宰我問 三年之喪 期已久矣 재아가 묻기를, “삼년상은 기간이 너무 깁니다.
○ 期 周年也 期란 1주년을 말한다. 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 三年不爲樂 樂必崩 군자가 3년 동안 예절을 행하지 않으면 예절이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恐居喪不習而崩壞也 상을 치르느라 예악 행하기를 익히지 않으면 예악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慶源輔氏曰 此述宰我之意也 然禮樂自事親從兄而出 不能三年之喪 則禮樂之本 蹙矣 宰我慮其崩壞而急之於玉帛鍾鼓之間 則亦不知務 甚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는 재아의 뜻을 서술한 것이다. 그러나 예악은 부모를 섬기고 형을 따르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삼년지상을 해낼 수 없다면 예악의 근본이 쪼그라들 것이다. 재아는 그것이 무너질까 염려하면서도 옥백과 종고 사이에서 조급해하였으니, 이 역시 힘써야 할 바를 알지 못함이 심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묵은 곡식이 이미 없어지고 새 곡식이 익으며 불씨를 취하는 나무도 바뀌니 1년이면 그칠 만합니다.” 하니,
○ 沒 盡也 升 登也 燧 取火之木也 改火 春取楡柳之火 夏取棗杏之火 夏季取桑柘之火 秋取柞楢之火 冬取槐檀之火 亦一年而周也 已 止也 言期年則天運一周 時物皆變 喪至此可止也 沒은 다한다는 말이다. 升은 오른다는 말이다. 燧란 불을 채취하는 나무다. 불을 개비할 적에, 봄에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의 불을 취하고, 여름에는 대추나무와 살구나무의 불을 취하며, 늦여름에는 뽕나무와 산뽕나무의 불을 취하고, 가을에는 떡갈나무와 졸참나무의 불을 취하며, 겨울에는 느티나무와 박달나무의 불을 취하니, 이 역시 1년이면 한 바퀴 돌아서 행한다. 已는 그만둔다는 말이다. 1주년이면 하늘의 운행이 한 바퀴 도는 것으로서 계절과 만물이 모두 변하므로, 상 치르는 것은 여기에 이르면 그만둘만 하다고 말한 것이다. 周禮夏官 司爟掌行火之政令 四時變國火以救時疾(行猶用也 變猶易也 鄒子曰 春取楡柳之火 夏取棗杏之火 季夏取桑柘之火 秋取柞楢之火 冬取槐檀之火) 季春出火民咸從之 季秋內火民亦如之 주례 하관에 의하면, 사관(司爟)이 불을 사용하는 정령을 관장하며 사계절에 나라의 불을 바꾸어서 계절병을 구제하는데(行은 쓴다는 말과 같고, 變은 바꾼다는 말과 같다. 추자가 말하길, 봄에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의 불을 취하고, 여름에 대추나무와 살구나무의 불을 취하며, 늦여름에 뽕나무와 산뽕나무의 불을 취하고, 가을에 떡갈나무와 졸참나무의 불을 취하며, 겨울에 느티나무와 박달나무의 불을 취한다고 하였다), 늦봄에 불을 내면 백성들이 모두 그에 따르고, 늦가을에 불을 안으로 들이면 백성들 역시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問四時取火 何爲季夏又取一番 朱子曰 土旺於未 故再取之 누군가 묻기를, “사계절에 불을 취하는데, 어찌하여 늦여름에 또 다시 한번 취합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土의 기운이 未월(음력 6월)에 왕성하기 때문에 재차 불을 취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時物固皆變矣 吾心哀恒之實自有不能已者 則不可因彼而變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때와 사물은 본디 모두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애통함이 항상 존재하는 실제에 있어서 스스로 그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저 때와 사물로 인하여 변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四時取火之木不同 楡柳木之靑者 故春取之 棗杏木之赤者 故夏取之 桑柘黃 柞楢白 槐檀黑 各隨其時之方色取之 蓋五行之中各有五行 火有五色 亦如金有五金之類 古人作事件件順天時 況水火乃天地間妙用 尤不可不順其性 水失其性 則爲水災 火失其性 則爲火災 旱暵疾疫皆是 因時改火以達其氣 亦贊化育之一事也 故周禮司爟掌四時變國火以救民疾 後世都不理會 如何得陰陽和萬物育 쌍봉요씨가 말하길, “사계절마다 불을 취한 나무가 달랐다.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는 나무 중에 푸른 것이기 때문에 봄에 그것을 취한 것이다. 대추나무와 살구나무는 나무 중에 붉은 것이기 때문에 여름에 그것을 취한 것이다. 뽕나무와 산뽕나무는 노랗고, 떡갈나무와 졸참나무는 하얗고, 느티나무 박달나무는 검다. 각자 그 계절의 방색에 따라 취하는 것이다. 대체로 오행 안에 각자 오행이 또 있으니, 불에도 오색이 있는데, 이 또한 금에는 5금이 있다는 부류와 같은 것이다. 옛사람이 일을 할 적에 사사건건 天時를 따랐는데, 하물며 물과 불은 천지간에 오묘하게 쓰였으니, 더더욱 그 천성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이 그 천성을 잃으면, 水災가 되고, 불이 그 천성을 잃으면 화재가 된다. 가뭄과 무더위, 질병과 전염병도 모두 이러한 것이다. 계절에 따라 불을 개비하여 그 기운을 이르게 하는 것은 역시 化育을 돕는 일의 하나다. 그러므로 주례에서 司爟이 사계절마다 나라의 불을 바꾸어서 백성의 질병을 구제하는 것을 관장하였던 것이다. 후세 사람들이 이를 모두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음양이 조화롭고 만물이 생육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尹氏曰 短喪之說 下愚且恥言之 宰我親學聖人之門 而以是爲問者 有所疑於心而不敢强焉爾 윤씨가 말하길, “복상기간을 줄이자는 말은 下愚者도 또한 말하기를 부끄러워한다. 재아가 직접 성인의 문하에서 배웠음에도 이것으로 질문을 삼은 것은 마음에 의심스러운 바가 있어서 감히 억지로 질문을 그만두지 하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尹氏說固忠厚 然宰我之失終在 但其致問之時 猶出於情 實較之後世匿情行詐而口不相副者 則猶爲無隱耳 경원보씨가 말하길, “윤씨의 말은 본디 충후하다. 그러나 재아의 잘못은 끝내 존재하였다. 다만 그가 질문을 할 때, 그래도 실제 사정에서 출발하였다. 실제로 후세에 사정을 감추고 거짓을 행하면서도 입으로는 서로 부합하지 않는 사람과 비교한다면, 재아는 그래도 숨김이 없는 사람이 될 뿐이다.”라고 하였다. 子曰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曰 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모의 상을 당하여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네 마음에 편안하냐?” 하시니, 재아가 “편안합니다.”라고 했다.
○ 禮 父母之喪 旣殯 食粥 麤衰 旣葬 疏食 水飮 受以成布 期而小祥 始食菜果 練冠縓緣 要絰不除 無食稻衣錦之理 夫子欲宰我反求諸心 自得其所以不忍者 故問之以此 而宰我不察也 예에 의하면, 부모의 상에 있어서는, 이미 염을 하였으면 죽을 먹고 거친 상복을 입으며, 이미 장례를 마쳤으면 거친 밥을 먹으며 물을 마시고, 成布로 만든 옷을 입는다. 1주년이 지나 소상이 되면, 비로소 채소와 과일을 먹으며, 굴건관을 씻고 붉은색 두른 옷을 입지만, 요질은 풀지 않는다. 그러니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이치는 없는 것이다. 부자께서는 재아가 그 마음에 돌이켜 구하여 스스로 차마 하지 못하는 까닭을 터득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것으로 물었으나 재아가 살피지 못한 것이다.
朱子曰 成布是稍細成布 初來未成布也 八十縷爲一升 古尺一幅只闊二尺二寸 算成斬衰三升 如今漆布一般 所以爲未成布 주자가 말하길, “成布는 조금 가는 실로 만든 베(6승 이상)인데, 처음에는 미성포였다. 80올이 한 升이므로, 옛 척도로 一幅은 겨우 2자 2촌 정도로 넓으니, 참최 3승으로 환산할 수 있다. 지금의 칠포와 같은데, 이 때문에 미성포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縓今淺絳色 小祥以縓爲緣 一入爲縓 禮有四入之說 亦是漸漸加深色耳 주자가 말하길, “縓은 지금의 옅은 붉은 색이다. 소상이 되면 縓으로 옷깃 가장자리를 꾸미는데, 한번 물들이면 縓이 된다. 예에 의하면, 4번 물들인다는 설도 있는데, 이 역시 점점 짙은 색을 들이는 것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記間傳 父母之喪 旣殯食粥(未殯之前 勺水不入口 旣殯則三日矣方食粥) 朝一溢米(二十兩爲一溢以爲粥) 莫一溢米 齊衰之喪 疏食水飮 不食菜果 大功之喪 不食醯醬(可以食菜果矣) 小功細麻不食醴酒(可以食醯醬矣) 父母之喪 旣虞卒哭 䟽食水飮(可以不食粥矣) 不食蔬果 期而小祥 食菜果 又期而大祥(期而服練謂之小祥) 食醯醬 中月而禫 禫而飮醴酒(醴酒味薄 故得飮之) 始飮酒者先飮醴酒 始食肉者先食乾肉 예기의 간전에 따르면, 부모의 상에 이미 염을 마쳤으면 죽을 먹는데(염하기 전에는 물 한 국자도 입에 넣지 못한다), 아침에 1溢의 쌀로 죽을 만들어 먹고(20냥이 1일인데, 이로써 죽을 만든다), 저녁에 1溢의 쌀로 죽을 만들어 먹는다. 제최의 喪에는 거친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데, 야채와 과일은 먹지 않는다. 대공의 喪에는 초와 장은 먹지 않고(야채와 과일은 먹을 수 있다), 소공과 세마의 상에는 단술을 먹지 않는다(초와 장은 먹을 수 있다). 부모의 상에는 이미 삼우제와 졸곡을 지냈으면,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되(죽을 먹지 않을 수 있다), 채소와 과일은 먹지 않는다. 1년이 지나 소상(1년이 지나 연복 입는 것을 일컬어 소상이라고 한다)이 되면, 채소와 과일을 먹고, 다시 1년이 더 지나 대상이 되면, 초와 장을 먹는다. 다시 달을 띠워(中月: 2달 지나) 담제를 지내는데, 담제를 지내고서 단술(醴酒는 맛이 옅기 때문에 마실 수 있는 것이다)을 마신다. 술을 마시기 시작함에 있어 먼저 단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기 시작함에 있어 먼저 육포를 먹는다. 女安則爲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故不爲也 今女安 則爲之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편안하거든 그리해라. 군자가 부모의 상을 당하고 있을 적에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하는 곳이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니, 지금 네가 편안하거든 그리하라.” 하셨다. 樂 上如字 下音洛: 樂의 경우 위는 원래 글자대로 읽고, 아래는 발음이 락이다.
○ 此夫子之言也 旨 亦甘也 初言女安則爲之 絶之之辭 又發其不忍之端 以警其不察 而再言女安則爲之 以深責之 이는 공자님의 말씀이다. 旨 역시 달다는 뜻이다. 네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하라고 처음에 말한 것은 끊어내는 말이다. 다시 그 차마 하지 못하는 단서를 드러내어 줌으로써 그가 살피지 못한 것을 일깨워주시면서, 네가 편안하다면 그렇게 하라고 다시 말함으로써 그를 깊이 나무라신 것이다.
新安陳氏曰 四不字皆是發其不忍之端 신안진씨가 말하길, “4개의 不자는 모두 그 차마 하지 못하는 단서를 드러내어 주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夫子之門 子夏子張 旣除喪而見 予之琴 和之而或和或不和 彈之而或成聲或不成聲 一則曰 先王制禮不敢過也 一則曰 先王制禮不敢不至焉 其於三年之喪如此 宰我與二子相處久矣 豈不習聞其槩而安於食稻衣錦也 夫魯莊公之喪 旣葬不入庫門 士大夫旣卒哭麻不入 然則三年之喪不行 久矣 至是而夫子擧行之 宰我門人高流也日聞至論 而有以期爲安 況斯世乎 其後滕世子欲行三年喪 父兄百官皆不欲 然則三年之喪 獨行於孔孟之門而朝廷未嘗行也 甚至以日易月 無復聽於冢宰三年不言之制 而三年之喪 迄今行之天下者 宰我一問之力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공자 문하의 자하와 자장이 이미 부모상을 마치고 공자님을 뵙자, 공자께서 그들에게 거문고를 주면서 和하게 하니, 혹자는 和하고 혹자는 和하지 못하였고, 彈하게 하니, 혹자는 소리를 이루고 혹자는 소리를 이루지 못하였다. 한 사람이 말하길, 선왕의 제도와 예법이니 감히 지나치게 할 수 없다고 하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말하길, 선왕의 제도와 예법이니 감히 지극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들이 삼년지상에 대하여 이와 같이 하였고, 또 재아는 이 두 분과 서로 거처한 것이 오래되었으니, 어찌 재아가 그 대강을 익숙하게 듣지 않아서 쌀밥을 먹고 비단옷 입는 것을 편안해하였겠는가? 무릇 노장공의 상에 있어, 이미 장사를 지냈음에도 허리띠을 창고문에 들이지 않았고, 사대부가 이미 卒哭을 마쳤음에도 麻絰 차림으로 궁안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삼년지상을 행하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공자께서는 삼년지상을 행하였으나, 재아는 문인 중의 高流여서 날마다 지극한 논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년지상을 편안하게 여겼으니, 하물며 이 세상사람들에 있어서랴! 그 후 등나라 세자가 삼년지상을 행하고자 하였으나, 부형과 백관들 모두 행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삼년지상은 오직 공자와 맹자의 문하에서만 행해졌을 뿐, 조정에서는 일찍이 행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날을 가지고 달을 바꾸었으니, 신하들은 총재의 말을 들으며 임금은 3년간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제도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삼년지상이 지금까지 천하에 행해지고 있는 것은 재아가 한 번 물었던 공력 덕분이다.”라고 하였다.
宰我出 子曰 予之不仁也 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재아가 나가거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재여의 어질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난다. 삼년상은 천하의 공통된 상의 기한인데 재여는 3년 동안의 사랑이 그 부모에게 있었는가?”라고 하셨다.
宰我旣出 夫子懼其眞以爲可安而遂行之 故深探其本而斥之 言由其不仁 故愛親之薄如此也 懷 抱也 又言君子所以不忍於親 而喪必三年之故 使之聞之 或能反求而終得其本心也 재아가 이미 나간 뒤에, 부자께서는 그가 진짜로 편안하다면 마침내 그렇게 행해도 된다고 생각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잘못된 생각의 근본을 깊이 탐구하여 그것을 배척하신 것이다. 그의 어질지 못함을 말미암기 때문에 부모 사랑의 야박함이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懷는 품어 안는다는 말이다. 또한 군자가 부모에게 차마 하지 못하고 반드시 3년지상을 치루는 까닭을 말씀하셔서, 그로 하여금 그것을 듣게 하여, 혹시라도 돌이켜 구하여 끝내 그 본심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新安陳氏曰 不安於食稻衣錦者 由其不忍也 不忍之心 仁也 安則忍 忍則不仁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에 편안하지 않은 것은 그 차마 못하는 것 때문이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仁이다. 편안하다면 곧 차마 하는 것이니, 차마 한다면 곧 어질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予發短喪之問 又以食稻衣錦爲安 是殆已失其本心矣 今夫子拳拳之意 猶冀其反求而終得其本心也 本心卽愛親之仁心 신안진씨가 말하길, “재여는 짧은 상례에 관한 질문을 하였고, 또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을 편안하게 여겼는데, 이는 거의 이미 그 본심을 잃은 것이다. 지금 공자께서는 지극정성의 뜻으로 오히려 재여가 돌이켜 구하여 끝내 그 본심을 얻기를 바라신 것이다. 본심은 곧 어버이를 사랑하는 어진 마음이다.”라고 하였다.
○ 范氏曰 喪雖止於三年 然賢者之情則無窮也 特以聖人爲之中制而不敢過 故必俯而就之 非以三年之喪爲足以報其親也 所謂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 特以責宰我之無恩 欲其有以跂而及之爾 범씨가 말하길, “喪은 비록 3년에 그칠지라도, 어진 사람의 정은 다함이 없는 것이다. 다만 성인께서 그 알맞은 제도를 만드셨으니 감히 지나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굽혀서 그것에 나아가 따르는 것일 뿐, 삼년지상으로 그 부모에 보답함이 충분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이른바 삼년이 지난 연후에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특히 재아의 은혜 없음을 책망함으로써 그가 발돋움하여 그것에 미치게 하고자 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記三年問 君子三年之喪 二十五月而畢 若駟之過隙 然而遂之是無窮也 故先王爲之中制 예기 삼년문에 이르길, 군자는 삼년지상에 있어 25개월이면 마친다고 하였다. 이는 네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가 틈새를 지나가듯 빠르나, 그러나 그것을 완수하는 것에는 끝이 없다. 그러므로 선왕께서 이를 위하여 제도를 알맞게 하신 것이다.
檀弓子思曰 先王之制禮 過之者 俯而就之 不至焉者 跂而及之 故君子執親之喪 水漿不入口者三日 杖而後能起 단궁편에 자사가 말하길, “선왕의 제도와 예법에 있어서, 지나친 것은 굽혀서 나아가게 하고, 이르지 못한 것은 발돋움하여 이르게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가 어버이의 상을 집행함에 있어, 물과 미음도 입에 넣지 않는 것은 3일에 불과하고, 지팡이를 짚은 후에는 능히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하였다.
問宰我遊聖人之門而有短喪之問 不類學者氣象 諸家之說 或謂至親以期斷而宰我欲質其所知 有疑而不敢隱 所以爲宰我 蓋欲文其過也 竊以爲宰我在聖門 雖列於言語之科 然哀公問社而有使民戰栗之對 方晝而寢夫子有朽木糞土之譏 觀其地位如此 則宜有短喪之問也 朱子曰 短喪固是不仁 然其不隱不害爲忠信 此一事而兼有得失 得失又有重輕 누군가 묻기를, “재아가 성인의 문하에서 노닐면서도 服喪의 기간을 줄이자는 질문을 하였으니, 배우는 사람의 기상과 같지가 않습니다. 제자백가들의 말씀 중에 혹자가 至親도 1년으로 끊어야 한다고 말하자, 재아가 자신이 아는 것을 質正하고자 하였으니, 의문이 있으면 감히 숨기지 못하였다는 것은, 재아를 위하여 대체로 그 잘못을 꾸며주고자 한 것일 따름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재아는 성인의 문하에서 비록 언어과의 반열에 있었으나, 애공이 社를 묻자 백성을 전율케 하기 위함이라고 대답한 바가 있었고, 바야흐로 낮에 잠을 자다가 공자님으로부터 썩은 나무는 깎을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미장할 수 없다는 꾸지람을 들었으니, 그의 경지가 이러한 것을 살펴보면, 곧 복상기간을 줄이자는 질문이 있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복상기간을 줄이는 것은 본래 어질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재아가 숨기지 않은 것은 그 忠信에 해가 되지 않으니, 이는 하나의 일이지만 득과 실이 겸하여 있고, 득과 실에도 또한 경중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聖人尋常未嘗輕許人以仁 亦未嘗絶人以不仁 今言予之不仁乃予之良心死了也 성인께서는 항상 일찍이 가볍게 사람을 仁으로 인정하지 않으셨고, 또한 일찍이 사람을 不仁하다고 하여 끊어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지금 재여가 어질지 못하다고 말한 것은 곧 재여의 양심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或問此章之說 有謂宰我之問 蓋聞禮家至親期斷之言 故以質之 夫子 非自執喪而欲斷之也 如何 曰 此蓋以宰我爲聖人之徒 不應問此 而欲爲之文其過也 其意則忠且厚矣 然三年之喪生於人心 非由外至 而禮家固亦已有加隆之說矣 設使宰我實聞期斷之說 而不能察其是非盡其曲折 則其愛親之薄 亦可知矣 雖不自斷其喪 然其情亦何以異耶 曰 又有以宰予爲不察理不知仁而不知愛親之道者 信乎 曰是其意 若曰予非不愛親也 特不察理而不知其道也 非不仁也 特不知仁也 是亦爲之文其過之言耳 然人子有三年之愛於父母 蓋心之不能已者而非有難明之理也 是其存焉則爲仁 失之則爲不仁 其間蓋不容髮而其存不存又不待於知之而後能勉也 亦係於吾心之厚薄如何耳 宰我食稻衣錦自以爲安 則其無愛親之心 可見 而夫子所以斥之者 亦明矣 說者乃與曲爲之諱 而少減其不仁不孝之罪 是以 其說徒爲辭費而不足以掩其實也 曰 或謂宰我非不知短喪之爲薄 直以有疑 故不敢自隱於夫子 只此無隱便是聖人作處如何 曰 言宰我之心 雖薄而其不敢自隱者 猶有聖門氣象 可也 謂之無隱而直以聖人作處許之 則又激於世俗矯情飾詐之私 而不自知其言之過矣 然此章正意在於問喪 而喪之主於愛者 又非自外而至 今不論此而摘其旁支瑣細之說以爲已死之人 文不可贖之過 亦何益哉 曰 或謂夫子之言 女安則爲之 爲不與人爲僞者 信乎 曰 是因無隱之說 而又失之之甚也 夫聖人固不與人爲僞矣 然不曰不肖者 跂而及之乎 其曰 安則爲之者 乃深責而痛絶之之辭也 豈使之眞以爲安而遂爲之也哉 若如其言則 聖人之所以垂世立敎者 初無一定之則 直徇世俗情意之厚薄 使人自以爲禮 而不慮夫壞法亂紀之原 自我始也 혹자가 묻기를, “이 장에서 재아의 질문은 대체로 禮家의 ‘至親은 1년상으로 끊어낸다’는 말을 들었기에, 이로써 공자님께 질문한 것이지, 스스로 복상을 집행하면서 1년상으로 끊어내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데, 어떠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는 대체로 재아를 성인의 무리로 생각했기에, 응당 이러한 질문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여, 그를 위하여 그 허물을 문식하고자 한 것이니, 그 뜻은 정성스럽고 후덕한 것이나, 삼년지상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禮家에는 역시 본래 이미 기간을 더 늘린 주장도 있었다. 설사 재아가 실제로 1년상으로 끊어낸다는 주장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그 시비를 능히 살피고 그 곡절을 다하지 못하였다면, 그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에 야박했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스스로 자기 상을 1년으로 끊어내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그 실제사정에 있어서 또한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누군가 말하길, “또 재여가 이치를 살피지 않고 仁을 알지 못하여, 부모를 사랑하는 도를 알지 못하였다고 여기는 자가 있으니, 믿을만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 뜻은 마치 재여가 어버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이치를 살피지 않아서 그 도를 알지 못한 것이고, 어질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仁을 알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 역시 그를 위하여 그 잘못을 문식하는 말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자식이 부모에게 3년의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체로 마음이 그만두지 못하는 것일 뿐, 밝히기 어려운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것이 보전되어 있다면 곧 仁이 되고, 그것을 잃는다면 不仁이 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대체로 터럭 하나도 용납하지 않으며, 그 보전됨과 보전되지 않음은 또한 그것을 안 연후에 능히 열심히 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또한 내 마음의 후덕함과 야박함이 어떠한지에 달려있을 따름이다. 재아는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을 스스로 편안하게 여겼으니, 그에게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면서도, 공자께서 그를 나무라신 까닭 역시 명확한 것이다. 말하는 자들은 도리어 왜곡하여 그를 위하여 숨겨주고, 그의 不仁과 不孝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하였으니, 이런 까닭으로 그들의 말은 헛되이 말을 낭비하였을 뿐, 그 실체를 덮어 가리기에는 부족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말하길, “혹자는 재아가 복상기간을 줄이는 것이 야박한 것임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의문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스스로 공자께 이를 숨기지 못한 것이고, 단지 이렇게 숨기지 않는 것이 바로 성인께서 하시는 바라고 말하니,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재아의 마음이 비록 야박하다 할지라도, 그가 감히 스스로 숨기지 못한 것을 가지고 그래도 성인문하의 기상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일컬어 숨기지 않는 것이니, 곧장 성인께서 하시는 바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허용한다면, 또한 진정을 속이고(矯) 거짓을 분식하는 세속의 사사로움에 격발되었으면서도 그 말의 잘못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의 바른 뜻은 喪에 대하여 물은 것에 있고, 또 喪을 치름에 있어서 사랑에 주안점을 두는 것은 또한 밖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님에도, 지금 이것을 논하지 않고 그 곁가지나 자질구레한 것들을 지적하는 말을 가지고,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하여 그 속죄할 수 없는 잘못을 문식하는 것은 또 무슨 유익함이 있단 말인가?” 누군가 말하길, “혹자는 ‘편안하다면 행하라’라는 공자의 말씀이 남이 거짓을 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 말하는데, 믿을만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숨김이 없다는 설을 바탕으로 했을 뿐 아니라, 또한 잘못함이 더욱 심한 것이다. 무릇 성인께서는 본래 남이 거짓을 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초한 자는 발돋움하여 이르게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공자님께서 ‘편안하다면 그것을 행하라’고 말한 것은 도리어 깊이 책망하고 통렬하게 끊어내는 말인 것이다. 어찌 그로 하여금 편안하다면 마침내 그것을 행할 수 있다고 진짜로 여기도록 하였겠는가? 만약 그 말과 같다면, 성인께서 세상에 드리워 가르침을 세우신 것이 처음부터 일정한 준칙이 없이, 곧장 세속 인정의 두텁고 야박함을 따르게 하는 것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상례를 행하도록 하면서도, 저 법과 기강을 무너뜨리고 어지럽히는 근원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南軒張氏曰 人子之致哀於其親 蓋其心之不可以已者 先王以禮爲之而斷之以三年 是謂天之則也 宰我論喪禮而欲止乎期 夫子反覆告之以女安則爲之 夫其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果何哉 以其有所不忍於心故也 宰我聞夫子斯言而出 其必有以惻於中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사람의 자식이 제 어버이의 상에 애통함을 지극히 하는 것은 대체로 그 마음이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선왕께서 예로써 행하되 삼년으로 자른 것은 이를 일컬어 하늘의 준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재아가 상례를 논하면서 1년에 그치고자 하였지만, 공자께서는 반복하여 ‘네가 편안하면 그렇게 해라’고 말하였는데, 무릇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좋은 집에 거해도 편안하지 않은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그 마음에 차마 하지 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재아가 공자님의 이 말씀을 듣고서 나왔을 때, 그는 반드시 마음속에 슬퍼함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子生三年然後免於父母之懷 此君子所以不忍於親而喪必三年之故 自天子達於庶人而爲天下之通喪也 至於使之聞之或能反求而終得其本心 則聖人之仁也 始也問之以食稻衣錦於女安乎 所以使宰我反求諸心 自得其所以不忍 及宰我不察 則又言君子居喪之禮 皆出於自然 而發其不忍於親而喪必三年之故 使之聞之 尙庶幾其能反求而得其本心 不至於終迷而不反也 然則聖人之心所以愛人無已者 於此亦可得而見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자식이 태어나 3년이 된 연후에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는데, 이는 군자가 부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까닭이자 상은 반드시 3년을 하는 연유이니, 천자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천하에 두루 통하는 喪禮다. 그로 하여금 그것을 듣게 하여 혹시라도 능히 돌이켜 구하여 끝내 그 본심을 얻을 수 있도록 함에 이르러서는, 곧 성인의 仁이다. 처음에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는 것이 너에게 편안한가?’라고 물은 것은 재아로 하여금 자기 마음에서 돌이켜 구하여 그 차마 하지 못하는 까닭을 스스로 얻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재아가 살피지 못함에 이르자, 다시 군자가 상을 치르는 예가 모두 자연스러움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말하였고, 제 부모에게 차마 하지 못하여 喪은 반드시 3년으로 하는 연유를 드러내어 주었다. 그로 하여금 그것을 듣게 하여 그래도 그가 거의 돌이켜 구하여 그 본심을 얻도록 함으로써, 끝내 미혹되어 돌이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의 마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그침이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또한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范氏發明非以三年之喪爲足以報其親之說 尤爲忠厚 所謂喪三年以爲極亡則弗之忘矣者 是也 至於聖人旣於此爲之中制 則賢者必當俯而就不肖者必當跂而及 夫如是然後其說始圓而宰我之失 夫子之意始皆坦然明白矣 삼년지상을 자기 부모에게 보은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라고 드러내어 밝힌 범씨의 주장은 더욱 충후한 것인데, 이른바 ‘상을 3년 동안 하되 지극하게 행하고, 부모가 이미 장사지내서 집에 계시지 않아도 곧 잊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성인께서 이미 여기에서 이를 위하여 제도를 알맞게 하신 상황에 이르렀으니, 현자는 반드시 응당 굽혀서 나아가야 하고, 불초한 자는 반드시 발돋움하여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무릇 이와 같이 한 연후에, 그 주장이 비로소 원만해지고, 재아의 잘못이나 공자의 뜻도 비로소 모두 환하게 명백해지는 것이다.
厚齋馮氏曰 宰我之所惜者 禮樂也 夫子之所以責者 仁也 仁人心而愛之理也 孩提之童生而無不知愛其親者 故仁之實事親是也 禮所以節文之 樂所以樂之 豈有不仁而能行禮樂者乎 抑聞之聖人未嘗面折人以其過 其於門人宰我樊遲之失 皆於其旣出而言之 使之有聞焉而改 其長善救失 待人接物忠厚 蓋如此 후재풍씨가 말하길, “재아가 아까워한 것은 예악이었고, 공자께서 나무라신 까닭은 仁 때문이었다. 仁은 사람의 마음이자 사랑하는 이치다. 걸음마 배우는 어린아이라도 나면서부터 제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아이는 없다. 그러므로 仁의 실체는 어버이를 섬기는 것, 바로 이것이다. 禮는 仁을 節文하는 것이고, 樂은 그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어질지 못하면서 능히 예와 악을 행할 수 있는 자가 있겠는가? 도리어 그것을 듣고서도 성인께서는 면전에서 그 사람의 잘못으로 그 사람을 꺾은 적이 없었고, 문인인 재아와 번지의 잘못에 대해서도, 모두 그들이 나간 뒤에 그것을 말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듣고서 고치도록 하였으니, 공자께서 선을 키워주고 잘못을 구제하시며,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함에 있어 忠厚하기가 대체로 이와 같았다.”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