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혐의 입증 자신
곽 前사장 "한 前총리와는 98년부터 알아… 자주 통화"
한 前총리, 성경 들고 조사받아 검찰서 나온 후 "모두 허위다"
검찰은 18일 체포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구속)과의 대질조사까지 시도하며 밤늦게까지 맹공을 퍼부었지만, 한 전 총리는 처음부터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겠다"면서 완강하게 맞섰다.검찰과 한 전 총리의 힘겨루기는 이날 오후 1시 46분쯤 권오성 특수2부장과 주임검사, 변호사를 대동한 한 전 총리가 1123호 조사실 탁자에 앉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조사는 권 부장이 직접 맡았다. 한 전 총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은 모두 허위다.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에 응할 수 없다.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겠다"면서 방어벽을 쳤다.
권 부장이 한 전 총리에게 "1998년부터 곽 전 사장을 알고 지내지 않았느냐" "공기업 사장 청탁 대가로 돈을 받지 않았느냐"면서 공세를 취했지만, 한 전 총리는 혐의 사실에 대해선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있었다. 조사를 시작한 지 1시간가량 지나 곽 전 사장과의 대질신문이 이뤄졌지만, 한 전 총리는 끝까지 함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에 들어가기 전 한 전 총리는 특수2부장실에서 서울중앙지검 김주현 3차장, 권 부장과 20분간 차를 마셨다. 그 자리에서 김 차장이 "법 절차에 따르되 최대한 예우를 갖춰 조사하겠다"고 하자, 한 전 총리는 "총리로서의 예우를 바라지 않으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왔다"면서 팽팽한 긴장을 예고했다.
한 전 총리가 진술을 거부했지만, 검찰은 혐의 입증을 자신하는 분위기였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확보한 곽 전 사장의 진술이 한 전 총리의 뇌물 수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고 했다.
- ▲ 18일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에서 한명숙 전 총리의 지지자라고 밝힌 승려(왼쪽)가 문구용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자 재단 관계자(오른쪽)가 말리고 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곽 전 사장이 검찰에서 진술한 사건의 요지는, 한 전 총리가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1998년 행사경비를 지원하면서 서로 알게 됐고, 2005년 대한통운 사장에서 물러난 뒤 수시로 통화를 하면서 '공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했다는 것이다. 이어 한 전 총리가 총리로 있던 2006년 12월 20일 총리 공관에서 오찬을 하면서 "대한석탄공사 사장으로 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5만달러를 건넸다는 것이다. 곽 전 사장은 당시 각각 2만달러, 3만달러가 든 편지봉투를 양복 상의 안쪽에 넣고 있다가 건넸다고 진술했는데, 검찰은 이게 가능한지 직접 시연(試演)까지 했다고 한다.
곽 전 사장은 그러나 석탄공사 사장으로 가지 못했고, 다음해 한국남동발전 사장이 됐다. 이와 관련, 한 전 총리측은 "그동안 남동발전 사장 인사청탁이라고 흘리다가, 체포영장에는 석탄공사 사장으로 가기 위해 뇌물 준 혐의라고 돼 있는데, 이는 수사가 아니고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주현 3차장은 "석탄공사나 남동발전 모두 공기업이어서 이 과정은 다 연결돼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애초 곽 전 사장의 요구가 공기업 사장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고, 그 뒤 5만달러를 건네고 나서 남동발전 사장으로 간 만큼 '대가성 자금'으로 보는 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한 전 총리를 연행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이날 낮 12시44분쯤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체포된 한 전 총리는 연행 직전 기자회견을 갖고, "천만번을 다시 물어도 제 대답은 한결같다. 아닌 건 아닌 것이다"고 한 뒤 순순히 영장 집행에 응했다.
체포 현장엔 한 전 총리 지지자 60여명이 몰렸다. 그 중 한 사람이 자해 소동을 빚기도 했지만, 큰 불상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