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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온 한 사나이를 만났습니다.
지난 2일 회사 앞 마당에서 컴불 형님이 다리를 놓아주셔서 1965년생 인드라와 씩씩한 청년 정 군을 만났습니다. 정 군은 현재 성대 언론정보대학원 재학 중이더군요.
삼겹살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네팔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정 군은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활동을 한 인연으로 네팔에서 꽤 오랜 기간 머문 적이 있어 현지 사정에 밝았고 인드라는 우리가 여행 가려는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마디로 동네 사람입니다. 수년 전 한국에 근로자로 와 일하다가 정 군을 만나 인연을 맺었고 상당히 오랜 기간 우정을 이어왔더군요. 컴불 형님의 회사와 어떻게 연결돼 히말라야 트레킹 상품을 준비하는 중이었고요.
외모상으로는 얼굴이 햇볕에 탄 경상도 사나이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전혀 외국인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더군요. 눈에 띄는 것은 귀고리를 아주 귀엽게 박고 있다는 점 정도이지요.
이날 만남은 양측 모두에 탐색전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네팔이 그렇게 관광 기반이 조성된 곳도 아니고 모든 상황이 우리를 위해 세팅돼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애초에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가 모든 상황을 세팅해 돈을 절약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녀오신 분들에게 신세 지는 방법도 생각했으나 그것도 조금 그렇고 더운 날씨에 우리를 위해 머리 굴리고 수고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쉽지도 않은 일이군요. 해서 조금은 안정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대어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이날 만남의 핵심을 정리합니다. 세세하게 들은 정보는 뒤로 하고 가급적 줄기를 찾아 말씀드리겠습니다.
혜초여행사라고 네팔 전문으로 이름난 여행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시한 가격은 12박13일 220만원.
포카라까지 오는 일정 중 식사,네팔 비자,출국분담금,네팔 공항세,유류 할증료(60달러)는 포함되지 않은 가격입니다.
두 사람이 제시한 가격은 같은 기간에 200만원 정도입니다. 물론 변수가 많습니다. 11월 비행기 요금은 아직 확정되지 않고 있고 포카라까지 국내선 비행기로 왕복할 것이냐, 한번은 버스를 이용할 것이냐에 따라 다르고 인원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비행기 할인 등 변수가 있어 어느 누구도 현재 상황에서 정확한 가격을 얘기할 수 없다는 것 잘 아시죠.
제가 두 사람에게 얘기한 것은 "경비 문제가 아니라 직장인이 회사에 부담을 많이 주어야 하기 때문에 10박 11일 정도로 줄이면서 돈도 약간 세이브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인드라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 하루 고도차 500m 이상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그 정도 일정은 불가피하다고 난색을 표하더니 제가 재차 그 점을 강조하자 한참 생각하더니 "한번 일정을 조정해보자"고 하더군요. 그러나 산행 가이드가 우리의 상태를 보고 판단한답니다. 그리고 명령한답니다. 쉬어라 그러면 쉬어야 한답니다. 그 말 안 들으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11일 일정으로 조정하되 여의치 않으면 13일 일정으로 늦춰질 수 있어 돌아오는 편은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하자고 했지요.
산에서 내려와 둘 중의 한 비행기 편은 취소하면 그만이니까요. 산에선 마오이스트 때문에 일절 전화나 통신이 되지 않는답니다.
인드라도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자신들이 짠 일정은 국내선 비행기 왕복을 생각한건데 버스로 한번 달려보는 것도 좋다고요. 까마득한 계곡을 달리는 네팔 버스에 앉아 현지인들과 호흡하며 히말라야의 절경을 즐기는 것도 괜찮다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탑항공사 직원에게 알아본 스케줄에 따르면 아침 인천을 출발해 오후에 카트만두에 도착,다음날 오후 국내선 비행기로 포카라까지 가는 방법이 있더군요. 사실 버스로는 5~6시간, 비행기로는 1시간입니다. 인드라에게 들은 놀라운 얘기는 카트만두의 공기가 아주 안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은요, 라고 물었더니 아주 좋은 상태랍니다. 카트만두에선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할 정도라는 겁니다. 해서 카드만두 관광은 돌아올 때 하는 걸로 하고 포카라 가는 버스를 아침에 일찍 타버리자는 겁니다. 두 사람이 짜온 초안은 방콕에서 하룻밤을 자고 카트만두에는 다음 날 낮에 떨어져 포카라로 이동, 2시간 정도 걷는 것으로 돼있습니다.
인드라는 내려올 때는 약간 오버해도 상관없다, 고산병은 내려오면 낫는 병이라고 했거든요. 제 생각으로는 이런 식으로 하면 초반 하루 후반 하루 일정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드라는 이달 말 비자 때문에 잠깐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들어온답니다. 항공사 요금도 그때쯤 확정될 것 같아 그 시점에 맞춰 다시한번 요금을 조정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 팀 가운데 네팔 가겠다는 의사를 밝히신 분(한번이라도 회비 넣은 분 포함, 그러나 이 중 몇분이나 가게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은 다섯 분입니다. 제가 아는 세 분(이 분들은 가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과 피엘 형님의 친구 분입니다. 현재 상태로 최대 인원은 아홉 분, 최악의 경우 다섯분 정도가 되는 것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타이항공은 4명 이상이어도 조금, 아주 조금 할인됩니다.
전 최근 저희 부장에게 10박11일 휴가를 허락받았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주말 끼고 11일 휴가,최악의 경우 13일 후 귀환으로 늦춰질 수도 있음을 알려주시고 허락을 받는 게 최선일 것입니다.
정확한 날짜를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은 앞에서 설명드렸고요, 직장에 말씀하실 때도 이런 점을 알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인드라나, 정 군, 또 함께 여행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또는 산행을 가급적 빨리 함께 하려 합니다. 호흡이 중요한데 친해지면 네팔에서의 호흡도 그만큼 쉽게 맞출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네팔에 못 가시는 분도 널리 양해해주시겠지요. 제가 아는 한 분은 지리산 종주때 봤는데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예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분이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겠지요. 여러분이 산행하는 데에도 귀감이 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한분은 울트라 마라톤 100킬로미터를 10시간에 뛰시고 전국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가시는 분이예요, 또 다른 한 분도 분위기도 잘 맞추고 산도 아주 잘 타시는 분이지요.
인드라, 정 군과 2시간 정도 얘기 나누다보니 서로의 친구들이 애타게 찾고 있더군요. 해서 아쉽지만 그냥 헤어졌습니다. 헤어지는 것도 아쉽고 가족을 네팔에 놔두고 여기 와서 친구들과 지낸다는 인드라에게 행운을 빌며 친구들 몫까지 로또를 사서 건넸습니다. 물론 정 군도 저도 샀습니다. 처음엔 케이크를 사서 줄까 했는데 로또로 일주일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겠다 싶어서요.
정 군은 네팔에서 수년 동안 살다 서울 지하철을 타보니 사람들 눈빛이 너무 날카로워 한동안 눈을 맞추지 못했고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네팔 사람들 순수하기 짝이 없답니다. 인도에서 지친 영혼을 네팔에서 쉬고 간다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다고 인드라는 말하더군요.
마오이스트들에게 입산료를 따로 내야 하고 총파업 기간에는 마오이스트들이 두려워 가게 문을 모두 닫고 거리에 나오질 않는답니다. 피비린내 나는 왕실 살육극을 통해 집권한 국왕 통치 하에 살면서도 마냥 착한 사람들.
인드라를 보며 우리는 산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산과 사람,사람과 산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려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책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그가 산에서 닷새를 굶고 계곡으로 나와 파키스탄 원주민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인상적이더군요. 그리고 헤르리히코퍼와의 애증관계도 흥미롭더군요. 멱살을 잡을만한데 그는 아주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에서 산사람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더군요. 하기야 헤르리히코퍼 역시 형제를 낭가에 묻은 아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이었으니까.
글을 정리하면서 들은 두 앨범을 추천합니다. AIR SUPPLY의 그레이티스트 히츠 앨범이 나왔습니다. 아주 좋았습니다. Gidon Kremer의 피아졸라 탱고 예찬 앨범도요. 35도를 오르내린 서울의 날씨, 분명히 살인적인 무더위입니다. 그런데 크레이머의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면 시원해지더군요.
[독후감을 이어붙입니다. 우선 '벌거벗은 산'의 한 대목을 함께 하지요.
산사람들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평지에 사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경외심에 가득 찬 마음으로 침묵할 것이다.책이나 보고서를 통해 경험한 산사람들의 우정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더군다나 모든 대원들이 서로에게 의존 관계에 있는 원정대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여기서 등반대 혹은 자일 파티의 개념은 오늘날의 그 애매한 유행어인 팀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경탄할 만한 감동과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이 지구상에서 제일 높은 산들을 등정하기 위해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여 히말라야로 몰려오는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그들의 마음을 바치게 한다.그들은 정말 아무 이익이 나지 않는 일을 위해 목숨을 바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산악 관련 서적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박인식 선생의 ‘사람의 산’이란 책이었다. 연세대 산악부 출신의, 정말 한국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산악 문장을 개척했다고 생각되는 그의 책은 1985년 나왔던 것을 지난 2003년 11월 바움이란 출판사에서 다시 펴냈다. 값은 물경 2만 3000원.
그 흔한 컬러 사진 한 장 안 들어있고 주먹만한 흑백 사진만 고답적으로 실린 그 책에서 그러나 나는 2억 3000만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행복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산에서 죽은 사람들 얘기로 시작한다.김혜경 송준호 유재원 최수남 등 산에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라진 사람들에 관한 얘기로 시작된다.
산은 외로움, 서러움이란 식이다. 그의 글은 깊은 페이소스를 갖고 있고 비관적이며 염세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희망적이다. 날카로운 폐부를 찌르는 문장은 그야말로 '죽이는' 문장의 경지를 밟고 있다. 산에서의 고민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이어졌고. 산사람들이 맹목적이지 않고 철학적 사고가 확장된 철학자라는 느낌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해서 이 책은 산사람들의 철학서로 읽혔다.
솔직히 메스너의 책은 워낙 기대가 컸던 탓에-책 구입하지 말라는 훈령으로부터 손에 쥐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아마 더 조바심이 커졌지 않을까-도입부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구질구질하게 흩뿌린 8월의 빗방울이 습도를 높인 탓도 있었을 게다. 메스너의 발자취, 생각의 흔적을 발견하고자 했던 나는 메르클과 헤르만 불 얘기에서 머뭇거리는 메스너를 보며 조바심을 주무르고 있었다.
훌륭한 저술가, 대중의 취향을 간파할 줄 아는 메스너였다면 곧바로 이번 책의 클라이맥스-둘의 조난 과정과 혼자서 디아미르를 내려오게 된 경위, 그들이 조난당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을 서술하면서 메르클과 불 얘기를 슬쩍슬쩍 양념으로 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런 식이었다면 메스너는 그런 빛나는 등정사를 써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겐 그런 얕은 수보다는 오직 한땀 한땀 뚜벅뚜벅 걸어가는 오체투지와 같은 열정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그러다 두 형제의 별도 등반-라인홀트가 먼저 올랐고 나중에 4시간만에 형을 따라잡은 귄터의 분전이 돋보이는, 거기서 비극의 씨앗이 흩뿌려진-에서부터 책은 서서히 긴장의 도를 높여가더군요.
그리고 조난, 닷새동안 비박도 못하고 서서 잠을 자면서도 항상 귄터를 돌보며 극적인 하강 루트를 찾기까지 메스너는 복잡다단한 자신의 심경을 30여년이 흐른 지금, 너무도 정확하고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극적인 순간을 이토록 담담하게 술회할 수 있다는 것은 메스너가 가진 좋은 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됐다.
그리고 헤르리히코퍼와의 애증-그 역시 형을 낭가에 묻은 아픔을 지닌 이로서 70년 등정을 리드했고 귄터를 죽게 한 원인을 제공한-. 어쩌면 의도됐을지도 모르는 잘못된 폭죽 신호로 결국 두 사람은 정상 정복을 서두르게 되고 이로 인해 조난이 불가피하게 된-그러면서도 보통 사람이면 멱살을 잡고 분노할 상황인데 말없이 30여년을 지켜본 뒤 이제야 조심스럽게 그것도 감정을 극도로 억제하면서 담담히 털어놓는 메스너의 독백은 넉넉한 인간미, 산을 제대로 정복한 이가 누릴 수 있는 인간미의 완성으로 읽혔다.
산 이야기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쩌면 사람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발길이 아무리 산으로 향한 들, 또 그 정상으로 향한 들, 정말 산을 모르는 님들이 항상 읊듯이 “내려올 걸” 굳이 “오르려는” 이들은 어쩌면 불을 훔친 죄로 가망없는 형벌에 시달리는 시지프스의 운명을 닮은 건지 모릅니다.
감명깊었던 것은 메스너가 순수, 영혼의 순수를 찾기 위해 산에 오르고 바로 이득이 되는 일, 바로 보상이 돌아오는 일을 마다하고 아무 대가없는 순수의 마음을 즐기기 위해 산에 오른다고 털어놓은 대목이었다. 산에 오르려는 이유는 이렇듯 혼자일 때 가장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한가지 거슬렸던 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서구인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 파키스탄 청년들과의 조우 장면. 이 장면에서 그는 우월감을 드러내는 태도로 일관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동상에 걸려 한 발자욱도 못 옮기는 자신을 업어서 산 아래로 옮겨주는 이에 대해 으레 따라야 할 감사의 인사도 생략하고 있는 듯하고 샤히브라는 외국인 나으리라는 표현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뒤 재로가 얼마 전 읽으라고 권한 ‘검은 고독 흰 고독’을 이어 붙여 읽고 있다. 더 좋다. 이 책은 ‘벌거벗은 산’이 집중하고 있는 70년의 낭가 첫 등정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말을 줄이고 73년과 78년의 등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두번 다 단독등정이었던 만큼, 또 귄터의 죽음에서 기인한 죄책감, 두려움을 극복하고 산에 오르는 이의 희열, 그 정열의 순간을 온전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욱 좋았다. 아니 좋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중이어서.
재로는 검은 고독 흰 고독을 먼저 읽고 벌거벗은 산을 읽었으니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기회 있으면 호흡이 긴 글로 자신의 느낌을 전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난 83년 출간된 한글 번역본이라 그런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풍기는 먼지 냄새에 세월의 내음이 축적돼 있는 것 같아 더욱 즐겁다. 다소 낡은 활자 폰트와 샛노랗게 변질된 지질, 그러나 그 냄새는 내게 흘러간 시간을 되돌려주는 역할을 해 너무 좋다. 앞에 얘기한 세 권을 모두 읽으면 땡볕 무더위 쯤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이 책을 보며 낭가에 꼭 한번 가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사람의 산을 읽고 토왕폭을 한번 꼭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던 때처럼. 그러나 끝내 가보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떠랴. 나는 이미 마음 속으로 낭가를 품고 있다. 적어도 귄터가 묻힌 그 지점까지, 끝없이 이어진 디아미르 계곡의 길과 강 그림을 보면서 경탄할만한 각도의 세락을 넘어 언젠가 그 경지에, 세상의 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딸아이가 돌아오면 함께 암벽등반학교에 등록해 정말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즐거운 상상도 함께.
'사람의 산' '검은 고독 흰 고독'이 읽고 싶은 분은 제게 말씀하시면 택배로 보내드린다.
끝으로 사람의 산 중에서 이거다 싶은 두 대목으로 디아미르에서 숨진 귄터의 영혼에 레퀴엠을 올린다.
첫째는 박인식의 문장이 주는 기괴한 아름다움이다.
얼마 전 어떤 소설가의 산악소설을 얘기하던 산친구는 주머니 털어 소주 한잔하며 씹던 돼지갈비 안주를 토하고 말았다. 그의 피와 살이 되려다 말고 도로 튀어나온, 덜 씹힌 돼지고기들은 시멘트 바닥 위에서 불길에 다시 데인 것처럼 꿈틀거렸다. 삼키기 힘들었던 클라이머의 자존심이었겠다.(중략)
그동안 산행을 해오면서 남달리 알피니즘에 매달렸다. 도에 매달려 이팔청춘 뜨거운 몸 마다하고 머리 깎고 먹물 옷 입고 입산한 중처럼 말이다. 불문에 더러 견성하는 이도 있겠지만 종종 땡초가 생긴다. 땡초가 된 원인이 그의 너무 완전한 것을 구하려는 융통성 없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비정상(이러한 건방진 분별을 용서하라)이라는 점에서 도도 제약회사에서 만든 거개의 약처럼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근자에 와서 알피니즘의 땡초가 된 기분이다.
둘째는 예의 철학이다.
우리나라 클라이머들 중에는 여러 전문가는 있어도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진 지식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이 우리나라 클라이머들을 그릇 인식되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클라이머들은 이러한 일에 초연하다.
등산을 무상의 행위라고 한다. 모리스 엘조그와 안나푸르나를 처음 오른 리오넬 테레이의 등산 철학이 그랬다. 클라이머의 외로운 투쟁에 상은 없다. 혹시 등산으로 상장이나 훈장을 받은 적이 있으면 엿 바꿔 먹어라.
하지만 사실 알피니즘은 보상을 받는다. 그것은 다만 형태가 없다. 열린 귀는 들으리라, 열린 눈은 보리라, 그 대가를!
알피니즘의 보상은 알피니즘이 인간정신 영역 확장에 기여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때로는 생명까지도 바침으로써 그 영혼이 받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산과 알피니즘에 답하는 최고의 보상이다. (중략)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클라이머의 세계를 가장 잘 얘기한 사람은 생택쥐페리다. 그는 클라이머가 아니다. 그러나 가장 클라이머답다. 그의 클라이머론에 귀기울여보자.
'대지는 우리 자신에게 어떤 책보다도 많이 가르쳐준다. 왜냐하면 대지는 우리에게 저항하니까. 인간은 장애물과 겨룰 때 비로소 제 자신을 발견하는 법이다.'
좋은 책 권해 읽게 해준 그냥 형님에겐 '그냥' 엎드려 감읍할 따름이다. 그 값음을 또 좋은 책 소개로 대신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안나푸르나에 저녁 그늘 내리면 우리 모두 랜턴 켜고 둘러앉아 앞의 세 권의 책을 읽고 또 읽고, 읽다 지치면 하늘의 별 우러러보기를.
벌써 느껴지지 않은가. 그 알싸한 안나의 새벽 공기가.
첫댓글 나는 최근 3-4일 사무실 에어컨 고장으로 그냥 생(이럴 땐 쌩인데 그자?) 사우나를 하고 있다. 근데도 일은 막바지라서 하루 12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앉아있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단한 일인 것 같지만 평소 일을 하지 않응께... 진짜 참말로 덥다. 100년만의 더위가 없다카더만...네팔의 눈덮인 산도 효과가 없네....
다들 막바지 더위에 조심하고. 하나의 제안. 그냥이 힘들게 책도 직접 사서 다들 돌렸는데, 가능하면 읽은 사람들 독후감 올리기... 나는 아직은 읽을 시간이 없응께. 이달 내로는 읽을 생각이긴 한데, 그건 두고봐야 하겄고. 다들 독후감 올리면 잘 쓴 사람 뽑아서 상 주께. 뭐냐고? 그건 맡기고...잘써보시라구...ㅎㅎ
파리형은 약간 센티라서 딱딱한 글 보며 졸았슴?. 왜? 그 쓸데없는? 하는 의구심도 갖고.... 눈앞에 놓인 책 너무 좋았고 드니 끝난 나. 멍게도 하룬데... 형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재로의 화법은 독특하기 그지 없구나.책을 들자마자 다 읽었다는 얘기지.멍게도 하루만에 다 읽었다는 얘기지.근데 센티라는 말 뜻은 뭐지.
재로와 알자지라가 안나를 만나는 그림은 참으로 잘 어울린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센티는 센티멘탈(감정적...이라는) 의 약자 아닐까 ?