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바다에서 돌고래 소리인 듯 휘파람인 듯 엷은 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파란 바다 위에 꽃처럼 테왁이 떠 있고 옅은 숨비소리를 내뱉던 해녀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오리발이 보인다. 숨과 맞바꿔야 하는 위험하고 고된 삶이겠지만 바닷속으로 스며들듯 잠수하는 해녀의 몸놀림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해녀가 되고 싶다면 제주도로 가자.
2016년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해녀 체험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한수풀해녀학교, 법환 좀녀마을 해녀학교, 하도어촌체험마을 등이 있다. 그중 해녀박물관이 있고 제주에서 해녀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하도리로 향했다.
여름 바다체험으로 인기가 높은 해녀체험. 제주 곳곳에는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해녀 문화를 전수하기 위한 해녀체험센터
가 많다.
[왼쪽,가운데/오른쪽]어촌 마을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하도어촌체험센터 / 물질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
다이빙, 스노클링, 서핑, 수영 등 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좋아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해녀 체험은 더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강사가 현직 해녀라니, 영광스럽지 않은가.
우리의 선생님이 될 해녀는 학생들을 맞이할 설렘에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 계셨단다. 해외여행에서도 현지 사람과 친해지기 제일 좋은 방법은 현지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외국어만큼이나 어려운 제주도 사투리를 써가며 해녀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할망 안녕하세요!"
바로 꾸지람이 돌아온다.
"듣는 할망 서운하게~ 할망 아니고 삼촌~!"
제주에선 성별을 불문하고 손윗사람을 친근하게 삼촌이라 부른다. 도시에서 친근함의 표시로 이모, 언니, 오빠라 부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보단 삼촌이 더 듣기 좋은 표현이다. 바로 호칭을 정정한다.
[왼쪽/오른쪽]일일 선생님인 해녀 /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바다로 나간다.
잠수복을 하나씩 들고 해녀 삼촌을 따라 샤워실로 들어갔다. 고무 재질의 잠수복을 입는 것만으로도 땀이 쏟아진다. 해녀 삼촌은 씨익 웃으며 다가와 잠수복 안에 물을 한 바가지 부어주신다. 물이 들어가니 잠수복과 몸 사이에 공간이 생기며 팔다리가 쑥쑥 들어간다.
잠수복, 물안경을 착용하고 물에 잘 가라앉기 위한 납까지 허리에 두르고 나니 제법 해녀 같다. 가볍게 몸을 푸는 준비 운동을 한 후,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는다. "물속에서 무섭다고 테왁을 꽉 끌어안고 떠 있으면 안 돼요." "수영에 자신 있다고 너무 멀리 나가도 안 돼요." "해초는 미끄러우니 밟으면 안 돼요."
교육을 마치고 바다로 고고싱
[왼쪽/오른쪽]물질 체험 채비를 끝낸 후 바다로 입수하기 전 '찰칵' / "해녀 삼촌~ 바다에서 잘 부탁드립니다!"
[왼쪽/오른쪽]바다에 몸을 반쯤 담그고 앉아 오리발을 신는다. / 이제 테왁을 수영장 킥보드처럼 손을 앞으로 뻗어 잡고 바다에 엎드리듯 누우면 몸이 붕 뜬다.
해녀 삼촌을 따라 바다로 출발. 오리발 덕분에 발장구를 조금만 해도 몸이 쑥쑥 앞으로 나간다. 수영을 못해도 겁내지 않아도 된다. 잠수복 덕분에 물에 둥둥 잘 뜨고 이마부터 코까지 둥그렇게 덮이는 물안경은 시야가 넓어서 물속에서 허우적댈 일이 없다.
먼저 물에 둥둥 떠서 해녀 삼촌이 능숙하게 잠수해 성게를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걸 구경한다. "이렇게 잠수해서 이렇게 잡아서 이렇게 테왁 망사리에 넣으면 돼!"라는 설명은 아주 간단해 보였지만 잠수부터가 쉽지 않다. 평소 프리다이빙을 즐겨 한다는 일행은 해녀 삼촌의 설명을 듣고선 자연스럽게 물속으로 들어간다. 물에 잘 가라앉기 위해 허리춤에 납을 둘렀는데도 물속에 거꾸로 들어가는 일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몇 번 시도한 끝에 바닥에 손이 닿긴 했지만 눈에 보이는 소라를 집어 드는 것조차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테왁은 물 밖으로 나왔을 때 잠시 쉴 수 있는 쉼터이자,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는 망사리다.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체험객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은 망사리에 넣어뒀다가 뭍으로 올라와서 꺼낸다.
몸을 직각으로 굽히면서 머리를 아래로 쑥 미는 느낌으로 힘을 주면서 발장구를 치니 잠수에 성공했다. 알록달록한 작은 물고기와 해초가 어우러진 바닷속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해서 짧게 숨을 들이쉬고 연신 바다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처음엔 성게나 소라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해녀 삼촌이 가리키는 곳에 거뭇한 가시가 흔들흔들하고 있다. 작은 바위를 살짝 들춰내니 성게가 오밀조밀 모여 있다. 덥석 움켜잡았다가 성게 가시가 따끔하게 느껴져 슬며시 집어 들고 물 밖으로 나와 환호성을 지른다.
해녀 삼촌이 파도가 잔잔해진 틈에 성게를 반으로 잘라 속살을 불쑥 입에 넣어주신다. 파도 위에서 먹는 성게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앞으로 성게를 먹을 때마다 파도의 리듬감이 느껴질 것만 같다. 한 시간 남짓 되자 잠수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작은 소라 몇 개와 성게가 테왁 망사리에 담긴다. 이렇게 뿌듯할 수가. 소라회 한 접시를 주문하고 양이 적다고 투덜거리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콩 집어먹듯 젓가락을 몇 번 놀리면 사라져버리던 소라회는, 이렇게나 고된 물질의 수확물이었다. 의기양양하게 물 밖으로 나와 망사리에서 작은 소라와 성게를 건져냈다.
[왼쪽/오른쪽]물질 후 저마다 잡은 것들을 꺼내놓는다. / 각자 잡은 소라의 크기를 비교하며 자랑한다.
체험 후 직접 잡은 성게나 오분자기를 맛본다.
일행의 망사리에서 작은 활전복이 나오자 모두 난리가 났다. 옆에 서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해녀 삼촌. 우리가 어설픈 잠수로 소라를 건져 올리는 동안 활전복을 잡으시곤 맛이나 보라며 망사리에 툭 넣어두셨다.
원래 제주 바다에선 마을 주민이나 해녀가 아니면 해산물 채취가 금지돼 있다. 하지만 해녀체험을 하며 잡아온 소량의 해산물은 체험이 끝난 후 바로 먹을 수 있게 손질해주거나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 많다. 성게는 칼로 가운데를 수직으로 눌러 살짝 돌리면 밤송이처럼 쩍 갈라진다. 성게 속살을 작은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된다. 소라는 젓가락으로 끝을 찔러서 동그랗게 말면서 빼내면 쏙 빠져나온다. 작은 활전복을 회처럼 잘라 사이좋게 한 점씩 먹는다. 제주에서 먹는 해산물은 언제나 맛있지만 내 손으로 직접 잡은 걸 먹는 맛이란!
[왼쪽/오른쪽]해녀체험 후에는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다. / 해녀체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체험객들
하도 어촌체험센터는 해녀와의 체험이 끝난 후에도 잠수복과 수경을 쓰고 잔잔한 곳에서 스노클링을 할 수 있게 시간을 준다. 작은 풀장처럼 물이 맑고 잔잔한 곳이 있어 한참을 놀다가 가까운 해녀박물관으로 향했다. 하도리 해녀박물관은 해녀의 역사와 더불어 제주만의 어촌, 해양 문화까지 전시돼 있으니 꼭 둘러보길 추천한다.
여행정보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897-27
- 문의 : 064-783-1996
- 이용요금 : 3만원(3인 이상), 4만원(2인), 중학생 이상 체험 가능
- 체험 기간 : 3~12월
주변 음식점
- 하도리1091 : 갈릭새우 플레이트 / 구좌읍 하도13길 6 / 064-784-2062
- 석다원 : 성게해물칼국수 /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752 / 064-784-2329
- 하도작은식당 : 파스타 외 / 구좌읍 하도13길 62-9 / 010-4177-3213
숙소
- 디스이즈핫 : 구좌읍 하도15길 153-5 / 064-784-4447
- 해녀와초가집 : 구좌읍 하도13길 65 / 064-783-3278
- 비젠빌리지 : 구좌읍 하도9길 72 / 064-784-8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