데
말이야.
뇌가 혀를 못 따라가. 입은 이미 벌어져있는데, 뇌는 새하얀거지. 한마디로.
맘은 안 그런데, 자꾸만 말은 헛나가. 말이 다 끝나면, 뇌는 그제서 내가 잘못했다고 말해.
········· 내가 왜 사과하고 다니는 지 알겠지? 우습지만, 그 이유야. 미안해서.
도움이 안 되는 것도 미안하고, 괜히 참견한 것도 미안하고. 막말해서 상처주는 것도 미안하고, 뭐.”
“··· 가만히 있으면, 그게 도와주는 거 아냐? 오히려 그렇게 작용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했지? 뇌가 혀를 못 따라간다니까. 원래 뇌랑 혀는 따로 노는 거야. 심장도.
그리고 뭘 참고 있냐?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지. 마음내키는대로 사는 거야, 원래 여기는 그래.
·········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그것도 여의치 않아. 정작 중요한 순간은··· 그게 안 되거든.”
그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돌멩이 하나를 강물 안으로 집어던졌다. 평소에
비하자면
꽤나 큰 파동이 일어났다. 물 위에 떠오른 달이 형체를 잃어가고 있다. 다시··· 돌아왔지만.
“··· 유 해늘 말이야, 걔가 너 진짜 좋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 것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튼 말이야. 남자가 보기에도 걔, 착한 놈이야. 보기 드물게 착한 놈. 너··· 죽을 거면
걔 한 번················· 사겨보고 죽는 건 어떠냐?”
“···누, 누가 죽는다고 그래! ··· 안 죽을 거야. 죽고 싶지···· 않아졌어.”
그러자 날 빤히 바라보던 그 녀석이, 히죽 웃는다.
“그래? 그럼, 안 죽는 기념으로 한 번 사겨주지 그러냐?”
“··· 니가 그래주시던가. 하하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음. 하나 말하자면, 로운이도 괜찮은 애야.
같은 여자가 봐도 예쁘고 착한 애야. 보기 드물게.”
“걔가 여기서 왜 나오냐? 니 얘기 하기도 바쁜데.”
이번엔 얼굴이 살며시 굳는다. 곧···· 되돌아오긴 했지만.
“···난 괜찮으니까, 너나 가서 로운이 챙겨. 너 로운이 좋아잖아. 그치?”
“··· 웃겨라. 걘 내숭이고. 야, 아무튼··· 유 해늘 착한 애니까 한 번 믿어봐. 죽을 생각 하지 말고.
흠···. 할 말이 있었는데 까먹었다. 아무튼, 뭐. 말 안해도 이것저것 알고 있겠지만.... 어휴.
그냥 너 알아서 해라. 죽지 말고, 유 해늘 한 번 믿어보고. 아, 자기 비하 하지 마라. 아무도
널 안 이뻐하면, 너라도 닐 이뻐해야지. 아니, 유 해늘이 충분히 이뻐라 하지만 말이다.”
····· 그래, 세상에 내 편은 나 하나밖에 없어. 그래, 나도 그건 알아. 하지만··· 내가
너무 나약하잖아.
“··· 나 말이야. 너 믿는다. 꼭 유 해늘이랑 행복할 거라고 믿어. 그 놈, 좋은
놈이니까.”
·········································· 믿어준다고? 에이,
거짓말. ·········진짜 고마운···· 고마운 거짓말.
※
‘···· 왜 빤히 보는데요?’
‘···· 예?’
‘왜 짜증나게 빤히 바라보느냐구.’
···· 그 때, 너 인걸 알면서도 말이 헛나가고 말았지. 니가 너무 빤히 바라봐서
부끄러웠거든.
처음이었어. 2년이 되도록, 내가 널 본 적은 있었어도 니가 날 봐준 적은 없었으니까.
처음으로 날 봐준 너 때문에, 가슴이 미치도록 뛰다가 나까지 미쳐버렸나봐.
‘····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주무세요, 그럼.’
차라리 니가 나에게 따졌다면, 조금 편했을지 몰라. 당신같이 못난 인간 쳐다본 적
없다고,
그렇게 말했더라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했을 거야. 난 너에게 상처를 주며 말을
잘못 내뱉었는데, 넌 거기에 사과를 했고···· 난 그 날, 잠에 들 수 없었지.
그 후로도 난 네 모습을 몇 번 봤어. 혼자 아파하는 모습이 전부였지만····· 난
행복했어.
널 바라볼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난 행복했어. 그런데 넌··· 힘들었을 거야.
주변 시선 때문에. 그럼에도 난 널 돕지 못했어. 정말, 나야말로 고양이 쥐 생각하는 꼴이었지.
··············· 미안. 나 혼자만 행복했었어. 그래, 미안. 이젠····· 유 해늘이랑 행복해.
············ 뚫린 입주둥아리는 왜 이런 때 열리질 못하는 건지.
말도 횡설수설하고, 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알 수가 없네.
아무튼···········.
··············· 행복······ 했으면 좋겠다. 믿을게. 유 해늘이랑 너 믿을게.
충분히 행복할 자격 있는 두 사람이니까, 나 대신 유 해늘로 만족할게.
나 대신, 니 옆에 유 해늘 서 있는 걸로 만족할게.
※
“06학번 국문학과····”
“··· 안 하예 학생. 들어가요.”
“·····수고하세요.”
“···아. 이번에 장학금 받았다면서? 과 리포트 제출 성적이 제일 좋았다고 그러던데? 축하해요.”
“운이······ 좋았던 거지요, 뭘. 아무튼 고맙습니다.”
“운은 무슨. 그렇게 열심히 해놓고서. 나도 그 과 교수님한테 부탁해서 안 하예 학생이 쓴
소설 한 번 읽어봤어요. 진짜 대단하던 걸?”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습실 안 쪽으로 들어왔다. 매번 앉고 또 앉았던 그
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난, 항상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는 노트를 꺼냈다. 주름이 가득하고
헐거워진 노트와 어지럽게 쓰여있는 글자들. 또 한 번의 웃음이 터진다.
소나무와 장미, 그리고······.
- 06학번 국문학과 안 하예 제출
죽고 싶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단 하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 없이 많은 약통에
담긴
흰약 몇 알에 의존해 겨우 잠들 수 있었지만 두어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게 될 뿐이었다.
그 때마다 서랍 끝 쪽, 몰래 숨겨둔 약들을 바라보았다. 그 쪽까지 손을 뻗었지만, 손은
그 곳에 닿지 않았다. 불행이었다. 사는 것보다 힘든 게 죽는 것이란 말이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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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의 반복이었다.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뜨면 해가 지는 게 이치라는 것처럼.
아프면 울면서, 화 낼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그 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하지만 이치는 깨졌고, 그녀의 곁으로 새로운 기분이 휘몰아쳤다. 그 기분을 떨쳐버리려
애쓰는 그녀의 맘도 모른 채, 그 곁을 맴돌던 그 기분은 결국 익숙해져만 갔다.
그녀가 돌아섰을 때, 그 뒤로 푸른 빛의 그가 서 있었다. 시원한 웃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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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생각했다. 그 푸른 빛이 자신의 붉은 빛을 삼켜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온전히 빗나갔다. 푸른 빛은 붉은 빛의 간결하고 멋진 배경이 되어주었다.
배경이라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워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이. 한 가락의 노래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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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이 꼭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어쩐지 더 아름다울 수
있는 노릇이었다. 그 노릇이란, 지는 것은 다시금 일어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말하기도 했다.
그건, 가장 바깥자리에 피어있는 한 송이 꽃이 가장 중앙자리에 피어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자연적으로 알게 될, 그 기초적이고 자연적인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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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던 그녀는 소나무와 장미가 만발한 거리에 멈추어섰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검정색
차들이 내뿜는 매연에 지쳐 고개를 숙인 장미. 그 뒤로 묵묵히 서 있던 소나무는 장미에게
솔향을 내어주었다. 장미는 솔향과 소나무 잎이 바스락이는 소리를 들으며 점차 살아났다.
장미는 고개를 돌렸다. 장미의 뒤에는 장미의 붉음에 가려진 푸른 소나무가 언제나처럼 있었다.
그녀는 장미꽃을 지나 소나무에게 손을 뻗었다. 솔향이 그녀의 손끝에
묻어났다.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마침 불어온 바람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솔향, 그리고 장미꽃향.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고, 먼 날이 지나 돌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예쁜 꽁무늬를 달고 나타난 벌도 있었고 저 하늘을 비추는 태양도 있었다는 것.
바람에 실려 떨어진 미천한 수백만 개 중의 하나인 꽃씨의 곁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있었다.
소나무와 장미,
그리고····· 비로소 세상으로 뻗어진 흉터 가득한 그녀의 손.
※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거야? …특별한 이유, 있는 거야?”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멋진 선물을 받았거든. 그래서 마음이 바뀌었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물? 뭔데?”
“… 진심.”
“진심?”
“응, 진심. 그리고 너무나도 고마운 거짓말. 이 두 가지가 내가 받은 가장 멋진 선물이었어.”
─────────────────── '프롬:F'의 'Ms. Black Bean' [ 完 ]
첫댓글 재밌게 읽고갑니다!프롬님 소설 정말 재밌어요.읽게되서 영광?이에요^^* 글솜씨 참 좋으신 거 같아요.아 그리구 쪽지답장 좀 부탁드릴게요^^;앞으로 좋은 소설 많이 기대할게요!
★ 감사드립니다! 쪽지, 너무 횡설수설해서 죄송해요... 하하. 좋은 하루 되세요!
재밌게 읽고갑니다.마지막 완결편에서 소나무와 장미의 글.너무 좋았습니다,앞으로도 건필하세요 (웃음)
★ 앗, 좋게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집에 오는 길, 울타리에 쳐 있는 장미랑 소나무가 너무 예쁘더라구요. 덥긴했지만- 하하하.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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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앗,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랄게요!!
아놔 나이거봣다긍!!!!!!!!!!!!!!!!!!!!!!!!!완전ㅜ.ㅜ.ㅜ.ㅜ.ㅜ.ㅜ.
★ 웅이언니, 아 진쫘 사랑한다구..... 히이. 언니가 너무 잘써서... 난 부끄러워혀.
와....
★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구,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할게요~~
프롬아....!! ㅠㅠㅠㅠ
★ 앗앗 봄언뉘!!! 히히. 댓글 고마와요~~
오오오, 긴글 읽게 하시는 실력! 멋져요!!ㅠㅠ 어으, 빠져들었네요. 건필요!
★ 헤에- 블랙빈 녀석들에게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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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 혜인님 감사드립니다! 저도 외모 지상주의가 참 싫답니다. 사방팔방,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외모' 이야기가 답답하거든요. 헤헤. 좋은 하루되세요!
와. 긴글이라서 그냥 안읽으려고 했는데. 읽기 시작하니까 도저히 멈출 수가 없군요. 정말이지 오랜만에 너무너무 좋은 소설읽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솔직히 단편방의 주 이야기 소재는 사랑이야기들이잖아요. 그런데 프롬님 글은 그런것 같지가 않아서 더 와닿네요. 와. 멋있게 잘 읽었어요. 정말이지.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감사합니다. 프롬님. 무한건필하세요!!!
★ 으앗, 과찬이세요! 말씀하신대로 조금 긴 것 같아 보시는데 불편함은 없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정말, 무한 건필할게요! 하하.
정말최고예요요 !!!1 제미있어요 정말 이소설은길어서더좋았던거같아요 앞으로도이런소설많이많이써주세요 !!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너무나 다행이네요. 헤에,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랄게요!
길어도 지루하지가 않은 재미있게 잘 읽고 가요^^
★ 감사합니다! 지루하지 않았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헤에.
정말 미치도록 흥미로웠어요.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3시가 다되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재밌고 감동적으로 봤어요. 전 사실'콩'이란말 좋아해요. 그냥 어감부터가 왠지 좋았어요. 하지만 이소설보면서 다른사람에게는 아픔이 될수도 있는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되게 시시하면서도 깊은 의미랄까. 하하, 진짜 최고로 재밌습니다. 외모지상주의를 약간 비난한거겠지요? 보면서 내내 로운이라는 여자애 욕했습니다. 솔직히 정말 그아인 즐긴걸 꺼에요- 뭘하든 사람들이 보는건 하예가 받을 아픔이 아닌, 겉으로 다가오는 그 로운이의 착함, 이쁨... 뭐그런거였으니까요.
진짜 슬펐겠죠, 하예는. 정말 죽고 싶었을것같애요. 중간에 또 와닿았던게 하예가 죽으면 또 못생겼다는 이유로 그죽음에 대해 입에 올리지 못할 말들을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요,목소리요. 진짜 그런거 싫거든요. 그런데 해늘이와 다온이요. 정말 그런사람들 있을것 같아요. 그런사람들이 있어서 조금은 하예와 같은 사람들이 숨을 터 놓을 수있는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주절주절 너무 말이 많았네요- 하하,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혹시 친추 되나요? 16.슬퍼지자-
★ 당연되지요. 15프롬이구요, 잘 지내보아요, 언니! 히이. 좋게 평가해주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정말정말 글을 잘쓰셨어요, 제가 정말 우연인지 프롬이랑 같은 소재와 그리고 이야기 전개가 대충비슷한데, ㅠㅠㅠ 왠만하면 철판깔고 올리겠는데, 너무 잘적으셔서 올리자말자 비교가 될까봐 무서워서 못하겠네요.ㅠㅠㅠㅠ 조금 이 열기가 식혀진후에 슬슬 올려봐야겠어요 ㅠㅠㅠ 그래두 날리기엔 아깝잖아요ㅠㅠ
★ 이코, 소재나 전개는 완전히 같지 않다면, 얼마든지 비슷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교라뇨... 빵긋님 글 솜씨에 되려 제가 비교되는 거 아닐까요~~? 하하.
재밌어요~ 제가 아는오빠 이름도 이로운인데 신기해요 ㅋㅋㅋㅋㅋㅋ
★ 우왓, 이로운. 개인적으로 정말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하하하하. 정말 신기하네요~~ 헤헤.
너무감동이라눈물나와여 ㅜㅜㅜㅜㅜ
★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도록 할게요~~
오,몇일전에 읽으려고 하다가 학원시간때문에 너무 길고 해서 다 못읽고 지금 읽었는데, 와 잘 쓰셨네요, 간간히 올라오는 단편소설방중에서 이런소설 볼때마다 항상 기분이 좋아요, 새롭거든요< ㅇㅉ 해늘이랑 다온이같은 사람이 넘쳐나야하는거....< 그 선배들도 나쁘고, 로운이의 실체에 대해선 안나왔지만 나쁜년처럼 인식되어버렸네요, < 쨌든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 정말, 해늘이와 다온이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하는 거죠. 하하하. 우리 블랙빈 녀석들이 새롭다니,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하하하.
재밋쪄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진짜재밋어요 후후 단편소설별루기대안햇눈뎀 이정도로재미있을줄이야ㅠ_ㅠ감동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글들, 열심히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