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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와 절제가 필요합니다!
참고말씀: 마3:4; 행9:16; 고전7:8
읽을말씀: 고전9:26,27
주제말씀: 고전9:26,27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첫째,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고전9:26)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속도(速度, speed)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방향(方向, direction)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아무리 빠르게 달려간들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면 그만큼 다시 되돌아와야 하고, 거꾸로 달리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실격(失格)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어떤 말을 제일 많이 사용합니까? ‘빨리 빨리’ 오죽하면 해외의 유명 관광지마다 이 말이 다 통용(通用)될 정도라고 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제일 빨리 나오는 인스턴트(instant)식품 등을 선호하고, 인터넷을 해도 속도를 중요시하며, 독서를 해도 고전적인 책들보다는 가볍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더 잘 팔리며, 하다못해 영상을 하나 보더라도 갈수록 더 짧은 것(shorts)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우려해서 일각(一角)에서는 어떤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습니까?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는 등 이른바 ‘느리게’(slow) 캠페인입니다. 즉 느리게 걷되 바른 자세로 걷기를 힘쓰며, 느리게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이나 주변을 정기적으로 되돌아보자는 운동 말입니다.
그러나 매번 다 느리게 하거나 다 빠르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어떤 때는 느리게 해야 하지만 또 어떤 때에는 빠르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빠르게 살아가야 하지만, 한주간의 첫날인 주일(主日)에는 느리게 살 필요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예배를 통해’ 느리게 생각하고 차분하게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특히 주일마다 무엇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합니까? 우리가 달려가야 할 방향(方向)입니다. 사도 바울이 매번 그리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어떤 스포츠 종목들에 빗대면서 자신의 일관된 삶의 모습을 피력했습니까? 달리기와 권투(拳鬪)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고전9:26)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달리기 선수가 방향(향방) 없이 달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승은 고사하고 실격처리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만일 복싱선수가 허공(虛空)에 대고 연신 펀치(punch)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힘이 다 빠져서 정작 상대 선수와의 대결에서는 힘없이 지고 말 것입니다.
혹 우리의 모습도 방향 없이 아무 데로나 마구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혹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엉뚱한 데에만 시간과 정력, 재능 등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원컨대 이제라도 성경을 통해 인생의 나침반(羅針盤) 얻기를 바라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인생의 뚜렷한 방향, 곧 비전(vision)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왜 인생의 방향이 중요합니까? ‘일단 뛰고 보자! 일단 달리고 보자!’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없으며, 이처럼 우리를 비극적인 결말로 내몰 수는 말도 더 없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의 물소 떼에 벌어진 비극적인 참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해마다 수만 마리의 물소 떼가 목숨을 건 질주의 대이동을 연출한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가 닥쳐오면 물소 떼는 물을 찾아 수천km를 쉬지 않고 내달린다 ...<중략>... 어느 때인가 수천 킬로미터 앞두고 대형 참사를 당한 적이 있었다. 물 냄새를 맡은 리더가 따라오는 무리를 향해 앞으로 물이 있는 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를 본능적으로 보낸 것이다. 그러자 이제까지 묵묵히 리더를 따라오던 물소 때가 순간적으로 흥분하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먼저 물을 먹으려는 충동으로 질서와 페이스는 무너지고 뒤에 있던 물소들이 앞에 뛰는 물소들을 추월하며 파행이 일어난다. 넘어지는 물소 위에 그 물소를 밟고 뛰어넘다 다시 넘어지는 물소들로 아비규환이 된다. 결국 강까지 무사히 도달한 물소의 수는 처음 출발할 때의 절반도 안 된다.” -백지연의 <뜨거운 침묵> 중에서 -
둘째, 자기 절제가 필요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목표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합니까? 자기 절제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절제하지 않으면 원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운동선수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피나는 훈련과 자기 절제를 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쉴 것 다 쉬면, 언제 훈련을 해서 우승을 거머쥘 수 있단 말입니까? 단언컨대 절대로 우승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도 항상 무엇에 힘썼음을 알 수 있습니까? 자기 절제, 곧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다는 점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고전9:27 상) 왜 그리한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지런히 복음을 전파했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 관리가 안 돼서 하나님께 버림 받을까봐, 곧 받을 상급이 남아 있지 않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하)
참고로, 27절은 구원의 여부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들의 상급을 위한 실천을 강조한 것입니다.
실제로 각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자기 절제에 힘썼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의 경우도 어떠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살았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만 먹고 지냈으며,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3:4) 사도 바울도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7:8) 주를 위한 많은 고난을 감내했던 것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행9:16)
한국인이 낳은 세계적인 축구선수 중에 손흥민(1992~, 대한민국)이 있는데, 그는 현재 만 31세의 나이에도 꿈의 리그인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 최정상급 선수로 뛰고 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을 맡아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한 인터뷰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당분간 독신으로 지낼 것이며 나의 유일한 관심은 축구이다.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셨고, 나도 동의한다. 결혼을 하게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와 아이들 등 가족이고, 그다음이 축구이다. 내가 최고 수준에 있을 때 최우선은 축구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최고 수준에서 뛸 수 있을지 모른다. 은퇴하거나, 혹은 33∼34세 이후에 가족과 오랫동안 지낼 수 있다. 지금은 연애, 결혼보다 축구에 전념하고 싶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성경 속 많은 인물들처럼, 아니 현실세계 속의 유명한 스타들처럼, 인생의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 절제에 힘쓰고 있습니까? 물론 청소년기에 하고 싶은 일들도 많고 남들처럼 핑크빛 연애도 하고 싶겠지요? 하지만 자기 절제에 실패하면 후회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기 바랍니다.
물론 무조건 이성교제를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더라도 서로에게 ‘win-win’(서로 좋은, 상생)인 이성교제를 하기를 바랍니다. ‘연애하느라’ 신앙생활이 엉망이 되고 ‘연애하느라’ 학교 성적이 떨어지며 ‘연애하느라’ 공동체에 분열을 야기한다면, 정중하게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에게 “우리 학교 졸업 이후에 만나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행복하자고 서로의 미래를 망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그 때까지 못 기다려주겠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단호하게 이렇게 권면해드리고 싶습니다. “당장 헤어지세요! 어차피 지금 안 해어지더라도 나중에 분명히 해어질 테니 말입니다. 즉 지금 기다려주지 못하는 사람은 나중에 가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우는 지금 어떻습니까?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두 가지, 곧 목표(방향)과 절제를 갖추고 있습니까? 즉 속도보다는 방향을 더 중요시하며, 자기절제를 통해 최고로 나아가고 있느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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