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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승진행)님 <묘엄평전>을 읽고
한창호(도안) 씀
1990년대 초반 서른을 갓 넘길 무렵쯤 묘엄스님을, 성철큰스님에 관한 책을 읽으며 만났었다. 도반인 청담큰스님 딸 묘엄의 근기를 보며 훌륭한 비구니 지도자로 키우려는 염원을 갖고서 성철선사는 묘엄에게 불교의 핵심을 전수하고 기초적인 제반 지식을 전하고자 했다. 알음알이를 물리치고 수행자 스스로의 수행만을 그토록 강조했던 듯한 선사께서, 비구도 아니고 비구니 스님에게, 그것도 14살의 어리디 어린 초짜 사미니에게 그토록 많은 시간을 내어 교육하는 모습에 깊이 감동했었다. 갓 출가한 어린 사미니 묘엄스님을, 도표도 그리고 그림도 그려가며 한국사나 한국지리까지 가르치는 등 선사께서 정성을 다해 교육했던 장면이 2025년에 다시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도 최소 한 달에 한번은 태안 수련원 묘금륜원에서 1박 2일로 거의 철야정진에 가까운 집중정진을 하며 만나는 승진행 박원자 보살님이, 정진 중 막간을 틈타 증정해주신 <묘엄평전>(조계종 출판사 간)을 통해.
봉녕사에 한국 불교 역사상 최초의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을 설립한 스님! 근대 한국 불교 역사에서 비구니로서는 처음으로 자운율사로부터 수계의식에 대한 실수(實修)를 습의 받고 <수계의범> 필사본을 전해 받아 비구니 율사로 전계를 받은 한국 최초의 비구니 율사! 한국 최초의 비구니 강원인 동학사 강원에서 전강(傳講)을 받은 뒤, 광복 후 비구니 강원에서 강사를 지낸 첫 비구니!... 묘엄스님은 특혜라 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선지식들로부터 아낌없는 교육과 지도를 받은 만큼이나 한국 비구니계에 혁혁한 공적을 세우셨으니, 참으로 불제자로서 은혜를 소중히 여겨 분골쇄신으로 그 갚음을 하셨음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자기 수행 안하고 남 살림이나 할래!’하는 성철 스님의 힐난을 받아가며, 요청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수많은 강사로서의 역할을 하면서도 언제나 선수행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려 애쓰셨던 묘엄스님. 젊었을 적 21일 간 능엄주로 용맹정진하여 깊은 선정의 맛을 본 이래 늘 능엄주를 외고 ‘이뭣고’ 화두를 평생 들었던 스님. 한국전쟁 직전 빨치산이 출몰하던 사찰에서 ‘진리의 길 앞에 난관이 대순가’ 하는 대장부의 마음으로 정진하며 빨치산이나 변장한 경찰조차 감복시켜 물러나게 한 장부 비구니 묘엄스님. 명실상부하게 계, 정, 혜 3학을 두루 겸비하신 만큼이나 수많은 학인들에게 경전을 가르치면서도, 언제나 계율을 수지하고 선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이끄신 뛰어난 스승 묘엄스님. 재가 거사, 보살들을 위한 맞춤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재가자 교육에도 정성을 다해 직접 강의하시며 재가자들을 참다운 불교신행 생활로 이끄셨던 스님. 사찰음식잔치 등의 불교문화 프로그램을 잘 장만해 지역 사회에 자연스럽게 불교문화를 알리는 전통의 뿌리를 마련하신 스님. 봉녕사에 주석하시며 동국대 도서관 버금가는 도서관 건립 등 많은 지적·문화적 건물을 건립해 불자들의 현대적 지혜 양성의 조건을 마련해주신 묘엄스님. 출가 이후 전 생애를 ‘상구보리, 하화중생’에 바치셨으니, 평전의 해당 구절들을 접할 때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 불자로서 나의 삶을 깊이 반성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평전에는 다른 곳에서 접할 수 없었던, 깊은 교훈을 담은 다양한 동양 대승불교의 재미난 일화가 마음에 꽂혔다. 묘엄스님의 부친 청담스님께서 학인들에게 한 법문 가운데 한 대목.
시주의 은혜가 무거운 줄 알아야 한다. 중국 당나라 때 위산영우(771∼853) 선사는 매일 마을에 사는 부잣집에 가서 쌀 두 가마니를 탁발해 대중들 식량을 대었는데, 입적하면서 제자에게 몇 년 뒤 그 부잣집 소가 새끼를 낳거든 배를 만져보라고 했다. 제자가 스승의 입적 후 열심히 수행하다가 어느 날 부잣집에 들렀는데, 마침 소가 새끼를 낳았는지라 배를 살펴보니 ‘위산영우’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니냐. 그렇게 큰스님도 대중을 위해 쌀을 탁발하면서도 그것을 갚기 위해 그 집의 소로 태어나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위산영우가 누구인가? 동양 선가에서 '하루 일 안하면 하루 굶는다(일일부작 일일불식)'로 유명한 백장스님의 제자이자, 소석가라 불리었던 앙산혜적스님의 스승으로, 훗날 앙산선사와 더불어 5가 7종에 속하는 위앙종의 종장으로 추앙받는 선가의 대선사이시다. 이런 대선사께서 제자들 먹이려는 양식을 준 시주자들 은혜를 갚으려 소로 환생했다니, 참으로 눈물 겨운 보은과 제자 사랑 이야기다.
살아 생전 묘엄스님께서 소중하게 학인들이나 재가자들을 가르치는 데 쓰셨던 <팔상록>의 한 대목도 너무도 오랫만에 접한 만큼이나 처음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일화는 이러저러하게 들었던 터지만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련해 다루어지니 아주 새롭고 뜨겁게 와 닿았다.
싯다르타 태자가 세상의 무상함을 깊이 느낀 뒤 부귀영화의 왕궁을 버리고 산중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다람쥐 한 마리가 호숫가에서 꼬리에 물을 적셔 숲으로 달려가 털어놓고 또다시 그렇게 물을 적셔 털어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싯다르타 태자가 다람쥐에게 물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이 호수에 담겨 있는 물을 모두 퍼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네 그 작은 꼬리로 한두 방울씩 물을 적셔내어 이 큰 호수의 물을 다 퍼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몇백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 않는가?”
“말씀하신 대로 오랜 세월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륙 년 정도 해보고 그만두겠다고 할 제가 아니지요. 아무리 긴 세월이 걸리더라도 한번 정한 결심을 이룰 때까지는 결코 그만두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다람쥐의 굳은 결의에 감동하여 이렇게 결심한다.
‘이 다람쥐의 결심 못지않게 나 또한 깨달음을 이루어 중생을 구제하기를 발원하고 있다. 설사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목적을 성취할 때까지 뜻을 굽히지 않으리라.’
이러한 발심 끝에 태자는 수행을 계속해서 드디어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했다.
다람쥐는 태자의 구도심을 시험하는 제석천의 변신이었다. 너무나도 깨침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문득문득 수행을 단념하고 왕궁으로 돌아갈까 갈등하는 태자를 보고 여간한 굳은 결심이 없으면 성불이라는 대원을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람쥐의 모습으로 나타나 일깨우며 용맹정진 하기를 격려하였던 것이다.
위 글이 실린 <팔상록>을 너무도 좋아했던, 묘엄스님이 사형으로 모시고자 했지만 묘엄스님을 극진히 받들고 보살폈던 묘전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성학 비구니(장평 문수사 회주)의 회고를 보자. 묘엄스님의 다정다감한 인간적 면모를 살펴보게 되면서 감동을 준다.
묘엄 스님이 읽어보라고 건네준 <팔상록>을 얼마나 감동 깊게 읽었는지, 세월이 흘러 노년에 이른 지금도 일생에 가장 좋은 책을 꼽으라면 이 책이라고 할 만큼 출가에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부처님의 열반상 부분을 읽을 때면 눈물이 난다. 당시 열여섯의 내 눈에 삼십 대의 묘엄 스님은 마치 부처님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내가 때로 위축되어 보일 때는 다가오셔서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나를 엄마로 생각하고 어렵고 힘들 때는 다 이야기하렴’ 하고 말씀하셨다. 세월이 흘러 내가 처음 주지가 되었을 때, 모든 사람이 친정처럼 머물다가 가는 곳으로 우리 절을 만들리라 결심했는데, 이는 젊은 시절의 묘엄 스님에게 배운 인간적인 따뜻함에 기인한 것이었다.
묘엄스님은 전통적 강원 교육을 마치고 세속의 교육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 경남대 전신인 마산대학 종교학과를 다니다 1963년에 동국대 불교학과로 편입해 졸업하시는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불교의 진리에는 객관적인 예를 들어 해석을 하고 무엇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한계가 없다. 현대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을 이해시키려면 현대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그들에게 맞는 불교를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교육 가운데 원만한 진리가 다 들어 있지만, 현대인들에게 맞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하는 게 불교이기도 하다. 인도의 범어 불전을 번역해서 만든 한문 경전에는 퍼 쓰고 퍼 써도 다함이 없는 우물처럼 깊은 진리가 내재되어 있다. 변해가는 사회와 문화 환경 속에서 불법을 널리 알리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객관적인 시야를 넓히고 신학문을 익히고 전통적인 학문을 현대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서 중생을 교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960년대 초엽이란 점을 감안하면, 큰스님의 선견지명이 빛난다. 대강백 운허스님한테서 그날그날 배운 그 '모오든' 경전의 대목 대목을 밤을 세우다시피해 다 외워 다음날 새로운 강의 전에 스승 앞에서 강(講)하였던 묘엄 스님! 이런 스님이셨기에 그 누구보다 한문경전의 깊이를 아실 테고 그걸로 자신은 족하지만 수많은 타인들, 주로 현대 신학문만을 접했을 학인들이나 재가불자들에게는 현대학문을 매개로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잘 헤아리셨던 것이다.
비구니 지도자로서의 묘엄스님이 등장하는 데는 무엇보다 성철, 청담, 자운 큰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 역할이 컸지만 묘전스님의 역할도 지대했던 듯하다. 박원자 작가님이 필시 인터뷰나 여러 관련 자료를 통해 정리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남편의 죽음 후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발심 출가한 뒤 선방에서 공부에 매진하다 생긴 상기병(上氣病)으로 인해 선방 수좌들을 외호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았던 묘전이 묘엄을 따라 봉녕사로 와 힘든 일을 도맡아 한 것도 오로지 묘엄이 비구니계의 지도자로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어느 누구도 묘엄에게 누가 되는 언행을 하면 용납하지 않았을 만큼 절대적인 보호자 역할을 했다. 묵묵히 뒤에서 보살행만 할 뿐 앞에 나서지 않는 묘전을 두고 생전에 성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묘전 수좌는 다음 생에 손가락을 이렇게 한 번만 들어도 틀림없이 성불할 거야.”
지도자란 함께하는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관계망의 각자가 제 역할을 해나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정립되는 것이지 억지로 추대되고 떠받들어져 되는 것은 아니리라. 렌즈에 비유해 보면, 초점에 해당하는 것이 지도자이고 초점 주위에 있는 넓은 주변부가 지도자와 관계 맺는 도반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점과 주변부가 다 합쳐져야 렌즈가 되지 어느 하나로도 렌즈는 이뤄지지 않는다. 빛을 받아 렌즈가 외부로 강력한 에너지를 보내려면 초점과 주변부가 단단히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묘엄 스님은 스님대로, 또한 스님과 관계를 맺은 많은 사형, 동기, 사제, 제자 스님들, 재가자들은 그들대로 거의 언제나 깊고 굳센 결속력을 보이며 제각각의 역할을 십분 발휘했음을 평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기에 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제자들을 묘엄스님에게 보내 가르침을 받게 했고, 또 묘엄스님한테 배운 학인들은 어디가도 존중받았다고 하는 것이리라.
이외에도 평전을 통해 감명 깊게 읽히는 대목은, 묘엄스님 가족분들이 재가자와 출가 수행자로 살면서도 결국은 부녀간, 모녀간, 모자간, 고부간, 부부간 관계를 모두 진리와 신앙의 삶으로 승화시킨 가족사였다. 아들의 씨앗을 뿌려 달라는 모친의 간곡한 부탁에 출가자가 되고자 이혼했던 아내 대도성 보살과 동침해 묘엄을 낳았고, 파계한 죄를 속죄하고자 한겨울에도 맨발로 걸어다니며 가열차게 수행정진 하셨던 청담스님. 아들이 스님이 된 후 출가해, 아들 못낳았다 그토록 구박했던 며느리에 대한 죄를 참회했던 청담스님의 어머님. 청담스님 전부인이 일제의 혹정에 안전을 도모하고자 결국 딸을 아버지 청담 스님 곁으로 보내 출가하게 해 탄생한 묘엄스님. 청담스님의 간곡한 편지와 청담스님 입적으로 참담해 하다 출가해 대도스님이 된 묘엄스님의 어머님... 병약한 어머니 스님을 몇 년간 정성으로 수발하며 돌보다 육신을 편안히 벗고 열반에 들게 도우셨던 묘엄스님을 보며, '출가한 자로서 가족에 연연해 한다'는 주위의 온갖 비난에도 꿋꿋이 어려운 처지의 어머니와 누이를 보살폈던 <증도가>로 유명한 일숙각 영가 현각 스님이 떠올랐다. 묘엄 스님 가족의 내력은 참으로 아름다운 한 수행자 가족의 장대한 드라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에 대한 해박하고 너른 안목을 갖추셨고 수많은 선지식들의 일대기를 많이 집필하신 승진행 박원자님의 혜안이 돋보이는 평전을 통해, 독자는 묘엄이라는 이 시대의 훌륭한 비구니 지도자 스님의 총체적 면모를 다채롭게 엿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으리라. 또한 묘엄 스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번듯하게 살림을 일으켜 세우셨던 비구니 승가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며 자신의 사찰을, 자신의 집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어떻게 하면 여법하면서도 튼실하게 꾸려갈 수 있을지 많은 시사도 받을 수 있으리라. 더불어 묘엄큰스님이 출가한 해가 1945년이라, 독자는 평전을 통해 자연스레 해방 후 한국불교의 숨가쁜 역사인 봉암사 결사, 불교정화운동 등의 세부모습들을 보면서 현대 한국불교사를 생생하게 접하는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동영상에만 너무 몰입해 있는 우리들 뇌로 하여금 때론 정겨운 이야기투로, 때론 똑 뿌러지는 논리로, 때론 그림을 보듯, 때론 음악을 듣듯 펼쳐지는 문체에 빨려들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유영하거나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정진의 적정세계에 젖게 해보기를 권해 마지않는다.
도안 합장

첫댓글 도안 거사님의 독후감으로 책 한권 다 읽은 듯 하며..,
승진행 보살님의 집필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도안거사님의 후기 감사합니다.
외손녀 이름을 세주라고 지으신
승진행작가님의 깊은 의미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독후감으로 선지식을 만나뵙습니다. 승진행보살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안거사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도안거사님.
감사합니다.
성의를 다하신 톡후감에
감동입니다.
책이
두터워서
선물하기도
죄송한데
독후감까지 올려주시니
정말 감사하네요.
자랑스러운 승진행님!!!
역사에 길이 남을 <묘엄평전>!
도안님의 독후감을 통해 다시 옷깃을 여미며 공경찬탄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