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1부에서 계속 ㅡ
주왕산의 가을2부 (가메봉-큰골-대전사)
2009. 10. 25. (일) 10~20℃ 가을날씨
꼭지와 둘이서
일출 06:41 / 일몰 17:37 / 음력 9.8
▲황장재의 운해
▲가을의 휴혹.. 내원동 담쟁이의 화려한 외출
▣ 구간별 산행기록
06:17 황장재 -산행시작-
07:14-07:25 갈평재(450m)
08:42 국립공원표석
08:57 대둔산 갈림길
09:00 대둔산(905m)
09:03-09:15 대둔산 갈림길
10:40 암봉좌측으로 조망트임
11:13 먹구등(864m) 금은봉이 갈림길
12:07-12:30 느지미재(650m)
12:45 좌로 조망트임
13:15 왕거암 갈림길(이정표 없음)
13:25 왕거암(907m)삼각점
14:00 3폭포 갈림길<대전사 7.3 / 가메봉0.2 / 절골 5.5>
14:07-14:20 가메봉(882m)
15:00 큰골다리
15:40 내원마을 옛터
16:05 제3폭포
16:20 제2폭포
16:40 제1폭포
17:08 주왕굴
17:30 대전사 -산행종료-
총 산행거리 : 23 km / 11시간 13분 (휴식 포함)
▣ 정맥종주거리 : 정맥거리 13 km / 정맥누적거리 167.8 km
황장재→3.7←대둔산→5.4←먹구등→1.3←명동재→1.3←느지미재→1.3←왕거암 갈림길
→2.5←가메봉→7.5←대전사 = 23km
▣ 총 누적거리 : 182.8 km (접근거리 : 왕거암 갈림길-가메봉-대전사 =10.0km)
▣ 알바주의구간 : 대둔산 갈림길, 왕거암 갈림길 (이정표 없음)
▣ 교 통 : 자가운전 (대구칠곡I.C-의성I.C-청송-주왕산 주차장 = 135 km / 약 2시간) 주차비 : 4,000원
차량회수 : 황장재-대전사주차장 45,000원(메타요금) / 청송진안택시 011-9591-2345, 054-874-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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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극찬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8경의 하나로 꼽았던 '주왕산'
가메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다시 3거리로 내려와 하산을 서두른다. 이러다간 해지기전에 대전사에 도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큰골 하산길>
단풍나무와 신갈나무, 낙엽송이 우거진 숲길에는 가을이 무르익어 절정이다.
산사면은 온통 황금빛이다. 올해처럼 단풍이 고울 때가 드물지 싶다.
조물주의 장난이 잘못된 것일까.
내원마을 가는 길은 부드럽고 편안하다
<복자기 단풍> 곱고 화사한 것이 꽃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누가 쌓은 것일까?
주왕산이 오늘은 그 소원을 다 들어준 것 같다.
가을의 휴혹..
억새가 하늘거리는 길가에 외출나온 담쟁이와 꼭지의 조우..
담쟁이의 화려한 몸짓이 매혹적이다.
이름표를 달고있는 서어나무
<내원동 마을 옛터>
내원분교의 건물과 주민들의 옛 집들을 보존했으면 좋았으련만
모두 철거해버렸다. 어찌 마을의 옛 건물들이 환경저해 시설물이었을까?
주왕에 얽힌 설화처럼 내원동마을도 이제는 전설로 남게 되었다. 2005년 국립공원 내
민가 철거 방침에 따라 모두 사라지고 지금은 터만 남았기 때문이다.
<내원동의 전설이 서린 돌탑>
내원동은 임진왜란때부터 주민들이 난을 피해 숨어들어 살기 시작해
6.25 이후에는 한 때 70가구 50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때 생겨났던 내원분교는
10년간 총 7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80년 3월 1일 폐교되었다.
부수는 것 보다 보존하는 지혜가 관광자원이 아닌가 싶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으며 길은 이어진다.
500년전부터 내원동 주민들이 다니던 아름다운 길
그들 삶의 터전이었던 내원동 개울가에
늙수레한 단풍나무가 고운 빛으로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 개울가에서 놀던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되면서 이곳을 떠났을 것이다.
아니 쫓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제3폭포 가는 길>
사람들은 이곳을 둘러보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하고는 길을 나선다.
전에 왔을 때는 아담한 학교 분교가 있어 차도 마실 수 있었고, 저 위에 있던 집에선
누구누구도 만나곤 했는데 하며..
그러한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울에는 가을빛이 흐르고 무심한 세월도 물따라 흐른다
<제3폭포 상단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3폭포 하단부>
하단부에서 바라본 <제3폭포>
<제2폭포 가는 길> 제2폭포는 다시 뒤돌아 나와야 한다
<제2폭포> 명세기 이름이 폭포인데 물이 졸졸졸 흐른다.
<제1폭포 가는 길>
계곡에 물이 흐르지 않을 정도로 가을 가뭄이 심해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냇가에 위치한 단풍이 더 고운 것 같다
<주왕산>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렸고
난리가 날 때마다 이곳으로 피해온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하여
대둔산(大遁山)이라 불렸다. 정맥길에 있던 '대둔산'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
<주왕산>은 신라말부터
주왕이 은거하였던 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왕은 당나라때 '주도'라는 사람으로 진나라의 후손이었던 그는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자처하며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었다.
군사를 일으켰으나 당나라군에 패하여 쫓기다가 이 산에
숨어들게 되었다. 당나라 왕이 신라 왕에게 주왕을 잡아달라 요청해왔으며,
이에 신라왕은 마일성 장군의 5형제로 하여금 주왕을 토벌케 하였다.
<제1폭포>
주왕이 저 위에서 은거하며 물을 끌어올렸다는 <급수대>
<병풍바위와 시루봉>
<주왕암>
<주왕이 싸움에 패하여 숨어지내던 주왕굴에서 내다본 풍경>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로 세수하다 적군에게 발각된 주왕은
마장군 형제들이 쏜 화살과 철퇴에 맞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피가 흘러
주방천의 맑은 물을 붉게 물들였고, 그 이듬해 예전에 보지 못했던 붉디붉은 꽃이
주방천물가에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그 꽃이 바로 수달래라는 전설이 있다.
<대전사에서 바라본 기암(旗岩), 깃대바위>
山자 모양의 저 기암은 주왕산의 심벌마크다.
기암(旗岩)은 마 장군의 토벌대가 주왕을 제압하고 이 봉 꼭대기에 대장 깃발을
꽂았다고 하여 이름붙여진 바위다. 대전사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빼어나다.
저 안 어딘가에 한 사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굴이 있고
그 굴속으로 들어가면 신선이 놀고있는 무릉도원이 펼쳐질 것 같은 그런 착각에
빠지게 하는 바위다. 마치 지리산에 숨겨진 전설속의 청학동 처럼..
꼭지가 11시간 넘게 걷는다고 고생은 했지만 단풍에 취한 하루였다.
이중환의 극찬이 아니더라도 이 가을에 꼭 빼놓을 수 없는 산임에는
틀림이 없어보인다.
꼭지와 하산주로 파전에 동동주 한 사발을 들이키고,
할머니가 밀어주는 칼국수까지 뚝딱 해치우고 식당문을 나서니
벌써 불빛 휘황찬란한 주왕의 밤이 무르익고 있었다.
아!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로구나.
....................
▲황장재-왕거암-대전사 산행경로 / 출처 : 사람과 산
ㅡ 끝 ㅡ 감사합니다.
첫댓글 제 생각엔 두분의 마음에 무릉도원을 품고 계신거 같읍니다^^
그런것 같습니다. 산속에만 들면 낙엽덮인 포근한 산길과 풀과 나무와 돌..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곱고 아름답게만 보이니 그곳이 무릉도원이겠지요. 이것도 병(?)인가 봅니다.
그나저나 왕거암에서 궤도 이탈하여 가메봉으로 빠졌으니...... 다음 연결이 쉽지 않네요??
쉽지는 않겠지만 다음 들머리는 주산지를 선택사양으로 하고 절골에서 가메봉입니다. 주왕산구간을 가을에 통과하게되면 흔희 낙동을 그렇게도 합니다. 그래야 낙동의 즐거움도 있고 주왕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니까요. 다음 낙동코스는 영알에 들 때까지 지루하고 긴 여정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