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하자면. 익숙해진거에요. 후각처럼.
하도 많이 아프고 슬퍼서 이젠 느끼지 못 할 뿐이라구요.'
'그 남자는 사랑 따위에 울지 않아요. 더욱이나 사랑을 믿지도 않는 남자인데.'
들어볼래요?
은아한과 효이유이의 이야기를.
**
타앙-
달빛이 비치는 인적 드문 공터장에 서 있는 두 사람. 곧 이어 무너지는 한 인영.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은 능숙한 손놀임으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임무 마쳤습니다."
곧 이어 그의 붉은 입술에서 나온 소리.
맑고 투명한 25세의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의 이름은 은아한. 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는 일은 위에서 내려오는 임무를 수행한다.
다른 말로, 사람 죽이는 일. 다름 아닌, 킬러.
"제길스럽게 밝네 오늘은"
잠시 하늘을 쳐다본 그는 혼자 중얼 거리곤 총을 거두고 뒤 돌아 공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모자를 더욱 푹 숙이고.
달빛에 살짝 비친 그의 표정은 소름이 돋도록 감정이 없었다.
사람의 정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처럼. 감정이란 걸 모르는 사람인 것 처럼.
그렇게 무표정의 포커페이스였다. 그는.
그의 무표정은 그의 잘생긴 얼굴의 빛을 거두어 버린 것이다.
**
"아후, 오늘 강의 시간표 작살난다 진짜."
"크큭, 난 오전수업만 있는데!"
"씨이 진짜 잘났다 잘났어!"
서울에 위치한 한 대학교. 그 대학교의 교정을 막 들어서는 두 여학생.
검정색의 머릿결에 남자의 보호본능을 자극 할 얼굴을 지닌 여자, 22세의 효이유.
한 껏 웨이브를 넣고 예쁘장한 얼굴을 지닌 그녀는 이유와 동갑친구인 주배윤.
"이따가 점심이나 같이 먹자."
"그럼 우리 자주 가는 카페로 1시까지 나와! 알겠지?"
"응응! 강의 잘들어 배윤아!"
손을 흔들어 주고 저 만치 뛰어가는 이유.
그런 이유를 보며 혼자 중얼 거리는 배윤.
"큭, 하여튼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애기 같잖아?"
배윤 그녀도 돌아서서 강의실로 향했다.
**
"아놔 진짜. 교수님이 나만 미워하는거 있지?"
"그러게 누가 개새끼를 강의실로 가지고 가래냐?"
"주인 잃은 거 같은데 어떻게 냅두고 지나가! 막 나보고 낑낑 거리는게.."
"...너같아서? 큭."
"..으응."
살짝 웃어보이며 긍정의 대답을 해주고 다시 점심 먹기에 집중한 이유.
배윤도 그녀를 보며 귀여워 죽겠다는 듯, 웃어보였다.
그녀들은 소꿉친구에다가 죽마고우였다. 서로 없어선 못 사는 그런.
대단한 우정이지.
점심을 먹다가 배윤이 대뜸 말했다.
"오늘 갈꺼지? 수원."
"아, 응. 가야지."
"..같이 가줘?"
커피를 마시려던 이유는 잠시 망설이다가 작게 웃어보였다.
"아니. 혼자 가볼께."
"..피식. 알겠어.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땡겨라?"
"키킥. 응!"
그녀의 발언에 놀란 듯한 배윤이지만 금새 웃어버리고 만 둘이다.
8월 15일. 이유의 부모님의 기일이였다.
밤 7시.
이유는 무거운 마음을 하고선 수원 직행 기차에 올라탔다.
잘 하는 짓이라며 자신을 다독이는 그녀가 보인다. 초조하는 모습도.
MP3 이어폰을 귀게 꼽고 수원으로 달리는 기차 밖 풍경을 감상한다.
8시가 다 되어 이유는 수원 공동 묘지에 도착했다.
그녀의 부모님이 묻어 있는 곳이지.
이유는 언제나 그랬듯이 부모님이 있는 곳에 가기 전 공동 묘지 앞에 있는 꽃 가게에 들렸다.
"오셨어요?! 언제 오시나 했네요."
"안녕하세요. 잘 계셨죠?"
"그럼요! 아, 여기요."
이유는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들리는 꽃 가게였다.
항상 같은 꽃을 사가기에 여기서 일하는 여자도 이 날이 되면 항상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원하는 꽃을 만들어 놓고서.
"..플라이츄어 맞죠?"
"네.. 고마워요."
"뭘요. 제겐 즐거운 일이에요."
"피식."
"아, 플라이츄어 꽃말이 뭔지 아세요?"
"'그림움에 산다'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근데 플라이츄어는 희한한 꽃이잖아요.
자기 맘대로 색갈도 바꾸구.. 소수의 사람들이 아는 다른 꽃말이 있어요."
"..뭔데요?"
"....'자신을 숨겨라'.."
그렇게 이유는 그녀와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곧 털어버리고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의 묘지로 향했다.
"엄마, 아빠.. 안녕."
"잘 지내지?"
"이유는 대학생 2학년이야 이제..."
"잘 살고 있어. 밥도 무지 잘 먹고."
"후, 이상에서 다 못한 사랑.. 하늘나라에서 실컷 해버려. 신도 부러울 만큼."
"방해하는 자도 없을테니......"
"그럼 갈께. 이만 안녕."
그렇게 이유는 뒤 돌아서 공동 묘지를 막 나서려 할 때이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검정색 양복으로 빼 입고 모자까지 쓴 그 남자는
자신과 같은 꽃을 들고서 묘지를 들어섰다.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그 남자가 하는 행동을 무심코 지켜보았다.
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한 묘지에 꽃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절을 세번씩이나 했다.
"아."
그 장면은.. 아름다웠다.
멜로 영화의 한 장면을 본 듯.. 하다랄까.
그 남자는 멍하니 서 있더니 곧 뒤 돌아서서 공동 묘지를 빠져 나가려고 할 참에.
"저기요!!"
이유의 고함에 그의 발은 우뚝 멈춰 서버린건.
그의 가슴에 짜릿한 느낌을 받은 건.. 다 운명이였을까.
그게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첫 만남이였다.
"..."
"..하핫."
앗이다 라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대뜸 그 남자를 불러서 달려가기까지 했으나, 무슨 말을 해야할지.
게다가 그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그저 쳐다볼 뿐이였다.
표정을 봐서는 불쾌하단 듯이 서 있었다.
"아, 그니까... 그게..."
"....."
'벙어린가'라는 생각까지 하는 이유. 역시 그녀는 못 말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그 남자에게 혹 되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거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이유는 자신에게 벌서 등을 돌아선 남자가 보였다.
"첫 눈에 반해버렸어요!!"
이유는 저도 모르게 소리쳐 버렸다.
그러지 않으면 놓칠 것 같아서.
그 남자는 또 다시 우뚝 서 뱅그르 돌아 이유를 향해 걸어왔다.
"뭐라고 했지?"
"첫.. 눈에 반했버렸다구요."
"꼬마치곤 당돌하군."
"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엔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
느낌도 없었다. 그의 표정 역시 마찬가지로.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이유지만.
사람 감정이 머리대로 하나? 심장대로 하지.
"사랑을 믿는가?"
침묵 뒤, 살벌한 그의 한 마디였다.
잠시 생각하던 이유는 망설임 없이 내 뱉었다.
"아니요. 하지만 당신을 믿는다면요?"
라고.
그 남자는 그녀의 당당한 발언에 뜨끔 했다.
그러자 그의 눈엔 생기가 들어 온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 걸까.
"하하.. 하하하하..하하!!"
"..어메.."
갑자기 그 남자는 큰 소리로 웃어 재꼈고,
이유는 그저 갸우뚱했다. 갑자기 뭔 행패래....
잠시 후, 그는 훨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유에게 물어왔다.
"그 말. 책임 질 수 있나?"
"무슨 말이요?"
"날 믿을 수 있다는 말."
"안 될게 어딨어요?"
"피식. 그럼 어디 재주껏 해봐."
그의 말에 이유는 환하게 웃어보였고,
"제 이름은 효이유에요!!!"
라고 외쳐주었다. 그에게.
꾁꾁 질러대는 그녀를 보며 그는.
"은아한."
라며 살짝 웃어주었고.
**
그 날 이후로, 아한의 오피스텔을 알아낸 이유는 시간 날 때마다 그의 집에 갔다
찾아와도 부정하지 않은 아한을 보면 싫지는 않다는 것일까.
오늘도 역시.
딩동-
"이유 왔어요!"
달칵-
"밥 차려."
"넵!...아-."
신발을 벗고 아한을 쳐다본 이유의 얼굴을 욹그랑 불그락.
아침 8시이긴 해도 방금 일어난 탓인지,
윗통을 벗고 츄리닝 바지만 입고 있는 아한이였다.
쉴새없이 두근대는 이유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한은 그저 '뭐?'라는 멘트를 날려주고 샤워실로 사라졌다.
"이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여자로 보이지도 않나봐?"
씨부렁 씨부렁대며 아침밥을 차리는 이유.
김치를 꺼내려 냉장고에 다가갔는데,
냉장고 위에 떡하니 붙혀져 있는 메모지 한장이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9월 23일 임무
이름 김우성
나이 53세
주소 현라빌 저택 520호 서울
같은 날짜와 시각에 임무 수행하라.'
갸우뚱 해보이는 이유.
김우성은 한국에서 꾀나 나가는 대한 그룹의 회장이 아니던가.
'뭔 임무?'라는 생각을 해보이는 이유지만,
아한이 샤워실에서 아래만 수건으로 가리고 나와 생각할 틈도 없어져 버렸다.
언제 울었냔 듯이 이유는 두 손으로 있었던 눈물을 강하게 닦아내고,
앞서 가는 아한으로 뛰어갔다.
"오빠!! 같이 가야지!!!!"
라는 고함도 잊어 주지 않은 채.
**
"와와! 나 중학교때 소풍으로 온 거 빼고 처음 와 봐요!"
"난 처음 와봐."
"어어, 진짜요?"
"엉."
"뭐하고 살았어요? 학교 소풍은요?"
"학교 따위 다니지 않았어."
"어메. 진짜루요?"
"그럼 가짜냐?"
요새 장난도 부쩍 늘은 아한이다.
그럴 때마다 말 하지 않았을 때가 훨~신 좋았다는 이유. 물론 거짓말이지만.
공포영화를 무서워 하는건 사실이지만 놀이기구는 끝내주게 잘 타는 이유이기에
아한을 끌고 다니기에 바빴다.
"아씨, 쏠려."
"으이그, 남자가 그러면 어떡해요!"
"죽는다."
"아, 옙. 닥칠께요."
그러나 패배는 항상 이유에게 돌아가지.
그 둘은 타 볼건 다 타보고 서로 손을 잡으며 놀이동산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침 지나가는 아이스크림 가게.
계절은 가을이지만, 겨울 못지 않게 추워서, 아이스크림이 더욱 땡긴다랄까.
마침 아이스크림 광인 이유가 가게를 보고 아한의 팔을 잡아 당겼다.
일명.. 애교라나.
"나 아이스크림 졸라 좋아하는데!"
"여자가 졸라가 뭐냐."
"내 맘!"
"후, 그래. 여기서 기다려. 내가 얼른 사올께."
"네!"
이유는 뛰어가는 그의 뒷 모습을 쳐다보았다.
방긋 웃어보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렀다. 또 한번. 주륵.
"어라, 왜 이러지.."
자신도 모를 이유에 흘린 눈물들.
엄습해오는 그들의 나쁜 운명. 꼬여질 대로 꼬여버린.
이유의 눈물은 그들의 운명의 시작점에 불과했다.
"여기. 아이스크림."
"와와, 내가 좋아하는 딸기맛!"
"피식."
저기 멀리서 그가 뛰어오는 것을 보고 누구 볼세랴 얼른 눈물을 닦아낸 이유.
이유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를 당연히 모르는 아한은 그저 웃어보이며 자연스럽게 이유의 손을 잡았다.
그때.
"우워, 진짜 잘 어울려요!"
"악. 깜짝이야!"
갑자기 불쑥하고 나타난 한 남자.
그 바람에 깜짝 놀랜 이유는 몇 입 밖에 못 먹은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리고
울상을 지어 보였다.
"이씨! 내 아이스크림.."
"이거 먹어."
"하핫. 진짜루요?"
"응."
아한은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내 밀어주었다.
바로 환하게 웃으며 냉큼 받아먹는 이유를 보며 자신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 아한.
그나저나, 이 사람은??
"아, 죄송해요."
"....."
"저.. 잘 어울려서 사진 한 장 찍어 드릴려구.."
"....."
원래 낯선 사람과는 말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 아한이다.
그래서 더욱 뜸들이는 사진가.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데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느냔 말이다.
"진짜루요? 와와, 우리 사진찍어요! 네?"
"후.."
"우리 사진 한 번도 찍어 본적 없잖아요. 네?"
"..알겠어. 알겠으니깐 이것 좀 놔."
"으하하, 오예!"
그제야 살았단 표정을 지은 사진가는 그들을 좋은 위치로 옮겼고,
곧 이어 그들을 향해 찰칵거리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다 됐어요! 여기요."
"와, 감사합니다!"
"뭘요. 아, 이 사진 너무 잘 나오면 제 사진관에 걸어놔두 되나요? 홍보용으로요."
"그건-"
"당연하죠!"
뭐라 반박할 틈도 주지 않은 이유 때문에 뒷골이 땡기는 아한.
자신과 이 꼬맹이의 사진이 홍보용으로 걸린다라..
겉으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좋아서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려오는 아한이다.
**
그들의 '데이트' 후, 5일이 지났다.
아한은 그의 임무들 때문에 바빠 이유에게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못하고,
집에도 제대로 들리지 못한 그였다.
그렇게 다가오는 9월 23일. 오늘로 해서 3일 남았다
아한에게는 크나 큰 일이 생길 날이다.
한국 으뜸가는 대한 그룹의 회장, 김우성을 죽이는 날.
다른 경쟁 그룹에서 의뢰해 왔는데- 꾀나 많은 액수를 건낸 모양이다.
"임무 수행 할 준비는 마쳤느냐."
"네."
"허튼 생각 하지마라."
"..네."
"난 널 꾀뚫어 본다는 것도 잊지 말고."
"..."
"그럼 나가봐."
"네."
이 곳은 아한이 머물러 있는 조직.
사람들과 거래를 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재산을 모조리 훔치기도 하고..
그 사람들이 받는 돈 대신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는 조직이지.
아한은 어린 나이에 꾀나 높은 지위에 서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싸움만 해온 터라, 중2때 자신의 명성은 꾀나 알려져 있었다.
그때 이 조직에서 합류하지 않겠냐는 조건을 내 밀었고,
가족도 없고 인생 멋대로 살고 있었던 아한에게 조건을 받아 들인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후회로 다가 올지도 모르고.
"후우-"
아한은 한 숨을 쉬며 그의 '보스'가 있는 방에서 빠져나왔다.
허튼 생각 하지 말라는 그의 보스의 말이 머릿속에 윙윙 울리고 있었다.
그의 보스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자신이 자신 답지 않다는 것을.
건물을 막 빠져 나올 때, 그의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오빠 뭐해?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둔순이'
문 앞에 서 있던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사내들은,
이유에게 온 문자를 보고 씩 웃지만 슬픈 눈을 하고 지나가는 아한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항상 무표정만 보아 온 터라. 이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밥 차려'
라고 후다닥 답장을 보낸 아한. 그는 절실히 느꼈다.
너무 소중해서 만지기도 무서운 그녀와의 마지막이 다다랐다는 걸.
그는 빠른 발걸음으로 자신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녀와의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백화점 쥬얼리 코너에 잠시 들린 그였다.
이젠 그에게 너무나 소중한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서.
"뭐 찾으시세요?"
"....."
"손님?"
"..소중한 사람한테... 줄 선물 찾아요."
어렵게 말을 꺼낸 아한.
그제야 그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안내했다.
"커플링 어떠세요? 아니면 커플 목걸이? 요즘엔 팔찌두 있구요."
"...."
"아, 이건 어제 나온 신상품 커플링인데요,
이거 만드시는 분께선 언제나 한 쌍 밖에 만들지 않는데요.
다른 말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커플링이죠."
"...."
"이름은... reminscene. '추억'이래요."
reminscene.. 추억이라.
너무 어울려 맞잖아.
"그거 주세요."
"네, 포장해드리겠습니다!"
와락-
그가 들어오자 마자 그에게 안겨드는 무언가.
자신의 가슴팍까지 밖에 오지 않는 작은 한 여자. 효이유.
자신의 두 팔 안으로 쏙 들어오는... 그 여자. 효이유.
"씨이. 다른 여자랑 바람 난 줄 알았잖아요!"
"피식. 내가 왜?"
"하도 연락이 안되니까 그렇죠! 집에 와두 아무도 없고.."
"바빴어. 미안해."
"키킥. 됐어요! 어디 갔다 와요?"
"그런건 몰라도 된다."
"칫. 궁금하지도 않다 뭐! 얼른 와요. 저녁 해놨어요!"
그녀의 말대로 식탁으로 가니 푸짐한 음식거리가 잔뜩 올려져 있었다.
이런 대접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아 허탈하기도 하는 아한.
그러나 그는 그런 감정을 곧 지우고, 그녀에게 줄 선물을 꺼냈다.
"자."
"이게 뭐에요?"
"선물."
"..아-...."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뜯어내, 반지 한 쌍을 본 이유는 감격에 눈물을 글썽였다.
"이거.. 저 주는거에요? 오빠랑 나랑?"
"피식. 응."
"와.. 너무 예뻐요."
아한은 반지 하나를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에 껴주었고,
다른 쪽은 자신이 꼈다. 그리고 뿌듯함이 밀려왔다.
"고마워요.."
"피식. 응."
이유가 고마움에 반지만 바라보고 있을 때, 아한은 어느새 밥을 먹고 있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었으면 하는 이유.
아한의 밥그릇에 밥이 거의 없어졌을 때,
이유가 대뜸 침묵을 깨버렸다.
"오빠."
"왜."
"저 좋아해요?"
"응."
"..사랑해요?"
"...."
갑자기 아한의 수저가 허공에 멈추었다.
밥 먹기에 열중하던 아한은 고개를 들어 이유를 쳐다보았다.
말 실수 했구나 라는 생각에 아한과의 눈 마주침을 피해 보였다.
"넌."
"네?"
"넌 나 좋아해?"
"네. 무지 좋아해요."
"그럼 거기서 멈춰."
"..네?"
"니 심장한테 거기서 멈추라고 하라고."
"어떻게.. 그래요.."
"경고하는데"
"...으윽..."
"사랑까진 하진마라. 난 사랑따위 받을 자격 없는 사람이다."
공동묘지에서 만났을 때 처럼 또 다시 그녀에게 차갑게 대하고 있다. 아한은.
그러나 그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걸...
..이유는 모르겠지.
아한은 수저를 내려 놓고 그의 방 안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엉엉 우는 이유를 부엌에 버려두고선.
쾅쾅-
"..왜 없어요! 내가!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없냐구요!"
문 밖에서 그녀의 외침이 들려온다.
그에게서 사랑을 원하는 그녀의 발악. 마지막이 될 그녀의 발악.
숨이 턱 하고 막혀온다.
그는 자신의 반대편에 그녀가 있을 문을 향해 절을 세 번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를 반복하며. 다신 못 느낄 줄 알았던 눈물의 감촉을 느낀 그이다.
세 번째 절을 하고 일어날 줄을 모르는 은아한.
그의 눈물은 폭풍을 치 듯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사랑해서.. 죄송합니다."
**
그렇게 삼일이 흘렀다.
풀이 축 쳐져 있는 이유를 보면서 배윤은 미칠 지경이였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얘가 저러는 걸까. 하는 심정이였기에.
속 시원하게 좀 털어 놓으면 어디 좀 좋을까?
"아후. 넌 진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어? 이 반지는 뭐야! 너 결혼했냐?"
"아니, 오빠가.. 준거야. 어라, 오늘 오후 수업 없네. 호프집 갈래?"
"얘, 얘가 미쳤냐! 술이라면 치를 떠는 얘가 무슨 술이야!!"
"피식. 그냥.. 꼴리네."
"너.. 그 은아한인가 뭐시기인가 그 사람이랑 무슨 일 있었지!"
"키킥. 연애박사 주배윤이~"
말 하기 싫은지 되지도 않은 노래를 부르며 저 만치 달려가는 이유를 보며 배윤은.
"맞네. 그 남자랑.. 무슨 일 있는거 맞잖아. 바보멍텅구리."
그렇게 혼자 속삭였다.
가족 보다 더 친한 그녀의 친구였기에. 자신의 힘은 미처 닿지 않아서 속상했기에.
옆에서 위로 해주는게 다라서 속이 베베 꼬일 지경인 배윤이다.
"많이 마시진 않는다고 약속해!"
"응응! 그니까 얼른 따라줘!"
"아후, 내가 너 땜에 미쳐."
배윤은 이유의 힘에 미처 이기지 못해(못 이기는 척),
온 곳은 시내에 위치한 한 호프집.
꾀나 잘 나가는 호프집에다가 토요일인지라.. 사람들로 북적하였다.
배윤은 이유에게 약속을 받아내었지만, 그게 어디까지 갈려나.
한 잔 따라주고, 두 잔, 세 잔까지 이르렀을 때.
'아~ 어지럽다~'라며 더 이상 술 잔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
배윤은 이유가 술 마신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술 한계라던지 꼬장이라던지.
그런 건 당연히 몰랐다.
그러나 세 잔 후 그저 멍하니 앞만 쳐다보는 이유였기에 고마울 따름이였다.
"후, 이제 좀 진정 되었나보네."
라며 배윤이 자신의 술 잔을 따르려는데-
"방금 들어온 빅뉴스입니다. 대한 그룹 회장, 김우성씨께서 방금 오후 9시 23분에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한국 으뜸가는 대한 그룹은 지금 매우 휘청이고 있으며,
그를 총을 쏜 사람은 행방불명이라 합니다. 현재 경찰들은 조사 중이고, 그들의
말로는 확실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합니다."
"어머나! 저거 정말이야?"
"진짜겠지! 그나저나 어떻해!"
"이거 어쩐다냐. 내 친구 대한 그룹 직원인데..!"
대형판 텔에비전에서 보고가 된 뉴스로 호프집은 한 마디로 난장판이 되었다.
워낙 큰 대한 그룹이라, 직원들도 많은 것은 당연하였고, 그 사람들은 모두 실업자로 될 것인지라.
이 호프집에서도 여기저기 대한 그룹 직원인 사람들도 있었다.
"으메. 저거 어쩐대? 어어, 야야! 너 그 몸으로 어디가!!"
멍하니 있던 이유는 갑자기 벌떡 일어 나 어딘가로 달려 간 것이 화제였다.
배윤은 그녀를 쫓아 가려고 냉큼 계산을 하고 호프집 밖을 나왔지만,
벌서 시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유였다.
배윤은 그 은아한이란 사람한테 무지 화가났다.
자신의 친구를 저렇게 바꿔 놓았으니. 저렇게 아프게 하니 곱게 볼리는 없었지만.
"씨발! 잰 또 왜 저러는거야!!!"
한편 이유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잊은게 있었다. 냉장고에 붙혀진 메모지.
오늘은 9월 23일에다가 9시 23분에 죽었다는 김우성 회장.
'같은 날짜와 시각에 임무 수행하라'
처음 만났을 때, 아한이 그랬었지.
'이건 경고야. 다른건 상관해도 내 일 생활엔 참겨 마.'
꼬치꼬치 물어봐도 일에 관한건 절대로 입 밖으로 낸 적이 없는 아한.
그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이유는 쉴 틈 없이 아한의 오피스텔까지 달렸다.
'제발 집에 있어주세요.'
를 되새기며-
쾅쾅쾅-
"오빠!! 오빠!!!!"
그러나 침묵인 집 안.
쾅쾅쾅-
"제발! 사랑해달라고 하지 않을께. 집에만 있어줘.."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고, 침묵은 그대로였다.
이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제발 아니길 바라고 또 바랬다.
"아니야.. 내가 잘 못 본거야.. 오빠가.. 그럴리가 없잖아-"
"피식- 그럴리가 있다면?"
"......?!!!!!!!"
아한이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올라온, 아한.
그의 웃음은 옛날 특유의 웃음이 아니였다. 일명, 비웃음.
사람을 봐도 한 참 잘 못봤다는 그런 비웃음.
꺼지라고 말해주는 그의 눈빛.
이유는 무서웠다. 이 모든게 달라질까봐-
"..오빠?"
"멍청한년. 넌 내가 하는 말을 다 믿었어?"
"....."
"내가 그랬지. 날 믿을 수 있다면 재주껏 해보라고."
"....."
"넌 지금까지 내 꾀에 속아든거야.
니가 날 사랑한다고? 착각하지마. 넌 놀아난 것 뿐이거든."
"난 사랑을 믿어서 오빠를 사랑하는거 아니에요.
오빠를 믿어서 사랑을 하는거지. 오빠 말로 착각 하지마요."
여전히 당당한 그녀의 발언에 잠시 놀란 듯 하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가
쓰레기 보는 듯한 눈빛으로 이유를 밀쳐내고 자신의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한 이유. 제대로 말 한 번 못하고 그를 보내버린 것이다.
변명이라도 하지. 믿어줄텐데.
있죠, 오빠. 당신은 뭔가 잊고 있어요.
아무리 나에게 모질게 대해도,
당신의 손가락엔 그 반지가 끼어 있는걸요.
완벽을 추구하는 당신에게 틈이 보였네요. 히힛-
이런 상황에서도 바보같이 웃어보이는 이유였다.
**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유의 생활도 그를 알기 전으로 돌아갔고,
배윤과의 파란만장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김우성 총 사건은 아직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었고,
여전히 그 범임을 찾지 못한 경찰들이다.
"효이유! 오늘 과 선배들이랑 술자리 마련한데! 우리 가자!"
"그래, 알겠어!"
"오케이~ 죠아써! 그럼 오늘 4시까지 우리 집으로 와, 알겠지?!"
"응응!"
배윤은 그녀의 속사정까진 몰랐지만,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진 알 것 같았다.
한 달 가량 항상 들떠있고, 실실 웃다가, 갑자기 술 마시러 가자는 소릴 하고.......
진짜로 사겼는진 몰라도, 이유가 좋아했다가 차인건가. 대충 뭐 이런 생각.
그때 축구장 사건 현장에 있었던 배윤인 터라,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었다.
사실 그때 아한은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시킨 것이다. 그 문구를.
그걸 본 배윤은.. 그가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것 같진 않고.
약간 위험한 사람인 걸 알아챈 배윤이다.
아무리 밝고 환하게 웃는 이유라도 억지란걸 대번에 알아 차린 배윤이지만.
또한 배윤이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주는 걸 아는 이유이다.
그들은 서로와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그러나 김우성 회장 총 사건 이후로, 이유는 배윤과 자주 술자리를 가졌고,
한 달 정도 지난 지금, 술에 꾀나 강해진 이유였다.
"으악. 이게 뭐야! 화장 덕지덕지.."
"떼끼! 손 데기만 해봐! 선배들 있는 자리라니까~"
"그래도... 이게 뭐야아아아아...."
이유에게 예쁘게 화장을 해주었더니, 금방 울상이 뵈버린다.
화장을 몹시 싫어하는 이유인걸 아는 배윤이지만, 그래도 예쁜걸!
"머린 예쁘다!"
"당연하지. 누가 해준건데."
"으히히. 배윤이 최고오!"
"알아 임마. 얼른 가자. 우리 늦겠다!!"
배윤이 정해준 옷을 입은 이유. 그닥 맘에 드는 옷은 아니지만, 배윤의 억지에..
무릎까지 오는 청치마. 어깨가 훤히 보이는 티.
간단한 목걸이와 귀걸이. 웨이브 친 머리. 누구보다 예쁜 이유였다.
한 겨울이기에 무지 추운 이유였지만... 어쩌겠나?
그들은 부랴부랴 정해진 장소로 발을 옮겼다.
"저희 왔습니다~"
"오냐! 와, 이유 예쁘네?"
"하핫, 감사합니다."
"이리 와서 앉아."
"예.."
유난히 이유를 예뻐하는 남자 선배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석호. 얼굴이 잘생겼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나쁜 평판도 있어서
약간 거리를 두려하는 이유지만, 선배가 오라는데 안 갈 수도 없으니.
"자, 따라줄께."
"네."
그렇게 석호는 이유의 술 잔을 자꾸 따라주기 시작했다.
반박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계속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배윤에게 요청의 눈길을 보냈지만, 배윤은 그녀의 남자친구과 놀기에 바빴다.
"자! 우리 게임 한판 하자!!"
"그래그래! 다 모였는데 시시하게 술만 마시면 재미없지~"
"진심게임 어때?!"
"오오 좋아!!"
"오케이!"
그렇게 시작된 진실게임.
술 병을 돌려서 꼭지가 멈춘 사람한테 질문을 해서
대답하기 곤란하면 술 한 잔 마시는 것.
그러나 행운의 신은 이유의 편이 아닌지...
자꾸 이유에서 멈춰 버렸다.
"씨이.. 이거 사기 아니에요?!"
"오오 또 이유다!"
"그래, 음.. 이유 첫 사랑은 누구!"
"... 에라잇-... 어어-"
그의 이름을 이런 공공장소에 말해도 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한 이유는 결국 한 잔을 마셔버....릴려고 했었다.
석호가 그녀의 술 잔을 뺏어 자신이 마셔 버린 것이다.
"흑기사.. 되지?"
"..우우!!!!"
석호의 행동에 또 다시 열기가 떠 올랐고-
술 병의 꼭지는 다른 몇몇 사람들에게 멈추더니, 또 다시 이유에게 멈추어졌다.
"후우. 또 나네."
"으하하. 이유야 이유! 질문 물어볼 사람!"
"...나와 연애 한 번 해 보는거 어때?"
석호의 갑작스런 고백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시선은 이유에게로 향한 채-
안절부절하는 이유를 보는 배윤의 심기는 매우 불안한지라.
"저, 화장실 좀."
이유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바람에 모두의 표정은 실망으로 변했고-
석호는 술 한 잔을 들이키고 그녀를 따랐다.
"..후우......"
화장실에 들어 온 이유는 땅 꺼질 듯한 한 숨을 내 뱉었다.
솔직히, 이유는 석호를 그런 감정으로 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떨리는 가슴은.. 오로지 그에게로 향하고 있으니까.
부끄러운 맘을 진정시키고 화장실을 빠져나오자, 떡하니 서 있는 석호가 보였다.
"으악. 까, 깜짝이야!"
"왜, 안되는거지?"
"..네?"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봐?"
"아...그게.."
"말해봐."
"전..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석호가 이유를 벽으로 몰았고, 그녀가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잡아두었다.
집착이라 보일 정도로 그는 끈질겼다.
"선배님.. 제발 이러지 말아 주세요."
"난 널 가지고 싶어."
"..제발요.. 네?"
"너 때문에 미쳐버렸다고!!"
"..선배님.... 선배-"
그녀가 애원하 듯 눈물까지 흘리며 하지 말라고 재촉했지만,
그게 석호에게 먹힐리가 없었다.
이미 반 미쳐버린 석호는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범한 것.
이유는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남자인 석호는 끄떡도 없지.
그때.
퍼억-
"으악!"
저만치 떨어진 석호. 이유는 두려움에 휩싸여 석호를 때린 사람을 쳐다보았다.
까만정장에,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 손가락에.. 자신과 비슷한 반지를 낀 사람.
그 사람은... 분명.........!
"..오...빠?"
아한이였다. 이유는 아한인걸 확신했다.
그러나 아한은 이유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재빨리 발을 옮겼다.
뒷늦은 후회.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걸 알고서도..
"거기 멈춰요!! 오빠!!!"
"......"
술래잡기 놀이 하 듯이 그들은 뛰고 또 뛰었다.
물론 그들의 거리 간격은 점점 멀어 지고 또 멀어졌다.
"멈추라고 이 나쁜 자식아!!!! 아악!!!"
결국 속이 터져 고함을 외쳐버린 이유.
하지만 잘 뛰어가다가 자신의 발에 걸려버려 앞으로 넘어진 이유이다.
그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우뚝 멈춰 서버린 아한.
'가면 안되. 그녀가 위험해져....'
그는 가면 안된다. 절대로-
그걸 아는 아한이기에 그는 핸드폰을 들어 이유의 친구인 배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서 오라고. 니 친구 지금 피 흘리고 있다고. 제발 나 대신 돌봐 주라고...
- 당신 지금 이러는거 웃겨요.
"..피식. 알아, 나도."
- 난 당신을 위해 이러는거 아니라는 것도 잊지 않겠죠?
"응. 알아."
- 이유 불쌍하잖아요.. 맨날 잃기만 하는 앤데......
"....."
- ..왜 그랬어요. 왜 그런 조직에 들어갔냐구요!!
"....."
- 항상 당당하더니. 당신도 별 것 아니군요. 끊어요, 이유가 보여요.
"사람 죽이는건 취미따위가 아니야. 마지 못해 하는 짓이지."
탁-
아한이 먼저 핸드폰의 플립을 닫아버렸다.
그의 마지막으로 한 말을 겨우 들은 배윤은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인생 참 어렵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한 편 아한은 이유와 배윤의 형체가 겨우 보일 정도로의 거리를 두고,
골목길에 숨어 그들을 보고 있었다.
이유가 무사히 가고 있나... 싶어서.
배윤이 이유를 부축해 일으켜주자 이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걸 확신하는 걸까.
시야를 뿌옇게 가리는 그녀의 눈물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가자, 이유야."
"..우리 오빠.. 봤어?"
"누굴 말하는거야. 아니, 아무도 없었어. 그니까 가자."
"아니야.. 그가 느껴져..... 은아한이 느껴진다구.."
"..허튼 소리 말고 어서 가자. 추운데 너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구."
그제서야 잠자코 배윤을 따르는 이유.
지친 몸을 이끌고 천천히. 그가 그에게서 멀어지는 그녀가 보이게.
자신의 시야에서 없어진 이유를 확인하고 아한은 주저앉았다.
왜 이렇게 꼬여버린 것일까 하고.
그때 그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네, 형님."
- 그녀를 보냈나?
"네. 보냈습니다."
- 그래, 역시 넌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군. 크큭.
"...."
- 앞으로도 기대하고 있겠다.
"네."
- 다신 한 눈 팔지 마. 그땐 어떻게 될진 나도 모른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 좋아. 이번만 봐주지.
"감사합니다."
탁-
아무리 놀아봤자, 그는 그의 '보스'의 손바닥 안이였다.
어서 툭툭 털고 일어나라 효이유. 나 같은 건 잊고.
내가 아프고 내가 울께. 넌 웃기만 해.
안 그럼.. 이런 짓까지 한 내가 너무 웃기잖냐.
............안 그래?
"뭐야! 누구야?"
"나도 모르겠어. 안 말해주네?"
"모른다고 대탁 만나면 어떻해!! 막 나쁜 사람이면 어쩔려고!"
"공공장소에서 만나자고 한건데 그렇게 나쁠건 아니잖아?
"아오!! 경찰이 되갖고 그렇게 무방비하면 어떡해!!"
"나쁜 사람의 목소리 같진 않았어."
"..으윽. 그래, 내가 졌다 졌어.
그럼 오늘 그 사람 만나고 나한테 바로 전화해, 알겠지?"
"응응!"
'향기'
이유가 '향기'란 카페에 들어서자 달콤한 향기가 감싸왔다.
그녀가 들어서자 창가에 앉은 한 남자가 일어서 그녀에게 손짓을 해왔다.
'역시 나쁜 사람같아 보이진 않잖아?'란 생각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가면 그는 악수를 건내는 손을 내밀었다.
이유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그때와 똑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약간 다른것이라면, 지금은 확신이 들어간 대답.
"효이유씨, 맞군요."
"오빠를. 아시는군요."
"네. 아한이와 친구입니다."
"..오빠 잘 지내요?"
"하, 그럴리가요."
"...."
"그 쪽께선 슬픔을 극복하신 것 같네요. 역시 시간 때문인가요?"
서현의 말에 이유는 어이 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극복? 그건 몰라도 한 참 모르는 말이였다.
"다들 그런 핑계로 살아가죠."
"..?"
"쉽게 말하자면. 익숙해진거에요. 후각처럼.
하도 많이 아프고 슬퍼서 이젠 느끼지 못 할 뿐이라구요."
"..그럴 줄 알았어요. 아한은....."
그가 약간 망설이는 듯 해보였다. 진짜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남자는 사랑 따위에 울지 않아요. 더욱이나 사랑을 믿지도 않는 남자인데."
"...."
"하지만 심장은 미치도록 울고 있겠죠."
"...."
"효이유씨께 할 얘기가 있어 온 거에요. 그러니 잘 들어야 해요."
한 여자가 발에 불이 날 정도로 거리를 휘저으며 뛰고 있었다.
'직설적으로 말할게요. 아한이는 고아였어요.
항상 싸움질만 하고 다녀서 중2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죠.
그때 한 조직에서 그를 탐내왔어요. 그리고 그에게 조건을 걸었죠.
평생 호화롭고 안전하게 살게 해준다고. 그니까 자신의 조직에 들어오라고.
단, 한 조건에 아래에서. 죽을때까지 사랑을 해선 안된다는 조건이죠.
당장 밥 한끼 살 돈도 없는 아한에게는.. 희망의 빛이랄까. 합의한거에요.
그 조직은 어떠한 사람에게서 거대한 액수를 받고 의뢰를 해주는거에요.
별 짓 다해요. 심지어 사람을 죽이기도 하죠.
자신의 본부를 철저히 하는 아한에게 사람 죽이는 의뢰가 자주 들어가요.'
'..그럼 김우성 회장도..'
'의뢰죠. 아한이 죽인 사람이에요.
그러나 그 조직에 들어선 후 아한의 첫 번째 후회는 그의 첫 사랑. 나은주.
그녀와 사랑에 빠진 아한을 안 보스는 그녀를 죽였어요.
그게 조건을 어긴 대가라고. 그녀는 플라이츄어를 무지 좋아했어요.'
'..하.....'
'효이유씨가 그의 두번째 후회죠. 그는 또 다시 사랑을 하고 만 거에요.
그런데 효이유씨 만큼은 지킨대요. 그래서.. 탈퇴하려고 해요, 그 바보가.'
'........'
'조직의 법이라고 아나요?'
'..죽음..'
'조직에서의 탈퇴란. 죽음이 뒤 따라요. 그 바보도. 효이유씨도.'
'.....'
'그 바보 데리고 도망가세요. 그게 유일한 살 길이에요.
아니면. 그 조직의 손에 잡힌다면. 은아한과 효이유씨, 둘 중 하나는 죽을 목숨이
에요.'
민서현과 한 대화가 이유의 머릿속에 윙윙 거렸다.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나간다
하지만.. 해답은 있을까?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해답.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허억...헉..허억.."
이유가 아한의 오피스텔 앞에 섰다.
한 숨도 쉬지 않고 달려 온 터라 숨이 차 잠시 숨을 고르던 중......
"으헙!!........"
누군가에 의해 입이 막아지고 정신을 잃은 이유였다.
**
어두컴컴한 창고 안. 한 여자가 밧줄에 묶여 앉아 있었다.
곧 이어 창고 문이 열리고 보스라 불리는 사람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보스!!!!!!"
"그래. 둘 다 잡아왔지?"
"옙!!!!!"
"좋아, 좋아.. 여자분 깨워."
"옙!!"
부하라 측정되는 사람이 차가운 물이 담긴 바가지를 이유에게 그대로 덮어버렸다.
소스라지게 놀라 깨어난 이유.
"..으악!"
"크큭. 이제야 깨셨는가?"
"당신 누구에요!!!"
"이게 어따대고 소리를 질러!!!"
따악-
굉장한 마찰음과 함께 한 순간에 돌아가 버린 이유의 얼굴.
아플텐데 찍 소리마저 내지 않는 이유. 당당함이 배여 있다.
"아한오빠 어딨어? 어딨냐구!"
"깡 하난 제대로 박혀있군. 나은주보단 재밌겠는데 그래."
"..나쁜새끼.. 너 같은건 인간도 아냐."
"인간이길 포기한지 오래야.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지 말지 그래?
아, 애들아. 그 새끼 끌고 와."
"예!!"
그때 뒷문을 통해 부하들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아한을 질질 끌고 왔다.
피로 뒤덮은 것 처럼. 정말 죽기 전까지 패 놓은 것 같다.
겨우 눈을 뜬 아한은 의자에 묶여 있는 이유가 보였다.
"..뭐야.. 환상인가..."
"오빠...."
자신을 붙잡은 사람들을 억지로 떼워놓고 이유에게로 달려갔다.
그때 만큼은 보스도 잡지 않았다. 그들의 마지막 시간을 주는걸까.
꽉 감싸안았다 그녀를.
"..너 왜 여기있어.."
"...흐흑...."
"왜 여기있냐구!!!"
".....으읍.....으흑......"
"내가 너 살리려고 여깄는데 왜 니가 여깄어.."
이유는 그저 울고만 있을 뿐이였다.
2년만에 그를 본 기쁨에. 마지막이란 슬픔에.
아한은 그녀의 얼굴을 감 싸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의 첫 키스이자 마지막이 될 키스.
"사랑한다"
"..응"
그들을 지켜보고만 있던 보스가 더 이상 못 봐주겠는지
서서히 총을 꺼내고 아한에게 내 밀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짓밟는 말을 꺼냈다.
"은아한, 선택을 주지."
"...."
"살고 싶으면 네 손으로 저 여자를 죽여."
"...."
"아니면 저 여자를 살리고 싶으면 니 손으로 널 죽이고."
"...."
"큭. 선택해. 아, 허튼 생각은 하지 마. 총알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총을 건내 받은 아한은 피식 웃어보였다. 허탈한 웃음.
생각 할 필요도 없었다. 답은 당연했다.
밧줄에 묶인 손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오빠..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무릎을 꿇어 그녀의 키 높이에 맞춘 아한은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그녀의 의자를 돌려 자신을 못 보게 하였다.
그녀를 향한 그의 마지막 배려였다.
"지금까지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래도.. 당신은 참 한심하네요."
"....."
"다음 생앤.. 꼭 사랑을 해보길 바래요. 우성찬씨."
"....."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마 효이유-"
타앙-
그는 그렇게 어이없게 갔습니다.
어설프고 어렵게 산 27년..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결국 다른 사랑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한 명 입양해 이름을 은아한이라 지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80세가 다 되어 가네요.
아직도 고운 얼굴은 남아 있지만 주름이 여기저기 잡혔어요.
아, 또한 그녀는 여경찰이란 꿈을 버렸어요.
경찰이면.. 조폭도 잡아야 하는거잖아요.
그 조직도 잡아야 되는거잖아요.
그들을 다시 마주 볼 자신이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보냈습니다. 그녀의 사랑이 죽은 뒤, 그들의 보스의 눈물을 보아서요.
그에겐 평생 짐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확신을 한 이유입니다.
이유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네요.
한강 앞에 섰습니다. 그가 잠 든 곳에.
"오빠.. 나 이제 곧 오빠 곁으로 갈꺼야."
"늙어버렸다고 미워하면 안된다.."
"다음 생에선.. 우리 이러지 말자."
"행복하게. 그렇게 사랑하자.. 알겠지?"
첫댓글 어제보고 또보네용21!!!!!!!!!!!!!!
재밌는 소설인데 ..조회수에 댓글도 없어서 슬프네요.ㅎㅎㅎ. 잘 보고 갑니다.
재밌어요,!! 결국 해피인게 너무 마음에 들어요,!!
재미있어요 환생으로 해피인게 좋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