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자 전담인력에서 공유인력으로 전환 필요
안전예방 정책 ‘규모별 차등형 안전관리체계’로 전환
정수장은 운영·정비 단계까지 시설 생애주기 안전관리’로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이 심화되면서 중소기업의 산업안전보건 관리체계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과 별개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되면서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 부담은 더욱 커졌다.
문제는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상시 안전전문인력을 배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소규모 사업장이 안전관리자 한 명을 별도로 채용하면 급여뿐 아니라 4대 보험, 퇴직급여, 교육비, 업무공간과 장비 등 부대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안전전문인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인건비 상승으로 인력 확보가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법에서는 ‘안전전문인력을 확보하라’고 요구하지만 노동시장에서는 ‘확보할 사람이 없다’는 괴리가 발생한다. 이 같은 구조가 장기화되면 형식적인 선임이나 서류 중심의 안전관리로 흐를 가능성도 커진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공동안전관리자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주단체나 협회, 산업단지 관리기관 등이 안전전문가를 공동으로 채용하고 여러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관리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4년 공동안전관리 컨설팅 지원사업은 126억원의 계획액 가운데 53억4,400만원을 집행해 집행률이 42.4%에 그쳤으며, 당초 공동안전관리자 채용 목표 600명 가운데 실제 채용자는 363명이었다. 당시 사업은 공동안전관리자 1인당 월 250만원 한도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구조였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관리자 수요가 증가하면서 인건비가 상승했고, 이 같은 지원단가가 인력 확보의 제약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사업의 집행실적만으로 공동안전관리 모델의 필요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공동안전전문가의 인건비를 현실화하고, 담당 사업장 수와 사업장 간 이동거리, 업종별 전문성, 사업장의 위험도를 반영해 운영모델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들춰졌다.
즉 ‘공동안전관리자가 필요 없다’가 아니라 ‘현재의 공동안전관리 방식으로는 전문성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30인 미만, 30~49인, 50인 이상을 같은 방식으로 관리할 수 없다
현재 산업안전 정책은 법적 의무와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5인 미만, 5~29인, 30~49인, 50인 이상 사업장은 경영 여건과 인력, 재정 능력, 위험관리 역량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모든 사업장에 동일한 관리방식을 적용하기보다 사업장 규모와 위험도를 함께 고려한 차등형 안전관리체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5인 미만 사업장은 지역의 공공기관이나 전문기관을 통한 직접적인 지원을 강화하고, 5~29인 사업장은 공동안전전문가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위험성평가와 개선을 지원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30~49인 사업장은 사업장 자체 안전담당자와 외부 공동전문가를 결합하고, 50인 이상 사업장은 법정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관리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몇 명의 안전관리자를 배치하느냐’가 아니라 한 명의 안전전문가가 몇 개 사업장의 위험을 실제로 찾아내고 제거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물론 공동안전전문가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현장을 방문해 위험성평가표와 교육일지를 작성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개선방법을 제시하고, 필요한 개선비용을 산출하며, 실제 개선 여부를 확인한 뒤 다시 위험성을 평가하는 전 과정을 담당해야 한다.
즉, 위험요인 발굴 → 위험성평가 → 개선방법 제시 → 안전투자 → 개선 확인 → 재평가라는 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위험성평가가 단순한 법정 서류가 아니라 실제 안전투자로 연결될 수 있다.
영국 HSE 역시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사업주나 내부 직원이 안전관리를 담당할 수 있지만, 내부 역량이 부족할 경우 외부의 ‘competent person’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외부 전문인력 활용을 내부 역량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인정하는 접근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공동 안전전문가제도를 업종별·지역별 전문서비스 체계로 발전시키는 데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이다.
특히 정수장과 하수처리장, 소각시설 등 환경기초시설은 일반 제조업과 다른 전문적인 위험관리체계가 필요하다.
정수장만 해도 응집기와 교반기 등 회전체, 펌프와 전기설비, 약품 저장·주입시설, 밀폐공간, 수조와 고소작업, 중량물 취급 등 다양한 위험요인이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정수장 분야에 특화된 공동안전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들이 여러 정수장을 순회하면서 설비별 위험성평가와 개선관리를 수행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응집기·펌프·약품·전기·밀폐공간 등 주요 설비별 사고사례와 위험요인, 개선방법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이를 인공지능(AI)과 연계한다면 현장 안전관리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관리의 범위를 공사기간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수장·하수처리장·소각시설은 준공 이후 수십 년간 운영되는 사회기반시설이다. 건설단계의 안전관리와 운영단계의 안전관리가 단절돼서는 안 된다.
설계 → 시공 → 시운전 → 운영 → 정비 → 개량 → 해체 전 과정에서 위험정보가 이어지는 ‘시설 생애주기 안전관리’로 발전시켜야 한다.
미국의 WEFTEC 2026에서는 AI를 단순한 자동화 기술이 아니라 인력 부족을 보완하고,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며, 현장 작업자의 판단을 지원하는 도구로 접근하고 있다. WEF는 2026년 프로그램에서 AI를 자산관리, 예측운영, 디지털 트윈, 사이버보안, 인력지원까지 확대했다.
서울시 상수도본부등도 이같은 전략이 조속히 마련될 필요가 있다.
특히 운영·정비 단계에서는 설비의 노후화와 반복적인 정비작업에서 새로운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시설별 위험정보를 축적하고 다음 작업에 반영하는 체계가 중요하다.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안전보건공단의 역할도 모든 사업장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업종별 민간 전문기관과 공동 안전전문가를 연결하는 국가 차원의 산재예방 플랫폼 역할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공단은 표준모델과 위험정보, 교육 콘텐츠, 사고 데이터, 전문인력 인증체계를 제공하고, 지역·업종별 전문기관은 실제 현장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정수장과 하수처리장은 하수·기계·전기·화공 분야 전문가가, 건설현장은 건설안전 전문가가 담당하는 식으로 전문성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결국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예방은 ‘안전관리자 한 명을 의무적으로 확보하느냐’의 문제만으로 접근해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현장에 상주하는 현장책임자와 여러 사업장을 순회하는 공동 안전전문가를 결합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법적 책임과 현장 책임은 유지하되 안전전문성은 여러 사업장이 공유하는 것이다.
이는 규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규모와 위험도에 맞게 효율화하는 방식이다.
소규모 사업장에 대기업과 동일한 방식의 안전관리 인력을 요구하기보다 기업들이 전문성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전환한다면,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현장 안전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산재예방의 경제성은 안전관리 비용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명의 안전전문가가 얼마나 많은 사업장의 위험을 실제로 제거할 수 있느냐에 있다.
‘1사업장 1안전전문가’에서 ‘여러 사업장 1전문가 공유’로의 전환은 소규모 사업장 안전정책을 현장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하나의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이현동 전문기자, 상하수도기술사,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