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가상화폐 - SDR

케인즈 (경제학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수학과 학사, 브렌튼우즈 협정 영국대표, 전 IMF총재, 전 국제부흥개발은행(IRBD)총재
사실 요즘 회자되는 가상화폐는 개념적으로 매우 오래전에 만들어졌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 남작(John Maynard Keynes)에 의해 제안된 Bancor 라는 시스템인데 이것이 추후 IMF에 반영된 SDR 특별인출권이라는 시스템입니다.
SDR (Special Drawing Rights) 특별인출권이라고 불리우는 IMF 의 통화바스켓이죠.
달러화가 국제통화로 통용되면서 트리핀의 딜레마 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자 IMF에서는 달라화에 의존적이지 않도록 새로운 국제통화를 개발하게 됩니다.
(로베르 트리핀은 금본위제도가 유동성문제와 신뢰성 문제라는 양자의 딜레마속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체제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동성 문제란 세계 경제의 발전과 함께 달러의 수요는 많아지나, 금의 생산량은 제한적이므로 발생하는 문제이다. 만약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의 공급을 증가시킨다면 달러 가치에 대한 신뢰성이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딜레마에 봉착한다는 것이다.)
IMF회원국들이 자국에서 통화위기를 겪을때 IMF의 쿼터만큼 (IMF설립당시 출자한 금액기준) 담보없이 인출할수 있는 권리인데 이것을 XDR이라는 가상의 화폐를 만들어서 사용하게 됩니다.
XDR이라는 통화는 실체하는 화폐는 아니고 단지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화폐를 국가단위로 활용하도록하는 것으로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창안한 BANCOR시스템에서 가져온것입니다.
이것이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매우 혁신적이었던것이 국제 무역에 비중이 높은 국가들의 통화를 한 바스켓에 담에 평균가를 XDR 가격으로 정하고 각국의 통화위기가 발생하게 되면 필요한 외화를 담보없이 인출할수 있게 해주는 역할이죠.
쉽게 설명하자면 일본이 10%의 쿼터를 가지고 있고 총 통화바스켓은 1,000억불이라고(미화로 환산된 액수가) 가정하면 이중 100억불을 아무런 담보도 없이 원하는 통화로 인출할수 있는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국가단위로 일본이 중국과 무역을 했는데 일본이 너무 수입만 하고 수출을 조금해서 대중국 무역적자가 심화되었습니다. 거기에 어떤 특정한 문제로 경제적 위기 까지 발생하여 채권국인 중국에 채무이행을 못할정도로 돈이 부족하여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다고 칩시다.
그럼 위안화로 값아야할 돈이 많이 필요한데 시장에는 위안화를 구할수 없으니 가격이 치솟게 되죠. 그럼 상대적으로 엔화가 폭락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럴때 IMF에 SDR을 요청하여 100억불에 해당하는 돈을 위완화로 인출하여 중국에 값아버리면 일단의 급한 위기는 넘기게 되는겁니다.
물론 인출한 100억불에 해당하는 XDR을 일본이 IMF에 빛지게 되고 이자를 값아야 하게되는것이죠.
케인즈는 이런 가상화폐시스템을 무려 1944년도에 생각하게됩니다. 그당시에 케인즈는 평가절하같은 방식을 매우 반대하였고 미국의 브렌튼우즈 체제도 달가워 하지 않았죠.
2차 세계 대전이 마무리되던 지난 1944년, 45개 연합국 700여명의 고위 경제 관료들이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튼 우즈에 모였습니다. 이 브레턴 우즈 회의에서는 금 본위제와 고정환율제, 달러 기축통화 등 주요한 국제 질서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케인즈는 이 자리에서 이색적인 주장을 합니다. 국제 통화인 방코르(Bancor)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 세계 각국이 무역을 할 때, 각 나라의 통화를 사용하지 않고, 이 국제통화를 공통적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그가 국제 통화를 주장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국제 통화 활용을 통해 무역의 국제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동시에 특정 국가의 위기가 다른 국가로 전이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달러가 기축통화일 경우, 미국 내에서 유동성 위기가 일어나면, 경제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전이됩니다. 하지만 국제통화를 활용할 경우, 경제 위기의 전이는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게 케인즈의 구상이었습니다.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단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게 지난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미국 저소득 주택 담보 대출자들이 금리 상승으로 주택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했다. 금융 기관들은 대출금 회수 불능 상태에 빠져 파산한다. 달러 유동성 위기는 다른 나라 금융기관으로 퍼진다. 유동성 위기는 실물 경제로 전이되면서 국제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그래서 Bancor 라는 통화바스켓을 제안하게되는데 문제는 미국에선 달러를 중심으로 국제통화를 만드는것을 밀어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케인즈의 Bancor 는 빛을 못보고 페기되는듯 싶었지만 브렌튼 우즈 체제의 문제점인 트리핀의 딜레마가 현실화 되자 IMF에서 1969년 케인즈의 제안을 수용한 SDR 체제를 시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의 달러 패권이 너무 강력하여 SDR 제도를 크게 활용하지 못합니다.
현재 IMF의 통화 바스켓에 편입된화폐는 세계 5대 피아트머니, 달러,유로,파운드,엔화,위안화 입니다.
초기에는 더 많은 통화가 바스켓에 할당되어 있었지만 계산도 복잡하고 국제적 인지도가 높지않은 화폐들은 대량 정리하고 위 5대 화폐만 바스켓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 편입된 화폐는 위안화인데 이걸 뭐 대단한 사건인것 처럼 중국에선 떠들고 있더군요. 물론 상징적으로 IMF에서 국제 결제 화폐로 위안화를 인정했다는것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국제무역규모를 볼때 이상한것도 아니고 당연한 결과였을껍니다.
이전에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의 화폐도 바스켓에 편입된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그들 국가의 위상이 올라간것도 아니고 뭐 그리큰 상징성은 없었으니까요.
최근 XDR을 블럭체인 암호화폐로 만들어보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최근 세계여건에서 다방면으로 달러의 패권이 공격받고 있고 위안화의 부상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이미 개념적으로 XDR은 가상화폐로 구성되어 탄생되었습니다. SDR시스템은 초기 트리핀의 딜레마에 대한 대안으로 IMF에서 차용한 최초의 가상화폐인것이죠. 물론 달러화가 국제화폐로 큰 문제없이 사용되는 동안은 크게 부각되지 않을것이지만 암호화폐의 부상이나 여러가지 국제 여건상 달러의 패권이 유지되기 힘들다고 결정되면 본격적으로 SDR 시스템을 활용하지 않을까 추측되어 집니다.
SDR시스템에서 XDR화폐를 중앙집권 블럭체인 가상화폐로 사용하게 되면 은행들이 주로 사용하고 현행 달러시스템에 대응하는 국제화폐의 대안으로 강력하게 밀어 붙이겠지요. 이것이 암호 화폐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해보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케인즈
20세기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필수로 공부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이론의 정신적 지주인「하비 로드의 전제」에 대한 비판은 분분하다.「하비 로드」는 그의 태생지인 영국 케임브리지의 가로명. 그 이름을 딴 「하비 로드의 전제」란 『한 나라의 경체정책은 공공정신이 풍부한 지적 엘리트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1837년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가 시작되면서 로버트 필(Robert Peel) 수상은 영란은행에게 발권 독점력을 항구적으로 보장해준다. 이 때부터 영국이 천명한 금본위제도는 국제금융시스템의 영혼이 된다.
그런데 영국이 주도하였던 금본위제도가 잘 지켜졌던 이유는 다름 아닌 금이 흔해졌기 때문이다. 1848년 캘리포니아, 1851년 호주, 1887년 남아공 등지에서 발견된 금광은 산업혁명 이후에 늘어난 산업활동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 무역을 주도하는 영국을 따라 금본위제도에 동참하지 않으면 경제적 불편을 넘어 자칫 고립될 수도 있었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은 줄줄이 금본위제도를 채택하게 된다. 마침내 금본위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금본위제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1925년 다시 금본위제도 복원을 선언했지만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금본위제도를 야만의 유산(barbarous relic)이라며 혹독하게 비판한다. 어차피 땅속에 있었던 물건을 공들여 캐내어 네모난 모양으로 다듬은 다음, 다시 땅속의 금고에 묻어두고 부자가 된 양 행복해하는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 후 1929년 대공황이 찾아왔고 세계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 때 영란은행은 또다시 금 태환 중단을 선언했는데 케인즈는 대표적인 금본위제 반대론자답게 l931년영국이 금본위제도를 폐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른바 관리통화제도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금이 많았던 미국마저도 1933년 금본위제도를 포기했다. 그리고 이후 인류는 영원히 금본위제도로 복구하지 않게 된다.
오늘의 국제금융기구를 창설하는데도 케인즈는 다대한 공헌을 했다.
케인즈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중요한 일원이었던 빅터 로스차일드와는 같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의 같은 엘리트서클에 있었으며 자본세력에게 양심을 판 경제학자라는 평도 듣고 있다.
*하기 글을 편집한 글입니다.
https://steemit.com/coinkorea/@tintom/imf-sdr
http://news.joins.com/article/1696595
https://goo.gl/UaMtso
첫댓글 돈과 화폐의 차이점이 눈에 보이는 글이었습니다.
거래라는 것의 전제조건,신용에 기반을 둔 화폐에서 여러 좋은 장치가 활용되어야 겠지오.
세계의 일부세력이 독점하는 세계은행 이자율 조정에는 반대합니다 또한 대책마련이 절실합니다
자칫, 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실례가 있었으며 노동력같은 실질적인 가치가 착취되는 지금같은 부조리가 계속 되어질 것 입니다 이런 부조리한 세계금융구조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