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바둑 운영팀장은 마치 자신이 입단한 것 마냥 술을 마셔댔다. 한중아마대항전에 나온 한국팀 10명의 아마선수들중에 4명이나 프로 입단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21일 저녁, 제2회 한중아마대항전에 출전한 한국팀 우승회식에서, 대회 주최측이자 대회 운영을 맡았던 오로바둑의 운영팀장은 한국팀 선수들과 한데 어울려 기쁨을 함께했다.
주종을 가리지 않고 '완샷'을 외치던 운영팀장은 결국 장렬히 '졸도'했다는 후문이다. 다행히도 한국 아마팀 선수들이 여전히 멀쩡한 상태여서 운영팀장은 무사할 수 있었다. 한국아마강호들과 잔을 부딪히던 운영팀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사실은 그때부터 왠지 기억이 안난다는 이야기), 택시안에서 눈을 떴고, 무사히 귀가중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게 잠깐 기억이 커팅됐던 운영팀장이 다음날인 22일 회사에 들고 온 소식은 충암도장 소속 입단자 축하연이 같은 날 저녁에 열리는 데 같이 좀 가자는 것이었다.
밤 늦게까지 달려서 피곤할텐데 기어이 가봐야겠다는 눈치, '입단'이라는 한국 바둑계의 이 직선적인 '올인'성 스토리는 어쨌든 바둑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움직이는 굉장한 힘이 있다.
22일 오후 6시 넘어, 회사 일을 마친 다음 택시를 타고 도착한 서울 남가좌동의 충암도장은 이미 입단자 축하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충암도장의 입단자 3명(김현찬, 황재연, 조인선)을 도장 선후배, 지도사범, 학부모, 지인이 함께 축하해주는 자리다.
김현찬(23)과 황재연(16)은 2011년 제130회 일반인 입단대회에서 입단했고, 조인선(21)은 제39기 명인전에서 아마대표로 8강에 올라 최초로 입단기준 포인트 초과로 입단했다. 황재연은 현역 연구생이었으니 빠른 입단, 김현찬과 조인선은 나이제한으로 연구생을 나왔으니 늦깎이 입단이다.
행사를 전문으로 하는 식장이나 호텔 등이 아니라 조금 붐비긴 하지만 도장내 선후배, 선생님, 선배 프로기사, 학부모들이 모여 축하를 해주니 경비 절약도 되고 좋은 것 같다. 행사장이 꽉찬 느낌이다.
잔뜩 모여 있으니 분위기는 후끈하다. 실제로도 조금 더웠다. 어린 원생들은 복도에 차려져 있는 저녁뷔페에 군침을 흘리고 있고, 감개무량한 입단자들, 충암도장원장인 허장회 9단, 그리고 충암도장을 잘 찾지 못했던 최규병 9단과 양재호 사무총장도 보인다. 충암도장은 허장회도장, 양재호도장, 유창혁 도장의 3개 바둑전문도장이 힘을 합해 올해 초에 문을 새로 열였었다.
어? 그런데 통합 충암도장의 한 축이었던 유창혁 9단이 보이지 않는다. 아! 22일 8시부터 지지옥션배 최종국이 열린다. 유창혁 9단은 이때, 박지은 9단과 우승 결정 최종국을 앞두고 있어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유창혁 9단의 시니어팀이 우승했다.)
 ▲ 김현찬 초단과 가족들,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가 활발하신데 비해 김 초단은 과묵한 편, 김종민(54), 엄미란(50) 씨의 외동아들이다.
 ▲ 황재연 초단과 가족들, 황의향(54), 임경애(47) 씨의 2남 중 차남
 ▲ 조인선 초단과 부모님, 조재은(51), 전영숙(47) 씨의 1남 1녀중 막내 입단자 3인의 '짧은 소감'을 식사 도중에 한마디씩 들었다. 입단자 축하연이라 입단이 '실감'날 줄 알았더니 기분이 조금 들떠서인지 3명 모두 아직은 별다른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들 한다. 프로가 되고 나서 공식 대국을 제대로 둘 기회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 황재연 초단 "형들도 많은데 먼저 입단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다. 모두들 입단할 것이다. 화이팅"
- 김현찬 초단 "도장에서 같이 공부하는 모두들 입단했으면 좋겠다.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랭킹전도 좀 더 열심히 둬보겠다.하하"
- 조인선 초단 "후배들에게 포기하지말고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 조인선 초단과 부모님이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포즈를 취해줬다. 객지생활 15년만에 초단이 됐다. ○●조인선 초단 부모 '입단대회 실패 후 많이 울어'
조인선의 부모님은 충남 공주에서 사신다. 조인선은 충남 공주 출신의 첫 프로기사다. 이제 공주에 박찬호, 박세리만 있는 게 아니라 '조인선도 있다'고 자랑스러워 하신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 모든 부모님이 그렇지만, 조인선 초단의 경우도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어머니) 항상 힘들지만 이번에는 많이 울었었다. 7명을 한꺼번에 뽑으니까 올해에 반드시 될 것이라 아버지가 하도 자신하길래 낙관했는데, 인선이가 입단대회서 6연승하고 7판 째에 영롱이에게 반집패를 당하더니 남은 판을 모두 졌다. 입단에 실패한 후 집이 초상집처럼 변했다. 운전하다가도 울고, 자다가도 울고, 일하다가도 울고'"(조인선은 입단대회가 아니라 누적포인트로 입단했다.)
- 조인선, 입단하고 달라진 점이 있을까? "인선이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부모들은 알 수 있다. 입단하기 전엔 부모와 전화통화할 때 항상 힘이 없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항시 뭔가 위축되어 있어서 살도 안찌더라. 입단하니까 먼저 몸이 반응하는 거 같다. 전보다 목소리가 또렷해지고 자신감도 실려 있고 목소리 자체가 명랑하게 한 옥타브 높아진 것 같다. "
-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말 "인선이의 인생에서 절반의 고비를 넘은 거 같다. 입단이라는 큰 부담을 떨쳤으니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바란다. (아버지)" "그리고 바둑리그도 좀 나갔으면 좋겠어요.(어머니)
- 어떻게 공부 시켰나? 계기는 "7살때 바둑교실에 보냈다가 기재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초등학교 3학년때 고향인 공주를 떠나 대전에 보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선이는 15년간 객지 생활을 했다. 문명근 사범님과도 있었고 장수영 사범님과도 인연이 있다. 이후 양재호 도장에 자리를 잡아 충암도장까지 왔다. 인선이가 객지생활 하는 동안 빗나가지 않고 불만없이 부모를 잘 따라줘서 고맙다. "
- 이번에 갑자기 입단해서 입단축하연을 같이 하게 됐다. 가게는 일찍닫고 오셨겠다. "입단대회가 아니라 갑자기 입단을 해서 원래 인선이는 예정에 없었다. 입단후 입단 축하연을 같이 한다는 연락을 받고 그냥 가게를 일찍 닫았다. 자식일 아닌가. 가게는 그 다음이다. '
- 공주에선 프로기사 처음 나왔는데. "그렇다. 공주 사람들도 바둑을 많이 두긴 하는데 그렇다고해서 바둑 쪽에 별다른 붐도 없었다. 이번에 입단에 성공한 후 공주에 현수막도 걸고 그랬다. 인선이가 프로에 입단했으니까 고향 공주에서도 바둑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면 좋겠다. 하하. 공주에서 응원해주신 분들이 많았는데 서울에서 열려서 많이들 모시지 못했다. 공주에서 한 번 더 입단 축하잔치를 열어서 고향분들을 초청해 기쁨을 함께 하겠다. 시간되면 공주에 와라. 하하"
 ▲ 김만수 7단. '입단이 끝이 아니야, 고생길에 들어선 걸 환영한다' 김만수 7단(분당 유창혁 도장 지도사범)
- 다들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데 입단자들에게 따끔한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입단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 고생길이 열린 것으로 봐야 한다. (프로기사로서)고생문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하하하하, 프로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언제인가 프로가 된 것을 후회하는 시간이 올 수도 있다. 지금부터 더욱 노력해야 한다. "
허장회 9단(충암도장 대표)
- 세개의 도장이 합쳐 하나가 됐고, 그 통합도장을 맡으셨는데 "도장을 통합하고 나서 4명이 입단을 하게 됐다. 기쁘다. 일단 좋은 출발이다. 통합하고나서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안정이 된 것 같다."
- 덕담 한마디! "꾸준히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 한다, 노력을 해야 가능한 것이다. 연구생 시기를 잊지 않고, 연구생때처럼 공부하면 누구나 충분히 성적을 낼 수 있다. "
김대용 4단(지도사범, 축하연 사회자) "입단자들을 위한 입단 축하연 사회를 이번까지 두 번 이나 맡게 됐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선 내가 주인공들보다도 항상 떨린다. 하하. 그래도 후배들을 위한 일이니까 너무 기분이 좋고, 입단한 사람들이 같은 프로기사 동료가 되어서 또 기쁘다. 그런데 도장에서 축하연을 하니까 심부름도 많이해야 하고 힘들다. 흐흐"
한종진 8단(지도사범) "(조인선에게) 지금 명인전에서 공식대국을 두고 있으니까, 이창호 같은 일류기사를 다른 입단자보다 빨리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을 만난 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 (입단한 프로들에게) "하루 빨리 지금 입단한 프로들을 공식대국에서 만나고 싶다. 내가 져줄 거라 생각하지마라. 난 최선을 다해 이길 것이다. 하하"
양우정 실장 "입단대회에서 7명이 함께 입단해서 입단 적체가 좀 트이긴 했지만 아직도 좀 갑갑한 느낌은 있다. 앞으로 영재 입단대회가 열릴 것이다. 신민준(대한생명배 우승자) 어린이 같은 경우가 이쪽의 입단자로 유력하다. 일반인 입단대회를 준비하는 유망주들의 경우, 어린 후배들에 대해 무심한데 이쪽은 발전이 굉장히 빨라서 몇 개월이건 1~2년이건 어느 순간 부쩍 성장해 있다. 이렇게 어린 후배들이 추월해 나갈 때 상대적으로 나이 든 쪽이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것을 많이 봐왔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그런 유망주들일수록 힘들어 한다. 원생들을 잘 보듬고, 흔들리지 않게 노력해 나가겠다. 입단 쪽은 아니지만 어린이 바둑교실들과 충암도장이 함께하는 어린이 바둑리그(인터넷)도 꾸준히 발전시키겠다."
최규병 9단
- 3개도장이 통합한 충암도장의 주역이시지만 조심하시는 것 같다. 도장운영에도 관심이 많으셨을텐데, 오늘 같은 날은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나나 양재호 사무총장은 한국기원 일을 많이 맡고 있으니까, 도장일에 자꾸 관심을 보이면 타인에게 오해를 살 수 있다. 허장회 사범님께서 혼자 고생이 많으셨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 최규병 9단, 학업과 바둑공부를 병행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항상 어디엔가 있다. 그러나 누구를 만나느냐, 어디서 자랐느냐가 중요하다. 재능이 있어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피지 못할 수 있다. 충암도장은 적어도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잘 선택을 했구나'하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하고 싶다. 그런 도장으로 남고 싶다. "
- 도장운영에서 신경 쓰는 점은? "원생들에겐 크게 봐서 바둑공부와 일반적인 학교공부 두 가지가 있다. 현재 우리 교육시스템은 이 두 가지를 함께 하지 못하고 한 가지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면이 있어 고민이다. 특기 하나만을 밀어붙여 올인하게 만든다. 충암도장은 원생들이 바둑 뿐아니라 학교교육을 같이 하도록 하고 있지만 오전수업을 위주로 하다보면 결국 장기적으로 수업결손이 생긴다. 도장 자체적으로 학교수업을 보충하려 하면 현행 제도에선 문제가 생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현실적으로 모두가 입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 오늘은 입단자들이 주인공, 의자왕이 되세요! 오늘만큼은 입단자들이 주인공이다. '오늘이 지나면 이렇게 의자에 앉기 힘들 것'이라고 한마디.
 ▲ 가족, 입단자, 케익커팅을 하기 전
 ▲ 가족들과 입단자들의 기념사진
 ▲ 입단자와 지도사범들이 다 함께 화이팅
○●... 무거워도 좋아, 기념반 바둑에 더욱 매진하라는 뜻으로 입단 기념반을 수여. '아이고 무겁다', 그래도 기분은 흐뭇.
 ▲ 입단자에겐 기념 바둑판이 주어졌다. 바둑판을 받는 김현찬 초단
 ▲ 조인선 초단이 입단 기념반을 받고 있다.
 ▲ 황재연 초단의 차례
○●... 밥을 먹고 싶으면 줄을 서시오
 ▲ 평소 공부를 하던 곳이지만 오늘은 입단 축하연의 자리
 ▲ 선,후배 프로기사들도 참석해 축하를 해줬다.
 ▲ 줄을 서시오, 저녁 뷔페를 먹기 위해선 긴 줄을 서야 했다
 ▲ 충암도장 복도에는 역대 입단자들과 충암출신 프로들의 주요 뉴스가 전시되어 있다.
○●... 모두 입단했으면 좋겠습니다
 ▲ 김대용 4단, '후배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사회를 보겠습니다.'
 ▲ 김현찬, '진심으로 준비하고 있는 모두들 입단하기를 바랍니다'
 ▲ 황재연, '입단준비하고 있는 형들이 모두 입단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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