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표절로 점철되었던 70년대 작품들도 골고루 챙겨본 편이고 80년대 TV 애니메이션은 특히 좋아하고 하다못해 지금은 아이들이랑 같이 또봇, 카봇 등도 봅니다.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보고 있노라면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고 그러네요. 표절로 점철되었고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제작을 밀어주던 때도 있었지만 다시 표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도 찾아오고, 하청 위주로만 제작하는 것을 보면서 미래란게 있기나 할까 싶었는데 2003년 11월을 기점(뽀롱뽀롱 뽀로로)으로 비록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특화되어가지만 적어도 타겟을 분명히 하고 그 주 타겟층이 부모세대와 공유할 수 있는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좋은 작품은, 보고나면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고 좋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최근 한국 애니메이션의 양상이 그런 부분이 있어요.(대표적으로 뽀로로의 몇몇 에피소드는 아이랑 같이 보다가 부모가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뭐, 각설하고 애니메이션 리뷰를 쓰려다가 오늘은 날이 좋고, 오랜만에 유스케에 박기영이 나와서 90년대 후반에 젖어들어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애니메이션 주제가 이야기나 해야겠다 싶어서 다른 글을 써보기로 합니다. 그래서 제가 꼽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빛낸 곡들을 한 번 소개해보도록 하지요.
* 합작이나 한국 제작이 아닌 작품들은 제외합니다.
태권V는 사실 안타까운 시작점입니다. 뭐 원래 기획안도 마징가 태권이었을 정도로 마징가Z의 영향 아래 있는 작품이죠. 뭐, 일본의 무수한 슈퍼로봇들이 죄다 마징가 영향을 받았지만 태권브이는 디자인부터가.... 84 태권브이 와서야 어느정도 오리지널 요소가 가미되었습니다만, 이쪽도 완구는 표절이라. 뭐, 다들 아시는 표절 이야기는 접어두고 주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70-80년대 애니메이션 주제가들은, 특히 로봇물 주제가들은 굉장히 직설적이죠. 물리쳐야 하는 적이 있고 정의를 지켜야 하는 슈퍼로봇이 있습니다. 태권브이도 예외는 아니죠. 그런데 태권브이의 주제가는 70-80년대 생들에게 일종의 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무슨 소리냐면 인트로가 울리면 이 세대층 사람들의 가슴에 시동이 걸리고 자기도 모르게 주제가를 따라하게 만드는 그런 효과죠. 멜로디 라인 자체가 상당히 좋지만 인트로가 무엇보다 인상적이에요.
여담으로 몇마디 적자면 얼마전 표절작의 표절작(....)인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을 봤습니다. 주요 스토리 라인이 대놓고 우주전함 야마토라 씁쓸한 작품인데 그와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처음 태권브이를 오체분시(....)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전함에서 태권브이 파츠가 발사되어 태권브이로 조립되더군요. 2021년 기준에서도 뭔가 우오와아아! 소리가 나오는 끄거운 전개.(표절만 아니라면) 70년대 극장에서 어린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알것 같더군요. 그 분위기 고조에 한 몫한 것이 태권브이 주제가입니다. 작품의 표절과 별개로, 정말 좋은 주제가로 꼽습니다.
영상은 어쩐지 88년도에 방영한 태권동자 마루치 버젼이지만 이 주제가는 굉장히 오래되었죠. 사실 마루치 아라치는 무려 라디오 연속극으로 출발한 작품입니다. 제대로 된 TV 애니메이션이 없던 시절이고 아직은 라디오가 주류이던 시절인 만큼, 인기가 어땠을지 짐작이 가네요. 인상적인 점이 아라치가 마루치의 사이드킥이 아닌 동등한 주요 등장인물이라는 점입니다.(무게중심은 마루치 쪽에 조금 더 쏠리지만) 역시 70년대 답게 '용감하고 씩씩한' 것을 주제가에서 말하고 있지요. 아무래도 한국이고 일본이고 이 당시 어린아이들을 향한 양육방침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들어보시면 70년대 포크송 느낌이 나지 않나요? 가수 김도향씨가 부른 '별나라 삼총사'의 주제가입니다. 이쪽도 우주전함이 야마토와 아르카디아 믹스된 느낌이고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품이지만 저는 재밌게 봤었습니다. 주제가를 부르신 김도향씨는 가수이시기도 하지만 전설적인 CF송 마스터이시기도 합니다.(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바, 우리집 화장지 뽀삐, 맛동산 먹고 즐거운 파티 등등) 확실히 가수분 답게 음색이 참 좋으시지요. 여담으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의외로 유명인 더빙이 굉장히 많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첫번째 전성기는 80년대입니다. 와, 확실히 방송국이 만드니 다르긴 하더군요. 이 시기 작품들의 작품성은 정말 훌륭합니다. 그 시작점이 87년 어린이 날에 방영한 떠돌이 까치입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글을 올린적이 있으니 역시 주제가 이야기만 해보죠. 80년대 한국 애니메이션 주제가들은 하나 같이 주인공 이름, 혹은 작품 이름이 언급됩니다. 근데 이게 은근 매력있어요. 두 작품도 주제가가 매력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인공의 캐릭터 성이 담겨있네요.
엔딩곡인 멋있는 아이도 참 좋습니다. 이쪽은 잘 안알려진 명곡이에요.
개인적으로 마스터피스 중 하나로 꼽는 걸작 한국 애니메이션인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입니다. 원작과는 다른 결말인데 그 덕분에 한층 따뜻하고 좋은 작품이 되었어요. 주제가만 있는 버젼을 못구해서 주제가 부분을 링크해봅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읽어보면 가슴 적시는 엔딩 문구) 주제가는 들어보시면 다들 아실 그분, 김국환님이 부르셨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정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작품인 '아기공룡 둘리'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단 정말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 작품이고, 거의 최초로 캐릭터 상품화에 성공했으며 무엇보다 캐릭터 생명력이 엄청납니다. 1987년작인데 2020년까지 지금도 소환됩니다. O.S.T들도 하나같이 명곡이에요. 순서대로 1) 주제가, 2) 별을 쳐다보며, 3) 비눗방울, 4) 라면과 구공탄, 5) 마이콜은 보이지 않네 순입니다. 주제가야 워낙 유명하고 4)의 라면과 구공탄은, 지금 시대에 악뮤의 라면인건가가 있다면 80년대의 대표적인 라면송은 저 라면과 구공탄이었을 정도였습니다. 5번은 사실 제목이 분명치 않은데 가수 김도향씨가 부르셨지요. 주제가는 제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하셨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또다른 마스터피스. 80년대를 가장 환하게 빛낸 애니메이션 걸작. 제가 아직까지 한국애니메이션 중 최고로 꼽는 작품이 이 달려라 하니입니다. 결말 전개가 좀 아쉬웠던 천방지축 하니와 다르게 달려라 하니는 결말까지 이어지는 한 소녀의 성장기가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거의 절대다수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엄마'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아련함을 매개로 삼았지요. 주제가에서도 그런 것들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제가는 전부 당대 탑클래스 가수이신 이선희씨가 불렀어요.
한국 SF의 걸작. 2020 원더키디입니다.(하지만 2020년에 전 세계는 코로나로 인해 더없이 우울하게 보냈...) 주제가는 소방차. TV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한 작품이고 인기도 엄청났었습니다. 아마 인기만 놓고 보자면 후술할 날아라 슈퍼보드와 함께 80년대 투탑이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주제가 김수철. 80년대 애니메이션 주제가 라인업을 보면 정말 당대 최고 가수들을 전부 소환했다는 느낌이지요. 그외 서유기 컨텐츠는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고. 다만 아쉬운건 원작에서 골때리는 개그캐였던 삼장이 애니메이션에서 너무 스님이 되셔서 재미가 확 줄었다는 점이랄까. 이 작품의 방영시기에 드래곤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지요. 우리가 알던 고전 손오공이 이제는 손오공하면 다들 카카로트를 떠올릴 정도로. 재밌는건 이제 사오정 하면 다들 이 작품의 사오정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만큼 인상적이고 잘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전래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성공적으로 풀어낸 명작 옛날 옛적에입니다. 작품 스타일은 과거 일본에서 했던 안데르센 이야기 같은 방식입니다. 그와중에 민요풍으로 만든 주제가가 굉장히 인상적이지요. 개그맨 김정식씨가 부르셨습니다.
주제가, 숫자송, 엔딩곡 순입니다. 원더키디 이후 작품들은 OST에 굉장히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지요. 좋은 곡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영심이 하면 저 무한반복 숫자송. 실제로 저 노래를 등장인물들이 끝도 없이 부릅니다. 80-90년대 사춘기 시절을 잘 영상화한 좋은 작품입니다. 뭐, 영심이는 개인적으론 영화 버젼이 더 기억에 남네요. 순심이 역에 무려 이재은(아역시절), 가수 박남정이 형부로 나오고 김민종도 등장하는 등.
첫댓글 재밌게 잘 봤습니다. 유명인들이 정말 많이 등장하네요. 80년대에 좋은 만화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 애니를 가까이 하면서 지내보고 싶은데, 취미로 잘 들어와주지 못하네요 ㅠㅠ... 취미 하나 기르는 것도 생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흐흐.
하나같이 명작이네요. 다 보고 자랐던 사람으로써 추억에 빠질 수 밖에 없는... ㅋ
그나마 이전 작품들 웹에 돌아다닐때 구해놓긴 했는데 막상 보지는 않게 되네요.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