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족이 되다 - 문하 정영인 수필
우리 집은 작년부터 김포족이 되었다. 그나마 절임배추로 김장을 담갔는데 이젠 그마저 김치를 사다 먹는 김장을 포기한 족속으로 변하였다. 처음에는 통배추를 사다가 온 난리를 치면서 김장김치를 담갔다. 그도 힘들다고 절임배추로 간신히 김장의 명목을 이었으나 이젠 아예 김포족이 되고 말았다.
정치권에서는 김포시를 서울특별시로 편입 시킨다고 설왕설래 하건만 그도 절도 다 김장김치를 담그는 맛을 잃어버리고 있다. 김장 끝나고서 푸욱 삶은 돼지고기 수육에 절인 배추고갱이와 김장 속을 얹어 막걸리 한 잔하던 삼합의 재미도 물 건너간 지 오래다.
그나마 김장김치 담가 한 동이 보내주던 딸도 무슨 호텔김친가 하며 김포족으로 살겠다 한다. 그리도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던 나도 시나브로 그 기호가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두 늙은이 사는 집이라서 그런지 김치 수요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김포족이 된 가장 주된 원인은 솔직히 말해서 집사람이 김치를 못 담그는 편이다. 김치 한번 담글라고 하면 온 집안이 그릇 천지고 거기다가 일머리가 부족하니 난리 버거지를 친다. 결혼하기 전까지 한 번도 김치를 담가 본적이 없다고 한다. 하기야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교복 한 번 빨아본 적이 없다고 하니. 큰 처남댁이 일찍 들어와 다 해주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우리가 맞벌이 부부일 적에는 한 분인 누나가 김치를 거의 담가 주었다시피 했다. 가끔 둘째형수, 셋째형수가 김치를 담가 보내주니 김치냉장고에는 갖가지 김치가 그득했을 정도다.
내가 보기에는 집사람이 김치를 잘 못 담그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배추를 알맞게 절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고집이 세서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포족이 되니 여러 김치회사의 김치를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우리 부부의 입에 가장 맞는 김치를 선택하여 사 먹는다. 어쨌거나 담가 먹는 김치만 하랴……. 그래서 맛있는 김치가 나오는 설렁탕 집을 단골로 드나든다. 설렁탕 집을 자주 찾는 원인은 김치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맛있는 김치찌개라 해도 김치기 맛이 없으면 역시 젬병이다. 딸네 집은 맛있는 김치를 먹고 싶으면 단골 설렁탕 집으로 가서 실컷 먹는다. 우리도 그 설렁탕 집을 가끔 가지만 김치가 일품이다. 이젠 K-푸드로 한국 김치가 세계적인 발효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음식은 발효식품의 왕국이라 할 수 있다. 된장, 고추장 등 장류를 비롯하여 젓갈류, 감주나 식혜, 막걸리 등이 우리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이다. 아마 세계적인 발효식품의 왕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과문하지만 서양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은 치즈, 와인 요구르트 정도가 아닐까 한다. 발효식품의 원천은 곰팡이, 효모, 된장 담그는데 쓰는 누룩, 감주나 엿을 고는데 쓰는 엿기름 등이다. 딸네 집 갔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김장배추를 서너 망 사오는 부부를 만났다. “직접 집에서 절여서 김장을 담그세요?” 그렇단다. 나는 그 부부가 신기하게 보였다. 대개들 절임배추로 담그거나 김포족이 되가고 있는 데 옛날 방식을 택해서 담근다는 것이다. 우리 모임의 팔순이 다 된 회장님 네도 통배추를 사다가 절여서 김장을 담근다고 하다. 내심으로 대단하고 부러웠다. 어느 집은 절임배추도 어렵다고 김포족이 되었는데……. 세월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이젠 김장을 안 담근다는 집도 늘고, 명절 제사를 안 지내겠다는 집도 는다. 어느 집은 명절 연휴를 맞이하여 휴가지에서 간략하게 차례를 지낸다고도 한다. 이젠 조상님 네도 귀신 내비게이션이 있어야 차례를 찾아먹을 수 있겠다.
시끌벅적하고 품앗이처럼 김장을 담그던 시골 풍정(風情)이 서로 쌈을 한 입이 그득히 먹여주고 자식까지 챙기며 오순도순하던 그 시절이 이젠 먼 그리운 추억이 되 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영영 우리 집만의 김침맛이 사라진 김포족으로 살아가야 하나보다. |
첫댓글 김포족이란 말을 보고 이게 무슨 뜻일까 궁금했는데
김장을 포기한 사람들을 일컽는 신조어임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