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노화"는 잦은 부상의 다른 이름이다.
작년 이맘 땐 집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허리를 크게 삐끗해 한 달 누워 살았고,
올봄 동창 회갑 여행 땐 순천만 사진을 찍다 전망대 문설주 모서리에 이마를 세게 부딪쳐
혼절 직전의 고통과 함께 혹을 선물 받았고,
그 다음날 관광한 하동 최참판댁 마루에선 다듬이질 해보느라 옆에 내려놓은 카메라를
깜빡 잊고 그냥 일어나는 바람에 동창회 회갑행사 기록들과 함께 내 애장품 디카와
영원히 이별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친구들과 함께 간 거제도 여행에서도 사건 사고는 여전하였다.
거제도의 명소 "바람의 언덕"에서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고 방전된 배터리를 교환하다
스마프폰을 돌바닥에 떨어뜨려 액정을 와장창 깼다.
결국 돌아와 12만원의 스마트폰 수리비를 써야 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외도 관광 후 리조트로 돌아가는 길에 재미로 탄 거제도 시내버스 안에서
햇볕쪽 좌석에서 그늘 진 건너편쪽 좌석으로 옮겨 앉으려다 미처 앉기도 전에
좌석 팔걸이에 꼬리뼈를 세게 가격(!) 당하는 사고를 당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시내버스 가속과 마침 앉기 위해 자세를 취하던 내 꼬리뼈가 꽝 충돌했으니
뼈가 산산조각 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었다.
꼬리뼈 부상은 이번이 처음인데
걷는 자세에선 큰 불편이 없지만 앉거나 똑바로 눕거나, 특히 앉았다 일어날 때 통증이 굉장했다.
귀경 후 병원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뼈가 손상되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꼬리뼈는 타박상이라도 통증이 극심하고 길게 간다는 것이다.
다칠 때마다 드는 생각,
'다른 친구들은 멀쩡한데 집중력과 순발력의 퇴화는 왜 유독 내게서 두드러진 것일까?'
남편은 사진에 한 눈 팔려 자꾸 다친다며 앞으로는 경치를 사진기에 담으려 하지 말고
마음에만 담아야 하는 나이가 된 거라고 말했다.
당장 걱정은 꼬리뼈 환자가 추석에 차 타고 오랜 시간 내려갔다 올라올 걱정,
앉아서 일 할 걱정,
화요일마다 있는 성경공부 할 걱정,
동창회 가을 문화행사 뮤지컬 관람할 걱정,
산우회 걷기와 강촌 레일바이크 탈 걱정,
걱정 또 걱정이다.
이 글도 몇 자 쓰고 일어서고 몇 자 쓰고 일어서고....
장시간의 레이스에 "고군분투"다.
아....
늙음이여! 아둔함이여!
이젠 부상이 무서워 한 눈 파는 건 물론,
사진 찍기도 발 내딛기도 겁난다.
PS 1.: 아침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중에 문득 스며든 생각.
'아, 하느님께서는 내게 견디어 털어낼 수 있는 만큼의 부상을 주시어
나이듦을 들여다보고 조심스럽게 살라는 신호를 보내시는 거구나!'
PS 2: 그렇지만 벗들과 함께한 거제도는 꼬리뼈 통증과 함께
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그 찬란함을 뽐낼 것이다.
-거제도 바다 전망의 명소 "바람의 언덕"-
멀리 풍차가 보인다.
리조트에서 바라본 일몰? No! 일출
저 유람선 타고 해금강 들러 외도 상륙
해금강
외도 상륙
외도의 주인 이장호씨의 추모비
보인다. 시내버스 저 팔걸이...ㅠㅠ (사진 맨 왼쪽)
리조트 갤러리
거제도 포로수용소 관람
끊어진 대동강 철교의 비극적 역사를 형상화 해놓은 설치물.
습관처럼 웃으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첫댓글 오늘 새벽, 청여고 카페에 올린 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근데 이 곳은 까마득한 선배님들 안전이라 글 내용(노화 운운)이나 소재에서 좀 자유롭지가 못하네요 ^^::
송구하옵니다. 꾸벅.ㅋㅋㅋ
으흐흐! 웃음을 참으며 재미나게 보았네요.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으나
부상은 주의해야 겠네요.
푸른 바다와 함께하는 친구들과의 가을여행이 멋져 보입니다. 부럽네요.
그리움님은 습관처럼(?) 웃는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습니다. 얼른 다문 모습보다는.......
이제 그리움님도 노화의 대열에 함께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요.
조심해야 할 때 입니다.
전에 저도 버스안에서 이동 중 급작스런 출발에 넘어져 엉덩방아를 쪘는데 누구하나 돌봐주는이 없고 아픔에 기사양반 원망의 눈초리에 반응도없고
그러니 자가용을 선호할 수밖에요.
다치면 나만 손해. 조심해야지 하는 몸사림이 노화의 모습인가봅니다.
이해가 되고 같은 아픔을 느끼며 글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