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는 것은 축복이고
철학자가 된다 🍎
우리들 느리게 걷자.
뛰지 말고 날지 말고 걷자.
계속 걷자.
규칙적인 운동으로 걷는 운동이 매우 효과적이다.
"건활(건강을 위한 활동)"은 생명 유지의 필수다.
프랑스 문학가 싸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했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Harris, 1989)는 "걷기가 인간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고, 주위환경과 자신과의 관계를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장자크 루소(Rousseau)는
《고백록, 2012》에서 "걷기를 통해 많은 것을 이뤘다"고 하면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고 했다.
사실 숲길을 걷을 때마다 숲은 반응하게 마련이다.
걷고 또 걸으며 자연과 대화할 때 남다른 감동과 건강을 안겨 준다.
누구나 가는 길이지만 길에는 주인이 없다. 걸어가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 생각하며 명상하며 조용히 걸어가는 것은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우리나라에서 한참 불고 있는 걷기 운동은 자연과 소통하는 행위로 우리 생활 문화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건강 전문가들에 의하면 햇볕을 많이 받으며 걷는 것이 좋다고 한다.
햇볕을 받으면서 걷고 조깅하면 세라토닌
호르몬이 많아진다고 한다.
특히 노인으로서는 자주 걸으면서 머리 들고 하늘을 보는 것도 건강의 비결이다.
서산에 지는 해를 원망하기보다 장엄한 빛을 보면서 충만한 에너지를 느껴보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시간나는 대로 걸으면서 대지로부터 전달되는 기운을 느껴보는 일이다.
걷는 것이 축복이다.
완전히 홀로 걸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
이 될 수있다.
산길을 오르다가 작은 암자를 만나거든 예불하고 마음을 다시 씻어내는 것이다.
걸으면 고요와 평화가 오고 고통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고전이 된
《월든, Walden, 2008》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Thoreau, 1817~1862)의 산보론(Walking)에서는 "걷는 것에 대해 성지를 찾아나서는 순례"에 비유한다.
걷는다는 것은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道를 찾아나서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늙어갈 수록 많이 걷자. 진정한 나를 찾아 적어도 하루에 30분~1시간을 걸어보자.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침저녁마다 땀이 약간 날 정도의 속보로 걷는 운동을 한다.
노령 층의 걷기는 어떤 소식을 알고 달려가는 발걸음이 아니지 않은가?
무상 무념으로 걸으면 된다.
◈인도의 무료 요가 공부 모임
"YES(Yoga Eternal Society)" 회장인
"바수무클"은 한국에서 "걷는 요가"를 소개하고 있다.
날씨가 좋은 한국은
걸으면서 요가하기에 최고 좋은 나라라고 말한다. 그가 걸으면서 하는 요가 수행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한번 들 숨에 네 걸음 천천히 걷는다.
- 한번 날 숨에 다섯 걸음을 천천히 걷는다.
- 두 팔을 크게 돌리며 걷는다.
-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되 팔에 힘을 주지 말고 걷는다.
- 발가락으로 걷기, 뒤꿈치로 걷기를 해 본다.
- 맨발로 걸으며 땅기운을 느껴본다.
또한 우리가 쉽게 하는 가벼운 걸음보다 높은 산을 오르는 등반은 더할 나위 없는 건강 증진법이다.
산에 오르는 것은 경이로움, 아름다움, 예술에 대한 영감 뿐만 아니라 영적인 초월까지도 약속하는 운동이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인간이 보호받는 느낌이 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 문명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류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산과 들을 향한 걷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산에 오르면서 숨이 찰 수 있다.
심장 박동이 뛸 수 있다.
그러나 숨쉬기를 뱃속 깊이까지 하면서 걸으면 건강의 축복이 온다.
산에 가면 맨발 걷기,
나무 껴안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산에는“피톤치드(phytoncide)와 음이온”이 나와
정서적 안정감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산에 오를 때 당신의 건강은 더 좋아지고 더 높은 봉우리에 오르려는 욕망도 생겨날 것이다.
걷기는 구도 여행을 떠나는 구도자의 길이기도 하다.
옛날 선비들에게 산은 가슴속의 티끌을 씻어내는 휴식과 풍류의 공간이었다.
◈심경호의 책,
《산수기행- 조선이 선비, 산길을 가다》
(2007)에서 보면, 선비들에게 있어서, 산은 치열한 자기 수련의 도장
이자 지혜를 구하는 장소였다.
조선시대 지식인들로 이름난 이황, 정약용, 허균 등의 유산기(遊山記)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들은 몸이 불편해 직접 산에 오르지 못할 때도 산수화를 걸어 놓고 마음을 달래는 와유(臥遊,누워서 즐김)를 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간은 걸으면서 존재해 왔다. 장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썩지 않고 늙지 않으려면 되도록 많이 움직이고 걷는 것 밖에 없다. 그러니 늙어 가면서도 새로운 공간을 향해 움직여라,
걸으라,
반응하라.
이것이 이 땅에 존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의 증거다.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것 만으로 행복하지 않은가? 천천히 걷는 느린 발걸음도 좋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 우직한 소걸음이 천리를 간다고 했지 않은가?
그러면 건강은 덤으로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내적 강요(compulsion)와 실천 없이는 건강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성공적인 노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 건강하지 못한 것은 모두가 자기 생활의 인과(因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지금 이 순간에 늙어가는 몸을 성찰해 보고 이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산다는 것이 참 재미있구나!”
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 것이다.
- 좋은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