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하나님
말씀 : 창세기 2:4-25
요절 : 창세기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지난주는 특히 부활 주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로 말미암는 부활의 소망을 인해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다시 창세기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말씀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선한 뜻으로 말미암아 지은 존재요 사명의 존재요 또 하나님 앞에서 발견될 때 큰 기쁨을 누리는 존재임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더욱 세밀하게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장이 큰 그림이라면 2장은 세밀화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하셨는데 본문은 더 세밀하게 그 부분을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어떻게 하면 그가 행복할 수 있는지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게 나옵니다. 창세기의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이셨지만 여기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여호와라는 호칭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붙여진 호칭입니다.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마침내 아기를 낳고 아버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로 말미암아 엘로힘의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삼촌이나 아저씨가 아닌 바로 우리 아버지 나의 아버지가 되셨음을 말해줍니다. 5절에서 6절은 하나님의 세계를 관리할 인간이 나타나기 전의 땅의 모습입니다. 주인 없는 땅의 모습입니다. 100%중 1%가 빠진 상태입니다. 이런 중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진흙으로 사람을 만드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하나님의 손은 진흙이 가득 묻어 있고 마침내 하나님의 형상을 한 인간의 모습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록 아름답고 정교했지만 여전히 진흙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 진흙 덩어리에 하나님께서 그 코를 통해 호흡을 불어 넣으시니 마침내 생명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생명의 존재 인간이 탄생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만드시고자 궁리하시고 궁리하셔서 창조하신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만족해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호흡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는 곧 사람은 떡으로만 존재하는 존재가 아님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또 무엇을 해주셨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이 동산은 작은 동산이 아닙니다. 지루할 틈이 없는 공원입니다. 아름다운 나무와 아름다운 식물로 가득찬 동산입니다. 아름다운 새들이 아침저녁으로 노래해주는 그런 공간입니다. 들짐승들이 평화롭게 뛰어놉니다. 언덕과 계곡이 즐겁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생명수가 사시사철 흘러 흘러 큰 강의 발원지가 되는 그런 동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의 이름을 에덴이라고 하셨습니다. 에덴이란 기쁨이란 뜻입니다. 즐거움이란 뜻입니다. 우리말로 말해 에덴은 낙원입니다. 파라다이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기 전에 먼저 이런 환경을 준비해두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 동산의 나무를 보십시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을 나게 하셨습니다. 과일나무와 꽃나무들, 그리고 우람한 나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요즈음 철쭉이 얼마나 아름답게 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흰 철쭉 붉은 철쭉 정말 환상적입니다. 에덴 동안에는 이런 보기에 좋은 나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곧 있으면 아카시아 향기가 산속에서 흘러나오는데 에덴동산의 향기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나무들 중에 특별히 동산 중앙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심어두셨습니다. 중심되는 나무요 하나님을 특별히 더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또 이곳에 샘이 솟게 하셔서 네 강의 발원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강들의 이름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였습니다. 여기에는 익숙한 지명들도 있습니다. 바로 바로 아프리카 동부지역인 구스와 앗수르 동편인 유프라테스 강입니다. 각각 오늘날 이디오피아와 이라크지역입니다. 에덴은 온 땅의 중심이였으며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창설하신 이상적인 거주지였습니다. 에덴동산은 그 무엇도 부족함이 없는 행복의 동산입니다. 단순히 먹을 것과 살기 좋은 환경만 있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행복의 동산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지으신 사람이 행복할까 깊이 연구하시고 그것을 실행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아버지십니다. 그 아들이 행복하도록 모든 것을 설계하시고 만드셨습니다. 에덴동산은 1%도 부족함이 없는 공간입니다. 이곳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으신 사람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사람에게 할 일을 주셨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잘 지키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또 에덴동산에서의 삶의 규범을 주셨습니다. 16절, 17절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원시복음이라고 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자유입니다. 영어 성경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You are free to ea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에덴동산의 설정은 자유입니다. 이는 인간이 누리는 최대의 행복입니다. 자유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다. 만약 이런 문제에 제약이 있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얼마나 불만족스러울까요? 그러나 에덴동산에서의 삶은 모든 것이 자유롭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한 가지 금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무요 하나님의 영역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그리고 남편과 아내인 부부 사이에 지켜져야할 선이 있습니다. 지켜져야할 규율이 있습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관계는 무너지고 더 이상 그런 아름다운 관계는 사라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사람과의 사이에 단 한 가지 금지된 규율이 두셨습니다. 바로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서 다 다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부모가 되어 보지 않고 부모의 마음을 알기 어려운 이치와 동일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짧은 계명을 통해 분명 자신이 지으신 사람에게 참 행복을 주시기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렇게 놀랍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창설해주셨을까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해서는 안될 일을 했을 때 떳떳할 수 없습니다. 아들은 부모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고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맑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생명과 행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19절에는 첫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담입니다. 아담이란 사람이라는 뜻이면서 남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니 사람이 혼자 있는 모습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19, 20절에 열심히 일하는 아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또 그를 돕는 배필을 지으려 하셨습니다. 혼자 낙원에 사는 아담에게 1% 부족한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돕는 배필이 없었습니다. 함께 의논하고 함께 일할 돕는 배필을 지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21, 22절에는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 곧 여자를 어떻게 만드시는지 보여줍니다. 아담으로 먼저 잠들게 하셨습니다. 수술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갈빗대를 취하고 나머지는 살로 채워 마침내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인수인계하셨습니다.
아담의 고백이 이어집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아담은 시인이었습니다. 언어의 천재였습니다. 아담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마음과 사랑을 아내에게 표현하고 전달했습니다. 24절은 성경이 말하는 결혼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바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다른 몸이 아니라 한 몸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 결혼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아내와 남편은 내 자신입니다. 둘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결혼의 의미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이것을 마음에 두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25절은 결혼한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행복을 단적으로 묘사한 글입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니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이는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하나님은 인간을 행복의 존재요, 생명의 존재로 만드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 어떻습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잘 못살고 있다는 것이고 또 삶의 본래 목적과도 맞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인 아담과 이브만을 위해 에덴을 창설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에덴을 창설하신 이유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함입니다. 에덴동산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다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하나님이 주신 환경을 온전히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기본 계획은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입니다.
요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경주 UBF 이모세 2019.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