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군부에 막힌 40대 총리후보… 탁신家 어부지리 재집권 가능성
단독출마 野피타, 과반 확보 실패
진보적 성향에 군부 거부감 심해
선거법 위반 ‘사법 리스크’도 불리
19, 20일 추가투표서 선출 안되면… 탁신 딸이 연정 꾸려 후보 나설듯
태국 정권교체를 위해 8개 야당 연합군을 이룬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43)가 13일 차기 총리 선출을 위한 상·하원 합동투표에서 총리직을 거머쥐지 못했다. 전진당이 5월 총선에서 제1당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키며 피타 대표는 이번에 총리 후보로 단독 출마했다. 신임 총리는 하원 500석, 상원 250석의 합계 과반(376석)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태국을 좌지우지하는 군부의 반대로 이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현지 매체 ‘더네이션’은 의회가 19일 2차 투표, 20일 3차 투표를 이어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두 차례의 추가 투표에도 그가 총리 등극에 실패하면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딸 패통탄이 이끄는 제2당 프아타이당이 연정을 새로 구성해 패통탄을 총리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피타 대표 본인과 전진당에 각각 불거진 사법 위험에 더해 총리 선출을 위한 정치 구도의 불확실성까지 겹쳐 태국 사회의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제1당 대표 피타의 ‘3대 리스크’
피타 대표는 총리로 가는 길에 의석수 부족, 군부 반대, 선거법 위반 혐의라는 세 가지 위험 요인을 안고 있다.
전진당은 지난 총선에서 하원 500석 가운데 151석을 얻었다. 이후 프아타이당(141석)과 총 20석을 보유한 친(親)전진당 성향의 6개 정당과 손을 잡았다. 피타 대표가 이어지는 2차, 3차 투표에서 안정적으로 확보한 표는 과반에 못 미치는 312표뿐이다.
군부의 반대도 상당하다.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 채택 후 쿠데타가 19차례 발생했을 정도로 군부의 입김이 강하다. 11일 정계 은퇴를 선언한 쁘라윳 짠오차 총리 또한 2014년 쿠데타로 집권했다. 상원 250석 전체도 군부가 임명한다. 군부는 전진당의 징병제 폐지, 왕실모독제 형량 완화 공약 등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
총선에서 제3당에 오른 품짜이타이당은 친군부 성향이다. 각각 제4, 5당인 팔랑쁘라차랏당, 루암타이상찻당은 모두 군부 인사가 설립했다. 친(親)군부 성향의 기타 소수 정당과 상원 의석을 합하면 친군부 의석이 438석에 달한다. 이 가운데 64석의 이탈이 없으면 피타 대표가 총리가 되기는 어려운 셈이다.
사법 위험도 크다. 12일 선거관리위원회는 피타 대표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헌법재판소에 회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피타 대표가 현지 방송사 ‘iTV’ 주식 4만2000주를 보유한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태국은 미디어기업 소유주나 주주의 선출직 출마를 금한다. 피타 대표는 “2007년 iTV가 방송을 중단했으므로 미디어기업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11일에는 친군부 성향의 한 변호사가 “전진당이 태국의 입헌군주제를 전복하려 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전진당과 피타 대표를 모두 고발했다. 군부 인사가 대부분인 헌법재판소는 2019년 전진당의 전신 미래전진당에 해산 판결을 내렸다. 이를 감안할 때 이번에도 피타 대표 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낮다.
● 탁신 전 총리 ‘어부지리’ 가능성
피타 대표가 총리 등극에 실패하면 탁신 일가가 수혜를 누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2일 더네이션은 당초 이달 중 귀국하려던 탁신 전 총리가 차기 총리 선출 과정을 지켜본 후 귀국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는 피타 후보가 낙마하면 프아타이당이 차기 정부 구성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크고 자신의 딸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01∼2006년 집권한 탁신 전 총리는 쿠데타로 실각했다. 2008년 부패 혐의 등 각종 재판을 앞두고 출국해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15년간 도피 생활을 해 왔다. 법원은 그의 부패 혐의에 관해 여러 건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딸이 총리가 되면 자신의 사면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패통탄은 “아버지의 귀국 계획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는 우선 정국 안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기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