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클레스의 검
그리스의 전설에 의하면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 왕의 디오니시우스의 신하중에
다모클레스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왕의 행복을 찬양했다.
그러자 어느 날 왕은 다모클레스에게 말했다.
“그대가 일찍이 부러워하여 마지 않던
임금의 자리에 하루 동안만 앉아보게.”
다모클레스는 왕의 후대(厚待)에 감격하면서 왕좌(王座)에 올랐다.
눈 앞에는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가득차 있었다.
문득 천장을 쳐다보니, 머리카락 하나로 매달아 놓은
예리한 칼이 보였다. 다모클레스의 감격은 대번에 공포로 변하고,
왕좌에 올라 앉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이 권력의 자리라는 것이 결코 밖에서 보는 만큼 편안한 것이 아니며, 항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민속학자 프레이저의 명저 <황금 가지>속에 나오는
‘죽음의 늪의 사제(司祭)’도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것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의 숲’이란 터부, 즉 금지구역으로서, 그 곳으로 도망친 노예는
노예의 신분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숲속에는 전날 역시
노예였던 ‘죽음의 늪의 사제(司祭)’가 있었다. 나중에 온 노예는
그 사제(司祭)를 죽이고 사제직을 빼앗기 전에는 숲에 머무를 자격이 없다.
이것은 권력의 자리를 둘러싸고 피비린내나는 투쟁을 상징하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일찍이 그 연설에서 핵무기를 ‘인류에게 있어서 다모클레스의 검(劍)’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인류 전체의 운명이 단추 하나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다.
아리아드네의 실
‘아리아드네의 실’은 그리스의 전설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아테네 최고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다이달로스가 조카를 살해한 죄로 아테네에서 추방당하여 크레타 섬으로 건너왔다. 크레타 섬의 왕인 미노스는 그를 크게 환영하였으며, 이에 다이달로스는 자신의 훌륭한 공예 솜씨를 발휘하여 인공의 암소를 만들어 바쳤다. 그런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미노스 왕에게선물한 황소에게 심한 욕정을 느끼고 있던 파시파에 왕비는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다이달로스가 만든 인공 암소 속으로 들어갔다. 포세이돈의 황소는 그 암소가 진짜인 줄 알고 파시파에와 교미를 했는데, 그 결과 몸은 사람에 머리는 소인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이 태어나게 되었다.
미노스왕은 이 괴물을 부끄럽게 여겨 다이달로스에게 라비린토스라는 지하 미로를 만들게 하여 안에 들어간 사람은 두 번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미노타우로스는 그 안에 갇혀 사람고기를 먹고 살았다. 미노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인들은 해마다 일곱 명의 소년과 일곱 명의 소녀를 공물(供物)로 미노스 왕에게 바치도록 되었고, 이들 소년 소녀들은 미노타우로스의 먹이가 되기 위해 한 사람씩 라비린토스에 보내졌다.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는 화근(禍根)을 뽑기 위해서 제물의 한 소년이 되어 크레타 섬으로 건너왔다.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사랑을 느낀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태세우스가 라비린토스에 들어갈즈음 실꾸리를 한 개 주었다. 테세우스는 그를 잡아 먹으려는 괴물을 죽이고 실끈을 따라 미궁(迷宮)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와 사랑의 열매를 맺은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이 전설에서 아리아드네의 실이라고 하면 어려운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아리아드네의 행복은 짧았다. 그녀는 순정을 바쳤으나, 테세우스는 그녀가 잠자고 있는 틈에 그녀를 버리고 도망을 쳤다. 이때, 그녀의 뱃속에는 테세우스의 아이가 잉태되고 있었다. 그 후의 아리아드네의 운명에 대해서는 난산(難産)으로 죽었다고도 하고, 비관한 끝에 투신 자살하려는 것을 술과 도취, 해방의 신인 디오니소스에게 구출되어 그의 아내가 되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체홉의 소설에 ‘아리아드네’라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쓴 단편이 있는데, 그 구슬픈 이야기를 쓴 작가의 뇌리에는 아리아드네의 운명이 비췄으리라.
한편, 테세우스는 아테네를 떠날 때 부왕에게
“괴물을 토벌하고 무사히 돌아올 때에는 흰 기(旗)를 배에 달겠습니다.”
라고 약속했는데, 막상 개선하는 길에 그 약속을 깜박 잊었다.
해안에 들어오는 아들의 배를 바라보던 부왕(父王)은 백기가 안 보이자
아들이 괴물에 먹힌 줄 알고 비탄한 나머지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래서인지 에게해의 이름은 아이게우스 왕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