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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파죽지세
서기 634년 6월, 동로마제국의 허를 찌른 칼리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와, 아라크, 팔미라, 알 수크나를 점령하고 곧바로 시리아 동부지역 최대의 도시인 다마스쿠스로 향합니다. 하지만 다마스쿠스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됩니다. 칼리드가 다마스쿠스를 바로 지척에 두고 남하했기 때문이죠. 칼리드는 일단 배후를 정리할 목적으로 동로마제국의 속국인 가산왕조를 치러 군대를 이끌고 남하합니다. 칼리드는 동로마와 가산연합군을 격파하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아랍군대와 합류하여 634년 7월, 가산의 수도 보스라를 점령합니다. 보스라를 점령한 칼리드는 곧바로 2만으로 늘어난 아랍 군대를 이끌고 아즈나다인에 집결중인 동로마제국의 지방군을 격파하기 위해 진군합니다. 아즈나다인에 집결한 동로마군은 지역방위를 담당하는 지방군들이 모인 군대로 정예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칼리드의 군대에 비하면 장비나 병력의 수에서 모두 우위에 있었습니다.
어쨌든 아즈나다인에 도착한 칼리드의 군대는 전투개시 이틀만에 이 동로마의 지방군을 모두 격퇴하였고 동로마제국의 시리아 남부 방어체계는 이로써 완전히 무력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칼리드의 진격은 이번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배후가 모두 정리된 지금 이 시점, 칼리드는 애초에 목표로 했던 다마스쿠스를 목표로 진군합니다.
서기 634년 8월 중순, 칼리드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파견한 동로마제국군의 공격을 두 차례 받은 칼리드는 두 차례 모두 격퇴하고 8월 20일, 다마스쿠스를 완전 포위합니다.
당시 동로마제국의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시리아에서 안티오크, 예루살렘과 함께 가장 주요한 도시로 꼽히는 이 다마스쿠스를 지원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포위되기 전에도 지원군을 착실히 보냈고 다마스쿠스가 포위된 후에도 지원군을 파견합니다. 하지만 이 지원군은 칼리드의 정찰병에게 발각되어 순식간에 기마대를 이끌고 나타난 칼리드에게 섬멸되어 다마스쿠스 성내의 제국군은 지원군이 왔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른 채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다며 황제를 원망합니다.
다마스쿠스 수비군은 총 세 차례 포위를 풀기 위해 반격에 나섰지만 세 번 모두 포위망을 돌파하는데 실패합니다. 그리고 결국 한달 뒤, 다마스쿠스는 백기를 듭니다.
한편, 이 다마스쿠스가 함락되기 전 아라비아의 초대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가 사망하고 우마르가 그의 뒤를 이어 제2대 칼리프의 위에 오릅니다.
서기 634년 9월, 칼리드가 시리아에 등장한지 3개월 만에 동로마제국은 시리아의 동남부 지역을 모두 상실합니다.
7. 해임
초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가 칼리드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던데 반해, 2대 칼리프 우마르는 칼리드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신뢰하지 않았다기보단 개인적으로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이 우마르가 칼리프의 위에 오르자마자 내린 명령은 칼리드를 총사령관직에서 해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마스쿠스 공성전이 끝난 직후, 이 소식을 전해들은 칼리드의 군대는 병사와 장군들에 이르기까지 격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칼리드는
"나는 칼리프의 말을 들을 것이고 명령에 복종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군말없이 총사령관직을 부사령관 아부 우바이다에게 물려줍니다.
하지만 이 아부 우바이다는 완전히 칼리드에게 심취해 있었고 그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총사령관이 된 후 칼리드를 부관 삼아 항상 곁에 두었고 작전회의 때도 항상 칼리드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우마르 칼리프도 차마 이것만큼은 뭐라고 할 수 없었고 군대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칼리드를 건드리기는 사실상 힘들었기 때문에 칼리드가 본국으로 강제 소환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 우마르의 칼리드 해임 조치는 동로마 제국에게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시간만 벌어주었을 뿐 전황이 뒤집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부 우바이다 또한 뛰어난 지휘관으로서 칼리드만큼의 속공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대신 천천히 안정적으로 정복지역을 넓혀 결국 2년만에 시리아 중부전역을 제패하기에 이릅니다.
8. 야르무크로 가는 길
서기 636년, 시리아 중부의 에메사가 함락되고 팔레스타인 지역마저 상실하자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총력을 기울여 반격에 나서기로 결정합니다.
636년 7월, 비잔틴 영토의 전 지역에 걸쳐 대규모 군사이동이 일어납니다. 제국 전역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군대가 모이기 시작합니다. 목표는 시리아 전체의 탈환, 헤라클리우스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모든 병력을 끌어모아 일대반격에 나섭니다.
이때 칼리드는 아부 우바이다 군의 선봉대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시리아 북부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거점 칼키스로 진격하던 도중 동로마 제국군의 식량보급부대를 공격하여 포로로 사로잡습니다. 이 포로들로부터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대규모의 군대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칼리드는 서둘러 본대로 복귀하여 전략회의 개최를 요청합니다.
포로로부터 전해 들은 동로마제국군의 규모는 무려 10만, 여태껏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군대의 집결 소식을 들은 아랍 장군들은 모두 안색이 창백해집니다. 이때 칼리드는 흩어져있는 아랍군대를 모두 모아 일전을 벌이자고 주장했고 총사령관 아부 우바이다는 흔쾌히 이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인 것 뿐만 아니라 아예 총지휘권을 다시 칼리드에게 위임합니다. 10만 대군이 진군해 오는데 우마르 칼리프가 칼리드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이제 막 정복한 시리아 지역을 모두 빼앗기게 될 판이었으니 아랍군 또한 전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었죠.
서기 636년 8월, 칼리드가 이끄는 아랍 군대가 모두 집결하여 시리아 남부의 야르무크 평원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동로마제국의 10만대군 또한 일제히 남진합니다. 아시아와 유럽, 아르메니아 등 전 지역에서 모인 제국군 10만의 가공할 위세는 단숨에 아랍의 야만인들을 쓸어버릴 기세로 거침이 없었고 당연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야르무크 평원에 도착합니다. 이에 맞서는 칼리드의 3만(최대 4만) 군세의 기세 또한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불패의 장군, 알라의 검이 총지휘하는 군대가 패할 리가 없다는 신념과 믿음으로 인해 사기는 역대 어떤 군대와 견줘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높았습니다.
서기 636년 8월 15일, 후에 동로마제국 역사가들로부터 통한의 전투로 명명되는 전투이자 비잔틴의 추락을 알리는 전투, 동로마 제국군 사령관 트리티리우스와 바한의 공격명령과 함께 그 유명한 야르무크 전투가 그 대망의 막을 펼칩니다.
9. 야르무크 전투
Day.1) 636.8.15
동이 트자마자 시작된 첫째날의 전투는 본격적인 전투라기보다는 탐색전에 가까웠습니다. 양측 모두 기병력을 운용하지 않았고 3분의 1정도의 병력만 출동하여 소규모 접전을 벌였죠. 이 첫번째날의 전투는 서로 별다른 이득은 보지 못했고 해가 지자 양측 모두 병력을 물리고 다시 대치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칼리드는 동로마군의 군세가 만만치 않다고 판단,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을 예상하고 초반은 방어를 굳히기로 결정합니다. 칼리드는 기병대를 다섯개의 연대로 나누어 네 개의 기병연대를 보병대와 호흡을 같이하는 혼성부대로 구성하고 한개연대를 따로 빼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유격부대로 만듭니다. 지금 상황에서 기병대를 일제히 돌격시켜 적진을 허무는 건 어렵다고 판단, 대신 유기적으로 활용하여 보병대와 호흡을 같이하여 방어에 주력하도록 지시합니다. 수에서 세 배나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칼리드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신중했죠.
Day.2) 636.8.16
둘째날, 자신감 넘치는 동로마군의 사령관 트리티리우스의 공격명령과 함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됩니다. 트리티리우스는 이슬람군의 아침기도 시간에 맞추어 기습을 가할 계획이었는데 칼리드에게 모두 간파당하여 기습의 묘는 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0만대군의 총공격의 위력은 그 자체로 막강하여 무슬림 군은 이 둘째날의 전투에서 까딱하면 진형이 무너질 뻔 합니다. 칼리드가 따로 뺀 유격기동대가 열심히 전장을 돌아다니며 지원한 덕분에 무슬림군은 결과적으로 힘겹게 동로마군을 격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Day.3) 636.8.17
전투개시 삼일 째, 트리티리우스는 둘째날 격돌에서 칼리드 군의 우측이 비교적 상대하기 수월하다고 느껴 그쪽의 공세를 강화하기로 결정합니다. 칼리드 군의 우측을 빠르게 무너뜨린 후 나머지 절반을 격파한다는 전략이었죠. 하지만 이 맹렬한 공격에 칼리드의 군대는 천천히 방어를 굳히며 뒤로 물러나는 전법으로 맞서고 유격부대와 기병연대를 활발히 움직여 또 다시 이 막강한 공세를 막아냅니다. 해가 질 무렵, 동로마군은 군대를 뒤로 물렸고 무슬림군은 다시 원래 진형을 복구합니다.
Day.4) 636.8.18
네째날, 이때까지만 해도 양측 군대의 피해는 엇비슷한 수준으로 병력의 수에서 월등히 앞서는 동로마군이 단연 더 우세한 상황이었습니다. 트리티리우스는 자신감을 얻어 칼리드 군의 우측을 다시 한번 두드리기로 작정합니다.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트리티리우스는 야전 사령관 바한에게 좌측 군단을 지휘하여 칼리드 군의 우측을 향한 공세를 최고로 끌어올리라고 지시하고 동시에 좌측도 무너뜨릴 생각으로 아예 전부대에 총공격을 내립니다. 칼리드가 직접 지휘하지 않는 좌측은 동로마군의 태양마저 가리는 어마어마한 화살세례를 받아 궁수진이 거의 전멸에 다다를 만큼 큰 피해를 입습니다. 하지만 이크리마 장군이 이끄는 기병연대의 맹렬한 돌격으로 인해 좌측군의 진형은 무너지지 않았고 끝내 동로마군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성공합니다.
반면, 칼리드가 지휘하는 우측군에서는 결정적인 일대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칼리드는 동로마군의 진형을 보자마자 전날처럼 적의 거센 공세가 이곳에 집중될 거라 예측합니다. 칼리드는 동로마군의 공세가 시작되자마자 우측의 2개 군단 중 안쪽에 위치한 1개 군단을 뒤로 물립니다. 공세에 여념이 없는 동로마군의 좌측 2개 군단중 안쪽에 위치한 1군단은 자연스레 끌려들어가게 되었고 이때 기병연대와 유격대의 일제 공격을 삼면에서 들이받게 된 이 1개군단은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합니다. 그러자 자연히 바깥쪽에 위치해 있던 동로마의 1개 군단 또한 측면과 후방이 비게 되어 삼면에서 공격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후방마저 차단당할까봐 두려워한 바한은 군대를 재빨리 퇴각시킵니다.
Day.5) 636.8.19
다섯째날은 전투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트리티리우스와 바한 모두 전날 큰 피해를 입은 병력을 추스르느라 여념이 없었고 칼리드 또한 격렬한 전투를 치른 군대의 사기를 고려하여 병력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신 칼리드는 진형을 새로 짭니다. 다섯개의 연대로 나누었던 기병대를 모두 합쳐 1개의 기병군단으로 다시 편성한 것이죠. 칼리드는 결정적인 때가 왔다고 판단합니다. 공수전환의 때가 온 것입니다. 칼리드는 이제 공세를 펼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동로마군은 내일 한번의 전투로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때문에 칼리드는 500기의 기병을 따로 빼 몰래 동로마군 후방으로 돌아가게 하여 퇴각로마저 차단해 버립니다.
Day.6) 636.8.20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고 무슬림 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칼리드는 보병대에는 통상적인 공격을 지시하고 자신은 직접 기병대 전부를 이끌고 동로마군의 좌측으로 순식간에 파고들어 둘로 나뉘어있던 동로마군의 좌측 기병대를 타격합니다. 칼리드는 돌격의 순간, 기병대를 또 다시 세 갈래로 나누어 두 갈래는 동로마군의 기병대를 양방향에서 들이치고 나머지 한 갈래는 동로마군 좌측 보병대의 측면을 들이치게 합니다. 이 파상공세에 동로마군의 좌측 기병대는 순식간에 분쇄되었고 좌측 보병군단 또한 일각이 허물어져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동로마군의 우측 기병대가 급히 도우러 달려왔지만 이미 너무 늦어 오히려 각개격파를 당하여 동로마군의 기병대는 전장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이제 거칠것이 없어진 칼리드의 7천 기병대가 일제히 동로마군의 후방을 들이칩니다. 좌측이 제일 먼저 무너지고 중앙도 무너집니다. 우측은 아예 싸울 생각도 못하고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야르무크 전투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칼리드가 전날 보낸 기병대에 의해 퇴각로마저 끊겨 있었기 때문에 동로마군은 이곳 야르무크 평원에서 전멸합니다. 이 야르무크 전투에서 칼리드가 받아든 병력의 손실 보고서에 적혀 있던 수치는 4천, 그리고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총사령관 트리티리우스의 사망, 야전사령관 바한의 사망과 함께 10만군대의 전멸소식을 듣게 됩니다.
10. 시리아 완전 평정
야르무크의 승리 이후 칼리드는 곧바로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점령합니다. 무함마드의 승천으로 유명한 이슬람의 3대성지(메카,메디나,예루살렘) 가운데 마지막 하나가 드디어 이슬람 세력의 손에 들어옵니다.
예루살렘을 뒤로 하고 칼리드는 곧바로 시리아 북부로 쳐들어가 이제는 가히 제국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진 아랍제국의 세력을 더욱 더 확장시킵니다. 그의 군대는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고 거칠 것이 없었으며 동로마와 페르시아 양대제국 모두 그의 진군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칼키스, 알레포, 에데사가 모두 함락되고 동로마제국의 3대도시 중 하나로 유명한 안티오크마저 이때 함락당합니다. 시리아가 완전히 평정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랜세월 로마제국의 영토였던 아나톨리아 동부지역의 대부분마저 석권합니다.
이 불패장군 칼리드의 진군을 막은것은 이번에도 우마르 칼리프였습니다. 우마르는 이미 국가의 최고 영웅으로 떠오른 '사이프 알라흐(알라의 검)' 의 명성이 자칫 칼리프의 권위마저 뛰어넘을까봐 두려워하였고 결국 트집을 잡아 죄목을 부여하고 칼리드를 해고하여 메디나로 소환합니다.
칼리드는 우마르를 만나자마자 격렬히 항의하지만 우마르는
"그 위대한 위업은 인간이 달성할 수 없는 것이며 모두 알라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라고 말하며 칼리드에게 위대한 승리를 주신 알라를 찬양합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칼리드는 이에 수긍하여 조용히 물러났고 결국 끝까지 우마르에게 충성을 바쳤습니다.
11. 죽음
서기 642년, 양대제국 동로마와 페르시아를 무너뜨린 위대한 전략가가 별세합니다. 칼리드는 평소 전장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알라는 그의 바램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칼리드는 해고된 후 병을 얻어 침상에서 전전긍긍하다 결국 그렇게 조용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메카를 순례하고 돌아온 우마르는 칼리드를 해임한 것을 후회하여 페르시아의 남은 지역을 정복할 사령관으로 다시 칼리드를 복귀시키려 했지만 메디나의 궁으로 돌아온 우마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칼리드의 사망소식이었습니다. 우마르는 크게 후회하여 칼리드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고 죽은 이들을 위해 통곡하는 것을 금지하던 법령도 이번만큼은 예외로 둡니다. 우마르는 칼리드가 해임되기 전에 살았던 에메사에 그의 유해를 안치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칼리드를 기념하는 모스크가 세워져 있습니다.
훗날 어째서 칼리드를 해임했냐고 신하들이 묻자 우마르는 침통한 표정으로
"내가 틀렸었소."
라고 말하며 한탄합니다.
단 한번도 패하지 않은 위대한 불패의 장군 칼리드. 그의 군사적 승리는 그 혼자만의 영광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동로마제국은 야르무크 전투 이후 국력이 크게 쇠하여 다시는 시리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수복하지 못하고 영토를 차례차례 잃어갔고 페르시아는 아예 멸망하여 전 지역이 이슬람화합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선포한지 30년도 지나지 않아 아랍인들의 제국은 중앙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까지 아우르는 거대제국으로 변모하여 수많은 민족을 거느리게 됩니다. 이슬람의 이런 놀랍도록 빠른 팽창에는 바로 '사이프 알라흐' , 알라의 검 칼리드가 있었습니다.
칼리드 사후 아랍제국
아랍 제국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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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다음에는 제국 편 하나 올리겠습니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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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너무 재밌습니다~~~완전팬입니다. 제가 다른 곳은 그래도 좀 아는데 아랍은 전혀 몰랐거든요 세계사는 정말 너무 심할정도로 서방세계에 치중되어 있는 거 같아요...역사를 알 때마다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ㅜㅜ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ㅎㅎ ^^ 서양이 다른 건 몰라도 역사저술은 참 잘했죠. 따지고 보면 오히려 서양사가 제일 볼 거 없습니다. 로마 이후 산업혁명 전까지 1천년 넘도록 낙후된 변방 촌구석에 불과했으니까요. 중세는 진짜.....한숨 나오죠;;; 이슬람이나 동아시아가 역사가들을 서양처럼만 많이 배출하고 자국 역사 위주로 저술하는 습관만 버렸어도 서양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볼게 많았을 겁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봤습니다ㅎ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ㅎㅎㅎ 당분간은 쉴 예정이라 너무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게....ㅋㅋㅋㅋ
아랍은 정말 잘 모르는데 재밌내요 워낙 유럽중심의 ㅅㅔ계사라 그게 불만이였는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좋은 하루 되십쇼~^^
항상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나나모님 ^^
3만으로 10만을 전멸;;;;;; 그것도 평지에서 전술 전략만으로;;;;; 대단하네요
엄청나죠 ㄷㄷ 괜히 무적의 장군이 아니죠. 동아시아 쪽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더 아쉽습니다 ㅜ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병력배치, 전술만으로, 3배 이상의 병력을 커버하다니......... 진짜 믿기지가 않네요
그래서 제가 첫 글에 이슬람사 통틀어 최고의 전략가라고 쓴 겁니다 ㅎㅎ 살라딘도 대전략가긴 하지만 전술이나 병력운용은 진짜 칼리드가 최고죠
허허,,, 이럴 수가 있나요.??? 보고도 못 믿겠네요 이 전투는 ㄷㄷㄷㄷ
저는 칼리드가 감히 알렉산드로스나 수보타이, 티무르,칭기즈칸과 함께 고대 최고의 전략가를 논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ㅎㅎㅎ 재밌게 잘 봤어요
풋사과님도 항상 감사합니다 ^^
오~~~잘읽고가요^^다음도 기대할게요^^
항상 댓글 감사합니다 ^^
정말 잘봤습니다~~!!! 진짜 책내셔도 될꺼 같아요~^^b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ㅋㅋㅋㅋ 그래도 감사합니다 ^^
정말 잼있네요 저도 세계사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ㅎ 아직 많이 부족하군요 ㅎ
많이 배웁니다
저도 별거 없습니다. 관심 있는 쪽만 잘 아는 편이죠 ㅎㅎ;;; 저도 중세유럽이나 근현대로 넘어가면 완전 젬병입니다. 어쨌든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