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금붕어야!
김선희
우리 집 거실 입구를 차지하는 사각형 어항에는 금붕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항 가까이를 가면 언제 어느 때나 변함없이 온 몸을 흔들며 반기는 모습은 저녁이면 모이는 우리 가족들에게 하루의 피로를 싹 날릴 수 있는 생기를 주었다. 그 모습이 좋아서 가족들은 서로 먹이를 주려고 하였다. “금붕어는 먹이가 없어질 때까지 자꾸 먹기 때문에 배 터져 죽는데...” 라며 먹이통을 책상서랍에 숨겨 놓고 나만 조금씩 먹이를 주기로 하였다. 나의 바람대로 흐르는 시간에 비례하여 조금씩 몸집을 키워 “금붕어가 저렇게 크기도 하구나” 감탄사를 보낼 정도로 자라고 있었다. 신나게 물살을 가르며 떠다니는 금붕어에게 “어항에 딱 어울리네. 너 그렇게 크려고 혼자였니?”라며 금붕어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였다. 이렇게 재롱을 부리고 있는 금붕어는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여 대청소를 하던 날, 비어있던 어항까지 깨끗하게 청소한 뒤 맑은 물이 출렁이도록 해 놓고 주인을 찾아 나섰다.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수족관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물고기 중에서 저마다의 빨간 색과 먹이를 찾는 입의 귀여움을 지닌 금붕어가 좋아보였다. 활기차게 움직여서 잘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주는 10마리를 선택하여 우리 집 어항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주었다.
‘참 잘 했다’는 만족감은 한 달도 채 안 되어 걱정거리로 변했다. 수명이 길며, 특별한 보살핌이 없어도 잘 자란다는 설명과는 다르게 한 마리씩 그 숫자가 적어지고 있었다. 금붕어의 전문가이신 수족관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니 “스트레스 예방약을 타 줬나요?” 하신다. 그런 것도 몰랐다니... 애완동물을 기르기 위한 준비가 덜 되었네. 금붕어에게 좋다는 약을 2가지 구입해서 물에 풀어 주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먹이를 주고, 더러워진 어항 청소를 해 주면서 사랑을 주었다.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문득 생각이 날 때 들여다보면 그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수명이 짧네.”하며 죽은 금붕어는 금방 잊어버리고, 남은 금붕어들의 힘찬 몸놀림만 좋아하였는데 10년쯤 지나니 2마리만 남게 되었다. 조금 큰 것은 아빠 금붕어, 조금 작은 것은 엄마 금붕어라고 이름 붙여주면서 가족처럼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했다. 우리의 바람대로 2마리는 어울려 다니면서 휘돌아 헤엄칠 때는 푸드득! 하는 큰 소리로 우리 가족을 깜짝 놀라게 하는 등 금붕어들은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니 집안일을 하시면서 금붕어를 내 손자처럼 돌보시던 엄마가 “두 마리가 정겹게 잘 지내더니... 큰 것이 자꾸 못살게 하더니 작은 녀석이 힘이 없네. 쯧쯧쯧” 하신다. 안쓰러움이 담긴 엄마의 이야기가 있은 며칠 후 큰 금붕어만 남게 되었다. 사각형 어항에서 비록 혼자 남았지만 신나게 돌아다니며 먹이를 쫓아다니며 자신을 키워가고 있었다. ‘금붕어가 저렇게 커지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 크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지 먹이를 쫒아가는 움직임이 느려지고 피부에 광택도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 녀석도 죽을까봐 걱정이 되어 ‘아파트 안에 있는 어항이기 때문에 열대어인 구피에게도 괜찮겠지’ 라고 혼잣말을 하며 구피 4마리를 넣어 새로운 환경을 주고 열심히 관찰하기로 했다.
어항에 들어가면 산소방울을 따라 전부 섞이는데도 불구하고 먹이의 냄새에 따라 서로 방해되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어항의 왼 쪽으로는 금붕어 먹이를, 오른 쪽으로는 구피 먹이를 주었다.
작은 몸집으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구피와 한 가족이 된 금붕어도 덩달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피부에 광택이 반짝반짝 나기 시작하였다. 금붕어를 살렸다는 흐뭇한 마음과 “구피도 잘 살고 있네.” 라며 안심이 되어 먹이를 주는 손길이 즐거웠다.
혼자 담당하고 있던 금붕어와 구피의 먹이를 책상서랍에서 꺼내어 어항 위에 얹어놓고 가족들에게 먹이를 주라고 부탁을 한 뒤 남미로 22일간 여행을 갔다 왔더니 금붕어가 다시 혼자 놀고 있었다.
“구피가 어디 갔지?”, “금붕어가 구피를 다 잡아먹었네”, “금붕어는 전용 먹이만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구피를 잡아먹었다고?”,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 잡아먹는 것이 당연하지.”, “따로 떼어놓고 갔어야 했는데...” ‘금붕어는 배고파 죽지는 않는다고 하더니... 무지로 구피만 죽였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늦었지만 무지를 탈피하기 위해 금붕어 기르기는 방법을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다. 동물성, 식물성 먹이 다 잘 먹으며, 수명은 20년 이상이라고 한다. 금붕어의 수명이 아직 10년 정도 남았으니 구피와 같이 살 때처럼의 활기도 찾고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하였다.
이런 저런 묘책을 궁리하다가 땅이나 음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에 하늘이나 양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결합하여 생명으로 연결하는 방지원도(方地圓島)가 생각났다. 하여 구피가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의 촘촘한 그물로 된 원통을 구입해서 사각형 어항의 안쪽에 매달았다. 원통 안에 들어 간 구피는 깊은 곳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며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따라 금붕어도 원통 주위를 맴돌다가 어항의 이 쪽 저 쪽으로 헤엄을 치는 등 신나게 놀고 있었다. “이제 됐구나.” 하며 열심히 먹이를 주었는데 일주일쯤 지나자 금붕어의 몸놀림이 이상했다. “어! 저 녀석 왜 저래. 힘이 없네.” “구피의 움직임은 보이는데 같이 놀 수 없어 그런가?” ‘같이 잘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고 어물어물하는 동안 금붕어는 그 큰 몸집을 구부리며 바닥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어! 이게 아닌데..., 둥근 통이 너무 컸나?, 원통을 넣기 전에 그 기회를 한 번 더 너에게 줬어야 했나?, 작은 물고기들의 움직임만 보이고 같이 놀지 못해서 애가 탔나?, 너를 생각해서 만든 것들이 도움이 되지 못했구나. 바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세심히 살펴봤어야 하는데 빨리 너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했구나.
때 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뿐이었다.
미안해! 금붕어야!
첫댓글 어항에 금붕어를 키우시는 실력이 프로급입니다. 사실 자연속에서 자유자재로 생활해야 할 금붕어를 좁은 어항 안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그래도 지극 정성으로 물고기를 돌보시며 그들이 자라는 모습에 사랑과 위안을 느끼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모든 동식물은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게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금붕어도 사람처럼 환경이 새로 바뀌면 스트레스를 받아 안정제와 같은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선생님의 글을 읽고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금붕어도 혼자 보다는 누군가와 더불어 살 때 더 활기차고 행복한가 봅니다. 긴 여행을 다녀 오시는 동안 구피가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는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금붕어를 탓할 수는 없겠지요. 금붕어를 기르며 느끼는 기쁨과 애환을 담담히 써 내려 가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친구집이나 지인들 집에가면 어항에 금붕어를 키우는 집을 볼때 재미로 키우고 있구나 싶었는데 자라는 과정이 퍽도 신경을 쓰임을 선생님의 글을 읽고 알았습니다. 바뀐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예방약도 타 주어야하고 큰 금붕어는 작은 구피를 잡아먹고 센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인 동물의 왕국 법칙을 보는 듯합니다. 보통 관찰을 해서는 키우기 힘들것 같습니다. 끈기와 관찰이 필요한 금붕어기르기, 나 같이 게으름벵이는 남의집 키우고 있는것 구경으로만 만족해야 겠습니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금붕어가 살아가는 모습 잘 읽고 갑니다.
찬란이, 김선희 선생님! 게시판에 처음 올리신 글이 아닌가해서..우선 축하드립니다. 수족관에서 금붕어와 구피를 기르던 이야기를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풀어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애완동물보다 물고기 기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글을 읽으면서 금붕어에 대해서 처음 듣고배우는 많은 이야기들이 재미 있습니다.
그리고 무리없이 풀어낸 글의 흐름이 읽게에 편합니다. 잘읽었습니다.
금붕어를 키우면서 느낀 경험과 감정을 여과없이 풀어 놓았습니다. 이야기에 끌려 열독 했습니다. 물고기들의 생태를 관찰하며 적합한 관리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애쓴 보람없이 죽어버린 금붕어에 대한 미안함이 묘사된 끝머리가 인상적입니다. 미안해 금붕어야. 안타까운 마음이 긴여운을 남기며 메아리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올 봄에 지인이 구피를 좀 줘서 키우다 여름에 중국여행 7일간 갔다오니 반 이상 가버렸더라구요, 그리고 얼마전 어항 자갈 이끼가 잘 지지않아 퐁퐁 몇방울 넣어서 깨끗하게 몇번이나 행구었는데도 자갈을 넣자 3분도 안되서 몇마리가 가버려서 부랴부랴 자갈을 빼버렸어요, 그래서 지금 2마리만 남았답니다.무지한 주인을 만나 그런 참사가 벌어져서 얼마나 미안하던지~.금붕어나, 열대어 몇년씩 키우는 분들 대단하셔요
세심한 관리와 정성을 기울여야만 키울 수 있는것 같습니다.금붕어 키우는 과정과 정성이 그대로 글에 묻어있네요.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