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정말 재미있네요...
계속 글 올려주십시요..
부탁합니다.
--------------------- [원본 메세지] ---------------------
여기에 글을 처음올리네요. 가입한지는 되게 오래됐는데
처음에 농구카페를 찾다가 바스켓맨이라는 말을 제가 자주쓰는데
그말이 생각이 나서 바스켓맨이라는 말을 조회하니까
이 카페가 있더군요. 둘러보니 그때는 사람도 별로 없었구
글도 몇개없었어요.
그때 코치정님의 나만의에피소드 게시판의 글들을 읽었죠.
후...그때의 흥분됨이란...
코치정님의 농구에 대한 열정을 느낄수 있겠더군요.
그리구 외국인들과의 농구게임. 아픈몸으로도 농구를 하는 열정.
바로 가입을 했죠. 그런데 서울에 한 1년 있다가 내려왔는데
내려와서 여기를 발견했거든요. 참 아쉽다는 생각을 했죠.
참고로 제가 살던데가 구리체육관에서 가까워요.
같이 농구를 하면 참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고등학교2학년 겨울부터 농구를 시작했거든요.
제가 겨울방학을 하고 있을때 그때 농구열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그런것때문에 농구를 시작한건 아니고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죠.
원래 농구나 스포츠에 관심이 없던 저는 아주 하루하루 무료하게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하루는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남은 시간에
밖에 나가서 있는데 농구를 하던 애들이 사람이 모자르다면서
저랑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웅...긴장 긴장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도 않은 실력들이지만 스포츠의 츠짜도
관심없던 저로써는 긴장되더라고요.
시작하자마자 패스미스를 하고 드리블은 원래 못하니깐 그냥
패스만했죠. 그런데 나에게 이런면이 하면서 생각하는 일이
생기더군요. 제가 조금씩 흥미를 가지게 된거에여 남은 시간이
다 되갈쯤 생각을 좀 했죠. 제일 잘하는애가 하는 기술을
하나만 따라해보자. 어떻게 수비수를 제치는지 봐야지.
이런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순간 머리를 탁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제가 제일 처음 본 그 기술은 아주 간단한 피벗이였어요.
공을 잡고 있다가 수비수가 붙으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고
나가는거였죠. 애들이 너무 초보였기 때문에 제일 잘하는 친구가
그런식으로 수차례 애들을 제치면서 돌파를 하더군요.
그 남은 저녁시간이 끝날즈음....
제 인생에 전환점이 될만한 사건이 생기게 되죠.
백코트에서 넘어온 공이 저에게로 온거죠. 3점라인밖이였는데
아까 머리에 몇번이나 새겼던 그 상황이 드디어 온거에요.
공을 잡은 나는 오른발을 상대수비 오른쪽에 넣고 드리블을 한번 두번
해버린거죠. 돌파를 해버린것이였습니다.
스포츠하고는 담쌓은 내가 그 짧은 순간에 배운그것을 제가 사용하게
된거죠. 그 감동이란.....남들은 아무도 몰랐지만 저만은
그 감동을 느꼈죠. 아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뒤에 어떻게 됐냐고요? 드리블 두번하고 그다음에 할만한 기술이
없던저는 여지없이 패스했져. 하지만 그짜릿한 맛을 정말 잊지 못하겠
드라고요. 그날은 계속 그 생각만 났고, 공부도 안되더군요.
아까 그상황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강백호의 점프슛같은거라고나 할까요.
전국대회에서 백호가 점프슛을 처음 성공시켰을때 북산이랑 해남선수들이
너무 놀라지만 모르는 선수들은 왜 점프슛하나에 저렇게 경악하나 생각
했을꺼에요. 남들이 볼때는 아무것도 아닌 돌파였지만 저에게는 일종의
경악이였죠. 그 후 겨울방학이 왔고 저는 농구교본이라는 교본은 다샀구
언제나 그기술을 쓰기위해 연습을했죠. 그러던중 새벽에 TV를 보다가
채널을 돌리는데 농구가 나오는것이였어요. NBA.....................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가 있었던거죠. 흐린 화질의 AFKN을 보면서 잠이
다깨버렸죠. 과연 저런것이 있구나 처음 NBA를 접하는 저는 농구를 참
간단하게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덩크라는 기술을 처음보게 되져. 그 간단
한 플레이가 얼마나 대단한건지는 나중에 알게되었죠.
저는 그 덩크에 빠져버렸어요. 농구의 꽃은 Dunk다.
참고로 제키는 183cm입니다. 덩크를 하기에는 좀 그런키죠.
특별히 탄력이 대단한 편이 아니였던 저로써는 운동을 해오질 않았으니
그때는 179cm쯤 됐을꺼에요. 제방은 온통 덩크와 NBA선수들의화보로
넘쳐났고 농구의 모든것은 NBA를 모방하기 시작했죠.
그때가 아마 94년도 쯤이였을꺼에요. 한 1년 농구를 했는데
학교 운동장에서 주말이랑 쉬는 시간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살기 시작했죠
운동장이 클레이코트(흙)인건 아시죠? 아무리 제가 NBA선수들의 기술
을 따라할려구 해도 덩크는 가망성이 별로 없었고 제가 가장 잘하고
싶었던건 드리블이였죠. 처음 돌파를 했을때의 쾌감이 그때까지 저를
지배하고 있었나보죠. 드리블을 연습하기에는 흙코트는 참 난감하거든요
그때는 거의다 흙에서도 마니 했기때문에 다른사람들은 별다른걸
못느끼더라고요. 하지만 NBA를 계속보던 저로써는 내 드리블 실력도
마니 늘었지만 흙코트에서는 진전이 없다는걸 알았죠. 그래서
농구코트를 찾다가 우연한 기회에 아스팔트 코트를 찾게되죠.
사직운동장에 있는 농구코트였죠. 이산가족을 만난것만큼 반가웠던 나
하루에 14시간씩 주말에 농구를 하게되죠. 오로지 농구만
드리블연습은 해도 해도 재밌었죠. NBA선수들의 크로스오버랑 비하인드
드리블 등등 노룩패스 그 사직운동장에서 픽업게임을하면서
계속 연습했죠. 처음에는 초짜였던 제가 드디어 그 동네에서
견제받을만한 실력이 된거죠. 드리블연습을 계속하다가보니 나중에
저보다 드리블 잘하는 사람이 없게 되버린거죠. 돌파에 관해서는
아무도 막을사람이 없을정도가 되버린거에요. 후....그 열정이란
드뎌 대학에 들어갔구 저는 부푼꿈을 가지고 농구동아리에 들어갔죠.
하지만 제 생각처럼 농구를 할수가 없었죠.
그 농구동아리는 일종의 체육학과의 동아리처럼 되어있었거든요.
게임을 뛸수도 없었고 농구에 대한 의미를 찾을수가 없게
만들더군요. 그리고 과에서도 농구를 많이 했는데 후..
열정이 없는 사람들과 같이 하긴 정말 힘들더군요.
그때부터 학교에서 습관은 마이클조던플레이그라운드 비디오와
93년도 결승전 시합 비디오를 시청각실에서 감상하는게 됐죠.
농구에 대한 폭발적인 열정을 터뜨릴수가 없던 학교를 마치면
저는 2시간 가량 차를 타야 갈수 있던 사직운동장 코트에서
개인기술연습과 픽업게임을 거의 매일 하다시피했죠. 키도 조금
더 커서 181cm정도 됐구 그때부터 했던 생각은 아..농구만 하고
살고싶다.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린거죠.
코웃음 칠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버린거죠
농구동아리는 탈퇴를 하고 사직코트에서 농구만하는 바스켓맨이
되버렸죠. ㅎㅎ 머리는 NBA 흑인들처럼 위는 조금 기르면서 옆은
거의 다 밀어버리고 그 동네에 농구하는 애들은 다 알게됐죠.
그런데 계속 혼자서 하다보니 팀이 필요했죠.
연습만하고 몇게임 못하고 그냥 가기에는 너무 시합을 하고 싶었죠.
그때 PC통신이라는걸 알게 되서 제가 가입하자마자
속공으로 팀을 만들고 주말마다 농구를 하게 되죠.
그러다가 어떻게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였구
저는 주말마다 말만 농구하러 온다구 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정리해버리고 진짜 농구 할사람만 남기고
팀을 이끌었죠. 저보다 나이 많은 형들도 있었지만
팀장을 하면서 성격도 마니 바꼈죠..
그러다가 드디어 올것이 오고 만거죠.
허리 디스크...
낳아도 농구하지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재발한다고
1달넘게 입원하면서 꼼짝도 못하고 허리에 추를 달고 있었죠..
농구가 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농구중계란 중계는 다보고
슬램덩크 1~27권까지 100번도 넘게 읽었을꺼에요.
후..그러던중 퇴원하고 슬슬 허리가 낳기 시작하더군요.
다시 복귀했죠.
농구하지말라고 해도 그런게 귀에 들어오나여
조금만하면 허리가 뻐근하고 힘들었지만 계속했죠.
흠..2학년이되고 1학기 말쯤 되갈때 교수님이 수업중에
해외어학연수 갈 사람을 뽑더군요.
메릴랜드랑 하와이였는데.
메릴랜드는 인원이 다찻구 하와이 가는 사람중에 한사람이
못가게 됐는데 비자가 빨리 나올수 있는 조건의 사람을
뽑는데 조건이 되는 사람이 몇명있는데 저도 거기 포함됐죠.
아버지가 선생님이셨거든요.
근데 아무도 갈려고 않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번쩍 손을 들었죠.
제가 가겠다고. 후..그때 제 머리속엔 미국의 농구를 맛본다는
생각뿐이였죠. 외국인들과의 농구..공부할 생각은 하나도 없었죠.
드디어 흑인의 정통파 덩크를 보겠구나하는 생각...농구본고장의
농구를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영어는 정말 서투르고 할줄 몰랐는데, 약간 긴장되기도 했져.
드디어 하와이에 도착...우리가 있을 기숙사에 왔죠.
호놀룰루 마노아 대학안에 기숙사인데, 후 넘 좋았죠. 깨끗하고
근데 기숙사가 ㅎ ㅏ..정말 내가 바라던 그런곳이였던거져.
창밖에 야구장이 보이구 그 옆엔 축구장 그 앞쪽에 길거리농구코트
길거리농구코트 뒤에 수영장 길거리코트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체육관. 선수용 체육관도 있고 일반 학생들이 오는 체육관도
있었죠. 같이 같던 학생들도 참 착하고 좋은 분들이였고
하루에 4시간듣는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길거리 코트나 실내코트를
찾았구 아니면 어디 놀러가서 영화보구 쇼핑가고 해변에 놀러가고
정말 환상적인 시간이였죠. 밤에는 맥주를 이따시만큼 사서 먹고
캔맥주가 엄청싸드라고요 한 60~70캔 사고 양주한병 사서
자주 먹었죠. ^^ 열 몇명이서 그리구 그날 있었던일을 이야기하는데
언제나 제가 겪은 농구코트 이야기가 인기폭발이였죠.
보리깜디는 정말 시커먼놈인데 참 탄력이 좋아서 폭발적인 덩크를
구사한다. 그냥 깜디는 별로 안시커먼데 센스는 좋다 등등
ㅎㅎ 나름대로 주석도 달고해서 재밌게 이야기 해주면 사람들은
재밌다고 내일은 같이 가자고~ 근데 ^^ 딱 한번빼고는 혼자
가서 거기 있는 애덜하고 같이 농구했죠. 210짜리 러시아애두 있었구
198쯤에 윈드밀 꼿는 흑인 3점슛 성공률 90프로의 61살 할아버지
거의 만화였죠. 한국에서는 몸좋은편이였는데 거기선 ㅎㅎㅎ
중학생 고등학생정도 근데 거기 애들이 저녁마다 어디 가는지 보니깐
웨이트장에서 땀을 흘리더라고요. 아 그래서 그렇구나 나중에
생각했죠.
식생활이 바뀌니까 탄력도 늘고 몸도 더 좋아졌죠.
후..그리고 거기 애들은 시작하기전에 맨투 OR 존디펜 하고 물어보는데
맨투라면 NBA처럼 자기 마크맨을 집중 마크하는거죠.
존디펜은 지역방어로 게임하고 그걸 미리 말하고 시작하는데
엄청 재밌었죠. 한국에서 게임할때 맨투맨 하질 않으니까
열정도 없고 거긴 뜰리거나 자기 마크가 슛을 넣으면 FUCK SHIT을
연발하면서 ㅎㅎ 흥분하는데 난 그게 더 좋더라고요
그 떡대들 사이에서 무섭지도 않냐거여? ㅎㅎ 내앞에서 InYourFace 하는
넘한테 당하고 넘어졌어도 난 재밌기만 하더군요.
몸싸움하고 슛을던지고 하는데 동양인인 제가 슛을 던지거나 어떤 플레이
를 할려니까 혼자 하지 마라면서 그러더군요. 자기들은 아예 패스도
않하면서 아마 제가 그냥 깍뚜기로 보였나봐여 제가 거기 갈때
드림팀2 유니폼을 잠옷으로 들고 갔는데 하루는 그걸입고 가서 농구하는
데 그날따리 좀 감이 좋았는데 멋진패스 몇번 했거든요. ㅎㅎ
애들이 연호하는 말 "사킬 오닐" 오오~~~~~~~~ 굳
제가 입었던게 13번 샤크꺼였거든요..
그 감동이란..그 다음부터는 제가 어떤 플레이를 해도 별말이 없더군요.
그 한달동안 제 영어실력은 간단한단어로 회화하는게 가능해졌구
농구실력은 Power up이라는 결고가 나왔죠.
저의 담당선생님이 저보고 어떻게 영어가 그렇게 빨리 느냐고
나중에 갈때는 가장 마니 성적이 오른 사람에
저를 지명하더군요. 참고로 이야기 하자면 저희 반에 10명은 일본인
1명은 한국인 저~ 선생님은 미국인 애들이 일본말로 떠들면
조용히 하라고 기 좀 팍죽이고 영어로 이야기하라고 하고
일본스님이 결혼하는것도 거기서 알았죠. 우리반에 스님이 있어서
그 일본애들을 한번은 기숙사 농구코트에 데리고 와서 농구하는데
저보고 프로바스캇볼 플레이아? 하믄서 그러는데 얼마나 뿌듯하던지
정말 하와이에서의 한달은 꿈같았죠. 그때부터
정말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됐어요. 음식도 맞고 사람도
나한테 맞고 모든게 저랑 다 맞았거든요. 거기다가 거긴
농구가 있었으니까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농구가요.
-반응이 좋으면 계속 올릴께요 아직 흥미진진한 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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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asketball Is My Life 1편
개미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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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2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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