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입교한지도 어언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이제는 칠순을 넘어서 노인대열에 합류한 황혼의 절정기로 접어들고 있다. 육사 대열동기회는 50주년 행사를 뜻깊게 보내기 위해 충주를 가을 여행지로 선정하였다. 여행 테마는 충주호 유람선 승선, 탄금대 탐방, 충주 박물관및 고구려비 전시관 견학, 그리고 앙성면 능암 탄산온천욕 등 이다.
이번 여행경비는 동기회 기금으로 모두 충당하였다. 41명의 동기생들이 종합운동장역에서 관광버스에 탑승하고 이동간 아침식사를 거른 동기생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김밥과 과일,음료로 식음하였으며, 단양 장회나루터에 도착하자마자 충주호 유람선에 승선하였다. 충주호는 단양, 제천, 충주에 걸쳐있는 호수로, 소양호에 이어 국내 두번째 저수량의 거대한 인공호수이며, 흔히 '내륙의 바다'라고 부른다.
충주호 유람선에 승선하고 가다보면 단양8경에 속하는 구담봉(338m)과 옥순봉(283m)이 한 눈에 들어온다. 구담봉은 정면으로 보이는 기암절벽 암형이 거북모양을 닮았고 물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무늬를 띠고 있어 구담(龜潭)이라 불리며, 아담한 부챗살처럼 드리워진 바위능선이 마치 설악을 닮은 듯하고 능선 좌우의 기암절벽이 금강에서 옮겨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은 구담봉의 장관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고 한다. 푸른 물은 단양의 경계를 이루고 청풍에는 명월루가 있다. 선신은 어찌 기다리지 않고 섭섭하게 홀로 배만 돌아오는가.(碧水丹山界 靑風明月樓 仙人不可待 怊帳獨歸丹) 옥순봉(玉筍峰)은 희고 푸른 아름다운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 순과 같다하여 옥순이라 불리우며,
조선 명종 초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선생이 암벽에 단구동문(丹邱洞門)이라 각명하여 지금의 제천시와 경계가 되었다는 유서깊은 곳으로 소금강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연산군 때의 김일손 선생이 절경의 협곡을 극찬하였다고 한다. 옥순봉은 단양 8경 중 유일하게 단양에 속하지않고 제천 10경 중 제 8경에 속하는 명승지다.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은 옥순봉의 기암절벽과 노를 저으며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의 모습을 그린 동양화로 탄성을 자아낼 만큼 절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옥순봉을 지나면 옥순대교가 보이며. 옥순대교는 충주댐이 건설되기 전 나룻배를 이용해 강을 건너던 조용한 나룻터(괴곡나루)에 불과하였다.
옥순대교에서 바라보는 충주호의 낙조가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옥순대교에서 우측을 바라보면 가늠산 뒤편으로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금수산(1,016m)이 시야에 들어온다. 금수산(錦繡山)은 제천시 수산면과 단양군 적성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월악산(1,097m) 국립공원내에 속한 아름다운 산이다.
옥순대교에서 약 20분 정도 가면 청풍대교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청풍대교는 청풍교의 교통체증 현상을 완화할 목적으로 건설된 교량으로 충북의 유일의 사장교이며, 청풍호 수경분수가 용출하고 관광 유람선이 운항하는 청풍호(충주호), 그리고 청풍호반의 수려한 산세와 어우러져 세계적인 명소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청풍대교를 지나면 청풍나루터가 나온다.
청풍나루 건너편에 청풍랜드에 이국적인 콘도가 들어섰으며, 번지점프장은 이용객들이 보이지 않고 한산하였다. 청풍나루터에서 수산면사무소를 지나 36번 지방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월악산(1097m)이 웅장한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충주시내 한우 소머리곰탕 식당에서 수육과 소머리 곰탕으로 점심를 호식한 후 관광버스에 탑승하고 출발할 시 식당 부부사장이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어 고마웠다.
중앙탑 유적지(충주박물관)로 가는 도중에 탄금대를 둘러보기로 하였으나 시간관계상 생략하고 곧바로 충주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탄금대는 충주에 여행한다면 반드시 들려야할 곳이지만, 아쉽게도 그냥 지나쳐 버렸다. 탄금대는 우리나라 3대 악성중 한 명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 곳으로 유명하며, 우륵이 금(琴)을 탄곳이라 하여 탄금대(彈琴臺)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뿐만아니라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배수진을 치며 왜군과 맞서 싸우다 패전하자 투신한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명소다. 충주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앞다퉈 차지하려고 했던 곳으로 다양한 문화유산과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충주박물관은 2개의 전시관(역사실, 민속실)과 야외 전시장을 갖추고 있으며, 역사전시실은 충주의 불교유적과 기획전시실, 민속전시실은 충주지역 민중의 삶과 문화와 옛 집안 살림살이 도구가 전시되어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일명 중앙탑이라고 불리는 국보 제6호 탑평리 7층석탑을 비롯해 율능리 석불입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충주 박물관에서 가까운 곳에 고구려비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국내 유일의 고구려 석비인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 205호)를 만나볼 수 있다. 고구려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을 공략한 후 세운 기념비로 449년 축조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일명 고구려비라 칭하였다.
이 비석은 조그만 입석마을에 오랜 세월동안 고구려 역사를 간직한 채 풍우와 홍수를 견디며 외롭게 서 있었던 것으로, 1979년에서야 비로소 발견됨으로써 1,500년의 잠에서 깨어나 마침내 고구려의 역사를 새로 쓰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발견 당시 비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전시관은 고구려의 유산, 설화, 생활상, 역사와 함께 안악 3호분, 광개토대왕비, 충주 고구려비 발견과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충주시는 고구려 시기에는 국원성(國原城)이었으며, 신라가 이 곳을 빼앗은 뒤에는 중원경으로 개칭되었다. 비문 내용에 '신라 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라는 표현을 한것으로 보아 충주 고구려비 만들 당시 고구려군이 신라에 주둔했으며 고구려가 신라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비 전시실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말을 타고 달리는 고구려 장수왕의 늠름한 기상과 고구려비를 건립후 신하와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서있는 모습이었다. 충주시 앙성면 능암 탄천온천에서 온천욕을하고 귀경하기로 하였으나, 사무총장 박영한 시골집(충주시에 속한 별장)에 들러 도토리 묵밥, 고구마 등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일찍하고 오후 5시경에 서울로 향하였다.
박영한 사무총장은 10여년 전에 이곳에 터를 잡고 가족과 함께 1년 중 절반은 농사일과 더불어 자연과 벗삼아 시간을 즐기고 있다. 경작지가 2,500평 이지만 능력 범위내에서 두식구가 알콩달콩하면서 노후를 즐겁게 보내고 있는 행복한 부부이다. 하늘이 청명하여 가을 나들이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육사 입교 50년, 인생 70고개를 맞이하여 동기생들과 함께 조국의 아름다운 가을 경치를 탐상,탐미하면서 동기생들과의 쌓인 회포를 즐겁게 나누웠다. 특히 유람선 선상에서는 마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마냥 즐거워하면서 중대별, 동호회별로 멋진 사진들을 담았다. 동기생들과 함께 충주에서 가을의 낭만을 즐기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