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선의 환경문화기행
1. 탄금대는 열두대요 견문산에 있다.
대개 탄금대를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나 임진란 패전지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곳은 백제 이전엔 최첨단 산업기지인 제철지였고 방어를 위해 토성을 쌓기도 했으며 남한강 주운(舟運)의 중요 항구로 옥황상제와 용왕께 제사 드리던 땅임을 아는 이들은 적다. 편하게 차타고 올라와 열두대만 다녀가는 30분짜리 여행지가 아니라 신발 벗고 천천히 걸으며 선조들의 혼과 넋, 풍류를 느낄 수 있는 성지다. 충주의 첫 여행을 탄금대로 떠나보자.
사진1) 1920년대 국립청주박물관 소장사진. 금휴포로 추정되며 앞에 용섬과 오석의 백사장, 멀리 보련산이 보인다. 우측 기와지붕은 양진명소인지 신립장군사당인지 불분명하다. (사진으로 본 충주100년사, 충주시. 사진원판 청주국립박물관)
탄금대 전체 모양을 보고 싶어 장미산에 올랐다. 산정(山頂)에 서니 왜 선조들이 이곳에 성을 쌓았는지 알 것 같다. 동에서 달려온 남한강이 남에서 춤추듯 내려온 달래(獺川)를 포근히 껴안은 곳에 푸른 산이 누워 있다. 영락없이 개의 모양이다. 조상들이 견문산(犬門山)으로 불렀던 연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합수머리에 접한 산의 서측은 개의 머리(犬頭)에 해당하는데 맞은편 용머리 형상을 한 ‘쇠꼬지’를 향해 있다. 도로와 다리건설로 완벽한 형상이 훼손돼 아쉬웠다.
물안개 피어오는 날, 사대강 자전거길이 된 남한강둑에서 견문산을 바라보면 한 몸인 세 강아지 얼굴이 보인다. 삼신일체(三神一體)를 보는 듯하다. 열렬한 여행자에겐 그것을 볼 수 있는 복이 주어질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충청도편 제14권에 “탄금대는 견문산(犬門山)에 있으며 숲이 우거진 절벽의 높이가 무려 20여 길이나 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지고 양진명소(楊津溟所)를 내려 보고 있는데 우륵이 가야금 타던 곳으로 후일 탄금대로 불렸다(忠州의 地誌 재인용).”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조엔 “견문산(犬門山)은 현의 서쪽 8리에 있다. 그 아래 금휴포(琴休浦)가 있고 위쪽엔 우륵선생이 가야금 타던 탄금대가 있으나 산맥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고 전한다.
이로 볼 때 탄금대는 바로 열두대다. 견문산은 한남금북정맥에 속한다. 월악산 마패봉에서 서쪽으로 뻗은 첩푸산, 발티봉, 금봉산, 광명산, 능바우, 섬들(무술공원)과 연결되었다. 한편 속리산에서 나온 한금령과 부용산, 국망산, 평풍산, 쇠꼬지(검단산)와 마주한다. 사십년 전까지만 해도 섬이었으니 옛 사람들이 견문산의 지맥이 어디서 왔는지 알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진2) 1940년대의 열두대와 육각정, 강변자갈밭. 산의 동측 강바닥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前書인용)
그럼 ‘열두대’라는 지명은 어디에서 온 걸까? 충주 토박이인 필자는 지겹도록 탄금대로 소풍을 갔다. 아니 그곳은 30, 40년 전까지만 해도 충주시내 모든 초등학교의 소풍장소였다. 두 학교가 같은 날 소풍을 오면 산은 나무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
견문산에서 가장 경외(敬畏)스런 곳은 열두대였다. “절벽아래 시커먼 강물이 열두 번을 돌고 가서 열두대라고 부른다.”는 아이와 “신립장군이 왜적을 죽고 죽여 열이 난 칼과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해서 열두대”라고 주장하는 친구 간에 누구 말이 옳은지 갑론을박(甲論乙駁)하는 경우가 많았다.
열두대라는 지명은 가야금 12줄에서 유래된 것이다. 용처럼 굽이치는 시퍼런 강물과 그 위를 오가는 봉황을 바라보며 가야금을 뜯던 우륵과 그 제자들 명성 때문에 탄금대라고 부르게 되니 이는 열두대의 다른 이름이다.
가야금 12줄은 1년 12달과 변한 12국을 상징하고 나아가 천해 주변에 있던 우리민족의 시원국가인 환국(桓國)의 12 제후국을 상징한다. 그러고 보니 예수의 12제자, 올림푸스의 12신, 12지지(地支)로 볼 때 ‘12’는 동서양 공통 성수(聖數)다. 열두대 정자에 설치된 전자 가야금을 뜯고 충주 사과주스 한 잔하며 ‘12’라는 숫자를 음미하다 보면 우륵신선을 뵐지도 모르겠다. 탄금대가 된 열두대는 임진란의 원한을 달래고자 뒷사람들은 ‘신립장군이 절벽을 12번 오르내렸다’는 영웅담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한을 풀기는커녕 다시 왜놈의 총칼아래 40년 이상 노예가 되었으니 이제라도 민족구성원 모두는 대오각성 하고 국론을 모아 통일을 이루어야겠다.
사진3) 탄금대를 정비한다며 열두대를 데크목으로 덮었다. 조상들의 혼과 넋도 함께 덮였다.
‘견문산(犬門山)’의 지명유래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첫째가 세상이 만들어질 때 속리산에서 커다란 개가 떠내려 오다 이곳에 주저앉았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영월에 있던 큰 산의 모퉁이가 장마 때 이곳으로 떠내려 와서 해마다 영월원님과 충주원님이 징세권을 두고 다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그림동화책, ‘탄금대 세금 소동’도 나왔다.
견문산을 직역(直譯)하면 개문산이다. 도대체 뜻이 통하지 않는다. ‘견(犬)’은 ‘개(浦)’의 훈차(訓借)요 ‘문(門)’은 ‘물(河,水)’에 대한 음차(音借)이니 견문산은 ‘물(강)가 산’이다. 한국인은 지명이나 인명, 말할 때 ‘개(犬)’가 들어간 것을 욕되게 여긴다. 그래서 ‘犬’에서 점을 탈락시켜 ‘대문산(大門山)’으로 부르게 된 것은 아닐까? 마침 이곳은 충주와 서울을 오가는 큰 길목이 되니 ’대문산‘이라는 이름도 잘 어울린다. 그래서 절 이름도 ’대문산 대흥사’로 지었나 보다.
견문산은 열두대 이외에도 조상들의 혼이 깃든 여러 장소가 있다. 백제초기 제철지인 금대, 이와 같은 시기로 추정되는 토성, 하늘과 용왕께 제사 지내던 양진명소,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타다 쉬었던 금휴포, 마포나루와 남한강·달천을 오가던 배들의 중간 역이었던 계선대가 그러하다. 이런 장소는 다음에 여행하기로 하자.
충주나 탄금대와 관련해 좀 더 알고 싶다면 ‘디지털충주문화대전’을 참고하는 것이 가장 손쉽다. 참고서적으론 忠州發展史(이영)와 蘂城春秋(김상현), 中原鄕土記(장기덕), 忠州의 地誌(충주시, 충주대)가 있으나 구입 가능한 것은 ‘일제침략과 강점시기 충주지역사(전홍식)’정도다.
이곳은 충주공영버스터미널에서 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장미산은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윗말1길로 가면 된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집을 제대로 찾는 것이다. 탄금대 앞에 검정 두부요리나 중앙탑 주변의 오리탕이나 메밀요리가 좋다. 하지만 좀 더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도심에 있는 ‘공설시장’에 가면 일천냥 하는 녹두부침과 삼천냥 하는 보리밥, 자장면, 1천냥 카페를 즐길 수 있다. 장날(5일, 10일)’이라면 입은 물론 눈도 즐거워 할 것이다. 자세한 것은 충주시청(043-850-5114) 경제과나 공설시장(843-6138)으로 문의하면 된다.
첫댓글 이래 좋은 글을 와 이제사 올리노
그러게요...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그저 주변자료 허락받아 올린 것인데요.
박일선님의 글을 읽고 몇가지 의견을 적습니다.
열두대라는 지명은 가야금 12줄에서 연상한 것으로 <높은 누대樓臺>란 뜻으로 탄금대에 있는 자연 절벽을 일컫습니다.
일년은 열두달이고 12라는 수는 크다는 의미인데, 우리말의 쓰임에서 <크다는 성장하다, 부피. 몸집.키가 크다> 등을 보면 단순히 크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즉 볼륨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말 <크다>라는 말은 여러가지 뜻이 있습니다.
달래강을 한자로 수달달(獺)자로 썼으나 찾아보면 <덕천德川>이란 말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덕천의 덕자는 <큰 덕>자로 <달래>의 원래 뜻은 <개浦가 너른 강> ,<강폭이 너른 강>의 뜻입니다. <달래>의 <달>자는 <크다>는 뜻인데 위에서 쓴 것과 같이 <크다는 말을 어떤 사물이 볼륨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하면(3차원으로 해석) 넓다, 높다는 의미와 통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크다는 말은 넓다(廣), 높다(高), 많다(大)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포함합니다.
일상생활에서 가깝고 친근한 존재가 하늘의 <달月>인데,
하늘의 달은 천체중에서 크고 높습니다.
<달래>의 <달>이 하늘에 있는 달(月)의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복잡한 지금 시대와 달리 옛날 우리 조상들은 소박하고 심플한 세계에서 살았고 미분화(未分化)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쓰는 말을 유심히 관찰하면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 저도 동감입니다.
탄금대 주변은 합수머리란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남한강, 달래강, 충주시 중심가에서 흘러오는 충주천이 만나는 곳입니다. 지금은 탄금호라고 일컫듯이 호수를 이루어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우나 한눈에 강물이 흐르는 <물의 세계>의 중심에 탄금대가 위치합니다.
멀리서 보면 낮은 구릉이 보이고 그 형상이 남한강변을 따라 절벽을 이루며 휘어졌는데 예전에 부르던 <견문산犬門山 혹은 대문산大門山>은 잊혀지고 작은 장소를 일컫던 탄금대란 지명이 이 일대를 대표합니다.
견문산이란 지명은 아래와 같이 풀이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많은 지명은 모습을 연상하고 지었습니다.
금릉동 능바우마을 앞에 있는 광명산 (光明山)은 예전에 객망산(客望山)이라 하였고 흔히 <팽고리산>이라 하는데, <팽고리>는 <팽이>의 충주방언입니다. <팽이를 닮은 산, 팽이를 엎어놓은 모습의 산>으로 옻갖마을 부근에서 보면 팽이모양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옻갖마을 사람들이 이름 지었다고 여겨집니다.
이와같은 원리로 견문산은 탄금대의 형상이 <개가 대문앞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유래한다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덧붙일것은 탄금대는 충주시 중심에서 <십이지지의 술시(戌時)>에 해당합니다
몇수 배우겠습니다
둘째, 견문산은 우리말 <강이나 내>의 뜻인 <개(浦)의 문이 되는 산>을 한자로 옮긴 지명으로 풀이하는 것입니다.
이 풀이가 맞다면 이 지명은 위에서 쓴 것과 같이 탄금대 주변의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 됩니다. 다만 여기서 <개>자를 <개 포(浦)>자가 아닌 <개 견犬>자로 옮긴 것은 우리말을 한자의 뜻으로 옮긴 <뜻옮김> 즉 <훈차>가 아닌, <뜻의 음을 빌어 표기하는 좀 어려운 용어인 훈음차(訓音借)>입니다.
그리고 <문門>자도 <물>을 한자의 음을 빌어 표기한 <음차(音借)>로 보기는 어렵고 <훈차(訓借)>로 보아야 합니다.
네 부족한 소인의 글에 상세한 설명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차한잔 올려야 겠습니다.
여기 글을 게재한 것은 바로 이런 비판과 지적을 받고자함이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