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쌓이고)
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룰 때 면접고사를 받으면서 한국 회화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더욱이 조선 후기의 급변기에 우리 회화가 외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새로운 회화의 길을 어떻게 모색하였는지 공부하고 싶었다.
막상 입학을 하고나서야 내가 입학한 학과의 특성을 알았다. 교수님들의 성향도 알았다. 입학 전에는 아무 것도 모른 상태에서 미학미술사학과라는 이름만으로 지원했다. 입학만 하면 내 꿈이 이루어지는 줄로 믿었다. 나이든 사람에게 문을 열어준 대학원이 고마웠다. 입학 때 교수께서 대학원 공부는 바깥에서 취미삼아 하는 공부와는 다르다고 말하여 막연하나마 많은 기대를 하였다.
당당하게 시험을 치루고 입학한 대학원은 서양미술사와 동양미술사, 그리고 미학을 같이 공부하는 학과였다. 그야말로 미술의 이론 분야를 모두 혼합하여 만든 학과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세 과목을 모두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불만이 없었다. 어차피 취미에서 출발한 공부였으니까 이것저것을 널리 아는 것이 나쁠 리가 없었다. 노후에 교양인답게 여러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오히려 만족했다.
내가 잘 몰랐던 미학의 공부도 재미가 있었다. 시험을 치르느라 곤혹스럽기는 하였어도 서양미술사도 체계 있게 공부한 것이 즐거웠다. 문제는 동양미술사였다. 조선 회화사를 공부하려니 전공교수가 없어서 동양미술사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서야 했다. 담당 교수는 불상이 전공이었다. 3학기 내내 불상만 공부했다. 그것도 접근하는 방식이나, 공부의 대상에 대해서는 나와 관점이 달랐다. 젊은 교수답게 열정이 넘치긴 하였으나, 학문을 좀 넓게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 보였다. 더욱이 문헌 자료가 없는 연구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산비탈에 남아 있는 마애불은 어디서 문헌 자료를 구한단 말인가.
불상에만 매진하여 리포트를 제출하고, 답사를 가고, 발표를 하다 보니 막상 회화사에 대해서는 공부할 기회를 오히려 박탈당한 느낌이었다. 한 학기, 두 학기가 지날수록 불만이 쌓였다. 3학기 때도 또 불상을 공부한다고 했다. '조선 회화를 공부하러 학교에 들어왔는데---.' 3 학기가 시작하였을 때는 슬며시 불만이 생겼다. 교수님을 찾아가서 회화사를 공부할 수 없느냐고 건의하였으나 교수님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수강계획표를 보니 또 불교미술이었다. 더구나 관심도 없고,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는 일본 불상이었다. 교재마저 한 줄도 읽을 줄 모르는 일본어 책이었다. 나에게 과제가 맡겨졌을 때 나는 교수를 찾아가서 나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했다. '나에게는 일본 불교 미술에 대한 자료도 없고, 설령 자료를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일본어를 읽을 수 없으니까 공부하기 힘이 든다.'고 말했다. 일본 불상을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밝고 있는 사람과 의논하여 공부하라는 말만 들었다. 나는 투덜거리며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 불상 때문에 일본어를 공부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조선 회화를 공부하려면 한문 공부를 더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교수님 말대로 박사과정의 일본 불상을 전공하는 여학생에게 일본어를 몇 마디 물었을 때의 그의 쌀쌀맞은 태도는 지금 생각해도 기분이 좋지 않다.
결국 석사 과정 동안에 미술사는 불교미술, 그것도 불상 공부만 하는 셈이었다. 회화에 대해서는 공부는커녕 구경도 못하였다. 불상 공부도 역사에 따른 체계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의 불상을 선택하여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방식이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오히려 더 멀어져 버렸다. 그래서 회의만 잔뜩 쌓여갔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큰 꿈을 안고 미술사 책을 구입하였다. 12권짜리 중국미술사를 수소문하여 중국에서 큰돈을 지불하고 어렵게 구입하였다. 조선 회화를 공부하려면 중국 회화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한문 실력이 모자라다보니 겨우 몇 줄만 읽었을 뿐이다. 영남대의 한문학과에서 정년퇴임하신 이장우 교수님에게 한문을 배우러 다녔다. 나는 일어 대신에 한문을 선택하였다.
'이럴 바엔 뭣 하러 대학원에 들어왔어.' 나는 투덜거리면서 발표용 불상 자료를 모았다. 불교 미술의 이해에 필요하다 싶어서 불교 교리도 대충 훑어보았다. 수업시간에 불교미술이 조성되는 배경을 두고 교수와 논쟁도 하였다. 자기가 옳다고 강압적으로 나를 욱박질렀을 때는 학생의 신분이어서 말꼬리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내가 옳다고 굳게 믿고 있다. '대학원을 그만 두고 회화 공부에나 전념할까? 어차피 대학원에 다녀도 독학하는 것인데---.' 나는 학위를 받으러 대학원에 다닌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림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서 입학하였다고 말한다.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내 나이였다. 교양삼아 여러 가지를 폭 넓게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나에게는 다양한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나는 지금 노후를 보내고 있잖아, 라며 회의에 젖었다. 더더군다나 요즘에는 기억력도 감퇴하여 공부의 능력도 오르지 않는다. 별별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불교미술을 더 이상 듣지 않기로 한 것은 나로서는 결단이었다. 한국회화사가 동양미술이라고 불상을 전공하는 교수를 지도교수로 모신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다른 학생들처럼 그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불상 공부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지도 교수인 그 교수의 강의를 수강하지 않기로 한 것은 나로서는 용기가 필요하였다. 최악의 경우는 학위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원을 다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학위뿐이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잖아 라고 하는 타인의 눈총에서 떳떳할 수 있는 것은 학위의 취득이다. 학위는 백수를 보람 있게 보낸다는 것을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다. 그 학위를 포기해야 하는 거냐? 나를 끈끈이처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학위에 대한 욕심이다. 학위에서 파생되는 즐거움이다. 그런 욕망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를 우울하게 했다. 문득 ‘인간의 굴레’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났다. 예술이 인생에 봉사해야지 인생이 예술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나의 인생이 학위에 봉사할 필요가 있느냐.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지 않겠느냐. 한편으로는 내가 왜 대학원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는데---, 하는 회의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그럴 즈음에 담당 조교로부터 통도사 답사에 필요한 자료를 레포트로 제출하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불교미술이 나의 전공도 아니고, 흥미도 없으니까 답사에서 제외시켜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조교는 '선생님, 그러시면 안 되지요. 동양미술을 전공하면 반드시 사찰답사를 하고 레포트를 제출해야 하지요,' 강압적인 말투에 나도 화가 났다. 전공 문제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젊은 세대에 대한 불만도 많았는데, 그의 말투가 도화선이 되었을 것이다. '이봐, 난 자네들하고 달라. 난 공부를 즐기러 다니는 거야. 하고 싶지 않은 공부는 흥미가 없어. 불상이 전공도 아니라서 답사에는 관심이 없어. 안가.'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화가 나서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문득 무슨 해답이라도 찾은 느낌이었다. '그래 맞다.' 학위 받을 생각만 않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을 할 수 있잖아. 그래 이제는 불교미술은 공부하지 말자. 비록 독학이겠지만 회화 공부에 내 열정을 바쳐보자. 논문 대신에 그 시대를 총괄하는 책이나 써보자.' 한문 공부나 좀 더 열심히 하자. 그래, 언제쯤이 될지는 모르지만 조선 후기의 회화에 관한 책을 써보고 싶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나는 ‘조선후기 회화사’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대학원은 제도가 잘못되어 있다. 공부하고 싶은 과목에 맞추어서 대학이 아닌, 교수를 찾아서 입학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원은 입학을 하면 나를 지도해줄 교수가 없어도 다녀야 한다. 그리고도 학위가 나온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 되었다.
첫댓글 공감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